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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93화 (93/141)

93화

성주원은 눈을 뻐끔거리며 되물었다.

“우리 가문에 뱀파이어가 있다고?”

“응, 누구일 것 같아?”

서진이 마주친 가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성주원은 불현듯 오전에 던전 앞에 찾아왔던 녀석이 떠올랐다.

“...설마 정인호냐?”

“맞아.”

뱀파이어가 있다는 것엔 그리 놀라지 않았지만 정인호가 인간 외의 존재가 되었다는 말은 성주원에게 꽤 충격이었다.

“아니 정말이야? 전혀 몰랐는데 넌 어떻게 아는 거냐?”

“관련 능력이 있어. 물론 말만으로 믿기 힘든 건 이해해. 그러니까 확인하러 가보자는 거지.”

“확인? 어떻게?”

“오전에 악수했을 때 정인호가 무슨 짓 한 거 아니냐며 호들갑 떨었잖아?”

성주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진의 단어 선정 센스를 지적했다.

“하필 골라도 호들갑이 뭐냐.”

“어쨌든, 사실은 수작을 부른 게 맞았어. 감시계열 혈마법을 나에게 붙이더라고.”

그러자 성주원이 벌떡 일어났다.

“뭐? 아니 근데 왜 그걸 지금 말해.”

그 반응에 서진은 다소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방금 전까진 믿기 힘들어하더니 갑자기 왜 급발진이야?”

“큼, 나도 모르게. 역시나 그놈이 순순하게 응원하러 올 리가 없지.”

어느새 성주원은 서진의 말을 온전히 믿고 있었다.

“그래서, 네 능력으로 혈마법이 발동된 걸 알았다면 왜 알면서 받아준 거냐?”

“덫을 놓으려고 그랬지.”

서진은 일루전 마법으로 정인호의 블러드 아이를 역이용했다는 것을 얘기해주었다.

성주원은 질린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너도 참 대단하다. 혈마법을 본 순간에 바로 함정을 팔 계획을 떠올리고 실행하다니.”

성주원은 새삼 서진과 적이 아닌 친구라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그러니까 미끼를 던져놨으니 정인호가 안달이 났다면 바로 반응이 나타날 거야.”

“그런데 정인호가 가문에서 퇴출당하면 나야 좋지만 너는 왜 이렇게 열심인 거냐?”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정인호 잡고 나면 알게 될 거야.”

“그래. 어찌 됐든 정인호가 기갑성가 사람이니 같이 가자는 거구나.”

성주원은 서진이 말을 꺼낸 목적을 정확히 파악했다.

“얘기해 줘서 고맙다.”

“고맙기는.”

“그놈이 진짜 뱀파이어로 변했는지 아직 와닿진 않지만 직접 확인해보면 되겠지. 가보자.”

**

“시발!”

혼 이프리언의 뿔이 땅에 떨어졌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거지?”

분명 마나가 증폭되면서 검기가 늘어나는 것을 봤는데.

살아있을 때 뿔을 뽑는 것 외에 다른 조건이 더 있는 건가?

“뭔가 잘 안되나 봐?”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정인호의 몸이 홱 돌아갔다.

‘한서진과 성주원?’

정인호는 일그러졌던 표정을 지우고 입꼬리를 올렸다.

“여긴 웬일이야?”

“하, 그건 내가 할 말이다.”

성주원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추궁했다.

“이 던전의 공략 권한은 나에게 있어. 그런데 정인호 기갑부단장께선 어찌하여 멋대로 출입한 거지?”

정인호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선택지를 머릿속에 나열했다.

급히 만들어낸 변명을 앞세우면 바로 논파 당할 위험이 크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사실을 말하되 중요한 목적은 숨기는 편이 낫겠지.

“이거 죄송해요 형, 한번 들어와 보고 싶은 마음에 실수해 버렸네요. 잘못에 대한 징계는 얼마든지 받아들일게요.”

성주원은 처음부터 정인호가 저자세로 나오니 도리어 할 말이 없어졌다.

대신해서 서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뿔은 왜 던진 겁니까?”

“흥미가 생겨서 들고 있다가 별거 없어져 버려서 그냥 뭐.”

“아하, 아니면 혹시 마나가 증폭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던 건 아닙니까?”

일순간, 싱긋 웃고 있던 정인호의 얼굴에 경직이 일었다.

“생포한 상태에서 뽑고 손에 쥐면 확 늘어나는데 잘 안됐나 봅니다.”

대놓고 찔러 들어오는 서진의 말에 정인호의 표정이 사라졌다.

“너...”

뒤늦게 생각해 보니 이상했다.

블러드 아이를 통해 봤던 마나 증폭은 통하지 않았고, 때마침 나타난 한서진까지.

그리고 저 말까지 종합한다면.

“속은 건가? 내가?”

어이없는 듯 자문하던 정인호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흐, 하하하하! 시발, 하아아.”

정인호는 숨을 길게 내쉬며 대놓고 혈기를 일으켰다.

기감을 퍼트려 두 명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다 알고 온 모양인데, 차라리 잘됐어. 이참에 죽여버리지 뭐.”

사실 다른 선택지도 없었다.

이미 들킨 이상, 여기서 거짓말로 수습해서 밖에 나간다 한들 성주원은 어떤 식으로든 정체를 밝히려 할 테니까.

귀찮게 돌아갈 필요 없이 던전 안에서 성주원을 죽이고 가문을 다시 뺏는 방법만이 살길이다.

‘원래는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새로 얻은 힘을 잘 포장해서 강해지는 모습을 가문 내에서 연출할 계획이었지만.’

들키지만 않는다면 이렇게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한서진이 거슬리긴 한데.’

혈마법이 있긴 해도 두 명을 동시에 상대하기엔 아직 벅찬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서 한 명씩 죽이면 되는 일.

정인호는 백루약(白摟龠)이란 이름의 피리를 꺼내 발동했다.

몬스터를 끌어들이는 효과를 지닌 아티팩트.

백루약의 소지자는 공격하지 않기 때문에 둘 중 하나는 몬스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청각을 어지럽히는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멀리서 이프리언들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낮에 서진과 기갑성가의 헌터들이 분화구 인근의 이프리언들을 정리했지만 그곳을 제외한 지역에선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거기다 사냥형 던전의 특성상 던전 내 개체 수는 항시 비슷하게 유지되기 마련.

서진이나 성주원이 이프리언을 상대하다 죽지는 않겠지만 발을 묶이는 건 피할 수 없다.

“이프리언 쪽은 부탁할게.”

서진은 검을 뽑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그래, 혈마법에 대해 알고 있는 네가 상대하는 게 낫겠지.”

성주원은 무장을 착용하고 이프리언 무리를 향해 포탄처럼 튀어 나갔다.

“주원이 형이 쟤들을 막으러 갔네요.”

힐긋 보던 정인호는 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에겐 궁금한 게 몇 가지 있어요. 그래서 말은 할 수 있게 죽이진 않을게요. 사지는 없어도 괜찮죠?”

“재밌네. 서로 목적이 같아서.”

“실컷 말해두세요. 오늘 이후론 자유롭게 말할 일은 없을 테니까.”

파앗.

정인호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한다.

부쩍 창백해진 피부에서 솟구치는 혈기는 무척이나 대조적인 인상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두꺼운 장갑을 장착한 무장이 전신을 뒤덮었다.

철컥.

“더없이 완벽해.”

무장과 몸속을 가득 누비는 혈기가 정인호에게 깊은 만족감을 전달하고 있었다.

쾅!

정인호가 밟고 있는 땅이 뭉개지며 앞으로 발사되듯이 쏘아졌다.

마치 전차 수백 대가 하나로 응축되어 다가오는 느낌.

공기를 타고 서진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7레벨을 웃돌았다.

공간 자체를 짓누르는 감각에 서진은 점멸로 회피했다.

그러자 허무하리만치 방향 전환 능력을 상실한 듯 서진이 서 있던 지면에 처박혀버린다.

아직 혈기와 무장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은 탓이겠지.

당연히 서진은 그런 사정을 봐줄 생각이 없었다.

파지지직!

흑룡검술 제3식 뇌격포.

굉음과 함께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자줏빛 포격.

7레벨이 되어 이전보다 밀도 높은 전류가 몸집을 키우며 정인호를 덮쳤다.

콰아앙!!

엄청난 충돌음이 터졌지만 피격의 부산물은 나타나지 않았다.

파직.

전격이 흩어지며 모습을 드러낸 구체형 마력장.

기갑성가의 무장 특유의 방어막이었다.

다시 무장을 일으킨 정인호는 마력장을 유지한 채 공중으로 치솟으며 애병을 꺼내 들었다.

6개의 총구가 달린 미니건에서 탄환이 폭류처럼 터져 나왔다.

일반 화기라면 무시하며 받아내겠지만 저건 혈기가 담긴 변형 마력탄.

서진은 천라와 실드를 동시에 전개하면서 탄환 세례를 빗겨냈다.

그리고 아직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려있는 정인호에게 서진의 검격이 측면을 노리고 쏘아졌다.

정인호는 급하게 총구의 방향을 틀었지만 전격이 압축된 검강은 모든 걸 베어내며 마력장에 충돌했다.

서진은 고작 저걸로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간격을 좁히기 위한 한 수일 뿐.

미니건의 포화가 멈추고 서진이 정인호의 지근거리까지 도달했다.

검이 마력장을 내리치려는 순간, 정인호는 신속하게 타워 실드로 장비를 교체했다.

콰아앙!

검과 방패가 부딪히며 지면에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내가 멀리서 총만 쏠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야.”

잊고 있었지만 정인호는 어린 나이에 외부인 신분으로 기갑부단장 자리까지 꿰찬 실력자.

전투 센스만큼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무장 헌터를 상대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던가.

낯선 능력을 가진 적과의 전투는 언제나 서진을 즐겁게 해주었다.

[근력이 36 상승합니다]

더구나 스텟도 이렇게 쌓이니까.

투기를 흡수한 순간에 서진은 방패에 주입된 혈기가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그 즉시 검을 거두며 옆으로 몸을 틀었다.

콰앙!!

피하자마자 방패에서 터져 나온 폭발.

각종 아이템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기갑성가의 헌터인 만큼 방어 무장에도 저런 기능이 숨어있던 것.

서진은 폭발의 여파 속에서 검강을 내리쳤지만 혈기로 인해 붉게 물든 마력장에 막혔다.

‘생각보다 튼튼해서 거슬리군.’

혈기를 혈마법에 쓰는 대신 모조리 마력장에 쏟아부었는지 검강에도 끄덕하지 않을 정도.

그렇다면 힘들게 밖에서 부수기보단 못 쓰게 만들어버리면 되겠지.

서진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동시에 정인호의 마력장 안에서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뭣...!”

보호하고 있던 마력장이 자신을 익사시키는 감옥으로 바뀌어 버린 셈.

상대방의 영역를 뚫고 들어가 마법을 발현할 수 있는 재능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이적이었다.

“제길!”

얼굴까지 물에 잠기기 전에 정인호가 마력장을 해체하는 찰나에 서진의 검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흑룡검술 제5식 변(變) 뇌환 전광검.

뇌기로 가득 찬 분신을 만들어낸 순간, 시간의 흐름이 서진의 손안에 떨어진다.

분신은 서진의 뇌검을 통해 이어진 상태.

좌우에서 동시에 번쩍거리는 검이 정인호의 사각을 찔러 들어간다.

파지지지직!!

고막을 자극하는 뇌명이 정인호의 감각을 되돌렸지만 이미 반응하기엔 늦었다.

뒤늦게 혈마법을 발동하려 해도 전류가 그의 사고를 방해했다.

“끄아아악!”

자줏빛 전격은 일점을 찌르는 송곳이 되어 특수 코팅된 무장 갑옷을 꿰뚫으며 파고들어갔다.

무방비한 갑옷 안쪽의 살갗에 전류가 전달되면서 정인호의 전신을 마비시킨다.

거대한 타워실드는 자연스레 떨어지고, 서진은 무장의 동력을 유지하는 핵심 장치를 검으로 베어버렸다.

“서진아!”

어느새 이프리언을 다 처리하고 되돌아온 성주원은 눈을 크게 뜨며 달려왔다.

“죽인 거야?”

“아니. 물어볼 게 있는데 왜 죽여. 멀쩡히 살아있어.”

무장이 벗겨진 채로 전격에 타버린 모습이지만 위력을 조절했기에 의식만 잃은 상태였다.

“이대로 가문에 가면 발칵 뒤집힐 텐데.”

“일단 내가 데려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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