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메마른 지평선이 펼쳐진 황무지.
한 대의 픽업트럭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 나가고 있었다.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자는 앞을 보면서 서진에게 말했다.
서진이 대륙을 넘어 아프리카에 온 목적은 두 가지.
실버 울프를 찾고 전예선에게 인챈트를 의뢰하는 것.
둘 중에 서진은 전예선 먼저 찾기로 결정하고 엘바야드로 향하고 있는 참이었다.
실버 울프는 산맥 어딘가에 있다는 불확실한 정보뿐이지만 전예선의 위치는 도시까지 특정된 상황.
혹여나 그녀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 전에 찾아가는 편이 나을 테니까.
“지루하시겠지만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가이드의 말대로 주변은 허허벌판이라 아무것도 볼 게 없었다.
원래는 조금 떨어진 곳에 공항이 있어 차로 이렇게 오래 이동할 필요가 없었지만, 현재는 던전 브레이크로 인해 폐쇄된 탓이었다.
국토는 넓지만 미개발된 채로 방치된 땅이 많고 황량한 평야에서 계속 나타나는 던전들을 전부 커버하기엔 국력이 부족한 상황.
그러니 도로 교통이 더 발달하기 힘들며 중심지구와 떨어진 도시들은 몬스터에게 시달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만약 해당 던전의 권한을 가져가는 대가로 공략을 해주는 타국의 헌터들이 없었더라면 진작에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도시들이 많았다.
서진이 향하는 엘바야드가 그런 도시 중 하나.
“그런 길드들 덕분에 지켜지고 있긴 한데 마냥 또 안전하진 않습니다. 저도 같은 헌터지만 이게 미묘하더라구요.”
가이드의 말처럼 던전 공략도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주로 선호되는 지역들이 존재했다.
그리고 사막의 던전은 기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선 공략 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아슬아슬하게 선을 타며 치안이 유지되고 있었다.
어디에도 던전이 출현하는 현대 사회에서 헌터 약소국이란 그런 의미였다.
힘이 없으면 존속조차 위태로울 정도로 불안정한 환경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
심지어 헌터의 육성은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 의존도만 높아지게 된다.
“누구도 시원하게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는 문제이니 어쩔 수 없지만요.”
가이드의 말을 적당히 담아 듣던 서진은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몸을 살짝 일으키며 말했다.
“이 근방에서 헌터끼리도 종종 마찰이 일어납니까?”
“예? 아무래도 아예 없진 않죠.”
그리고 가이드는 서진이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몇 분 뒤에 알게 되었다.
무기를 든 헌터들이 뒤얽혀 피 튀기는 전투를 벌이고 있었기에.
하필 엘바야드로 향하는 길목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벌어진 터라 그대로 운전해 나가기 애매했다.
가이드는 서진을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길은 포기하고 돌아가는 편이 안전하겠지만 그만큼 시간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
“대략 1시간에서 2시간 사이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냥 가죠.”
서진은 계속되는 비슷한 풍경을 보며 차에 계속 앉아있었기에 너무 질린 참이었다.
“지나가는 차를 쓸데없이 공격하진 않을 테니까.”
가이드는 그런 서진의 발언이 너무나도 불안하게 들렸지만 고용주의 결정에 토를 달 순 없었기에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쟤네들은 뭐 때문에 저러는 겁니까.”
“양측의 문양이나 복장을 보니 막고 있는 쪽은 엘바야드의 자치대고 다른 쪽은 샴스 길드인 것 같습니다. 최근 이쪽 지역에서 세를 불리고 있는 길드죠. 하지만 샴스 길드에서 일방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이유는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가이드는 대답하면서도 불안한지 차의 속력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콰아앙!
차량 앞에 거대한 바위가 떨어지며 앞길을 가로막았다.
급브레이크를 밟은 가이드는 핸들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
“샴스 길드의 심기를 건드린 듯합니다.”
“심기?”
“예, 아무래도 옆을 지나가서 그런 게 아닐지...”
“하.”
서진은 실소를 흘리며 차량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기겁하며 만류하는 가이드.
“위험합니다! 저놈들 굉장히 거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용주가 어느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 외엔 전혀 모르는 가이드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반면 서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하차했다.
“마침 잘 됐어.”
전예선이 저 도시에서 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면 아마 자치대와 연관이 있을 터.
도와준다면 전예선 찾기도 쉬울 테고 부탁하는 말을 꺼내는 것도 비교적 자연스럽겠지.
“말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이드는 뒷좌석에 앉아있던 고용주의 수행원에게 말을 걸었다.
수많은 사람을 봐온 그조차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끌어당기게 만들 정도의 미인.
자꾸 쳐다보면 민폐였기에 일부러 고개를 돌렸지만 이번만큼은 봐도 괜찮으리라.
하지만 그녀도 똑같이 차에서 내리며 담담하게 한마디 내뱉을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고개를 작게 흔드는 모습마저 아름다웠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 억지로 고개를 틀어 서진을 바라봤다.
“어?”
고용주는 어느새 저들이 싸우고 있는 전장에 도달해있었다.
**
“허, 이놈 봐라.”
샴스 길드의 2번 대장은 다가오는 서진을 보며 코웃음 쳤다.
전투 중에 차 한 대가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이 건방져 보여 멈춰 세웠더니 직접 찾아올 줄이야.
“보아하니 사죄하러 오는 것 같진 않고, 꼴에 자존심은 있다는 거냐?”
하지만 실없이 웃던 그의 표정은 서진이 검을 빼 드는 순간, 석상처럼 굳었다.
콰아앙!
단 일격에 부하들이 다섯이나 나가떨어졌으니.
심지어 그렇게 힘을 들인 기색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서진의 두 번째 검격.
이번엔 여섯 명의 부하가 추풍낙엽처럼 휩쓸려갔다.
오죽하면 자치대마저 당황해하며 서진의 무위를 그저 지켜보고 있었다.
“조금 차이가 있네.”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킨 서진은 덤벼드는 헌터들의 움직임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같은 마나를 사용하더라도 대륙에 따라 사용법과 무기술의 차이가 나는 점이 재밌었기에.
다만 그들의 무력은 흥미 이상의 감정을 서진에게 심어주진 못했다.
투기를 흡수해도 스텟이 1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으니.
“감히 샴스 길드를!”
뒤에 있던 2번 대장이 노호를 터트리며 달려들었지만 서진은 대수롭지 않게 받아쳤다.
카앙!
일격에 그의 무기가 날아가고 의식이 끊긴 채로 지면에 쓰러졌다.
불과 얼마 전에 9레벨 뱀파이어를 상대했던 서진에겐 너무나 약한 헌터였다.
쿵.
“....”
그렇게 샴스 길드 헌터들이 전부 정리되자 엘바야드의 자치대는 멍하니 서진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만 해도 선혈이 낭자할 정도로 치열하게 부딪히던 대지에는 거친 바람 소리만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벌써 망가졌네.”
서진은 그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들린 검을 보고 있었다.
항상 쓰던 천검은 내구도가 전부 닳아 이제 못 쓰게 돼버렸다.
그래서 임시로 다른 검을 들고 왔는데 한 번의 전투에서 방출되는 흑뢰조차 버티지 못하고 금이 간 상태.
뇌정석으로 만들었던 천검이었으니 그나마 버텼다는 것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최근에 얻은 영웅급의 귀혼검도 내성이 없으니 흑뢰를 담으면 빠르게 망가지겠지.
귀혼검에서 효과만 꺼내서 인챈트하겠다는 서진의 판단이 옳았던 것.
“나름 희귀급 검인데도 이러니.”
어쩔 수 없이 당분간은 흑뢰 사용을 자제하는 수밖에.
필요할 때는 쓰고 버리는 식으로 해야겠지만 말이다.
작게 혀를 차며 가방에 검을 넣는 서진에게 자치대의 헌터가 다가왔다.
“저기, 당신은 누구십니까?”
자신을 자치대의 경비대장이라 소개한 남자는 경외감과 약간의 두려움이 담긴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자치대가 고전하던 샴스 길드의 헌터들을 정체 불명의 인물이 일거에 쓸어버렸으니.
서진은 자기소개를 하는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일단 저놈들은 죽이진 않았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하세요.”
낯선 타지에 온 만큼 어떤 부류인지 모르니 일단 목숨은 온전히 부지시켜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서진은 전예선의 얼굴이 담긴 사진을 꺼냈다.
“혹시 이 사람 알고 있습니까?”
“엇.”
거짓말은 못 하는 성격인지 경비대장 라피크는 눈에 띄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알고 있군요. 어딨습니까? 기왕이면 안내를 받고 싶은데.”
그러자 경비대장의 눈매가 날카로워지고 경계심 섞인 어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무슨 용건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위협을 한다기보단 고슴도치가 보호를 위해 가시를 세우는 모양새.
서진의 짐작대로 전예선이 인챈터로서 이들을 도와주고 있으니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겠지.
“의뢰하고 싶은 건이 있어서.”
“으음.”
경비대장은 곤혹스러운 갈등에 빠졌다.
은인께 이 자를 데려가자니 불안하고 그렇다고 거절하기엔 도저히 대항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으니까.
서진은 그런 심리를 파악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제가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면 애초에 이런 대화조차 나누지 않았을 겁니다. 다른 생각은 전혀 없으니 안심하시죠.”
“...후우, 알겠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럴듯한 말에 경비대장은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
자치대의 안내를 받은 덕분에 서진과 설하윤은 쉽게 전예선을 만날 수 있었다.
마른 몸집에 구릿빛 피부, 왼쪽 뺨에 남아있는 자상의 흔적까지.
사전에 홍세인에게 들었던 인물 특징과 일치했다.
거기다 지천명을 넘어선 그녀의 심유한 눈빛은 서진에게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안녕하십니까. 흑룡검가의 한서진입니다.”
“한국인은 오랜만이구나. 그래, 자치대 애들을 구해줬다고 하니 얘기는 들어보마.”
그에 서진은 만들고자 하는 검을 설명하며 무엇을 그녀에게 부탁하려 하는지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내가 한국까지 가야 한다는 말이구나.”
끝까지 얘기를 들은 전예선은 가장 걸리는 점을 짚었다.
아이템 효과의 등급이 높을수록 인챈트 성공 확률은 낮아진다.
그리고 제작이 완성되어 시스템 창이 확정된 이후에는 더욱더 부여 난이도가 올라간다.
묵련철의 까다로운 특성과 영웅급 효과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제작 중간에 인챈트를 해야 된다.
그래야 성공 확률이 제일 높을 테니.
그러기 위해선 전예선이 흑룡검가의 공방에 가야 했다.
공방 설비를 엘바야드로 옮겨서 제작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받아들일 수 없는 부탁이다. 난 여기서 아직 할 일이 남아있어.”
전예선은 의뢰 보상을 듣기도 전에 단호히 거절했다.
“그렇군요.”
서진은 선선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어느 정도 예상을 했던 부분이었기에.
엘바야드가 처한 상황과 전예선이 인챈터로서 기여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된 이상, 대화를 끌어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럼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다시 뵙겠습니다.”
전예선은 너무나 쉽게 물러나는 서진을 보며 도리어 당황스러웠다.
여태까지 자신을 영입하기 위해 수많은 단체가 다녀갔지만 저렇게 미련 없이 가는 놈은 처음이었다.
“이상한 녀석.”
그러고 보니 흑룡검가의 공방에 그 영감이 있지 않았던가.
전예선의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찰나, 밖에 서 있던 경비대장이 들어왔다.
“선생님. 저 사람들 가던데 대화 끝나신 겁니까?”
“그래.”
“혹시 그거 눈치채고 온 건 아니었습니까?”
낮게 깔린 경비대장의 목소리에 전예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다른 얘기였어.”
“휴, 다행입니다.”
“그보다 무기 봐줄 테니까 가져오기나 해.”
“예.”
**
한편, 엘바야드를 떠나려는 서진은 잠시 몸을 돌려 어느 도시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진 님?”
설하윤은 서진에게 한 걸음 다가서며 의아한 듯 말했다.
“혹시 승낙을 받지 못해 아쉬우신 겁니까?”
“음, 그렇긴 한데. 그거와 별개로 이 도시에 생각지도 못한 물건이 있는 것 같아서요. 그게 신기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