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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79화 (79/141)

79화

서진은 설하윤과 함께 협회장의 집으로 향했다.

현재 협회장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딱 두 가지.

의식 불명 상태이며 자택에 있다는 것.

“서진 님. 도착했습니다.”

차로 개성에서 성북구까지 내려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진은 멀리 보이는 검은색 대문을 힐긋 보며 말했다.

“저 집입니까?”

“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협회장의 저택은 철옹성을 연상케 했다.

그뿐만 아니라 협회 헌터들이 곳곳에서 삼엄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거수자가 보이면 바로 죽여버릴 것 같은 살벌한 기세가 느껴진다.

“아무래도 차로 더 이상 접근은 힘들 것 같군요. 여기서 멈추죠.”

“예.”

흑룡검가의 후계자라고 해도 함부로 들어가기 힘든 분위기.

어떻게 들어가야 할까.

무작정 저택에 다가갔다가 저지당하면 그만한 민폐도 없다.

헌터협회는 길드 세력이라 서진과 거리감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서진은 연락처를 뒤져서 협회장의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신호음만 갈 뿐 받질 않는다.

평소에 협회 쪽에도 끈을 만들어 놓을 걸 그랬나?

아니 생각해보니 이럴 때 쓸만한 연락처가 있었다.

‘마력관리청장.’

서진은 바로 그에게 전화해서 협조 요청을 넣었다.

서진에게 여러 번 빚진 마관청장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1분도 채 안 지나 답장이 왔다.

-오케이 받았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알아보니 주양헌 비서실장도 과로로 쓰러진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못 받았던 건가.

서진은 폰 화면에서 시선을 떼며 고개를 들었다.

“하윤 씨, 들어갑시다.”

차를 몰고 접근하자 굳게 닫혀있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

“협회장님은 3층 안방에 누워계십니다.”

서진을 맞이한 사람은 평소 저택을 관리하던 집사였다.

서진은 그를 따라 올라가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건지 대략적인 상황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평소 비서실장만큼이나 협회장 곁을 오랫동안 지킨 사람이다.

협회장에 대해선 헌터협회 간부보다 알고 있는 게 많을 터.

“자세한 정황은 모르지만 제가 본 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집사는 걸음의 속도를 늦추며 말을 이었다.

“벌써 한 달 하고도 이주는 지난 것 같습니다. 그날 제가 서재에 들어갔을 때, 협회장님은 쓰러져 계셨습니다. 저는 바로 의사와 치유계 헌터를 불렀고, 현재 상태는 여기 보시는 대로입니다.”

집사가 안내한 3층의 안방은 병실을 옮겨놓은 것 같았다.

하긴 병원보단 자택이 경호하기에 훨씬 용이할 테니.

협회장은 겉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마나 상태를 살펴본 순간, 서진의 동공이 확대됐다.

‘없어?’

협회장 체내에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 강대한 10레벨의 마나는 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서진이 고개를 돌리자 집사가 검지를 입술에 올렸다.

“방금 보신 건 극비입니다. 절대 알려져선 안 됩니다.”

“이렇게 된 원인은?”

“안타깝지만 현재로선 아직...”

그렇겠지.

오히려 안다고 했으면 이상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이건 7성주 중의 한 놈.

리치의 ‘마나 드레인’이란 스킬 때문이니까.

텅 비어있는 협회장의 육체.

몸 곳곳에 희미하게 돋아난 검은 반점까지.

서진이 이계에서 목도했던 스킬이 맞았다.

그리고 협회장이 현재 혼수상태인 건 마나 드레인의 여파였다.

마나를 흡수한 놈을 잡지 않으면 이대로 서서히 죽어간다.

‘하지만 리치인지는 불확실해.’

헌터가 그런 스킬을 얻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그래도 아직 이해가 안 가는 점이 있었다.

서재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됐다고 했으니.

자택에서 전투를 치렀다면 이미 부서지고도 남았을 터.

“당시 발견했을 때 다친 곳은 없었습니까?”

“있긴 했는데 그리 심하진 않았습니다. 닷새 만에 부상은 힐로 전부 치유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한 달 넘게 숨긴 이유는 뭔가요?”

“두 달 전부터 협회장님이 비서실장님에게 몇 번 당부를 했었습니다.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최대한 공개를 미루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어 불가피하게...”

“그렇겠죠.”

언제까지나 비밀로 할 순 없는 일이니까.

“그럼 협회장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진 아무도 모른다는 거군요.”

“그게.”

집사는 무심코 말을 하려다 말았다.

당연히 서진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괜찮습니다. 말해보세요. 이대로 있는다고 해결이 되진 않습니다.”

고민하며 망설이던 집사는 입을 열었다.

“비서실장님과 아가씨는 무언갈 알고 계신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제가 그렇게 느낀 것뿐이라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가씨는 협회장님의 손녀를 말하시는 건가요?”

이름이 임유나라고 했던가.

저택에 오기 전에 간단하게나마 정보를 확인하고 온 참이었다.

“예에.”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아가씨는 온전히 대화를 할 수 있는 몸 상태가 아니라서 힘들 듯합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서진의 의문 섞인 눈빛에 집사는 추가 설명을 했다.

“협회장님이 쓰러진 채로 발견되고 나서 급격하게 안 좋아지셨습니다.”

서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협회장에 대해 알만한 두 사람 모두 상태가 안 좋다니.

과연 우연일까.

어쨌든 여기까지 와서 손녀를 안 보고 갈 순 없는 노릇.

“부탁드리겠습니다. 정말 힘들다면 얼굴만 보고 나가겠습니다.”

집사는 곤란한 듯 한숨을 쉬었다.

“알겠습니다. 대신 딱 한 번입니다.”

서진은 집사를 따라 2층으로 내려가 길게 뻗어있는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 한 방문 앞에 멈춰 선 집사는 노크했다.

“아가씨.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응.”

방문 너머로 미약하게 들려온 대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힘없이 의자에 앉아 멍한 눈빛을 하고있는 협회장의 손녀.

한눈에 봐도 상태가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집사는 서진에게 얼른 나가달라는 눈치를 주었다.

“당신은...”

정신이 반쯤 나간 듯한 임유나는 서진이 들어오자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한서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 덕분인지 그녀는 서진을 알아보았다.

집사는 눈을 크게 떴다.

여태까지 누가 들어와도 본 채도 안 하던 아가씨가 입을 열었기에.

그녀의 반응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윽.”

얼굴을 찌푸리며 고통스러운 기색을 내보였다.

“아가씨! 죄송합니다. 얼른 나가겠습니다.”

집사는 기겁하며 서진을 끌어당겼다.

하지만 서진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임유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실 마나 경로를 파악하는 중이었지만 그걸 모르는 집사는 애가 탈 뿐.

“괜찮아요.”

그때 임유나가 힘겹게 입을 열어 집사를 말렸다.

“잠시만, 둘이서 대화 좀 할게요...”

“괜찮겠습니까?”

집사는 걱정스레 바라보다가 조용히 물러났다.

**

살면서 누구나 부러워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 기준은 돈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외모 혹은 건강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재력과 재색을 겸비해도 건강이 안 좋다면 의미가 없는 법.

많은 걸 가지면 뭐 하겠는가.

그걸 다 누리지도 못하고 죽어갈 뿐인데.

그렇기에 임유나에게 한서진은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마광병 때문에 할아버지에게 도움만 받고 방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자신과 달리,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으니까.

같은 병인데 어찌나 다른지.

시간만 나면 한서진을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임유나는 그의 활약상을 접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곤 했다.

예전에 할아버지가 한서진을 찾아간다고 했을 땐 살짝 기대하기도 했다.

어쩌면 자신도 나을지 모른다는 희망.

하지만 흑룡가에서 돌아온 할아버지는 한서진이 아닌 다른 얘기를 꺼냈다.

기존에 복용하고 있던 항마제가 아닌 신약이 나왔다는 충격적인 소식.

만약 신약을 통해 낫는다면 더 이상 할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비난받을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생각만 해도 마음 한 켠이 편해지는 듯했다.

그래도 임유나는 불안한 신약보단 한서진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일방적으로 찾아간들 민폐일 뿐.

그렇게 마음을 접고 신약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으윽.”

한서진을 본 순간, 강제로 묻혔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두통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싫어.’

임유나의 기억은 다시 깊숙이 가라앉았다.

가만히 서서 지켜보던 서진은 그녀가 어떤 상태인지 알아챘다.

웜급의 용체화는 조악하게 망쳐놓은 임유나의 마나 경로를 꿰뚫어 보았기에.

‘누군가 강제로 기억을 떠올리지 못 하게 만들었군.’

덕분에 임유나의 상태가 이상해진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스킬로 쉽게 치유할 수 없게 경로를 건드린 모양인데 서진이 보기엔 조잡한 수준이었다.

‘일단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려면 이 상태를 고쳐야겠지.’

서진은 임유나의 등에 손을 올렸다.

임유나의 반응은 무덤덤했다.

남이 손을 대든 말든 신경 안 쓴다는 태도.

그만큼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증거였다.

서진은 임유나의 체내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마법을 배우면서 더 세밀해진 컨트롤과 진화된 용체화 능력이 어우러져 임유나의 마나 경로를 빠르게 복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분이 채 지나기 전, 효과가 나타났다.

임유나가 등을 바로 세우며 당황한 듯 입을 연 것이다.

“저기...이건 뭐 하시는 건가요?”

그러면서도 그녀는 가만히 앉아있었다.

섣불리 움직였다간 안 좋을 것 같은 직감 때문에.

“목소리가 또렷한 걸 보니 정신이 돌아왔나 보네요.”

“네?”

서진은 대꾸하지 않고 마나 운용에 집중했다.

어차피 곧 기억을 떠올릴 테니까.

“아.”

임유나는 전부 생각났는지 탄성과 함께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제 끝났습니다.”

서진은 마나를 거두며 손을 뗐다.

“이제 제 질문에 답할 수 있겠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임유나는 할아버지를 보러 가고 싶었지만 서진에게 답해주는 것이 우선이라 판단했다.

그게 최소한의 보답일 테니까.

“전에 할아버지랑 만나신 적 있었죠? 그때부터 시작이었어요.”

임유나는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잠시 후, 서진은 차분히 듣고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러니까 핵심만 말하자면. 협회장님이 리펠 길드라는 곳과 거래해서 약을 구매해서 유나 씨가 복용.”

“네.”

“그러다 신약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는 바람에 대노한 협회장님이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협회장이 서재에서 발견되면서 임유나의 정신에도 이상이 생겨버렸던 거고.

하지만 서진이 다시 치료했기에 임유나는 확실한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 그녀의 방에 침입해서 기절시켰다는 것을.

“후드를 뒤집어 써서 얼굴은 보지 못했어요.”

아마 그때 마나 경로를 건드렸겠지.

그런데 왜 죽이지 않았을까.

이런 의문을 입 밖에 낼 순 없지만 사실 죽이는 게 제일 깔끔하다.

‘그래도 다행이군.’

적의 목적이 무엇이든 간에 살아 있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에.

“그럼 유나 씨는 리펠 길드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아니요. 저는 할아버지한테 약을 받기만 해서...참, 아직 그 약이 남아있는데 드릴까요?. 물론 드시라는 건 아니고 도움이 될까 해서요.”

“당연하죠. 있는 거 전부 주세요. 요긴하게 쓸 데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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