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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02화 (102/141)

102화

백화연은 대뜸 다가와서 서진에게 속삭였다.

“들었어.”

“뭘?”

“네가 얘기해서 한치성까지 참여하게 된 거라며? 이제 사이가 좋아진 거야?”

서진은 어이없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백화연은 언제나처럼 총명한 눈동자로 서진의 시선을 받아쳤다.

“왜?”

“넌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아님 말고.”

서진은 실없는 농담에 웃음을 흘리다가 백화연의 손을 잡아들었다.

“잠깐, 뭐 하는 거야?”

“네 손이 떨리길래. 작전을 앞두고 너답지 않군. 무슨 일 있어?”

백화연은 살짝 입술을 깨물다 긴장 섞인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하아, 제2 각성자 교도소에 근무하던 헌터 중에 언니의 남동생이 있어.”

“언니? 아, 평소에 같이 다니던 비서분 말하는 거야?”

“응.”

“사진은?”

백화연은 주머니에서 얼굴이 선명하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었다.

서진은 얼굴을 눈에 담으며 차분하게 말했다.

“솔직히 장담할 순 없어.”

“알아.”

“그래도 내가 발견하게 되면 무조건 보호해서 데리고 나올게.”

운무도에 세워진 교도소는 상당히 크게 지어졌다.

마나 사용자들을 확실하게 격리해서 가두기 위해선 일반 교도소로는 어림도 없기 때문에.

작전에 참여한 가문, 길드별로 나뉘어 총 7개의 팀이 투입되지만 각자 진입하는 입구가 다르다.

남동생이 살아있다고 해도 백화연이 이끄는 팀이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

그녀는 낮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할게.”

백화연이 철혈백가의 팀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서진도 이제 곧 출발하는 배로 향했다.

**

투두두둑.

비가 쏟아지는 배의 갑판에서 전방을 바라보고 있는 서진.

크루즈 보트는 둔중한 모터 소리와 함께 물살을 가르며 섬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었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짙은 잿빛 구름이 하늘을 가리며 어두워진다.

그리고 다가오는 걸 방해하려는 듯 파도가 격해지며 바다를 어지럽힌다.

“섬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요?”

해풍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감싸고 있는 설하윤은 멀리 내다보며 말했다.

언제나처럼 마스크를 쓰고 있는 상태.

아직 케일러스의 열매를 먹지 않았나 보다.

‘그러고 보니 시간이 없었겠군.’

미국에서 돌아오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작전에 소집됐을 테니.

서진은 쓴웃음 흘리며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배가 고장 나지만 않으면 가능해. 나머지 방해되는 것들은 전부 치울 거니까. 지금 오는 놈들까지 포함해서.”

평소 서해에는 해양 몬스터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최근 들어 갑작스레 늘어난 것도 뱀파이어가 점령한 회색 섬의 영향이겠지.

‘서른 정도인가.’

사냥감을 인식하고 몰려든 혈사어(血鯊魚)들이 넓게 퍼져나가며 배를 포위하기 시작한다.

“번거로워지기 전에 한 번에 정리해야겠지.”

서진이 뽑아 든 칠흑의 검신에서 어두운 뇌광이 번쩍인다.

흑룡검술 제1식 섬아.

검이 아래로 그어지며 거칠어진 바다 수면에 굵직한 번개 다발이 꽂혀 들어갔다.

콰르릉!

천둥이 울리며 흑뢰는 바닷물이란 매개체를 타고 서른 갈래로 나뉘어 뻗어갔다.

퍼엉!

뇌격에 터져나간 혈사어들의 살점과 함께 바닷물이 치솟아 오른다.

단번에 해양 몬스터를 정리하는 모습을 본 흑룡가 헌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렇게 많은 B급의 혈사어를 한 번에 처리하다니.”

“대단하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나서 나는 바다 아래에서 어떻게 죽였는지도 못 봤어.”

“흑뢰가 그만큼 강하다는 걸까.”

“그것도 있겠지만 위력에 걸맞은 뇌기 운용이 받쳐주지 않으면 못 하는 일이야.”

검붉은 안개 때문에 작전에 참여하는 헌터들은 최소 6레벨 이상.

레벨차는 그리 크지 않음에도 그들은 서진의 일검에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십 분 정도 지났을 때, 마침내 회색 섬이 서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섬을 감싸고 있는 핏빛의 안개에서 혈기가 전해진다.

‘짙은 혈기. 그래도 로드는 아니군.’

사진에서 짐작하긴 했지만 눈으로 봐야 확신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

섬 전체를 뒤덮은 혈기는 사령급 뱀파이어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저번에는 어처구니없는 수준으로 쉽게 죽였지만 이번엔 전력을 드러낸 만큼 그때와 같지는 않을 터.

‘누구일까.’

사령급 뱀파이어에서 케트론은 이미 죽였으니 나머지 셋 중에 하나겠지.

그걸 생각하는 것 또한 작은 즐거움이었다.

“서진 님.”

설하윤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바닷가까지 마중 나온 시귀들이 시뻘겋게 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

그때 강한 혈기를 감지한 서진은 신속하게 전류를 방출하며 뇌검을 압축했다.

쐐애액!

준비를 마친 찰나에 교도소 최상층에서 한순간에 날아온 붉은 단창.

콰아아앙!

혈기에 휩싸인 창과 서진의 뇌검이 격돌하며 배가 요동치고 파도마저 밀려난다.

카가각!!

회전하며 관통의 힘을 가중시키고 있는 창을 서진이 막아섰다.

피하는 건 간단하지만 그랬다간 배에 타고 있는 다른 헌터들은 최소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서진은 전격을 덧씌우며 창의 각도를 틀어 빗겨쳐냈다.

콰앙!

방향을 잃은 창이 바다에 떨어지며 거대한 물보라를 일으켰다.

창에 담긴 혈기가 낙하하는 순간까지 강하게 머물러 있었다는 의미.

서진은 물이 솟구친 바다를 힐긋 내려다보다가 창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들었다.

‘릴리에.’

방금 인사로 회색 섬에 자리 잡은 뱀파이어가 누군지 알게 되었다.

‘지구로 넘어와도 위력적인 창술은 여전하군. 재밌겠어.’

서진은 미약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 뒤에서 나온 흑룡대원이 입을 열었다.

“서진 도련님, 방금은 도대체..?”

자신도 모르게 숨죽이며 가만히 있던 헌터들은 찰나에 스쳐 지나간 공방을 인지하고 경악했다.

만약 서진 도련님이 없었으면 창을 막지 못해 작전 돌입 전부터 상당한 전력 손실이 생겼을 터.

심지어 창을 막기 전까지 공격이 온다는 것을 감지하지도 못했다.

“도련님과 1레벨 차이인데 왜 이렇게 격차가 심한 걸까.”

“7레벨에 흑뢰를 깨우치신 분이니 다른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아.”

“그래, 그런 말도 있잖아. 천재가 있다면 이해하지 말고 그냥 넘어가라고.”

사실 엘리트 헌터에 속하는 흑룡대원이 눈치채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한 번도 겪지 못한 혈기가 섞인 공격이었으며 투창한 존재가 9레벨급의 뱀파이어니까.

로드급에 준하는 무력을 보유했으면서 사령에 머물고 있는 특이한 뱀파이어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교도소를 장악한 놈이 벌써 우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게 문제야.”

“어떤 녀석이지? 한국에 있는 블랙 헌터 중에 저런 능력을 갖춘 놈이 있었나?”

서진은 이쯤에서 흑룡대에게 사실을 알려주기로 했다.

“뱀파이어의 혈기 때문에 그런 거니 너무 상심할 필요 없어.”

“예?”

“긴 설명 필요 없이 겪어보면 알게 될 거다. 마침 좋은 교보재가 있으니까.”

크르륵!

배가 육지와 가까워지자 시귀 한 마리가 도약해서 갑판에 뛰어들었다.

**

신은 과연 존재할까.

수천 년 전부터 인류가 품어왔던 신앙은 던전이 등장하고 나서부턴 크게 뒤틀렸다.

신과 같은 힘을 직접 행하는 헌터의 존재는 종교계에 거대한 변혁을 안겨다 주었다.

날이 갈수록 추락하는 위상과 돌아서는 불신자들.

그렇게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보였던 종교계였지만 시간이 계속 흐르자 놀랍게도 다시 세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인간이 최대로 올릴 수 있는 10레벨에 도달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

그런데 그런 10레벨의 헌터들마저도 신보다는 지극히 인간에 가까웠다.

신앙을 품은 자들이 이상으로 삼은 신은 어떤 헌터에게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성역의 세리아’처럼 실존 인물을 떠받드는 신흥 종교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기존의 종교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곳 교도소의 차가운 바닥에 팔다리가 묶인 채로 눈을 감고 있는 청년도 그런 신을 믿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백화연이 서진에게 보여줬던 사진 속의 인물이기도 했다.

민구현은 눈을 질끈 감으며 하나뿐인 가족을 떠올리고 있었다.

‘누나...’

교도소가 피로 뒤덮이고 나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오늘도 살아남을 수 있길 기도할 뿐.

꼴에 헌터라고 투쟁심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교도소를 지배하고 있는 존재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괴물이었다.

7레벨인 교도소장마저 삼분도 채 버티지 못하고 목이 날아갔으니까.

물론 처음엔 민구현도 동료들과 함께 맹렬히 맞서 싸웠다.

그러다 한쪽 팔이 날아가고 나서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이렇게 구속된 상태였던 것.

의식을 차린 직후엔 왜 살려두었는지 몰랐지만 곧바로 알게 되었다.

교도소를 지배하는 괴물은 상상 속의 뱀파이어였으며 흡혈을 위해 남겨두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녀석이 어떤 스킬을 쓴 건지, 불쾌하고 이상한 기운이 몸을 갉아먹는 탓에 마나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치렁.

민구현의 귓가에 쇠사슬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일어나.”

이어서 들리는 쇠를 긁는듯한 거친 목소리.

한때 수감자였던 그가 지금은 뱀파이어가 되어 괴물의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또 시작인가.’

저놈이 왔다는 것은 그 괴물이 흡혈을 원한다는 뜻이었다.

이곳엔 자신 말고도 다른 동료와 수감자가 구속된 채로 무력하게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실낱같은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으니.

몇 명을 골라 최상층으로 데리고 가면 한두 명이 먹히고 나머지는 다시 내려온다.

마치 뷔페에서 무엇을 먹을지 음식을 고르는 것처럼.

‘이번이 두 번째.’

저번에 올라갔을 땐 운 좋게 살아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먹힐지도 모른다.

그런 공포가 민구현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하아.’

사슬에 묶인 채 최상층에 올라가니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길게 늘어트린 녹색 머리칼에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와 핏빛 눈동자.

‘언제봐도 껍데기는 더럽게 예쁘지만.’

이제 와서 저런 외모에 홀리기엔 동료들이 흘린 피가 너무나 많았다.

그런데 괴물이 평소와 달리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은 한 명으로도 만족하지 않을까.

민구현은 사형수가 된 듯한 심정으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며 기대를 품었다.

“흐음, 역시 이 정도는 막아내는구나.”

인간 식량들을 줄 세워놓은 채 밖을 바라보고 있는 뱀파이어, 릴리에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정말 여기에 자리 잡길 잘한 것 같네. 생각지도 못한 대어가 낚일 줄이야.”

인상착의가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아득한 거리였지만 그런 건 릴리에에겐 전혀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릴리에가 넓게 퍼트린 기감에 걸린 익숙한 존재.

이전과 비교해 기세나 마나량의 차이가 있었지만 이계에서 늘 탐내던 피였기에 바로 알 수 있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릴리에는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앞에 서 있는 인간들을 훑었다.

“그의 피를 맛보기 전에 입을 더럽히는 것 같아서 내키진 않지만.”

순순히 목을 내줄리 없으니 되도록 힘을 축적해놓는 편이 나을 터.

“이번에는 너하고 너, 그리고 네가 좋겠어.”

릴리에의 손끝이 세 명을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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