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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09화 (109/141)

109화

안개의 범위만큼 확장된 흑뢰가 공간을 점유하며 실버울프를 덮쳤다.

콰가가가!

“크르륵!!”

차원을 달리하는 육체를 보유한 실버울프라 할지라도 안개를 통해 전달되는 흑뢰를 맞고 멀쩡할 리가 없었다.

피부를 뚫고 신경계까지 파고 들어가는 흑색 전류를 감당할 수 있는 생명체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으니.

서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전격에 휩싸인 실버울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간 서진이 계속 후퇴를 거듭했던 이유는 안개에 실버울프를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실버울프가 아무리 몸으로 싸우는 타입이라 해도 대뜸 마법을 써서 안개를 만들어내면 벗어나려 할 터.

그러기 위해선 눈치채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실버울프를 유인할 필요가 있었다.

우선 이 장소를 특정한 서진은 전투 중에 마나를 흘리며 안개를 만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서진이 마법을 준비하고 있다는 걸 실버울프가 알아챈다면 절대 통하지 않았겠지.

서진에게 이번 전투는 약간의 실험성을 담고 있었다.

비록 지구에서 약해진 상태의 실버울프라 해도 명색이 성주급 몬스터.

그런 존재에게 지금 실력의 마법이 어디까지 통할지 궁금했던 것이다.

결과는 만족스러운 성공.

아직 마법 레벨이 낮아 위력이 강한 기술은 쓰지 못하지만 운용력은 충분히 통한다는 걸 입증할 수 있었다.

거기다 서진의 흑뢰를 견딜 무기도 없는 상황이니 이런 전술로 승부를 볼 수밖에.

‘그렇긴 해도, 전대의 실버울프에 비해 많이 약한 것 같은데.’

서진이 로드도 아닌 사령급 뱀파이어와 격전을 벌였다는 걸 감안하면 성주급이라기엔 무력이 강하지 않았다.

릴리에와 실버울프가 붙었다면 릴리에가 이길 거라 예상될 정도.

극랑은 조금 위협적이었지만 단지 그뿐.

여차하면 펠시어의 염주로 몸을 내뺄 계획도 세우고 있었지만 전혀 필요가 없었으니.

‘제압하고 나서 하나씩 물어보면 알게 되겠지.’

서진이 찰나의 시간에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실버울프는 땅을 박차며 크게 도약했다.

콰앙!

실버울프의 육체라면 어떻게든 흑뢰를 견디고 안개에서 벗어날 만한 힘을 가졌으니.

서진은 어렵게 끌어들인 안갯속에서 실버울프를 놓쳤지만 표정 변화 없이 차분함을 유지했다.

방금의 뇌격 한 번으로도 충분했기에.

“크르륵?”

안개에서 도망친 실버울프는 다시 마나를 일으키려다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였다.

서진은 그에게 천천히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당분간은 마나 못 쓸 거야.”

마나 간섭이란 용체화의 묘리가 담긴 뇌격을 전신에 맞았으니 멀쩡할 리가 없었다.

릴리에는 혈기를 사용했기에 통하지 않았지만 실버울프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사실 당분간이라 할 만큼 긴 시간은 아니다.

다만 찰나에 승부가 갈리는 전투에서 서진의 말은 그 자체로 압박감을 선사했다.

‘너무 시간을 끌면 풀릴 테니까.’

서진은 뇌영환보로 실버울프에게 접근, 이번엔 분신을 지척에서 터트렸다.

파지지직!

푸욱!

서진은 실버울프의 복부 깊숙이 검을 박아넣으며 바닥에 넘어트렸다.

“이 정도면 승부는 나지 않았어? 아직 부족한가?”

“크르, 인정하지. 내가 졌다.”

“그럼 눈앞에 나타난 시스템 창에서 승낙을 눌러.”

“무슨...응?”

서진이 8레벨이 되면서 새롭게 개방한 투신전의 기능.

기존의 가신은 버프만 주는 장식 수준이었다면 이번에 열린 기능인 ‘종속 가신’에게는 보다 강압적인 제약을 행사할 수 있다.

공격 불가 대상의 범위가 서진의 동료까지 확장되며 어떤 명령이라도 무조건 받들게 된다.

사실상 노예나 마찬가지.

서진도 이계에서 넘어온 실버울프에게 통할 거라 확신하진 않았다.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테스트해봤는데 이게 웬걸, 성주급이라 그런지 가신 추가 대상 목록에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서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투신전 창에서 실버울프를 터치했던 것.

“내가 이걸 왜...쿠웩!”

실버울프에게 나타난 ‘종속 가신’ 제안 알림창에선 자세한 설명은 적혀있지는 않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누르면 좋지 않다는 걸.

“싫으면 죽던가.”

서진이 망설임 없이 검을 들자 실버울프는 급하게 외쳤다.

“잠시만!”

[실버울프가 ‘종속 가신’이 되었습니다]

“좋은 결정이야.”

서진은 실버울프를 겨눴던 검을 내렸다.

“이제 하나씩 질문을 던질 테니 넌 열심히 대답하면 돼.”

“썩을.”

실버울프는 자신의 처지가 처량했는지 얼굴을 구겼다.

서진은 슬퍼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성주급인 네가 어떻게 지구로 건너온 거지?”

“나도 오고 싶지는 않았어. 그런데 갑자기 발밑에 큰 균열이 생기더니 거기에 떨어지고 나니까 다른 세상이더군.”

“우연이라는 말인가.”

“그건 아닐 거야. 아마.”

“무슨 말이지?”

“여기에 넘어온 직후에 인간 둘이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나를 보고 있었지.”

실버울프는 기억을 떠올리는 듯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두 놈 중에 한 명이 날 보고 성공적인 소환이라느니 지껄였으니까.”

의도적으로 불러냈다는 건가.

“그래서, 어떻게 됐지?”

실버울프 성격상 얌전히 있진 않았을 터이니.

“....”

그런데 갑자기 입을 다무는 실버울프.

서진은 스산하게 내려다보며 새로운 검을 빼 들었다.

“말해.”

“젠장, 싸웠는데 내가 졌어! 됐냐!”

차원 이동 직후라서 제일 약해진 순간이라지만 이전의 실버울프를 기억하던 서진 입장에선 의아했다.

“자신이 실버울프치곤 약하다는 거 자각하고 있나?”

“그래, 나도 알아! 아니 그런데 실버울프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거야?”

정곡을 찌르는 말에 발끈하던 그는 서진이 한 말의 뉘앙스가 묘하게 느껴졌다.

“대충. 네가 자세히 알 건 없고, 질문에 대답해. 약해진 이유가 있나?”

“칫, 넌 모르겠지만 투신이란 놈한테 예전 실버울프하고 그에 근접할 정도로 강했던 놈들까지 죽었거든. 덕분에 원래는 난 될 일도 없었는데.”

그랬었나.

서진도 막바지엔 정신없이 몰리며 싸우다 보니 누굴 얼마나 죽였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쪽으로 오고 나면 얼마나 쇠약해지는지 알아? 완전 힘이 쭉 빠지더군.”

실버울프도 나름대로 억울한지 몸짓을 섞어가며 울분을 토해냈다.

서진은 항변을 깔끔하게 뭉개며 다른 질문을 꺼냈다.

“그럼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두 명에 대해 아는 걸 전부 말해.”

“제대로 된 얘기도 안 해서 별로 없어. 뭐 그래도 떠오르는 건...”

실버울프는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하나씩 털어놓기 시작했다.

당시의 상황과 두 명의 인상착의 그리고 흘려 지나간 대화 내용까지.

“놈들이 나를 쓰러트리고 이런 말을 했어. 지금도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들은 그대로 얘기하자면.”

실버울프는 당시 패배했던 불쾌한 기억과 함께 들었던 문장을 말했다.

“마령전을 위한 첫 번째 위업-이라고 하더군.”

순간 서진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마령전.’

그 단어를 여기서 다시 들을 줄이야.

흑마법사 게일러가 소속되어 활동하는 집단의 이름.

한동안 흔적도 발견되지 않아서 잠잠한 줄 알았더니 이런 짓을 벌이고 다녔었나.

하지만 실버울프가 들은 말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놈들이 가면서 ‘다음 마력석’ 어쩌고 하던데 거리가 멀어서 더 듣진 못했다.”

놈들의 목적에 마력석도 포함되어 있는 것인가.

아직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다만 추측이 맞다고 가정할 때, 엘바야드에 있는 마력석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사막 한복판에 위치한 도시이기도 하고, 전예선이 작정하고 숨겨놨으니 쉽게 들키진 않겠지만.’

괜히 엘바야드가 서진의 눈에 밟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또 하나 이상한 건, 놈들이 왜 너를 그냥 풀어둔 거지?”

“몰라. 나도 죽일 줄 알았더니 그냥 가던데.”

그 또한 어떤 목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내 서진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무수한 추측을 털어냈다.

단편적인 정보로 상상을 이어가봤자 정답을 특정할 순 없으니까.

“서진 님.”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설하윤은 실버울프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어찌하실 생각이십니까.”

“데려가야죠.”

“뭐!”

서진의 말에 펄쩍 뛸 정도로 놀라는 실버울프.

“내가 왜...!”

“어차피 넌 이제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 포기해.”

“아아악!”

발광하는 낌새를 보이는 실버울프에게 서진은 짧게 명령했다.

“엎드려.”

“크르륵!”

그러자 실버울프는 이빨을 드러내면서도 순순히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웠다.

“효과가 확실하군.”

만족스러워하는 서진에게 설하윤은 한 가지 걱정을 내비쳤다.

“저대로 데리고 다니시면 꽤 이목을 많이 끌게 될 겁니다.”

“아, 그것도 괜찮아요.”

실버울프는 일반적인 늑대로도 변할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니, 너 이름이 뭐지.”

실버울프는 위치에 따른 칭호일 뿐, 원래 가진 이름이 있을 터.

“그걸 이제 물어보냐! 베리크다!”

“그렇군, 베리크.”

“왜.”

“늑대로 변신해. 지금 상태로 데리고 갈 수는 없어.”

“썩을!”

츠으으.

베리크는 투덜대면서도 얌전하게 늑대가 되었다.

그 모습을 설하윤이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갑시다.”

서진은 설하윤과 함께 새로 얻은 늑대 한 마리를 끌고 산에서 내려갔다.

**

엘바야드로 들어서는 길목.

등에 발꿈치까지 내려오는 대검을 매고 있는 장신의 여자가 숨을 크게 들이켜고 있었다.

“하아, 마력석에서 나오는 마나가 여기까지 느껴지는 것 같아.”

그 말에 옆에 서 있는 작달막한 체구의 남자가 높낮이 없는 어조로 반박을 넣었다.

“거짓말, 전예선의 인챈트 때문에 여기서 마나를 느낄 수 있는 헌터는 없어.”

“그냥 그렇다는 거지. 그걸 꼭 따지네.”

“팩트 체크는 중요하니까.”

“그나저나 원래 샴스인가 뭔가로 대신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이 더운 곳까지.”

여자는 물로 목을 축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갑자기 주요 전력의 절반을 상실했어. 더 이상 시간 끌지 말고 직접 나서기로 결정.”

“뭐 하다가 잃은 거래?”

“제삼자가 개입된 걸로 확인됐어. 자세한 사정은 추가 조사 중.”

“쯧, 그럼 빨리하고 해치우자.”

우우웅!

8레벨급의 강맹한 마나가 대검에 깃들며 공명음을 토해냈다.

그러자 남자는 작게 눈매를 좁혔다.

“여기서부터 힘을 보이는 건 비효율적이야.”

“알아, 그냥 기분 한번 내본 거야. 마력석 위치가 어디라고 했지? 안내 시작해!”

“하아.”

“아니 안내할 필요 없겠네. 여기 알람이 성능이 괜찮나 봐?”

방금 그녀가 드러낸 마나를 감지한 자치대가 이쪽으로 몰려오고 있었으니.

“잘됐어. 내가 쟤들 싹 죽여버릴 테니까 릴튼, 너는 마력석 챙겨.”

“원래 그러려고 했어. 누구 때문에 사전 예상과 달리 전투 지역이 달라지긴 했지만.”

릴튼은 은신, 투명화 마법을 걸고 텔레포트를 통해 바로 엘바야드의 시가지 안으로 진입했다.

‘저 건물.’

릴튼은 시야에 잡힌 마력석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우선 내부에 있는 인원과 마력석이 숨겨진 정확한 위치를 확인.

외곽이라면 불가능하지만 이렇게 가까이 접근한 상태라면 파악할 수 있다.

콰아앙!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폭음이 한창 전투 중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덕분에 경계는 상당히 비어있는 상황.

릴튼은 마력석이 감지된 지하로 공간 이동했다.

팟!

빛이 들지 않는 지하인데도 이곳은 마력석에서 나오는 광채로 가득 채워져 눈이 부실 정도였다.

‘이것이...’

거대한 마력석을 마주한 릴튼이 감탄하는 순간, 뒤에서 기척과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나 했는데 정답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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