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97화 (97/141)

97화

[마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집니다]

[‘용체화’의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비접촉 대상에게도 일부분의 마나 간섭이 가능해집니다]

막대한 양의 마나를 다루면서 잠겨있던 능력이 개화된 건가.

예상외의 기분 좋은 소득이다.

하지만 알림창에 정신이 팔려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소홀해선 안 되는 법.

서진은 협회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행히 아직까진 마나 주입에 대한 저항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론 장기간 분리된 상태였기에 한 번에 많은 양을 쏟아붓진 않는다.

육체는 이전의 마나를 갈망하고 있었는지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지만 거기에 맞춰 무턱대고 넣기보단 몸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

서진은 조급해하지 않고 주입 속도를 조절하며 마나를 움직였다.

“정말 많긴 하군.”

서진이 컨트롤하기 벅찰 정도로 방대한 마나량.

그러니까 용체화의 숙련도가 올라간 것이겠지만.

그러고 보니 이렇게 작게 땀을 흘릴 정도로 타인을 위해 집중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서진이 협회장을 회복시켜주려 이렇게까지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안드레이를 죽여 복수를 해준 것만 해도 충분한 몫은 다했다고 할 수 있으니까.

만약 잘못해서 협회장이 죽는다면 대놓고 원망하진 않아도 적잖이 실망하게 될 터.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뜻대로 생각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니까.

서진이 손녀와 집사를 비롯한 이들의 상실감을 떠안을 이유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치료를 자처하고 나선 것인가.

물론 그 이전에 임유나의 간곡한 부탁이 선행되었긴 하지만 결국 수락한 건 서진이었으니.

이유는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내면에 존재했다.

스무 살 이전의 한서진.

대가 없이 호의를 베풀던 그때의 자신이라면 분명 욕을 먹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나섰겠지.

‘그런 마음이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은 건가.’

천 년을 거치면서 사라진 줄 알았건만.

지구에 돌아오고 나서 다시 생겨난 걸까.

귀환 후에 서진이 능력을 회복해 갈수록 내면에 대한 고찰도 늘어가고 있었다.

마치 이중인격 같은 기분.

물론 이전처럼 사람 좋은 호구가 될 일은 없다.

투신으로서의 서진이 육체와 정신의 근간을 잡고 있으니까.

협회장이 살아난다면 서진은 강력한 조력자를 얻게 될 테니.

단순히 구명의 은혜에서 비롯된 기대감이 아니었다.

현재 협회장의 마나는 용체화 상태의 서진을 거치며 주입되는 중이다.

마나에 대한 간섭 권한이 서진에게 넘어갔으므로 사실상 협회장의 마나를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물리적으로 서진을 거스를 수 없게 된다는 의미.

물론 협회장과의 관계가 아예 틀어지지 않는 이상, 강제로 억압하거나 그러진 않겠지만.

그러니 서진으로서도 협회장이 일어난 편이 훨씬 좋았다.

부가적인 이익을 차치하더라도 이렇게 마나를 넣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 없어지지 않은 서진의 호의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니까.

**

“후으...”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임유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잘 되어가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조차 혹시 모르게 행동으로 나타날까 눌러 담았다.

치료하고 있는 사람은 서진인데 왜 자신까지 손을 떨며 긴장하고 있는 건지.

왠지 모를 한심함에 고개를 푹 숙이며 눈을 반쯤 떴다.

그러자 맞은편에 서 있는 설하윤 헌터의 검은색 부츠가 시야에 들어왔다.

“잘 되실 겁니다.”

임유나의 모습이 음울해 보였는지 설하윤이 짤막하게 위로를 건넸다.

“제가...”

임유나는 땅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괜한 부탁을 드린 걸까요? 저는 아무것도 못 하는데 서진 씨에게만 부담을 안겨드린 것 같아서 죄송스러우면서도 기대를 하게 돼요. 웃기죠? 이런 모순된 마음을 품고 있는 제가 싫어지기도 해요.”

임유나가 터놓은 속마음에 설하윤은 검병을 매만지며 나지막이 말했다.

“상관없습니다.”

“네?”

“기대나 실망감, 전부 감당할 수 있으니 하고 계신 겁니다. 적어도 제가 봐왔던 서진 님은 그랬습니다.”

그렇다면 임유나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 것인가.

설하윤의 말 뒤편엔 그러한 속뜻이 숨어있는 듯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어요. 방금 기대한다고 말했으면서 이상하게 들릴진 모르지만, 도움을 주신 분을 탓할 생각은 절대 없어요.”

그건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임유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서진 씨는 계속 애써주시는데 저는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 그게 괴로울 뿐이에요.”

“굳이 찾지 않아도 됩니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서진 님이 말해주실 테니까요. 하지만 마음에 걸린다면 그건 본인이 답을 찾아야 하는 문제입니다.”

임유나는 고개를 들며 옅게 웃었다.

“...역시 그렇겠죠? 그리고 고마워요. 이렇게라도 얘기를 나누니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아요.”

그때 굳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서진이 나왔다.

“아, 저기. 고맙습니다.”

벌떡 일어난 임유나는 입을 달싹이다 허리를 숙였다.

“고맙다니요?”

“그게.”

앞선 대화를 듣지 못한 서진은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뭐 어쨌든, 마나는 무사히 들어갔지만 솔직히 협회장께서 의식을 차릴지는 저도 확신할 순 없습니다. 한번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괜찮은 건가요?”

“네, 무리하게 건들지만 않는다면.”

서진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임유나는 할아버지에게 살짝 뛰어갔다.

그런 뒷모습을 잠깐 눈에 담은 서진은 조용히 저택을 빠져나갔다.

**

“저게 흑뢰...”

카앙!

흑룡검가의 연무장.

검은 뇌기와 푸른 뇌기가 부딪히며 강렬한 스파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흑뢰와 맞닿은 순간 검이 잘려버리는 게 정상이지만 서진이 뇌기의 출력을 조절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연출.

서진이 흑뢰를 이끌어냈다는 얘기가 가문에 퍼져나간 직후.

백랑대는 물론이고 자호대, 흑룡대까지 찾아와 흑뢰를 보고 싶어 했다.

결국 그들의 성화에 못 이긴 서진은 대련을 빙자한 시연회를 열기로 했고, 그래서 지금 흑뢰를 보이며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었다.

“7레벨에 흑뢰라니, 진짜 말도 안 되는데 눈앞에 있으니까 부정할 수도 없네.”

“4레벨부터 뇌기가 자색이었잖아. 다른 사람은 불가능해도 서진 도련님은 되는 거겠지.”

“자줏빛이 영롱해서 검은색은 칙칙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직접 보니까 괜한 걱정이었어. 검게 빛나는 뇌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네.”

“지금 서진 님이 많이 봐주고 있는 거지? 뇌기 색깔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잖아.”

“어. 원래는 상대도 안돼.”

“저 뇌검을 보니 10레벨 흑마법사를 벴다는 말도 납득이 간다.”

한편, 서진의 검을 막아내고 있는 흑룡대원은 죽을 맛이었다.

서진이 강도를 낮췄음에도 흑색 뇌검의 예기가 전신을 짓누르는 감각이 끊임없이 느껴진다.

그나마 서진이 어떤 것도 벨 의사가 없다는 점이 대원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고 있었다.

거기다 계속해서 부족한 점을 알려주는 서진의 가르침까지.

흔치 않은 기회이기에 흑룡대원은 검을 꽉 고쳐잡고 다시 달려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다른 흑룡대원들은 입맛을 다셨다.

“부럽다. 나도 어떤 느낌인지 한번 검으로 체감해보고 싶은데.”

“도련님이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계속 있으면 기회는 또 오겠지.”

“그나저나 결국 서진 도련님이 먼저 7레벨에 도달했으니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그러게, 1년 전만 해도 누가 예상했겠어?”

“그럼 사실상 소가주는 거의 정해진 거야?”

“그럴걸? 한치성 도련님이 7레벨 되지 않으면 힘들지 않을까.”

그때, 한 흑룡대원을 중심으로 급보가 퍼져나갔다.

내용은 한치성이 마침내 7레벨에 도달했다는 것.

“와,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몰라. 그딴 거 신경 쓸 시간에 도련님의 검술을 뇌리에 박아넣어. 그게 훨씬 이득이니까.”

**

대련이 끝나고 서진은 가주실로 향했다.

한치성이 7레벨이 됐다고 하던데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

별것 아닌 궁금증은 가주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걷혔다.

소파에 앉아있던 낯선 남자가 서진을 보더니 놀란 듯 엉덩이를 떼며 일어났다.

갈색 머리칼에 초췌하며 긴장된 안색, 다소 마른 인상의 그는 정중하게 인사를 해왔다.

“안녕하십니까. 클리어 길드의 길드장 브랜던 미첼입니다.”

“예. 반갑습니다.”

‘클리어 길드라면.’

힐러들의 스킬을 이용해 헌터 관련 각종 치료제와 각성제를 생산하는 제약 길드.

몇 년 전까지 잘 나가다가 최근엔 다른 길드에 밀려서 갈수록 성세를 잃어가는 곳.

종종 서진이 정선 아저씨와 밥을 같이 먹을 때 들었던 얘기였다.

악수하고 나서 착석한 서진에게 한벽호가 말했다.

“한치성이 7레벨에 들었다는 얘기는 들었겠지. 참 재밌게 됐어. 그놈은 마침 맡길만한 임무가 생겨 에베레스트로 보냈다. 그리고 브랜던 길드장은 너를 찾아온 사람이다.”

서진이 시선을 돌리자 브랜던이 입을 열었다.

“현재 저희 클리어 길드는 유니온의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서진 후계자님께 도움을 요청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유니온?”

“예, 한국은 지부를 완전히 몰아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은 상황이 전혀 반대입니다.”

유니온이 미국에서 창설됐기에 그 영향력은 지부가 있는 타국과 비교할 수 없었다.

“거기다 최근 마인으로 인한 사건이 급증하고 있어 미국 내 여론도 유니온에게 실리는 상황입니다.”

“대충 배경은 알겠는데 어떤 압박을 받고 있는 겁니까?”

“동생이 마광병을 앓고 있는데 한 달 전부터 유니온의 플래티넘급 헌터가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동생을 데려가려 하고 있습니다.”

플래티넘이면 마스터의 바로 아래 등급.

어느 정도 규모가 있다곤 해도 제약 전문 길드가 막아내긴 벅찰 게 분명했다.

“두 차례까진 어떻게든 막아냈습니다만 더는 무리입니다. 돈으로 고용하려고 해도 플래티넘급 헌터를 상대하려는 용병을 구하기가 쉽지 않더군요. 앞서 말했듯 여론도 저희 편이 아니라서 도움을 주려는 길드도 없는 상황입니다.”

“유니온의 헌터가 동생을 노리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습니까?”

“아니요. 직접 물어봐도 대답을 하지 않길래 여기저기 수소문해 봤지만 알 수 없었습니다.”

흐음.

사정은 알았지만 서진은 크게 끌리진 않았다.

연달아 임무를 받을 필요도 없었으니.

김형석 비서는 그런 기색을 눈치채고 입을 열었다.

“되도록이면 받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문에 좋은 게 있나 봐요?”

“예, 이번 일의 대가로 여섯 종류의 주요 포션 조제의 노하우를 받기로 했습니다.”

흑룡가에 약제원이 있긴 하지만 전문 길드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사실.

이번 임무는 약제원의 저변을 넓힐 기회이기도 했다.

그래도 서진이 시큰둥해하자 브랜던은 보상을 더 내걸었다.

“케일러스의 열매도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피부가 어떤 상태든지 상관없이 말끔하게 재생시켜주는 미용치료계의 희귀 아티팩트.

어디에 있나 했더니 클리어 길드가 보관하고 있었나.

서진이 살짝 솔깃해하려는 순간, 브랜던의 말은 더 이어졌다.

“동생은 이젠 거대한 개만 봐도 두려움을 느낄 지경입니다.”

“개?”

“플레티넘 헌터의 고유 스킬인지 싸울 땐 늑대처럼 변하더군요. 어찌나 강한지...”

그 말을 들은 서진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