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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85화 (85/141)

85화

여태껏 다른 생명을 앗아갔었던 자줏빛 번개가 서진에게 파고들었다.

세포까지 스며든 전류는 서진의 모든 감각을 일깨우며 전신을 지배했다.

이윽고 눈동자의 색마저 자줏빛으로 물들어간다.

찰나에 솟구친 여뢰는 서진의 육체를 ‘8레벨의 마나 전개’와 맞먹는 수준으로 각성시켰다.

성큼 다가가던 알렉세이는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자기 몸에 번개를 박길래 미친 건가 싶었지만 직후에 느껴지는 기세가 심상찮다.

육체에 내재된 번개가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 스파크를 일으키며 주변을 빛내고 있었다.

아마 육체 강화계 기술인 듯한데 전격 속성으로 저런 일이 가능하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도 없었다.

공격을 위한 전격 운용도 까다로운 마당에 그걸 자기 몸에 품기엔 너무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일순 알렉세이는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8레벨인 자신이 6레벨에게 위축된다는 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불필요한 감정을 털어낸 알렉세이가 봉을 짓쳐 드는 순간, 서진의 발이 땅에서 멀어졌다.

팟!

땅을 박찬 소리보다 빠르게 질주한 서진의 검은 알렉세이의 후방을 노렸다.

육체에 전격이 깃든 서진의 움직임은 이전과 격이 다른 속도를 보여주었다.

다른 헌터라면 바로 목이 날아갔을 쾌검.

하지만 8레벨의 마나 전개는 그리 만만한 경지가 아니었다.

알렉세이는 보지도 않고 봉을 휘둘러 검을 막아냈다.

콰앙!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고 충격파가 터져나간다.

서로 한치의 물러남도 없는 충돌.

잠깐의 힘겨루기 끝에 먼저 움직인 건 알렉세이였다.

그는 봉을 비틀며 서진을 밀어냄과 동시에 자세를 전환했다.

나찰(螺札)

봉 끝에서 막대한 기운의 마나가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관통해버릴 기세가 서진을 덮쳐왔다.

천라나 아직 미숙한 실드로는 바로 찢겨나갈 게 분명할 위력.

하지만 이 와중에도 서진의 스텟은 착실하게 상승 중이었다.

[근력이 22 상승합니다]

[체력이 21 상승합니다]

서진은 능숙하게 투기를 흡수하며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다가오는 공격을 흘리거나 피하는 대신 맞서기로 택한 것이다.

흑룡검술 제5식 전광검.

어느새 근접한 거리에서 알렉세이와 마주한 서진의 시간이 한없이 느려진다.

무채색으로 변한 공간 속에서 한줄기의 자줏빛 번개만이 선을 그리며 반월처럼 휘둘러진다.

서진이 노리는 건 알렉세이의 하반신.

기동력을 빼앗는다면 마법사가 아닌 그는 저항이 불가능한 수준이 될 터.

살려둬야 심문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제 발로 찾아온 예비 정보 제공자를 죽이는 우를 범할 생각은 없었다.

명확한 목적이 담긴 뇌검이 알렉세이의 다리를 베려는 순간, 공간의 흐름이 다시 돌아온다.

예리한 뇌검은 마나 전개의 방어를 베는 것에 성공했지만 피부를 깊게 파고들진 못했다.

알렉세이가 순식간에 방향을 틀어 서진에게 봉을 휘둘렀기 때문에.

그야말로 괴물 같은 반사신경이다.

서진의 검이 허벅지에 닿은 걸 직감하고 똑같이 공격으로 응수하는 결정력.

이제까지 서진이 상대했던 헌터 중에 반응 속도와 판단력이 뛰어났다.

서진은 어쩔 수 없이 점멸로 자리를 벗어났다.

다리 하나 베자고 뒷목을 얻어맞을 순 없는 노릇이니.

서진의 일시적 후퇴에 줄곧 굳어있던 알렉세이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빼는 재주가 좋군.”

서진은 대꾸하는 대신 슬쩍 웃어 보였다.

미묘한 서진의 웃음에 왜인지 불쾌해진 알렉세이의 미간에 주름이 생겼다.

“뭐냐.”

“그게 당신의 전력인 듯한데.”

서진의 눈동자가 자줏빛으로 번뜩였다.

“아무래도 반쪽짜리인 것 같아서.”

서진도 이계에서 8레벨에 도달한 적이 있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마나 전개’가 7레벨 이하에게 얼마나 위협적인 능력인지.

그리고 선택받은 존재에게만 허락된다는 걸.

극한의 쾌검으로 유명했던 환혼대장도 마나 전개를 열지 못했다는 것을 보면 노력과 경지만으로 가능한 기술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완전한 마나 전개라면 방금과 같은 비등한 전세가 아니라 우세했어야 정상이다.

여뢰를 통해 육체와 감각이 각성되어 있고, 수많은 경험이 있는 서진이 상대라고 해도 말이다.

물론 일반적인 7레벨 초입에 든 헌터라면 열세를 넘어서 압도적으로 밀려야 정상이고.

서진은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건지 짐작이 갔다.

단기간에 급속도로 강해졌을 때 보이는 부작용.

서진처럼 세월이 쌓인 깨달음으로 성장한 이례적 사례를 제외한다면 보통 두 가지 경우다.

누군가에게 힘을 받았거나 기연으로 강해졌거나.

“너 원래는 몇 레벨이었지?”

정곡을 찌르는 서진의 질문에 알렉세이는 눈에 힘을 주다가 입매를 비틀었다.

“왜, 부러운가.”

“전혀.”

이미 투신공이란 사기 스킬이 있는 서진이 부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 실력으로 협회장에겐 상대가 안 됐을 텐데.”

반쪽짜리 8레벨 한 명으로는 완성된 10레벨을 결코 상대해낼 수 없으니.

그렇다면 상대측에도 드러나지 않은 전력이 있을 것이다.

아마 같은 10레벨이지 않을까.

그래도 협회장을 제압하는 건 힘들지 않나 싶지만 아직 단서가 적으니 추측도 이 정도가 한계였다.

구체적인 사정은 저놈을 잡으면 알게 되겠지.

서진의 발에서 전류가 튀며 신형이 미끄러졌다.

그에 대응하려던 알렉세이는 혼란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뇌영환보.’

하나였던 서진이 둘도 나뉘어 알렉세이의 좌우로 쇄도했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구분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알렉세이는 마나를 봉에 넘칠 듯이 담았다.

그리고 두 명의 서진을 향해 봉을 내질렀다.

봉화패천(棒華敗天)

한 번의 찌르기가 수십 개의 봉으로 분산되어 서진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그러자 좌측에서 다가오던 서진의 몸에서 전격이 터지더니 사라져버렸다.

“오른쪽이 진짜였군!!”

강맹한 기운이 실린 봉이 홀로 남은 서진의 정수리를 내려쳤다.

고막을 찢는 파공음과 함께 미처 반응하지 못한 서진의 어깨를 그대로 으스러트렸다.

퍼억!

아니, 정확하게는 알렉세이의 눈에 그렇게 보였었다.

봉이 어깨를 파고드는 순간, 서진의 형상이 무너지며 강렬한 섬광이 번쩍였다.

그리고 섬광과 동시에 터져 나온 자줏빛 전격이 봉을 타고 알렉세이의 전신을 뒤덮었다.

“끄으윽!!”

중추신경계를 뒤흔드는 전격은 알렉세이에게 뇌가 타는 듯한 고통을 선사했다.

하지만 그는 또렷하게 정신을 유지해냈다.

일반적인 헌터라면 바로 절명하거나 의식을 잃었을 터.

초인을 넘어선 8레벨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알렉세이를 전신을 파고든 전류는 단순한 뇌 속성 공격이 아니었다.

용체화의 묘리가 담긴 전격은 알렉세이의 마나를 순간적으로 묶어놓았다.

전격으로 인한 지독한 통증과 마나 봉쇄.

서진의 덫에 제대로 걸려든 알렉세이.

서진은 일검에 그의 양쪽 무릎을 절단했다.

“크악!”

알렉세이는 피가 섞인 거품을 흘리며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을 하며 쓰러졌다.

사실 첫 공격에 그가 없앴다고 생각했던 왼쪽 서진은 번개를 일으키며 점멸로 모습을 감춘 속임수에 불과했다.

찰나에 오판했던 알렉세이의 감각은 눈앞의 분신에게 집중되었고 그것은 전격 덩어리였다.

형태가 무너지는 순간 막대한 전류를 터트리는 더미.

상대의 눈을 속이는 보법이면서 공격이기도 한 것이다.

서진은 우선 알렉세이의 다리를 간단히 지혈해주었다.

8레벨 헌터가 다리 잘린 거로 쉽게 죽진 않겠지만 혹시 모르니.

그를 기절시킨 서진은 설하윤과 자호대장이 있는 곳을 살폈다.

설하윤은 한 명을 죽이고 일대일 대치 상태.

자호대장은 두 명을 막고 있는 상황.

곧장 서진이 일으킨 번개는 자호대장쪽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전투가 종료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삼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세 명의 습격자는 차가운 던전 땅바닥에 쓰러졌다.

“후우, 감사합니다.”

힘겹게 막고 있던 자호대장은 거친 숨을 내쉬며 허리를 숙였다.

“됐어. 이놈들, 나를 노리고 온 거니까.”

서진은 설하윤과 함께 다섯 명을 한 곳에 모았다.

한 명은 죽고 네 명은 생포한 상태.

서진이 이들의 마나 경로를 막아놨기에 당분간은 헌터로서 능력도 발현하지 못한다.

간단하게 조치한 서진은 본래 목적을 다시 떠올렸다.

“잠시 하윤 씨는 자호대장하고 같이 이놈들 지키고 있어요.”

놀란 설하윤은 눈을 치켜떴다.

“설마 공략을 이어 하실 생각이십니까?”

“네. 이제 거의 보스만 남았는데 끝내고 가야죠.”

태연자약한 서진의 말에 말수가 적은 자호대장까지 나섰다.

“힘을 많이 쓰셨을 텐데 나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런 습격이 있었으니 실패해도 다들 납득할 겁니다.”

“걱정은 고맙지만 공략은 끝내야지.”

이전에 한치성이 여러 차례 공략을 시도하는 바람에 던전 브레이크 예상 시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포기하면 이후엔 확실한 공략을 위해서 흑룡대가 나서게 된다.

즉, 서진에게 다음 기회는 없다는 의미.

서진은 둘의 걱정을 누그러트리기 위해 짧게 덧붙였다.

“마나를 전부 쓴 것도 아니니 괜찮습니다.”

“그럼 저도 가겠습니다.”

“이미 지친 게 보이는데 가봤자 오히려 위험할 뿐이야.”

이번 보스방에서 제일 위협적인 건 독인데 서진은 내성이 있는 만큼 부담도 적었다.

“알겠습니다.”

결국 서진의 고집을 꺾지 못한 둘은 어쩔 수 없이 납득했다.

습격자들을 맡긴 서진은 던전 안쪽으로 향했다.

중간에 머드 골렘 세 마리를 죽이고 나아가니 마침내 거대한 석문이 나타났다.

5미터 높이의 문이 서서히 열리자 안에서 짙은 독무가 쏟아져 나왔다.

일반적인 녹색이 아닌 푸른 빛깔의 안개.

이계에선 ‘블로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강력한 독이다.

입자가 훨씬 작고 마나에 영향을 받지 않는 특성이 있어 아이템이 통하지 않는 게 당연했다.

유일한 대처 방법은 내성을 갖추는 수밖에 없다.

덕분에 서진은 숨 쉬는 게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나저나 아티팩트가 있을 만한 던전이라 했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발견 못 했으니 이 보스방 어딘가에 있을 확률이 높다.

“저놈을 죽이고 주변을 둘러보면 알게 되겠지.”

서진의 검에서 번개가 파직거렸다.

**

“이건가.”

어렵지 않게 보스를 죽인 서진은 뒤쪽에 나타난 단상에서 반지 하나를 발견했다.

[일시 소멸]

등급 : 아티팩트.

효과 : 모든 존재에게 착용자의 기척을 10분 동안 없앨 수 있다.

제한 : 1회.

“기척 제거라.”

관련 스킬이 없는 서진에게 유사시 쓸만한 아티팩트였다.

다만 일회성인 게 아쉬울 뿐.

‘시간 날 때 비슷한 아이템이 있는지 알아볼까.’

서진은 반지를 주머니에 넣고 설하윤과 자호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진 님!”

멀쩡한 모습으로 서진이 다가가자 설하윤이 반색하며 맞이했고, 자호대장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끝내고 오신 겁니까?”

서진이 고개를 끄덕이고 두 명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선 던전에서 나가기 전에 당부할 말이 있어. 오늘 던전에서 일어났던 습격은 발설하지 말도록.”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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