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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88화 (88/141)

88화

-러시아 정보국에서 강력하게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었습니다.

세르게이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은 뒤, 이틀이 지나고 마관청 홍세인 과장이 했던 말이었다.

감찰각주에게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아무래도 가문 내 감사를 진행하는 그가 대외 정보를 수집하는 건 역할이 맞지 않았다.

마침 마관청에서 관련 소식에 촉각을 세우고 있었기에 짤막한 정보를 엿들을 수 있었다.

-세르게이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찍힌 곳은 야쿠츠크입니다. 그 뒤부턴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러시아 땅이 워낙 넓고 한국처럼 촘촘하게 CCTV가 설치돼있지 않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정보 공백이었다.

-물론 러시아 정보국에서 행적을 숨기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저희는 그런 가능성은 낮게 보고 있습니다.

홍세인이 전하길 야쿠츠크에 머물고 있는 정보국장의 모습이 포착되었다고 한다.

조사 여력을 전부 그 도시에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가 여럿 나타나고 있었다.

-현재로선 세르게이 헌터의 사망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만약 정보가 전부 사실이라면 세르게이는 저택에서 무언가 알아챘던 건가.

그가 안드레이를 만났다는 증거는 없지만 서진은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10레벨 흑마법사에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라고.

9레벨 헌터가 뜬금없는 곳에서 비명횡사했을 리 만무하니까.

어쩌면 같은 러시아인이자 초월자로서 알 수 있었던 흔적을 발견했던 걸지도 모른다.

더 비약하자면 예전에 알고 지냈던 사이일 수도 있고.

이 부분에 대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끝이 없기 때문에 서진은 추측을 접었다.

어쨌거나 안드레이가 죽인 게 사실이라면 9레벨 마나를 흡수했을 터.

알렉세이가 말했던 구슬의 완성에 더 가까워졌겠지.

서진은 안드레이가 이전보다 과감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협회장처럼 살려둘 수도 있었을 텐데?’

물론 고의가 아니라 격전 끝에 불가피하게 죽였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마나 축적이 얼마나 이루어졌냐는 것이다.

구슬에 마나를 어느 정도로 모았는지에 따라 향후 행보가 갈릴 테니까.

아직 멀었다면 최대한 숨으려 할 테고, 거의 다 모았다면 한층 더 과감해질 터.

후자의 경우, 천궁에 대한 압박도 훨씬 심해지겠지.

‘그렇다고 정신을 여기에만 쏟아선 안 돼.’

서진은 리치 소환 건 외에 흑룡가 내부도 신경 써야 했다.

외부 활동이 공적으로 인정되긴 하지만 밖으로만 나돌아 다닐 순 없다.

결국 서진의 뿌리는 흑룡검가이지 인류의 수호자 같은 게 아니기에.

솔직히 엄밀히 따지자면 개인적인 복수일 뿐이지만 말이다.

‘가문 임무도 슬슬 해야 하긴 하는데.’

그간 서진이 이룩한 공적 덕분에 지금은 조용하지만 임무를 아예 도외시해버리면 원로원 노인네들도 난리 칠 테니.

가주가 되겠다는 목표는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그렇기에 서진은 눈앞의 사건 때문에 중요한 목표를 놓칠 생각도 없었다.

“서진 님?”

그때 귓가에 들린 미려한 목소리가 상념에 빠져있던 서진을 깨웠다.

고개를 드니 정소율이 눈을 흘기고 있었다.

“딴생각 하신 거 맞죠?”

잠깐 잊고 있었지만 현재 서진은 정소율에게 마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기껏 불러놓고 집중을 하지 않다니.

서진은 그녀의 눈빛을 은근슬쩍 피하며 헛기침했다.

“뭐. 좋아요, 후계시니 생각할 게 많으시겠죠?”

서진은 정소율의 표정과 말투에서 약간 토라졌다는 걸 눈치챘다.

그간 비슷한 나이대의 여자들과 자주 만나면서 감정을 파악하기가 한결 쉬워진 덕분이었다.

처음 깨어났을 때를 생각하면 비약적인 발전.

어쨌든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건 사실이기에 난처했다.

서진은 잠시 고민하다 좋은 생각이 떠올라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사저.”

“예?”

정소율은 어깨를 흠칫 올리며 귀를 의심했다.

서진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능청스레 반문했다.

“왜 그러시죠. 사저?”

“으아아악! 하지 마세요!”

그녀는 몹시 부끄러운 듯 고개를 연신 저었다.

새까만 단발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생각보다 호칭의 파괴력은 강력한 모양이다.

서진이 외부 제자이긴 해도 레이놀즈를 마법의 스승으로 두고 있으니 사저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다만 정소율이 듣기엔 너무나 오글거려서 받아들일 수 없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던 서진은 옅은 웃음기를 누르며 대답했다.

당초 목적이었던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에 성공했으니까.

정소율은 작게 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그럼 다음 마법 보여드릴게요.”

마음을 진정하고 마나를 움직이려는 순간, 서진의 폰이 울렸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발신자는 천궁의 길드장.

전화를 받은 서진은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

백야로 들어가는 진입 도로.

서진은 문선영과 안면을 익히고 나서부턴 천궁에서 관리하는 길을 통해 주로 백야를 드나들었다.

정소율에게 양해를 구하고 급히 백야로 가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전과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철저한 관리를 위해 항상 경계 중이던 천궁의 헌터들은 보이지 않고 누군가 길을 막고 있었으니까.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아주 미약한 투기가 저들이 어떤 목적을 품고 있는지 알려준다.

“오랜만이네.”

천궁이 관리하던 도로인데 왜 저런 하급 헌터들이 점거하고 있는지.

아마 문선영이 급히 전화로 말했던 내용과 연관이 있을 거라 예상된다.

서진이 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이 놈들이 다가오며 외쳤다.

“얌전해서 좋네. 차만 내놓고 꺼져.”

약탈할 생각으로 기세 등등하게 다가오던 그들은 서진의 얼굴을 보는 순간, 굳어버렸다.

“헉!”

상대를 잘못 골랐다는 것을 알게 된 부랑자들은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쳤다.

정말 단순하게 뒤 없이 살아가는 놈들다웠다.

“마침 잘 됐어.”

서진은 발검하는 대신 마법을 캐스팅했다.

4레벨 문턱에 올라서며 익힌 수중감옥.

도망치는 부랑자들의 머리 위에 작은 폭포가 쏟아져 내렸다.

물이 몸에 닿는 순간, 타원형의 감옥으로 변화하며 놈들을 가두었다.

탈출하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쳤지만 의미 없는 짓이었다.

서진은 차분히 물 감옥을 감상했다.

“아직은 역시 캐스팅 속도가 느리네.”

그래도 구속력은 쓸만하니 잘 다듬으면 실전에서도 충분히 효과를 볼 수 있을 듯하다.

끄르륵.

서진은 물속에서 기절한 놈들을 땅바닥에 풀어주고 천궁으로 향했다.

**

“자오 길드에서 전면전을 걸어왔어요.”

서진이 집무실에 들어오자 문선영은 평소와 달리 바로 본론을 꺼냈다.

백야에 퍼져있는 천궁의 사업체에 동시다발적인 습격이 들어왔고, 그로 인해 치안 공백이 생긴 것이었다.

“본격적으로 나섰군요. 그렇다는 건.”

“예, 후계자님이 말해줬던 안드레이라는 흑마법사가 마나를 거의 다 모은 게 아닐까 싶어요.”

서진이 천궁에도 정보를 일부 공유해주었기에 문선영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 몰랐는데. 문제는 사업체가 무너지는 것보다 길드원들이에요.”

금전적 손실은 복구하면 되지만 인재는 그리 쉽게 얻을 수 없으니까.

자오 길드를 통해 안드레이가 노리고 있는 것도 천궁의 무력화가 분명했다.

그래야 길드 건물이 위치한 이 땅을 차지해서 리치를 안정적으로 불러낼 수 있을 테니까.

문선영도 그 점을 우려해서 최근 들어 길드의 전력을 강화시켜왔다.

다만 상대방의 움직임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기에 현재 전황은 밀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보에 특화된 만큼 무력이 자오길드보다 부족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문선영은 그뿐만이 아니라고 하며 덧붙였다.

“그리고 평소에 파악하고 있던 전력보다 훨씬 강해졌어요.”

현장에 있던 천궁 길드원이 말하길, 자오 길드의 헌터들에게서 흐릿한 마기를 느꼈다고 한다.

“아마 마기가 자오의 헌터를 강하게 해주는 것 같아 현재 이유를 알아내고 있어요. 그걸 없애야 전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거예요.”

문선영이 직접 나선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만 상대의 목적이 이 땅 자체라는 걸 알고 있는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자리를 비운 사이 자오 길드장이 습격해서 공간을 장악하고 리치를 강림시키면 모든 게 끝이니까.

어쩔 수 없이 문선영은 이 건물을 지키며 보고를 받고 원격으로 지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괜찮다면 4구역 외곽에 있는 군수 공장으로 가줄 수 있겠어요? 거길 빼앗기면 지금보다 전력차가 더 벌어지게 돼요. 당연히 무상으로 도와달란 소리는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일단 시급하니 제가 원하는 조건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서진은 무엇을 요구할지 이미 생각해둔 바가 있었다.

“네, 부탁드릴게요.”

**

서진은 곧장 4구역의 공장으로 향했다.

콰앙!

폭음과 고성이 울려 퍼지고 비릿한 피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양측 길드 모두 이곳의 중요성을 알고 있기에 물러섬 없이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마치 제삼자인 듯이 보고 있지만 서진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서로의 신념과 목적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싸운다는 점은 같으니까.

서진은 마나를 끌어올리며 자오 길드의 헌터가 뭉쳐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가까이 가보니 천궁 길드장 말대로 각자에게서 미약한 마기가 느껴진다.

육체를 자극해서 스텟을 펌핑시키는 단순한 원리인 것 같은데.

하기야 이런 전장에서 저것만큼 가성비 좋은 효과를 찾기 힘들다.

“엇?”

그리고 누군가 서진을 발견한 순간, 물안개가 그들을 덮쳤다.

작은 물의 입자들이 헌터들에게 달라붙으며 시야까지 가려버린다.

동시에 서진의 검에서 섬광이 터지며 공격이 이어진다.

흑룡검술 제4식 만천뇌우.

물안개를 벗어나기도 전에 수천 개의 전격 파편이 그들에게 꽂혔다.

“으아악!!”

물안개가 연결고리가 되어 전류를 사방으로 흩뿌리며 전신을 마비시키고 결국엔 목숨을 앗아간다.

7레벨이 선보이는 연계 공격에 대부분이 쓰러지고 남아있는 헌터는 단 세 명.

전격 내성이 있거나 화염 속성을 통해 물안개에서 스스로를 보호한 이들.

서진은 그들에게 다른 선물을 꺼냈다.

흑룡검술 제 6식 연폭뢰.

숨 쉴 틈 없이 직격으로 내리 꽂히는 번개 다발.

두 명은 시체가 되어 쓰러지고 한 명만이 손을 부르르 떨며 서 있었다.

내성 덕분에 가까스로 버티긴 했지만 압도적인 격차를 체감하고 저항이나 도망갈 의지마저 사라진 듯하다.

서진은 편하게 그를 보내주고 주변을 둘러봤다.

강제된 침묵.

서진의 무위를 목도한 천궁의 헌터들 사이에 짙은 정적이 깔렸다.

주머니 속에서 작게 울리는 신호음이 유난히 크게 들릴 정도로.

문선영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알고 보니 한 명의 흑마법사가 자오 길드원에게 마기를 계속 공급해주고 있었어요. 어디서 보내는지 위치도 알아냈는데 문제가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도 천궁의 정보 수집 능력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예전에 말했던 그 결계가 펼쳐져 있어서 들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제가 가볼 테니 좌표 보내주세요.”

서진은 금방 도착한 문자를 확인하고 5구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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