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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03화 (103/141)

103화

시귀 한 마리가 갑판 위로 착지한 순간, 서진은 뒤로 물러나며 흑룡대에게 말했다.

“한번 죽여봐.”

교도소 내부에 있을 뱀파이어를 만나기 전에 시귀를 상대로 혈기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으니.

이런 조언은 다른 팀에게도 일단 전한 상태였다.

뱀파이어를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하면 쓸데없는 오해를 할지도 모르니 그냥 추측의 형태로 말해놓았지만.

작전에 참여한 팀장급들은 전부 머리가 영민한 편이니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서걱!

처음 접하는 시귀라는 괴물을 죽일 수 있는 판이 깔리자 앞에 있는 흑룡대원이 나서서 목을 베어냈다.

“어중간하게 찌르거나 베어봤자 계속 움직이니까, 처음부터 그렇게 머리를 날리면 될 거다.”

“예!”

흑룡대는 서진에게 경탄의 눈빛을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진 님, 그런데 저놈들 이미 생기가 없는 것 같은데 살아있는 게 아닌 겁니까?”

시귀라곤 하지만 겉모습은 사람이었기에 찜찜한 기분이 들 법도 했다.

“뱀파이어에게 당해서 시귀가 된 순간 이미 죽은 거야.”

서진이 먼저 섬에 발을 디디자 시귀들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들었다.

“그리고 개인마다 시귀의 힘도 천차만별이라서 생각 없이 무기를 휘두르는 건 금물이다.”

그나마 여긴 제2 각성자 교도소라서 검은 섬에 수용된 범죄자에 비해 무력 수준이 전반적으로 낮다.

제일 하급에 속하는 시귀인 만큼 강해봤자 한계가 뚜렷할 터.

하지만 눈먼 공격에 팀원의 팔이 날아갈 위험이 존재했으니 충고를 안 할 순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의해야 할 사항인 섬을 둘러싸고 있는 검붉은 안개.

혈류성(血流城)이라 칭해지는 이 영역은 혈기를 증폭시키며 그 외의 기운은 운용하는 것 자체를 방해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력으로 체내 보호가 가능한 6레벨 이상의 헌터만 데려왔지만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다.

검기를 일으키려 해도 평소보다 더 많은 마나를 써야 했으니.

촤아악!

서진의 팀은 계속 나오는 시귀를 해치우며 교도소를 향해 올라갔다.

일반 교도소가 그렇듯, 제2 각성자 교도소도 남녀를 구분 지어 가두어야 하기에 크게 두 건물로 나뉜다.

섬의 북쪽에 여자 교도소가 있고, 남쪽에 남자 교도소가 위치해 있다.

어느 쪽으로 갈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남쪽 교도소의 최상층에서 창이 날아왔으니까.

당연히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범죄자를 가두는 곳인 만큼 높은 장벽과 결계는 물론이고 함정이 있는 깊은 참호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모두가 6레벨 이상의 상급 헌터인 만큼 뚫고 나갈 순 있지만 시간이 지체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장애물을 돌파하는 데 소모되는 마나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으니.

거기다 높이 솟아있는 감시대에서 날려대는 포격도 상당히 방해되는 요인이었다.

콰아앙.

‘다른 팀들도 본격적으로 진입했나 보군.’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을 배경 삼아 달려 나간 끝에 교도소를 감싸고 있는 마지막 장벽에 다다랐다.

‘최후 방어선이라 그런지 제일 두껍네.’

마나 저항력이 있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데다 추가적인 보호 마법 처리까지.

‘어차피 정문이나 후문으로 돌아가도 굳게 문을 닫아놨을 테니.’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벽을 부수는 게 제일 빠르겠지.

이미 설하윤을 비롯해 흑룡대가 마나를 일으켰지만 최후의 방벽인 만큼 파괴하기엔 화력이 부족했다.

서진은 흑뢰를 뽑아내 벽을 향해 내질렀다.

흑룡검술 제3식 나선뇌격포(螺旋雷擊砲)

기존의 3식에서 회전을 더해 관통력을 올린 전격의 대포가 철옹성 같은 벽과 격돌했다.

콰아아앙!

마치 두꺼운 창과 같은 뇌격은 회전력을 유지한 채로 교도소 건물의 외벽까지 뚫어버렸다.

“가자.”

“아, 예!”

순간 멍하게 바라봤던 흑룡대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내부로 돌입했다.

서진이 제일 먼저 한 일은 기감을 넓혀 생존자 무리를 찾는 것.

하지만 1층만 해도 워낙 범위가 넓어 서진의 능력으로도 한 번에 건물 전체를 커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사전에 들었던 설명에 의하면 이 거대한 교도소는 총 7구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진의 팀이 있는 곳은 6구획.

정문에서 1구획이 시작되어 후문에서 7구획으로 끝나는 구조.

만약 생존자가 3구획 위쪽에 있다면 다른 팀에 구조를 맡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직 감지를 못했을 수도 있으니.’

교도소 외곽이라서 힘들다면 안으로 들어가 봐야겠지.

서진이 마음먹자마자 1층 현관에서 다시 시귀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번엔 뱀파이어가 된 수감자도 섞여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놈들을 상대하며 시간을 허비할 수 없는 노릇.

“흑룡부대장, 여기서 팀을 나눈다.”

“알겠습니다!”

서진은 흑룡대 일부를 남겨서 허대일에게 맡기고 내부로 들어갔다.

“죽어!”

그러자 대뜸 공격해오는 중급 뱀파이어.

서진은 파공음을 내는 채찍을 피하며 심장에 검을 꽂아주었다.

‘확실히 건물 안에는 뱀파이어의 비율이 높네.’

서진은 같잖은 혈기술을 보이는 뱀파이어를 베어 넘기며 계속 내달렸다.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발견한 순간, 서진이 펼치던 기감에 생명 반응이 잡혔다.

‘위치는 5구획의 3층.’

서진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더욱더 빨라지기 시작했다.

**

콰득.

“후우.”

앞에서 사람의 피가 빨려서 순식간에 미라가 되는 광경은 너무나 끔찍하면서 강렬했다.

눈을 감아도 그 장면이 자동으로 재생될 정도로.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점이 민구현을 자괴감에 빠지게 했다.

‘나름 신실하게 믿어왔다고 생각했는데.’

괴물이 지배하는 교도소에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으니.

‘아니면 괴물의 선택을 받지 않아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할까.’

하지만 민구현은 그렇게 위안 삼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너무 서글펐으며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마저 느껴졌으니까.

‘혹시 지금 나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건가.’

마나를 못 쓰게 됐더라도 저항을 계속하다가 죽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제는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악감이 되어 자신을 옭아매는 듯했다.

‘그래도 살아야지.’

누나를 혼자 남겨둘 순 없었으니.

그가 다시금 의지를 다지는 중에 땅에서 울렁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뭐지...?”

건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여기에 갇힌 이후로 오감이 둔화하여 감각을 곤두세워도 소용이 없었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이번엔 보다 강하게 진동이 울리고, 불안해진 민구현이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콰릉!

닫혀있던 문이 박살 나며 뱀파이어 하나가 벽에 처박혔다.

“이 새끼가!”

내장이 전부 파열될만한 타격이었음에도 멀쩡하게 눈을 번뜩이며 누군가에게 소리친다.

그때, 검은 섬광 한줄기가 뱀파이어에게 내리꽂혔다.

콰아아!

한순간에 타버린 시체는 허망하게 바닥에 쓰러졌다.

민구현은 마치 신의 심판과도 같은 아름답고 선명한 광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네가 민구현인가?”

일격에 뱀파이어를 죽여버린 구원자의 물음에 민구현은 대답과 함께 그를 올려다보았다.

“예...”

“운 좋게 살아있었군.”

서진은 작게 안도하며 설하윤을 불렀다.

“하윤 씨는 남은 흑룡대하고 같이 여길 지키고 있어요. 지금 바깥에 남겨두고 온 흑룡대가 합류하고 나선 상황 보고 움직여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서진 님은...?”

“저는 놈이 있는 곳으로 갈 겁니다.”

마나를 흩트리는 혈류성의 효과는 지금도 누적되는 중이다.

다른 뱀파이어와 시귀를 다 함께 말끔히 정리하면서 올라갈 만한 시간적 여유는 없다.

“합류하면 따라가겠습니다.”

“네, 무리하진 마세요.”

서진은 설하윤에게 생존자를 맡기고 위층으로 향했다.

**

“크하하하! 이게 얼마 만인가!”

최상층으로 올라가던 서진을 누군가 가로막으며 광소를 터트렸다.

그리고 서진도 알고 있던 사람이었다.

“정말 오랜만이긴 하군.”

예전 던전기획실 1팀장 최준열.

서진에게 던전 등급을 속였다가 걸려서 결국 회색 섬으로 끌려갔던 인물.

“용케도 뱀파이어가 됐군.”

마나는 있지만 일반인에 가까운 최준열은 죽거나 시귀가 되었어야 정상인데.

서진의 말이 흡족스러운지 그는 웃음을 흘렸다.

“크흐. 여기서 널 만났으니 인간을 버려서라도 살아남은 보람이 있지.”

이전과 비교해서 무력도 비교도 안 되게 강해졌다.

드문 확률로 혈기가 잘 맞는 경우가 있는데 최준열이 거기에 해당되는 듯했다.

“이건 운명이라 할 수 있어. 나를 회색 섬에 넣은 놈을 내 손으로 여기서 죽일 수 있다니.”

“뱀파이어가 되더니 성격도 좀 변한 것 같군.”

서진은 적당히 감상을 마치고 뇌기를 끌어냈다.

“간만에 만났는데 미안하지만 내가 바빠서 오래 놀아줄 시간이 없어.”

“건방진! 아직도 내가 너에게 머리를 잡히던 그때의 최준열인줄 아는 거냐. 그 오만을 뜯어고쳐 주지!! 가서 뜯어버려!”

최준열은 뒤에 거느리고 있던 스무 마리의 시귀를 서진에게 보냈다.

서진이 검강을 날려 전부 반 토막을 내버리고 발에 마나를 집중해서 가속했다.

콰앙!

순식간에 최준열의 지근거리에 도달한 서진은 낙뢰의 힘을 담아 내리쳤다.

흑룡검술 제6식 연폭뢰.

“하압!”

최준열은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팔을 들어 벼락을 막아냈다.

‘혈기를 이용한 강체술인가.’

흑뢰에 직격당했음에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한 최준열은 자신감에 찬 비웃음을 보냈다.

“고작 이런 얇은 번개로 뭘 하겠다는 거냐.”

“걱정하지 마. 아직 안 끝났어.”

콰르릉!

방금 전 번개는 신호탄에 불과했을 뿐 , 말이 끝남과 동시에 칠흑의 전격이 연쇄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세 번까진 여유롭게 버티던 최준열은 횟수가 다섯이 넘어가자 안색을 바꾸며 발을 움직였다.

“어딜 가려고.”

서진의 연폭뢰는 끈질기게 최준열을 따라붙으며 전류를 쏟아부었다.

이전의 자색 전류라면 어떻게든 버텼겠지만 흑뢰는 최상급의 전격.

급조된 상급 뱀파이어가 견딜 수 있는 위력이 아니었다.

“끄어억...”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마비된 최준열의 육체.

“이번엔 확실하게 끝내주도록 하지.”

서진의 검이 반월을 그리자 최준열의 목이 아래로 떨어졌다.

파스스.

그의 시체는 빠르게 사그라들며 재가 되어 사라졌다.

**

“어서 와. 내가 준 선물은 만족스러웠는지 모르겠네.”

릴리에는 드디어 이곳까지 온 서진을 보며 앉은 채로 작게 손을 흔들며 맞이했다.

“최준열 말인가.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서진이 혼자 올라가는 길목에 마침 최준열이 막아서고 있는 것이 부자연스럽긴 했다.

“그래서 그 녀석을 뱀파이어로 만든 거냐.”

“아핫, 그건 아니야. 혈기가 잘 맞을 것 같아서 만들었을 뿐.”

릴리에는 서진과의 문답이 즐거운 듯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네가 여기 다가오기 전까지 난 전혀 몰랐으니까. 걔가 무복을 보고 알아채고 얘기하길래 재밌겠다 싶어서 그림 한번 만들어봤지. 어때? 괜찮았어?”

“그저 그랬어.”

“너무하네. 너만 올려 보내려고 다른 팀에는 공들여 키운 아이들까지 보내서 막고 있는데.”

“하.”

서진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하며 릴리에를 직시했다.

“그렇게 내 피가 탐나는 건가.”

“응. 그러니까.”

릴리에는 짙은 혈기를 폭발시키며 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이번엔 반드시 권속으로 삼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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