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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80화 (80/141)

80화

헌터 협회의 협회장이 사경을 헤매고 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그렇지만 누구도 쉽게 믿지 못하고 있었다.

헌터들도 마찬가지.

아니 헌터들은 더욱 믿기 힘들어했다.

10레벨이란 경지가 얼마나 까마득한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정말 협회장 쓰러진 상태임?

현재 헌터 커뮤니티에서 제일 많이 제기되는 의문이었다.

-맞다고는 하는데 무슨 이유로 혼수상태가 된 건지도 모른다고 하니.

-이해가 안 가는데. 10레벨 헌터가 저래 될 일이 있나?

-어쨌든 사실이라면 심각한 사태임. 한국에서 가장 강한 전력이 증발한 거니까.

국회를 비롯해 헌터계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협회장이 쓰러지면서 한국의 정세는 혼란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이번 일은 청와대까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고 언론에선 쉴 새 없이 협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주목할 만큼 파급력 있는 사안이었다.

10레벨 헌터가 왜 쓰러졌는지.

만약 타인에 의한 것이라면 누가 그런 건지.

수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품은 채 한국의 뉴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외국인은 갈수록 늘어갔다.

“형, 이거 봤어?”

하지만 다른 의미로 관심을 두고 있는 외국인도 존재했다.

금발 머리를 한 그는 상기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형이 한 일이 뉴스에 나오니까 기분이 묘하네. 그런데 너무 번지는 것 같은데. 역시 그때 그냥 죽이고 묻었어야 하는 거 아니야?”

형이라 불린 남자는 안경을 밀어 올리며 턱짓했다.

“저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동생의 시선은 한쪽 벽면에 있는 제단으로 향했다.

마기를 품고 있는 제단은 존재 자체만으로 위압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형이 보라고 한 건 제단이 아니었다.

동생인 알렉세이는 고개를 들어 제단 위를 쳐다보았다.

최상단에 놓여있는 농구공만 한 구슬.

원래 투명했던 구슬이지만 지금은 절반 정도 검은빛으로 물들어있었다.

“다시 봐도 많이 차긴 했다. 이제 몇 달만 모으면 완성되겠는데?”

“그래. 다 채워지면 이 나라가 손아귀 안에 들어오는 거야. 구슬이 완성되기 전엔 협회장이 살아있는 편이 좋아. 마나의 질이 달라지니까.”

협회장의 육체를 이쪽에서 관리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기각했다.

실종돼버리면 어떻게든 찾아내려 할 테니까.

사람의 심리상 실종되거나 죽지만 않으면 비교적 안심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너무 답답했어. 우리가 힘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실 지금도 충분하지 않아? 나는 8레벨이고, 형은 10레벨인데.”

“알렉세이, 항상 자만은 금물이야. 이 나라에 8레벨 이상의 헌터가 나와 너를 빼고도 다섯 명이나 존재해. 그리고 그들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어. 뭔지 알아?”

알렉세이는 눈을 끔뻑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바로 명분이야. 정의라고도 할 수 있겠지.”

“정의? 무슨 말이야?”

“우리가 여태까지 해온 짓은 일반 대중들의 시선에선 엄청난 죄악이야. 그런 우리가 지금 전면에 나서면 어떻게 될까.”

“적이 많아지나?”

“그래. 이 나라의 모든 헌터가 힘을 합쳐서 우릴 죽이려 들겠지. 우리가 레벨이 높긴 해도 그런 수적 열세를 압도할 만큼 강하진 않아.”

그리고 동생에게 말하지 않은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아직 레벨에 비해 힘이 불완전하다는 것.

다른 차원의 존재 덕분에 급격하게 성장한 건 좋지만 기반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오랜 세월을 거쳐 강해진 동 레벨 헌터와 맞부딪친다면 질 가능성이 컸다.

그렇기에 얼른 구슬을 완성해서 한 단계 더 높은 강함을 얻어야 했다.

어차피 우리 형제는 그놈이 내민 손을 잡은 그때부터 어차피 선택지도 없었으니까.

기간 내에 저 구슬이 필요로 하는 마나를 채워야 살 수 있다.

“그러니까 열심히 마나를 모으면 돼. 숨어 지내는 것도 이제 얼마 안 남았으니까.”

“크, 상상만 해도 즐거워. 그때 되면 마음껏 해도 되는 거지? 마음에 드는 애는 데리고 놀고, 거슬리는 놈 있으면 다 죽여버리고.”

알렉세이는 입꼬리를 올리며 웃다가 문득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형, 그런데 한국에서 우리들 정체 알아내면 어떡하지? 지금 너무 난리 나서 다 캐낼 기세인데?”

“걱정 마라. 제깟 놈들이 아무리 대단해봤자 우리한테까지 닿을 수 없어.”

수차례의 텔레포트에다 흔적을 제거하며 이동했기에 자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알렉세이는 그 말이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10레벨인 형의 잔흔은 알아내지 못하지. 근데 리펠 길드는 노출될 위험이 있지 않아?”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날 일 처리는 자신이 했으니 괜찮지만 평소 약 전달은 리펠 길드가 전담했으니까.

“안 그래도 정리하려고 했어. 조만간 네가 직접 가서 길드 상태 체크해봐. 새로 옮길 장소도 알아보고.”

“알겠어. 그런데 형, 약은 어디까지 진행됐어?”

“확인된 부작용 8가지 중에 2개는 개선했어. 체감되는 증상만 없애면 지금보다 더 잘 팔릴 거다.”

“독약인지도 모르고 먹는 거보면 참 재밌는 것 같아. 그나저나 얼마나 대단한 놈일까? 다른 세계에서 그런 물약까지 건네주고.”

알렉세이는 아직도 신기했다.

지구 외에 다른 세계가 있고 그곳에도 생명체가 있다는 것이.

반면 안드레이는 마냥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힘을 대가로 목숨을 저당 잡힌 신세긴 하지만 녀석이 껄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리고 리펠 길드 갈 때 엘릭서 챙겨 오는 거 잊으면 안 된다.”

“당연히 알지. 무기를 잃어버려도 물약은 절대 안 잊어. 근데 그거 마실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어쩔 수 없지.”

이 육체가 그놈에게 지배받는 동안은 그림의 떡일 뿐.

“그러니까 한시라도 빨리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해.”

**

임유나에게 약을 건네받은 서진은 약화련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가 갖고 있던 약은 단 두 정이었다.

‘리펠 길드에서 준 이 약,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효과 또한 있었어요.’

임유나가 했던 말 중의 하나.

그녀가 말해준 부작용은 생각보다 다양했다.

기면증, 호흡 장애, 일시적 마비, 마나 석화 등.

하지만 마광병만은 호전시켜주었다고 한다.

‘사실 그것만으로도 놀라운 성과야.’

서진은 공짜로 줘도 안 먹을 약이지만.

개당 백억을 훌쩍 넘어가는 영약이 아닌 일반 약으로 호전된 사례는 여태껏 전무했으니까.

그렇기에 분석 가치가 있었다.

한 정은 설하윤을 통해서 약제원으로 보내고 하나는 서진이 들고 백야로 가는 이유였다.

그리고 누락되었던 기억을 뒤늦게 떠올린 임유나가 말해준 정보가 하나 있었다.

‘제 방에 들어온 사람. 짧게 러시아어를 했었어요. 잘 알지 못해서 무슨 뜻인진 모르지만요.’

특정하기엔 어려운 단서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그렇게 대화를 되짚고 있는 사이, 서진이 몰고 있는 차는 백야의 시내를 지나고 있었다.

달이 떠오른 백야의 거리에는 네온사인이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여러 불빛이 서진을 스치며 지나쳐간다.

‘그러고 보니 밤의 한약방은 처음인 것 같은데.’

서진은 익숙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5층으로 향했다.

“어서 와.”

사전에 서진의 연락을 받았던 최이린이 반쯤 뜬눈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주무시고 계셨습니까?”

“신경 안 써도 돼. 그냥 수면이 불규칙한 것뿐이니까.”

하지만 서진이 내민 약을 받은 순간, 졸렸던 눈빛은 총기를 띠었다.

그녀는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약을 작은 칼로 절단했다.

하나씩 약재를 살피던 최이린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음? 이거...”

“왜 그러십니까?”

최이린은 벌떡 일어서서 다른 방에 들어가더니 아주 작은 유리병을 꺼내왔다.

병 안에는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빛깔의 액체가 극소량 들어있었다.

서진은 그 액체를 본 순간, 눈을 뗄 수 없었다.

‘엘릭서?’

저게 어떻게 여기 있는 걸까.

이계에서도 워낙 희귀해서 7성주급이 아니면 구하기 힘든 물약.

마시는 순간 육체를 재구성해주기에 마광병도 얼마든지 치유할 수 있다.

물론 저 정도 양으론 어림도 없지만.

“너니까 말하는 건데.”

최이린은 서진의 달라진 기색을 보지 못한 채 입을 열었다.

“어디 가서 말하면 안 된다? 내 능력과 관련된 얘기라서.”

“...예. 물론이죠.”

서진은 엘릭서에 시선을 떼고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내 스킬은 어떤 변형을 거치고 섞였든 간에 원재료를 알 수 있어. 그런데 이 약에 진짜 터무니없는 게 섞여 있어.”

그게 엘릭서겠지.

진짜 궁금한 건 극소량이라도 그녀가 어떻게 가지고 있느냐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에서 해답을 들을 수 있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엘릭서란 물약이야. 최초의 던전에서 나왔던 아티팩트 중의 하나지.”

서진은 몰랐던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게 최초의 던전은 수십 년 전의 얘기니까.

거기다 최초의 던전에 대한 정보는 대부분 베일에 싸여있다.

그곳에서 뭘 얻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약화련주님은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이거, 우리 증조할아버지의 유산이거든. 나도 물려받으면서 알게 된 건데 최초의 던전에 참여하셨었나 봐.”

“그랬군요.”

“어쨌든 네가 가져온 약에서 엘릭서와 비슷한 성분이 나왔다는 거지. 아마 복제한 게 아닐까 싶은데.”

서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가능합니까?”

“헌터마다 스킬이 정말 다양한 거, 잘 알고 있잖아?”

“하긴 그랬었죠.”

만약 복제한 게 사실이라면 엘릭서를 갖고 있다는 의미.

그렇다면 리펠 길드에 엘릭서가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야.’

생각지 못한 소득을 얻은 서진은 빠르게 결론을 도출했다.

최대한 빨리 리펠길드의 위치를 알아내서 쳐들어가야 한다.

‘천궁 길드장이 자오 길드가 리펠 길드와 연결점이 있다고 했었지.’

당장 자오 길드를 습격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얻어내야 할까.

서진이 극단적인 선택지를 고려하고 있을 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천궁의 길드장.’

서진이 전화를 받자 문선영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급하게 알려드릴 정보가 있어요. 자오 길드와 교류하는 타 길드의 위치 정보를 손에 넣었어요.

자오처럼 규모가 큰 길드가 다른 곳과 관계를 맺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흑룡검가도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저번에 알아냈듯이 자오 길드는 리펠 길드와도 연결점이 있는 상황.

천궁이 알아낸 위치 중에 리펠 길드가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말씀해주시죠.”

-알아낸 건 총 네 곳이에요. 제주도, 오사카, 시애틀, 블라디보스토크. 스킬을 통해서 신호가 오갔던 곳을 알아낸 거라 어떤 길드인지는 알 수 없었어요. 다만 상황이 시급하다 보니 일단 먼저 알려드렸어요.

“괜찮습니다. 도움이 됐습니다.”

-자세한 주소는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잠시 후 상세 주소를 확인한 서진은 발을 떼며 최이린에게 인사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내가 해준 얘기는 비밀인 거 알지?”

드물게 두 번이나 당부하는 최이린을 보며 서진은 작게 웃으며 답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서진은 한약방을 나서며 구현수 비서에게 연락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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