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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84화 (84/141)

84화

“형! 이건 무조건 갚아줘야 해!”

알렉세이는 목소리를 높이며 책상을 내려쳤다.

리펠 길드를 습격한 범인이 흑룡검가의 한서진이란 걸 알게 된 이후로 줄곧 저런 흥분 상태였다.

“귀 아프니까 목소리 좀 낮춰라.”

안드레이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만지며 소파에 앉았다.

그런 태평한 모습에 알렉세이는 더 화가 날 뿐이었다.

“형은 아무렇지도 않아? 엘릭서를 뺏겼다고!”

리펠길드에 상주하던 부하들이 죽은 거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기분은 더럽지만 새로 채워 넣으면 되니까.

하지만 엘릭서는 단 하나밖에 없다.

“나나 형이나 빌어먹을 금제 때문에 마시지도 못했는데 엉뚱한 놈이 가져가 버렸잖아!”

그야말로 죽 쒀서 개 준 꼴이다.

알렉세이는 생각할수록 혈압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엘릭서를 마셔보진 못했지만 얼마나 대단한 효과를 지닌 물약인지는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실제 효과의 10%에 불과한 복제 엘릭서를 마셔본 적이 있었으니까.

“형, 나는 도저히 그냥 냅둘 수 없어.”

한서진이 엘릭서 처먹고 이전보다 더 팔팔하게 돌아다닌다 생각하니 울화가 치밀었다.

“그 새끼, 마광병 앓고 있다고 하던데 그래서 엘릭서를 노렸겠지. 지금은 엘릭서 덕분에 치료했을 거고. 썩을!”

알렉세이는 속이라도 식히기 위해 냉동실에서 보드카를 꺼내 마셨다.

탁.

거칠게 병을 내려놓은 알렉세이는 형에게 다가갔다.

“형이 계속 말 안 하면 나 한국에 그냥 간다.”

“후우.”

안드레이는 깊게 숨을 내쉬고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넌 성질 좀 죽이고 살 필요가 있어.”

“미안. 하지만 한서진 그놈은 내 손으로 꼭 뭉개버려야겠어. 안 그러면 잠도 안 올 거야.”

“어제도 술 처먹고 잘 잤으면서 무슨.”

안드레이는 피식 웃으며 탁자를 가리켰다.

익숙한 손짓에 알렉세이는 조금 전 마셨던 보드카를 가져다주었다.

짧게 한 모금 마신 안드레이는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가고 싶냐.”

“나야말로 묻고 싶은데 형은 화 안 나?”

그럴 리가.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 안드레이는 동생보다 더 큰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마스터의 주요 강림 장소가 있는 국가가 바로 한국이다.

그런데 한국을 향한 보급 전용 길드가 무너지고 엘릭서까지 탈취당했으니.

한서진을 찢어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협회장 건에 이어서 한서진까지 건들면 위험해질 수가 있다.

이번엔 리펠 길드가 발각당하는 선에서 끝났지만 다음엔 이 집이 될지도 모르니까.

알렉세이는 형도 비슷한 감정이라는 걸 깨닫고 한 번 더 설득했다.

“형. 한서진 잡아 오면 저 구슬 채우는 데도 도움이 되잖아. 엘릭서 처먹었을 테니 질도 좋을 거고. 형이 갖고 있는 아이템만 있으면 한서진 빼돌리는 것도 충분히 할만한 일 아냐?”

형이 흔들리는 기색이 보이자 알렉세이는 말을 이었다.

“비슷한 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최대한 빨리 구슬 채우면 좋잖아. 내가 갔다 올게.”

안드레이는 침음성을 삼키며 고민하다 이윽고 결단했다.

“좋아. 다녀와라.”

“정말? 분명히 허락한 거다?”

“대신, 던전 내에서 모든 일을 처리해. 그게 조건이야.”

던전은 흔적을 없앨 수 있으며 방해받을 가능성도 현저히 낮은 곳이니까.

“그 정도야 뭐, 어려운 조건도 아니네.”

“그리고 던전엔 보통 팀 단위로 들어가니 너도 밑에 애들 서너 명 정도는 데리고 가라.”

“그러려고 했어.”

알렉세이는 조만간 한서진을 쥐어팰 생각에 입꼬리를 올리며 아이템을 챙기기 시작했다.

**

머드 골렘 던전의 공략 권한이 서진에게 넘어갔다는 소식은 가문 내에 금세 퍼져나갔다.

은월각의 헌터는 신기한 듯 의문을 표했다.

“근데 무슨 자신감으로 받은 거지?”

“한서진 도련님도 여태까지 실패한 던전 없으니까 자신 있을 만하지 않나요?”

그런 신참의 말에 곧바로 반박이 들어갔다.

“그렇긴 한데 상급 던전 공략 횟수만 놓고 보면 한치성 도련님이 압도적으로 많으니까.”

다른 동료도 동조하며 나섰다.

“맞아, 경험 면에선 비교가 안 되긴 해. 해외 던전에서 산전수전 겪었을 텐데 포기했다는 건 솔직히 한서진 도련님도 힘들다고 봐야지.”

신참은 고개를 갸웃하며 질문했다.

“이번 던전이 그렇게 힘든가요? B급 던전이라 들었는데.”

“마지막 보스룸에서 짙은 독무 때문에 전투 자체가 힘들다고 들었어.”

“한서진 도련님도 독에 내성이라곤 전혀 없으니 뭐. 이번엔 자신감이 과했다고 볼 수 있지.”

예전부터 은월각은 각주를 비롯해서 한치성을 지지하는 헌터가 많은 조직.

의견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신참은 타고난 성격 탓인지 꿋꿋하게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전 여태까지 말도 안 되는 일을 헤쳐 온 한서진 도련님이니까 이번에도 가능할 거라고 봐요!”

“아주 열혈 신자 나셨군.”

“그렇게 확신하면 내기 한번 할래? 100만 원으로.”

“야, 신참 상대로 무슨 내기를.”

“하겠습니다!”

말리는 동료가 무색하게 신참은 냉큼 수락했다.

“와 씨. 기대되네. 누가 이길지.”

“기대되긴, 못한다니까.”

**

“입구 부분엔 특이한 점은 없습니다.”

설하윤은 주변을 둘러보며 이상한 곳은 없는지 점검했다.

서진이 머드 골렘 공략권을 받은 지 나흘 뒤.

지금 막 그 던전에 입장한 참이었다.

“그런데 정말 저로도 괜찮겠습니까?”

서진 옆에 선 자호대장은 우려스러운 기색을 보이며 질문했다.

이번 던전에 참여하는 인원은 단 세 명.

그러니 자호대장이 저런 말을 꺼내는 것도 당연했다.

“충분해.”

던전의 특성을 파악한 서진에게 필요 이상의 인원은 방해일 뿐이었다.

서진은 한 마디로 걱정을 일축하며 던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워어어!”

몇 걸음 걸었다고 벌써 머드 골렘이 마중 나온다.

탓!

자호대장은 서진이 나서기 전에 먼저 땅을 박차며 검기를 일으켰다.

하지만 호쾌하게 베어내려 했던 검은 골렘을 감싸고 있는 진흙에 막혀버렸다.

머드 골렘은 등급 대비 공격력이 낮고 속도가 느린 대신 방어력이 상당한 몬스터.

어중간한 검기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다.

거기다 진흙으로 둘러싸여 있는 탓에 전격의 위력도 반감되며 수속성 마법도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한다.

물론 전격을 압축해서 만든 검이라면 얼마든지 절단할 수 있겠지만 서진은 마나를 아낄 생각이었다.

보스룸에서 벌어질 격전을 위해.

한치성이 독 내성이 없다 하지만 수많은 던전 경험이 있는 6레벨의 베테랑 헌터.

그리고 7레벨의 천재 궁사까지 포함된 공략팀인데도 실패했으니.

보고서에 기재되지 않은 난관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확인되지 않은 위험이 드러나기 전까지 서진은 되도록 힘을 보존하며, 나머지 두 명이 처리한다는 전략 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흡!”

한 번의 베기로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한 자호대장은 이전보다 더 많은 마나를 끌어냈다.

서걱!

애초에 실력이 부족했던 건 아니기에 금세 머드 골렘을 반으로 절단했다.

그렇게 머드 골렘을 쓰러트리며 나아간 지 30분 정도는 됐을까.

서진은 앞을 걸어가는 설하윤과 자호대장을 불러세웠다.

던전의 입구 방향에서 새로운 마나가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인원은 다섯 명, 8레벨급 헌터도 있군.”

곧이어 설하윤과 자호대장도 침입자를 느끼고 안색을 굳혔다.

정체가 누군지 궁금하게 기다릴 필요 없이 그들을 빠르게 모습을 드러냈다.

“만나고 싶었다. 개새끼야!”

뺨에 길쭉한 흉터가 보이는 남자가 봉을 바닥에 찍으며 서진을 노려봤다.

서진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난 당신 같은 사람 모르는데.”

“그렇겠지. 너는 날 처음 봤을 테니까.”

솔직히 초면에 저렇게 적의를 드러낼 만한 관계를 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긴 했다.

그렇지만 서진은 누군지 짐작이 갔다.

“혹시 엘릭서 때문에 찾아온 건가?”

“자기가 무슨 이유로 죽게 되는 건지 눈치 하난 빠르군. 보아하니 이미 처먹은 것 같은데.”

“워낙 맛있어 보여서 말이지.”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댄 죄는 혹독하게 치러야 할 거다.”

“그렇게 맛있는 걸 못 먹었다니 좀 불쌍하긴 하네.”

알렉세이는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갈며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니들은 저 두 명을 처리해라. 구슬에 넣어야 하니까 사지는 자르든 뭘 하든 죽이진 마.”

목숨만 붙인 채로 끌고 가서 구슬 앞에서 저놈들의 마나를 뽑아내기만 하면 된다.

“예!”

네 명은 설하윤과 자호대장을 향해 산개했다.

“너는 특별히 내가 조져준다.”

알렉세이는 봉에 두터운 마나를 씌우며 지면을 강하게 후려쳤다.

땅이 터져나가며 생긴 날카로운 파편들이 비산했다.

서진이 파편을 쳐내려는 순간.

알렉세이는 다리에 마나를 집중하고 가속했다.

부웅!

미끄러지듯이 질주한 알렉세이의 봉이 둔중한 파공음을 냈다.

서진이 급히 전개한 실드는 바로 깨졌지만 그 찰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강맹한 기운이 담긴 봉을 검으로 비껴 막으며 공격을 무위로 돌렸다.

“움직임이 생각보다 좋군. 엘릭서 덕분이겠지!”

생각보다 엘릭서에 대한 집착이 심한 사내였다.

그래도 양보해주진 않았겠지만.

거친 풍압을 일으키는 봉은 끊김 없이 서진을 몰아쳤다.

길이가 2미터 정도 되는 장봉으로 중거리의 이점을 유지하며 서진의 급소를 정확하게 찔러온다.

파직!

서진은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의 맹공을 뇌검으로 전부 받아쳤다.

한 번이라도 맞으면 뼈를 분쇄시킬 정도의 위력이었으니.

“생각보다 제법!”

다소 서진을 우습게 봤던 알렉세이는 판단을 뒤집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봉을 잠시 거두며 두 번째 연격을 시도하려는 찰나, 서진의 검에서 섬광이 번뜩였다.

절묘한 틈을 노린 자줏빛 번개가 알렉세이의 머리 위에서 내리꽂혔다.

콰앙!

봉을 휘둘러 쳐냈지만 연폭뢰는 한 번으로 끝나는 기술이 아니었다.

서진이 검이 번쩍일 때마다 눈이 부실 정도의 전격이 퍼부어졌다.

일격이라도 허용한다면 전장에서 치명적인 마비 증세가 알렉세이를 뒤덮으리라.

알렉세이도 전격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기에 마나를 폭발시켰다.

봉신능수(棒身陵守)

봉이 닿는 범위 내에 거대한 장막이 형성되며 일체의 뇌격이 차단되었다.

가까스로 연폭뢰에서 벗어난 알렉세이가 숨을 고르려고 할 때 서진의 검이 장막을 찢어발겼다.

정교하게 압축한 서진의 뇌검을 막기엔 다소 부족했던 것이다.

파지직!

서진은 그대로 알렉세이의 몸에 검을 쑤셔 박았다.

“끄윽!”

알렉세이는 봉과 다리를 지지대 삼아 땅을 박차며 뒤로 몸을 밀었다.

옆구리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지만 그 이상으로 타격을 받은 건 자존심이었다.

8레벨인 자신이 6레벨인 한서진을 상대로 이런 상처를 입다니.

아니 애초에 6레벨이 맞긴 한가?

중요한 건 예상과 달리 전력을 보여야 이길 수 있는 놈이라는 것.

“퉷, 개 같은 새끼. 네 배때지에도 반드시 구멍을 내주지.”

콰아앙!

알렉세이가 내뿜는 기에 터진 폭발음이 서진의 고막을 강타했다.

전신에서 마나를 내보이며 육체 능력 전반을 끌어올리는 8레벨의 경지.

“마침 잘 됐군.”

서진은 담담하게 알렉세이를 바라보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흑룡검술 제7식 여뢰(余雷)

서진의 발밑에서 한줄기 번개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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