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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81화 (81/141)

81화

천궁 문선영이 말해준 네 개의 도시.

그중 서진이 가기로 정한 곳은 블라디보스토크다.

단서는 오직 러시아어를 했다는 임유나의 기억뿐.

그렇기에 서진에게도 일종의 도박이었다.

리펠 길드도 한국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 상황을 보며 대비하려 할 터.

어쩌면 길드를 옮겨버리려 할지도 모르지.

그러니 최대한 빨리 급습해야만 한다.

이번에 천궁이 알아냈다고 해서 다음에도 알아낼 거란 보장은 없기 때문에.

다만 문제는 러시아 외에도 세 곳도 확인해야 한다는 것.

서진은 그 점에 대한 대책도 이미 떠올리고 있었다.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에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서진에겐 이럴 때 흔쾌히 나서 줄 만한 인물이 꽤 많았다.

수개월 전. 병원에서 깨어난 이후 지금까지 오면서 여러 인연을 맺어온 덕분이었다.

하지만 엘릭서가 걸려있는 만큼 도움을 청할 상대를 신중하게 선택할 필요가 있다.

존재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희대의 영약이지만 그들이 못 알아본다고 장담할 수는 없기에.

막역했던 친구 사이도 돈 때문에 틀어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세계적인 아티팩트라면 오죽할까.

그렇지만 서진은 위험을 감수한다기 보단 믿음을 가지고 세 곳에 연락을 넣었다.

첫 번째로 구현수 비서를 통해 자호대를 오사카로 보냈다.

제주도는 마침 던전 공략 때문에 현장에 있는 기갑성가의 성주원에게 도움을 청했다.

시애틀은 레이놀즈가 가기로 확답을 받았다.

혹여나 셋 중에 리펠 길드가 맞다면 바로 그쪽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협회장 관련된 일인 만큼 서진의 인맥 외에 다른 인원도 대동할 수 있지만 그러진 않았다.

괜히 대규모로 가다가 사전에 알아차리고 모습을 숨긴다면 의미가 없으니까.

게다가 엘릭서를 얻게 된다면 분배하기도 애매해질 게 뻔하니 최소 인원으로 가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서진이 신뢰하는 사람을 데려갈 필요가 있었다.

협회장을 그 꼴로 만든 강력한 헌터가 있을지 모르는 곳이지만 서진은 망설임이 없었다.

어차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면 지긋지긋한 마광병을 달고 살아야 하는 육체다.

갈수록 레벨 상승이 느려진다는 걸 고려했을 때 이쯤에서 승부를 볼 가치는 충분했으니.

거기다 누군진 몰라도 온전히 협회장의 무력을 능가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협회장을 압도할 정도의 헌터가 왜 살려서 서재에 두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중에 하나는 아직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이런 짐작만으로 사지가 될지 모르는 곳에 갈 순 없는 노릇.

그래서 설하윤더러 아이템 하나를 챙기라 지시를 내렸다.

펠시어의 염주.

최대 3명의 마나를 각인할 수 있으며, 유사시에 착용자가 발동하면 지정한 위치로 이동할 수 있는 공간 계열 아이템.

서진이 대부분의 소유 권한을 지닌 환영신가 비고 물건 중의 하나였다.

언제든 몸을 내뺄 수 있기에 위험을 감수하고 습격할만했다.

일회성 아이템이라 아깝긴 하지만 이럴 때 안 쓰면 언제 쓰겠는가.

어쨌든 설하윤을 넣고 나면 나머지 한 명의 자리엔 감찰각주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현장에서 심문하기엔 그의 능력만 한 게 없으니까.

서진은 한시 빨리 러시아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

범죄자 앞에 엄청난 보물이 무방비하게 놓여 있다면 안 훔치고 참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그것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엄청난 가치를 자랑하는 물건이라면.

대부분은 들고 도망가겠지.

하지만 리펠 길드의 길드장인 파벨은 그 욕망을 참고 있었다.

아니 사실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엘릭서를 맡긴 주인이 흑마법으로 금제를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마시거나 들고 나가려고 해도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주입된 본능을 이겨내고 억지로 마시려고 했다가 요단강 건널뻔한 뒤론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노예처럼 복제와 조제에 힘을 쏟을 뿐.

그래서 대신 자신이 복제한 엘릭서를 물처럼 퍼마셨지만 의미가 없는 짓이었다.

복제 물약도 두 번 마시고 나니까 효과가 없었으니까.

물론 복제 스킬의 주인으로서 예상 못 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아쉬워서 알면서도 먹어본 거니.

그래도 복제 엘릭서 덕분에 스킬이 두 단계나 올랐으니 수확이 없던 건 아니었다.

앞으로 스킬을 계속 올리다 보면 엘릭서 효과를 절반까지 끌어내는 것도 가능하겠지.

“형님.”

그때 부길드장이 조제실의 문을 두드렸다.

파벨은 의자에서 일어나 부길드장을 맞이했다.

“무슨 일이냐.”

“이제 한시인데 식사 안 하십니까?”

“벌써 그렇게 됐나.”

약에 몰입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가기 전 간단하게 책상을 정리하는 파벨을 보며 부길드장은 툭 내뱉었다.

“그런데 형님은 안 불안합니까?”

“뭐가.”

“지금 한국에서 협회장 때문에 발칵 뒤집혔잖습니까. 흉수가 누구인지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있던데.”

파벨은 책을 소리 나게 덮으며 무심하게 대꾸했다.

“마스터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리펠 길드의 실질적 주인은 10레벨의 흑마법사 안드레이와 8레벨인 그의 동생.

현재 한국에서 가장 강한 흑룡가주와 맞먹는 레벨이었다.

“물론 마스터는 강하지만 우리는 아니잖습니까.”

금제 때문에 억지로 안드레이를 섬기곤 있지만 생존 본능에서 오는 불안감을 억누를 순 없었다.

“그래서 마스터가 7레벨 호위도 붙여줬잖냐. ....잠깐.”

파벨은 부길드장의 투정을 잠시 멈추게 했다.

길드장실에서 나오니 묘하게 싸늘한 정적이 느껴진 탓이었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파벨이 입을 열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부길드장이 쓰러졌다.

“데니스!”

파벨은 깜짝 놀랐지만 부길드장의 상태를 살필 수 없었다.

시퍼렇게 날이 선 검이 그의 목에 닿고 있었기 때문에.

“리펠 길드장 맞지?”

“누구냐.”

파벨이 목소리를 떠는 척 연기하며 마나를 움직이려는 찰나, 극심한 고통이 왼팔에 작렬했다.

“끄아아악!”

선혈이 공중에 비산하며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허튼짓하면 죽여버린다. 아니 일단 맞고 시작하는 게 낫겠군.”

**

천궁에서 알려준 정보 덕분에 리펠 길드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서진이 마나 감지로 살펴보니 신경 써야 할 만한 놈은 총 세 명.

7레벨급 두 명과 6레벨 한 명. 그리고 4레벨 이하의 길드원 다수.

과연 만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그래도 협회장을 상대하기엔 약한데.’

어쩌면 리펠길드는 보급 기지 역할이고 저 7레벨들은 그냥 호위 헌터일지도.

어쨌거나 몰래 잠입해서 엘릭서를 탈취하기엔 상주하고 있는 헌터의 수준이 높다.

‘우선 7레벨부터 배제해야 해.’

서진은 작전 실행을 위해 길드에서 나오는 직원을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납치했다.

“읍!”

납치한 이유는 두 가지.

우선 리펠 길드가 맞는지 재확인하고, 이 직원으로 변장하기 위해서.

확인을 마친 서진은 가면 하나를 꺼냈다.

“하윤 씨. 이거 쓰세요.”

서진은 ‘천변’을 내밀었다.

은월검류를 익혀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그녀가 이번 작전에 적격이었다.

“예.”

천변을 받은 설하윤은 납치한 직원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거기에 서진은 인식 장애와 소음 축소 마법을 걸어주었다.

실질적인 무력은 7레벨을 넘보고 있는 그녀에게 위장과 은밀함이 더해진다면 7레벨 두 명 정도야 어렵지 않을 터.

서진의 기대대로 길드에 들어간 설하윤은 빠르게 길드원들을 쓰러트려 갔다.

-3층의 두명을 제외하고 다 제압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연락을 받은 서진은 감찰각주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3층으로 올라가니 문을 열고 나오는 두 명이 보였다.

서진은 형님이라 말하는 남자를 기절시키고, 길드장으로 추측되는 녀석의 목에 검을 대었다.

녀석이 몰래 스킬을 쓰려해도 소용없다.

서진의 눈엔 마나를 움직이는 게 훤히 보였으니.

서진은 그가 조금이라도 마나를 움직이면 용체화의 묘리를 담아서 고통이 심한 곳만 골라 때렸다.

그 결과.

“아윽.”

피로 칠해진 바닥에서 눈물 콧물을 쏟으며 얌전해졌다.

“이제 된 것 같은데. 감찰각주.”

“예.”

저항심을 잃은 리펠 길드장에게 감찰각주는 심문을 위해 스킬을 발동했다.

일순 길드장의 눈빛이 몽롱하게 바뀌는 듯하더니 각주의 마나가 튕겨 나왔다.

동시에 리펠 길드장에게서 음습한 마기가 느껴졌다.

“흑마법으로 제약을 걸어놨네.”

감찰각주보다 더 높은 레벨의 흑마법사가 한 짓이겠지.

아마 그놈이 협회장을 그리 만든 범인일 테고.

길드장 옆에 있는 놈에게도 시도해봤지만 마찬가지로 통하지 않았다.

하기야 바보가 아닌 이상, 엘릭서를 보험도 없이 맡겨둘 리가 없을 테니.

“죄송합니다.”

모처럼 함께 왔는데 스킬을 못 쓰게 되자 감찰각주가 깊게 허리를 숙였다.

“됐어. 상대가 안 좋은 것뿐이니까.”

서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 대꾸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하윤 씨는 이 놈들 지키고 있으세요. 각주는 따라와.”

“옙.”

길드장실로 들어가니 한쪽 벽면에 철문이 하나 더 있었다.

서진은 마나를 일으켜 말끔하게 베어내고 철문 안으로 향했다.

거침없이 들어가던 서진은 책상 위에 있는 엘릭서를 본 순간 멈추었다.

“....진짜 있었네.”

아이템 설명창을 확인해보니 정말 엘릭서가 맞았다.

평소에 엘릭서를 복제하며 약을 만들어서 그런지 숨겨두거나 그러진 않은 모양이다.

“이게 이런 데 있다니.”

서진은 엘릭서를 챙기면서도 헛웃음이 나왔다.

“각주는 복제 연구 서류들 전부 챙겨.”

“알겠습니다.”

감찰각주는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있는 가방에 모든 물건을 넣기 시작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넉넉하게 가방을 가져왔기에 공간이 부족할 일은 없었다.

빠르게 쓸어 담은 서진은 미련 없이 밖으로 나왔다.

다소 급하게 빠져나오긴 했지만 서진은 상관하지 않았다.

엘릭서를 챙긴 상황에서 굳이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

가문으로 돌아가는 동안, 서진은 설렘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언제 느꼈던 감정이었던가.

이계에서 처음엔 살아남느라 정신이 없었고, 중반부턴 모든 감정이 메마르기까지 했었다.

지구로 돌아온 후엔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대체로 그때와 비슷한 감정폭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다르다.

엘릭서는 서진이 이계에 있었을 때도 얻지 못했던 아티팩트.

힘만 있다고 해서 구할 수 있는 귀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손에 들어올 줄이야.

그 와중에 느껴지는 묘한 시선.

서진이 옆을 쳐다보니 설하윤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하윤 씨, 무슨 할 말 있어요?”

“아닙니다.”

설하윤은 절대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마치 선물 받고 들뜬 듯한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는 걸.

무심코 머리를 쓰다듬어줄 뻔한 것도 평생 비밀로 가져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종종 그런 서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망과 함께.

**

서진은 가문에 도착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결과 보고나 천궁이나 기갑성가에 연락하는 일 따위는 현재 서진에게 전부 뒷일이다.

제일 중요한 건 엘릭서.

물론 결과가 나왔는데 현장에 가 있을 그들을 방치할 순 없으니 구현수 비서에게 연락을 맡기고 집에 들어갔다.

서진이 뭘 할지 알고 있는 설하윤도 당연하다는 듯 같이 들어와 옆에 서 있었다.

서진은 품속에서 천천히 엘릭서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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