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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86화 (86/141)

86화

서진은 오늘의 습격을 숨길 생각이었다.

던전 내에서 일어난 일은 당사자들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적을 상대할 때 정보의 격차는 상당히 중요한 요소.

분명 여기 다섯 놈 외에 다른 세력원들이 있을 터.

그들에게 굳이 습격 결과를 친절하게 알려줄 필요가 없다.

기습이 실패했다는 걸 알게 되면 대처를 강구하게 될 테니까.

서진에 대한 추가 공격을 감행하던가 은신처를 옮기려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심문을 통해 얻은 정보가 쓸모 없어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이건 임시방편일 뿐이다.

계속 연락이 닿지 않는다면 결국 작전이 실패했다는 걸 알게 될 게 분명하니.

그렇지만 판단 시기를 늦추는 건 가능하다.

설하윤은 이런 서진의 생각에 납득하면서도 우려를 표했다.

“다만 걱정되는 건, 놈들이 이렇게 던전에 들어온 걸 보면 던전 관리 직원은 이미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나마 기절만 시켰다면 다행입니다만.”

던전 내에 있는 사람의 입만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서진도 예상하던 점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처리하지.”

어차피 이번 일을 수습하고 대책을 세우기 위해선 흑룡가주와 마관청의 도움을 받아야 할 테니까.

**

서진의 의도대로 습격은 없던 일이 되고 공략에 관한 얘기만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흥미롭게 결과를 기다리던 가문 사람들은 성공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입방아를 찧기 시작했다.

“이번엔 한서진도 못할 줄 알았는데.”

“대단하긴 해. 경험 많은 한치성도 여러 번 실패했는데 어떻게 클리어했지? 그것도 단 한 번의 기회로.”

“이렇게 되면 우위라고 생각했던 한치성의 던전 경험도 빛이 바래게 되는 건가.”

“뭐, 한번 밀린 걸로 속단하긴 이르지만 모양새가 우습게 되긴 했지.”

“그런데 한서진은 공략할 때 누구 데려갔어?”

이번 일에 대해 자세히 듣지 못했던 직원의 질문에 놀라운 대답이 돌아왔다.

“설하윤 헌터하고 자호대장. 단 세 명만 들어갔대.”

“와. 미쳤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솔직히 예전부터 믿기지 않는 일을 지금까지 해오긴 했어.”

“그러고 보면 요즘 가문 분위기도 진짜 많이 변한 것 같다. 계속 누워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깨어난 한서진은 엄청 급부상하고 있고, 계속 해외에 나돌았던 한치성도 돌아와서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했고 말이야.”

달라진 분위기를 체감하고 있는 외무각의 직원들은 그 말에 동의했다.

“맞아. 이렇게 될 거라 상상도 못 했었는데.”

“지금이라도 줄을 서야 하나?”

“우리가 서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최소 부각주급은 돼야지.”

“그래서 지금 내원당이 제일 복잡할걸.”

“왜?”

“내원당에서 제일 파워가 센 기관이 던전기획실인데 실장이 한서진 라인이잖아. 그런데 당주는 한치성 쪽이고.”

“그러네. 어찌 될지 궁금하다.”

거기다 감찰각과 은월각도 지지하는 후계자가 갈리니 향후 충돌할 가능성도 존재했다.

“요즘 가문의 무력부대장들도 한서진과 최근 접점이 커지는 것 같던데. 물론 원로원은 여전히 한정후가 잡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런데 어차피 이번 일과 비슷한 결과가  누적되면 한서진에게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어. 중요한 건 성과니까.”

한편, 외무각의 저런 대화 분위기와 달리  은월각에선 절규와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아악!”

“흐흐. 100만 원 감사합니다. 선배님.”

얼마 전에 서진의 공략 성패 여부로  내기를 했던 헌터는 결국 패배해서 100만 원을 헌납하고 말았다.

한서진이 공략을 못 할 거라 거의 확신했던 그는 충격을 더 크게 받았다.

“너...뭐 알고 있었냐? 어떻게 성공할 거라 믿었어?”

“근거는 그간 한서진 도련님이 밟아온 행적입니다. 그냥 믿는 거지요.”

“거의 종교네.”

옆에 지켜보고 있던 동료도 한마디 거들었다.

“결국 그 믿음에 한서진이 공략 성공으로 응답을 한 셈이네.”

“독 때문에 상당히 애먹을 줄 알았는데 어떻게 극복한 거지? 내성이 있었나?”

“글쎄다. 어쨌든 이번 일로 한치성 도련님은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을지도.”

흑룡가 헌터들에게 다양한 의미로 시선을 끌고 있는 한치성은 이미지 회복에 나섰다.

실추된 위신은 다른 공적으로 덮는 게 차선책.

한서진의 실패를 자신하긴 했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고, 그것이 한치성을 움직이게 했다.

그래서 한서진이 던전에 입장할 때 한치성도 새로운 임무에 착수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현재 임무의 결과물인 시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었다.

지명 수배되었던 5레벨의 블랙헌터.

다른 국가에서도 범죄를 저질러 국제 범죄자였던 놈을 찾아서 제압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치성의 기색은 한없이 싸늘했다.

한서진이 던전 공략을 해냈다는 소식을 들은 탓이었다.

“외무각에 연락 넣고, 다른 던전 물색해.”

“예.”

한치성은 블랙 헌터를 잡은 것으론 완전히 덮기 힘들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외무각을 통해 여론을 호전시키며 더 난이도가 높은 던전을 공략해서 흠집이 난 이미지를 메꿔야 했다.

한치성은 범죄자의 신병을 부하에게 넘기고 자리를 떠났다.

**

공략 성공으로 인해 시선을 모으고 있는 서진이었지만 정작 본인은 관심이 없었다.

던전에서 생포한 놈들에게 정보를 뽑아내는 것에 정신이 없었으니.

서진은 저번처럼 금제 때문에 감찰각주의 스킬이 안 통할까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네 명 중에 세 명이 마기를 쏟아내며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다행히 한 명은 살아남았는데 바로 서진이 상대했던 놈이었다.

이름은 알렉세이 마라토비치 이바노프.

이 녀석만 특별했던 이유는 뒤이은 심문에서 금방 드러났다.

알렉세이의 형이 10레벨의 흑마법사였던 것.

아마 형인 안드레이가 협회장의 마나를 흡수한 주범이겠지.

은신처의 위치는 사하 공화국의 야쿠츠크, 7레벨 세 명을 포함해 총 서른 명의 중급 헌터가 있다고 하니 만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무작정 그곳으로 갈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였다.

물론 서른의 헌터들이 전부 온전한 무력을 발휘할 거라 믿기는 힘들었다.

알렉세이처럼 기반이 부실한, 레벨만 높은 헌터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직접 물어보면 편하겠지만.’

서진이 묻는 대로 답해주는 알렉세이를 두고 이렇게 추측을 하고 있는 건 레벨 격차가 원인이었다.

알렉세이가 반쪽짜리라곤 하나 어찌 되었든 8레벨의 헌터.

5레벨인 감찰각주와 차이가 심해 스킬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스킬 유지 시간이 상당히 짧아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심문을 시작한 지 3일째, 서진은 오늘도 감찰각주와 함께 지하 뇌옥으로 들어갔다.

철컹.

철창이 열리고 사지가 결박된 채 쇠약해진 알렉세이의 모습.

그의 몸에 내재된 마기가 계속해서 기력을 갉아먹고 있어 점차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앞서 죽은 세 명에 비해 금제가 약할 뿐이지 아예 없진 않았기에.

마나와 다른 성질이라 용체화로 막는 건 불가능했다.

그런데 알렉세이는 동생인데 왜 형이 금제를 심어놓은 걸까.

궁금했지만 아무 질문이나 던질 순 없다.

질문 시간은 지극히 한정적인데 알렉세이의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길어야 하루.

첫날은 미처 알지 못해서 이름 따위를 물었지만 이제는 핵심만을 짚어야 한다.

감찰각주는 서진이 사전에 적어놓았던 질문을 알렉세이에게 그대로 읊었다.

“협회장의 마나를 흡수한 목적이 무엇이지?”

마나 드레인이라는 스킬을 알고 있는 서진이기에 서론을 건너뛰고 본론을 파고들었다.

협회장을 어떻게 제압했는지는 나중에 알아도 늦지 않다.

동공이 흐릿하게 변한 알렉세이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마스터를... 강림시키기 위해서...”

“마스터가 정확히 누굴 말하는 거냐.”

“우리에게 힘을 내려준 신.”

“신?”

구체적인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되물었지만 대답이 없다.

자세히 알고 있는 게 없다는 뜻.

스무고개를 즐길 시간은 없기에 빠르게 다른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럼 그 마스터를 불러오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말해.”

“...구슬에 마나를 축적해서 백야의 천ㅡ”

그 순간, 스킬이 끊어지고 의식을 잃은 알렉세이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졌다.

5레벨의 스킬로는 이 정도가 한계.

아니 3레벨 격차를 생각하면 선전했다고 봐야 할까.

서진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감찰각주.”

“예.”

“일은 부각주에게 맡기고 당분간 레벨 올리는 것에 집중해. 그리고 이거.”

서진은 영약이 들어 있는 목함을 내밀었다.

감찰각주는 눈을 크게 뜨며 숨을 들이켰다.

“헉, 이건... 제가 받아도 되겠습니까?”

“줄려고 가져온 거야. 레벨 올리라고.”

영약 하나로 쉽게 오르진 않겠지만 분명히 도움은 될 테니.

감찰각주는 감격해하며 허리를 깊게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물을 건네준 서진은 뇌옥을 나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강림을 위한 구슬과 마나 축적, 그것을 실행하고 있는 10레벨의 흑마법사.

아까 ‘백야의 천’에서 말이 끊겼지만 아마 천궁을 말하려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천궁과 대치 상태인 자오 길드는 리펠 길드, 게일러와 연결점이 존재하는 상황.

서진의 머릿속에서 그간 얻었던 정보가 취합되고 정리된다.

이계와 지구, 두 곳을 오갔던 서진만이 할 수 있는 추론의 결과가 도출되었다.

‘리치, 그놈이 지구에 오려고 하는 건가?’

7성주 중에서 흑마법의 정점에 선 존재.

수만의 데스나이트를 이끌며 일인 군단으로 경외 받는 흑마법사.

알렉세이의 형인 안드레이가 마나 드레인을 쓸 수 있었던 이유도 리치에게 힘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놈들이 강림시키려는 존재가 리치이며, 차원 이동을 위해 필요한 마나를 모으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얼추 앞뒤가 맞는다.

그리고 안정적인 강림을 위해선 적합한 좌표 설정이 필요할 터.

백야의 천궁 길드가 있는 위치가 바로 그곳이기에 자오길드를 이용해 밀어버리려고 하는 거겠지.

대략적인 상황이 전부 그려진다.

하지만 서진의 추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더 뻗어갔다.

‘그렇다면 다른 7성주도 마찬가지인가.’

그들도 오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그러고 보니.’

서진은 이상한 점을 뒤늦게 눈치챘다.

그때 죽인 5성주 중에 리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라이프 베슬을 부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건가.

‘물론 다른 놈일 수도 있지만.’

서진이 협곡에 투신하기 전에 격전을 거치며 5성주를 죽이긴 했지만 비어있는 성좌는 채워지기 마련.

직접 만나기 전까진 확신할 수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그놈이었으면 좋겠군.’

한 번 더 죽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다른 성주들도 지구로 오려고 한다면 세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혼란을 맞이하게 되겠지.

정말 웃기는 일이다.

이계의 붕괴를 우려해서 자신을 죽이려 들었으면서 이제는 여기로 넘어오려 하다니.

‘애초에 그 명분도 믿을 수 없었지만.’

드래곤들도 서진과 명확한 연관이 있다는 걸 설득시키지 못한 채 척살에 참여했을 뿐.

서진은 무슨 목적인지는 몰라도 놈들이 쉽게 발붙이고 살도록 둘 생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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