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10화 (110/141)

110화

아틀라스산맥에서 내려온 뒤, 서진은 엘바야드로 방향을 틀었다.

마령전에 대한 정보를 들은 이상 전예선에게 언질을 줄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에.

그녀가 협박이라고 여긴다면 어쩔 수 없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을 묻어두고 찝찝하게 귀국하는 것보단 훨씬 나았다.

만약 그래서 서진의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니.

하지만 마령전 일원과 만날 거란 기대까진 안 했는데 그 점은 의외의 수확이었다.

“어떻게...?”

서진을 마주한 릴튼은 눈매를 좁히며 의문을 표했다.

그는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사전에 기척을 확인했을 때 아무런 생명체도 감지되지 않았으니까.

전예선의 인챈트 능력으로도 릴튼의 탐지를 속이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녀가 뛰어난 인챈터이긴 해도 결국 물건에 효과를 부여하여 발현하는 방식.

술사가 직접 마법을 시전해서 확인하는 위력에는 못 친다.

물론 같은 8레벨급이니 해당하는 일이지만.

심지어 상대가 입을 열기 전까지 아무런 수상함도 눈치채지 못했다니.

“아, 그건.”

서진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들어 올렸다.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가 마력석에서 나오는 빛을 받아 살짝 반짝였다.

“아티팩트 덕분에.”

서진이 저번에 한치성에게 넘겨받은 던전을 공략하면서 얻었던 ‘일시 소멸’이라는 반지.

일회용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의 성능이었다.

“패착을 인정.”

릴튼을 상황을 빠르게 수용하며 마나를 일으켰다.

조용히 빼가는 것은 물 건너갔으니 눈앞의 존재를 배제해서라도 목적을 완수해야 한다.

“당신, 흑룡검가의 한서진. 맞지?”

“바로 알아보네.”

“유명인이니까.”

“그쪽은 마령전 소속이고?”

“그게 뭐지?”

오리발을 내놓는 대답에 서진은 낮은 웃음을 흘렸다.

고개를 갸웃하며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을 보니 정말 잘못짚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

“배우 해도 되겠어. 표정 연기는 정말 훌륭하군. 그런데 애완견 관리를 잘했어야지.”

그러자 릴튼은 잠깐 얼굴 굳히다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군. 목적을 변경해야겠어. 마력석 회수만이 아니라 당신까지 사살하는 것으로.”

사실 이러면 흑룡검가의 후계자가 마령전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정보까지 넘겨준 셈이다.

그럼에도 서진이 굳이 마령전 얘기를 꺼낸 이유는 있었다.

베일에 감싸인 조직일수록 이런 식의 자극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서진이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다른 빈틈이 나올 확률이 높기에.

거기다 상대가 이미 서진을 알아본 이상 추후 조직 내부에서 언급이 될 터.

그렇다면 앞에 있는 녀석이 마령전 멤버라는 확신을 얻는 편이 차라리 낫다.

“여기에서 싸우기엔 협소.”

릴튼은 짧게 중얼거리며 마법을 발동했다.

“어스 퀘이크.”

쿠구구구!

건물 전체가 흔들리더니 천장과 바닥의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릴튼은 혼란 속에서 마력석을 힐끔거렸지만 서진이 버티고 있어서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역시 거슬려.”

서진과 릴튼은 마력석을 사이에 두고 신경전을 벌이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빠져나왔다.

지진을 좁은 범위에 한정해서 발동했기에 주변까지 무너진 상태는 아니었다.

릴튼은 지면에 착지한 서진을 노려보며 추가 마법을 바로 발동했다.

“디그, 어스 스파이럴.”

먼저 낮은 단계의 마법으로 빠르게 서진의 발밑을 무너트리고, 지탱할 땅을 상실한 서진에게 수많은 나선형의 창들이 무겁게 낙하한다.

이런 연계 공격이 특히 검사에게 잘 먹힌다는 걸 릴튼은 여러 차례 경험으로 입증했다.

지진 후 착지한 순간에 생기는 방심을 이용한 전술.

상대도 만만찮은 검사일 테니 죽이진 못하겠지만 팔다리에 중상 하나쯤은 입힐 수 있을 터.

‘한서진 중심으로 직경 10미터에 깊이는 30미터.’

전조도 없이 한순간에 발동한 마법.

‘대응하기 힘들 거야.’

촤아아악!

하지만 땅속에서 올라오는 청명한 소리가 릴튼의 기대를 배신했다.

‘뭐지? 마치 물이 치솟는 듯한.’

이윽고 깊게 파였던 구덩이에서 서진이 나타난 순간, 릴튼의 눈동자는 크게 확장되었다.

시원한 물방울을 방사하는 굵직한 물줄기 위에 서진이 올라타 있었기에.

“마법?”

릴튼은 쉬이 납득하기 힘든 광경에 얼이 빠졌다.

검사라고 생각했던 한서진이 저렇게 거대한 물을 끌어내다니.

‘그러고 보니.’

마탑에서 마법을 배웠다는 얘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저 정도 양의 물을 움직이려면 최소 6레벨은 되어야 한다.

그사이에 마법 레벨을 6까지 올리는 건 불가능할 터.

‘그렇다면.’

릴튼의 생각이 다른 가능성으로 뻗으려고 할 때 서진이 입을 열었다.

“덕분에 지하수 잘 썼어.”

릴튼이 깊게 파준 덕분에 아직 4레벨에 머물고 있던 서진이 편하게 지하수를 끌어올 수 있었던 것.

“하.”

전혀 예상치 못했던 릴튼은 실소하며 생각을 고쳤다.

지하수를 썼다곤 하지만 그마저도 최소한의 마법 역량이 받쳐주지 못하면 불가능한 일.

한서진의 마법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는 걸 의미했다.

물론 서진이 어떻게든 지상 위로 올라올 거라는 전체적인 그림은 들어맞았고, 릴튼은 그에 대한 마법도 준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서진의 마법이 더 빨랐다.

분수처럼 솟구친 물줄기가 방향을 아래로 꺾어서 두 갈래로 나뉘며 릴튼을 향해 쏘아졌다.

‘저것만 신경 쓰면 안 돼.’

가장 중요한 것은 검사인 한서진의 움직임.

릴튼은 물줄기가 오는 양측 방향에 두꺼운 흙벽을 소환하면서 소일 실드를 발동했다.

그의 주위에서 뜯겨진 대지가 순식간에 릴튼을 겹겹이 감싼 방어막으로 변모했다.

콰아앙!

그리고 흙벽에 부딪히며 힘을 잃은 물줄기는 더 단단한 소일 실드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물이 비산하며 바닥을 적시려 할 때, 서진의 뇌검이 소일 실드를 가격했다.

콰아아앙!

하지만 방어막에 가려진 릴튼의 모습을 볼 순 없었다.

예기가 넘쳐흐르는 흑뢰가 두꺼운 벽을 가르나 싶었지만 내구도가 부족한 검이 바스러져 끝까지 힘을 유지하지 못했기에.

그리고 릴튼은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머드홀.”

반구형의 소일 실드를 중심으로 땅이 진흙으로 변하며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같은 지반 위에 세워진 주변의 건물까지 휩쓸리며 무너져내린다.

정상적으로 디딜 수 있는 땅을 없애면서 움직임에 제약을 주는 마법.

앞서 서진이 대량의 물로 지면을 적시는 바람에 훨씬 빠르고 넓은 범위의 진흙 구덩이가 회전하고 있었다.

“어스 캐논.”

거기에 릴튼 뒤에서 만들어진 수십 개의 포대.

총 서른 개의 포구가 서진을 겨누며 포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하나하나가 6레벨급에 달하는 위력.

[민첩이 46 상승합니다]

[지력이 50 상승합니다]

실버울프를 가신으로 삼은 덕분에 이 판국에도 스텟은 이전보다 더 잘 쌓이고 있었다.

‘그건 그거고.’

서진은 불안정한 지면 위에서 공격을 피하며 타개책을 강구했다.

제대로 된 무기의 부재로 흑뢰를 사실상 봉인 당한 상황.

그리고 릴튼이 쓰는 마법은 원소 중에서 가장 방어력이 우수한 대지 속성.

일반 검강으론 8레벨이 작정하고 만든 실드를 뚫을 수 없다.

물론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특성인 투기라면 가능하겠지만 서진은 내보이는 걸 주저하고 있었다.

투기는 숨겨두고 있는 비장의 한 수로 남겨두어야 했기에.

“쥐새끼처럼.”

릴튼은 미간을 찌푸렸다.

전황은 우세했지만 아직까지 서진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지 못했기 때문.

“하는 수 없지.”

전장을 뒤덮은 머드홀과 서진의 발이 닿는 모든 범위를 포격하는 어스 캐논, 몸을 지켜주는 소일 실드까지.

이만한 규모의 마법을 동시에 세 개나 운용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릴튼은 추가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7레벨 검사치곤 상당히 빨라. 민첩계열 검사였나.’

아직 서진이 8레벨에 도달했다는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릴튼은 설마 벌써 레벨 업을 했을 거라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릴튼이 네 번째 마법을 발동하려는 찰나, 서진에게 무언가 날아들었다.

“이거 써!”

탁!

반사적으로 받고 보니 한 자루의 검이었다.

그것도 일반 영웅급에 비해 내구도가 열 배나 높은 검.

타지에 잠깐 나갔다가 돌아온 전예선이 상황을 파악하고 무기를 던져준 것이었다.

“칫.”

전예선이 없는 사이에 마력석을 챙기고 빠지려고 했던 릴튼을 혀를 찼다.

예기치 않게 서진과 싸우다 보니 형세는 릴튼이 그렸던 그림과 한참 어긋나 버렸다.

하지만 릴튼이 걱정해야 할 건 따로 있었다.

파지지지직!

온전한 흑뢰 앞에선 그의 실드 마법도 의미없어질 테니까.

흑룡검술 제3식 나선뇌격포.

검을 손에 쥐자마자 내지른 검신에서 폭발적인 전격이 방출되었다.

찰나에 뻗어나간 검은빛 기둥은 굳건하던 소일 실드를 박살 내며 릴튼의 몸에 직격했다.

관통력을 한껏 올린 거대한 창과 같은 번개는 릴튼이 대응할 시간조차 주지 않았다.

“커헉!!”

한참을 벼르고 있던 터라 검은빛 뇌격포에는 상당히 밀도 높게 전류가 압축되어 있었다.

파지지직!

흑색 전격은 릴튼의 전신을 덮으며 섬광을 번쩍였다.

하지만 릴튼은 신체가 작열하는 고통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무슨 전격의 위력이... 어쨌든 이렇게 된 이상 작전은 실패.’

그렇다면 바로 몸을 빼야 한다.

릴튼은 공간 이동 계열 아티팩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서진의 마나 간섭 묘리를 담은 전격을 맞았기에 마나가 제대로 움직일 리가 없었다.

‘도대체 왜?’

순간의 당황.

그 의문이 릴튼 인생의 마지막 생각이었다.

콰릉!

한줄기 번개가 정수리에 내리꽂히며 릴튼의 생명은 끝을 맞이했다.

“후우.”

다 잡은 고기를 놓칠뻔한 서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로잡지 못한 건 아쉽지만 8레벨 마법사이니 그런 미련은 버리는 편이 좋으리라.

어느덧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도 멎었는지 어수선한 소음만이 가득했다.

‘하윤 씨하고 베리크가 잘 막았으려나.’

서진이 릴튼을 상대하는 사이, 그 둘은 다른 마령전 멤버를 맡았다.

마력석이 중요하기에 서진이 이쪽에 있었지만 느껴지는 무력만 놓고 보면 릴튼보다 강한 존재임이 분명했다.

자치대가 지원을 해주긴 하겠지만 7레벨 이상 되는 헌터들의 전투에선 큰 도움을 주기 힘들다.

서진은 다리에 마나를 불어넣으며 설하윤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

파앗!

[마광병 진행도 53%]

왜소한 체격의 남성이 어느 물체를 통과하자 푸른빛이 터져 나오면서 병의 진행 상태를 알려주었다.

금사길드가 이번에 개발한 블루게이트라는 설비였다.

흡사 보안검색대처럼 생긴 블루게이트는 여태까지 아무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최초로 가능케 한 기념비적인 물건이었다.

“그리고 한서진을 위한 개발 아이템이기도 하지.”

한치성은 입매를 말아 올리며 옆에 서 있는 금사 길드의 개발 본부장을 쳐다봤다.

“마광병 증폭 기능도 넣었다고 했지?”

“예.”

“증폭률은?”

“최소 3%에서 최대 15%까지 가능합니다.”

“조금 약한데.”

“그 이상은 아직 힘듭니다.”

한치성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나쁘지 않아. 이대로도 충분하겠어.”

블루게이트의 테스트를 받자마자 마인으로 변하면 의심을 살 테니.

그런 광경도 재밌긴 하겠지만 자연스러운 그림을 위해선 증폭률이 너무 높아도 좋지 않을 터.

“정말 기대되는군.”

비릿한 미소를 띤 한치성은 블루게이트에 서진을 넣기 위한 계획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