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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11화 (111/141)

111화

서진이 현장에 도착하고 보니 이미 상황은 정리된 후였다.

“서진 님.”

설하윤은 입고 있던 옷이 여기저기 찢겨 맨살과 피를 보이고 있었다.

그만큼 힘든 전투였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녀는 무겁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사실 서진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멀리서나마 느꼈던 상대의 무력 수준은 거의 9레벨에 근접해있었으니까.

이제 막 7레벨로 올라선 설하윤과 힘이 빠진 실버울프로 제압할 수 있는 헌터가 아니었다.

다만 마력석을 조용히 탈취하기엔 마법사가 용이해서 역할을 그리 분배했겠지.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다.

만약 설하윤이나 실버울프가 일대일로 붙었다면 목숨도 위험했을 터.

그렇지만 치명상까진 아니어도 설하윤의 몸 상태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오른팔을 포함한 세 곳이 골절되고 깊게 베인 옆구리에서 출혈이 멈추지 않았으니.

“놓친 건 괜찮습니다. 그보다 치료부터 해야겠군요.”

서진은 클리어 길드장에게 뜯어냈던 치유 샘물을 꺼냈다.

사막 한복판의 척박한 도시에는 제대로 된 힐러가 없다.

힐러가 있을 만한 대도시로 가려면 여기서 족히 몇 시간은 걸릴 터.

서진은 비싼 물약을 아끼기 위해 그때까지 무작정 참으라고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투명한 액체를 상처 부위에 붓자 바로 효과가 나타났다.

먼저 깊은 자상을 치유하고 나서 골절까지 원상복구 되기 시작했다.

클리어 길드에서 최상급 물약을 가져온 보람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서진 님.”

“이제 괜찮아요?”

“네, 신기할 정도로 불편했던 부분이 말끔하게 사라졌습니다.”

다만 부상이 꽤 심각했던 터라 자잘한 상처까지는 효과가 미치지 못했다.

그래도 나머지는 한국으로 돌아가서 치료받으면 될 것이다.

“어이.”

낮게 깔린 목소리에 서진이 고개를 들자 베리크가 불만 섞인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너도 있었지.”

“와, 대놓고 차별 대우하기냐!”

“그런데 넌 왜 멀쩡하지?”

마치 베리크가 맞을 공격까지 설하윤이 모조리 받은 것처럼.

서진의 눈초리에 베리크는 어이없다는 듯이 외쳤다.

“여기 다친 거 안 보이냐?”

“얕은 상처군. 따로 치료할 필요는 없겠어.”

그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전예선이 다가왔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

“우선 놈들을 막아줘서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마력석은 물론이고 자치대 애들까지 전부 죽었겠지.”

침잠한 눈빛으로 바닥을 보던 전예선은 결심을 굳혔다.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도움을 받았으니 모른 척할 수는 없지. 네가 말한 인챈트 의뢰는 무상으로 해주마. 그리고 하는 김에 저 처자 것도 개량해주고. 다른 아이템에도 가능하니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라.”

“나머지는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저만한 마력석은 어떻게 얻게 되신 겁니까?”

“자치대 애들이 던전 공략하다 얻은 거야. 어떻게 처분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런 사달이 벌어지다니.”

“그렇다면 흑룡검가에 맡겨보시죠.”

“그래, 그게 낫겠어. 어차피 인챈트하러 한국에 가야 하니.”

전예선은 고개를 주억거리다 한 가지 의문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놈들은 대체 뭐냐?”

그에 서진은 말없이 눈빛을 가라앉혔다.

마령전의 목적을 명확히 알 수 없었으니까.

“말하기 힘들면 안 해도 괜찮아.”

서진의 침묵을 오해한 전혜선은 질문을 거두었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마령전이 뭐가 예쁘다고 함구해준단 말인가.

이런 놈들에 대한 정보는 알려져도 하등 나쁠 것이 없었다.

서진이 얘기해주자 전예선은 심각한 안색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런 조직이 있었다니, 전혀 몰랐어. 그리고 도대체 뭘 위해서 움직이는 건지.”

짧은 침묵이 지나고 전예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민해 봤자 지금은 소용없나. 어쨌든 무기가 없어 곤란한 모양이니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겠어.”

**

“요즘 금사 길드라는 곳에 자주 드나든다는 얘기는 들었다.”

한정후의 집무실.

그의 앞에는 아들인 한치성이 서 있었다.

집법당주에선 물러난 상태지만 은월각을 수중에 넣은 그는 아들의 행적 정도야 얼마든지 알 수 있었다.

“예.”

나름 은밀히 움직였지만 역시나 가문 정보조직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나.

한치성은 담담하게 인정했지만 뒤이어 나온 단어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블루게이트라고 했었지.”

“...!”

어떤 아이템을 개발했는지는 기밀이었으니까.

다소 허탈하기도 했다.

블루게이트를 어떻게 서진에게 테스트하게 만들지 계획을 세우고 나서 보고 할 생각이었는데.

“굉장한 아이템이더구나. 이걸로 한서진을 압박할 생각이냐.”

“예.”

“어떤 방식으로?”

“그건...”

아직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한치성은 확답을 내놓지 못했다.

탁!

한정후는 책상 위에 얇은 서류철을 올려놓았다.

“한번 봐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한치성은 서류를 집어 들어서 펼쳤다.

“이중던전?”

던전 안에서 또 다른 던전이 나타난 현상을 이르는 말.

그래서 등장한 순서대로 1차와 2차 던전으로 구분 짓는다.

1차 던전 안에서 출현한 2차 던전은 비교적 난이도가 높은 대신 보상이 좋기로 유명했다.

여기 서류만 봐도 순도 높은 막대한 마나가 검출되었다는 보고가 적혀있으니 공략 성공 시에 이익은 보장된 셈.

물론 아직 2차 던전 내부를 들어가 보지 않았기에 보상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생성된 직후에는 바로 들어갈 수 없는 2차 던전이 종종 있으니까.

그럼에도 돈 냄새를 풀풀 풍기는 이중던전은 대게 어떤 가문이든지 탐내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 이 용봉산 던전은 이미 소유주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서류에 적힌 대로 용봉산 중턱에 위치한 던전은 철혈백가와 적호검가가 공략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미 주인이 있는 던전을 왜 보여준 걸까.

한치성은 아버지의 의중을 파악하려 생각에 빠졌다.

분명 이 던전을 이용해서 서진을 블루게이트와 엮으라는 의미일 터.

하지만 마땅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쯧, 다 떠먹여 주길 바라느냐.”

한정후의 실망스러운 어조.

“물론 아직 이 정보는 모를 테니 어느 정도는 이해하마.”

그는 다른 보고서를 꺼내서 올려놓았다.

앞선 서류철과는 달리 제법 두꺼웠다.

“약제원과 약화련 사이에 이전과 다른 분위기의 커넥션이 생긴 것 같아 알아봤더니 재밌는 걸 연구 중이더구나.”

맨 앞장에는 ‘마광병 치료제 연구개발에 대한 동향 보고’라는 제목이 적혀있었다.

한정후는 아들이 한 장씩 넘기는 모습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런 합작이 시작된 것 같으냐.”

“한서진 때문이겠죠. 약제 부원주하고 약화련주 사이의 연결점은 한서진뿐이니까.”

“그래.”

만족스러운 대답에 한정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나름대로 발버둥 치고는 있지만 시간은 한서진을 기다려주지 않을 거다. 신약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건 아니니까. 하물며 마광병이라면 어림도 없지.”

그제야 한치성은 아버지가 왜 이중던전에 대한 서류를 보여주었는지 이해했다.

마나와 관련된 모든 이상 증상에 대한 약 개발에서 순도 높은 마나는 굉장히 중요하다.

문제가 있는 환자에게 투여할 약에 혼탁한 마나를 넣었다간 상태를 악화 시켜버리기에.

자연히 연구 및 개발도 순도 높은 마나로 진행해야 하는데 수급이 마냥 쉽지 않다.

B급 이상의 마력석을 구해서 안에 들어 있는 마나를 추출해서 써야 하니.

이런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니 서진 입장에서 그 이중던전은 상당히 탐날 수밖에 없을 터.

“이제 눈치챈 모양이구나.”

한서진에게 블루게이트를 어떻게 테스트하게 만들지, 한치성은 감을 잡았다.

“이중던전 공략 권한이 있는 가문을 이용해야겠군요.”

다른 가문의 힘을 빌려야 한다는 점은 아쉽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기도 하다.

전면에 나서서 작업을 치는 것보다 위험은 덜할 테니까.

그리고 한치성이 두 가문 중에 어느 곳과 접촉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

“그동안 수고했어.”

한국으로 돌아온 서진은 백화연에게 맡겼던 드래곤의 알을 돌려받았다.

“이거 생각보다 많이 커졌는데 괜찮은 거야?”

마나를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랐는지 이제는 두 팔로 받쳐서 들어야 할 정도였다.

“어, 원래 늘어나.”

“흐음, 그런데 너는 문제가 없는 건지 어떻게 아는 거야? 이거 한 번도 나타난 적 없는 아티팩트잖아.”

날카로운 백화연의 지적.

서진은 가느다란 눈매로 지그시 쳐다보는 시선에 맞서 뻔뻔하게 대응했다.

“비밀.”

“...하.”

어떤 면에선 참 솔직한 대답에 백화연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며 넘어갔다.

“이거 하난 알아둬. 얘 때문에 마나 탈진 직전까지 갔다는 거. 왜 그렇게 많이 먹는지.”

하긴 크기만 봐도 알 수 있다.

알제리에 가기 전보다 많이 커졌으니까.

“그래, 고맙다. 그럼 이만 갈게.”

서진이 알을 받고 가문으로 돌아오니 던전기획실장인 정보건이 급히 찾아왔다.

약제 부원주이자 아버지인 정선과 같이.

마침 점심시간이었기에 서진은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이야?”

“던전에 대한 소식인데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정보건은 마광병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래서 항상 서진에게 도움이 될만한 던전을 탐색하던 중, 하나가 걸려든 것.

“아직 반나절도 안 지난 새로운 정보인데, 이중던전이 나왔어.”

“형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2차 던전에서 좋은 게 묻혀있다는 건데.”

“당연하지. 용봉산 던전에서 A급 마력석에서 나올만한 순도 높은 마나가 느껴진다고 하더라. 아마 마나가 나오는 샘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싶은데.”

“뭐?”

그렇다면 그 던전만 얻으면 앞으로 마력석 구매해서 연구할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마광병 약 개발에 들어가는 투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기회.

서진이야 이미 완치됐지만 비교적 적은 금액으로 빠르게 약을 만들어내면 좋은 거 아니겠는가.

안 그래도 마력석 구매에 들어가는 비용이 생각보다 많아서 은근히 부담되던 참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미 주인이 있는 던전이야.”

“그럼에도 내게 말한다는 건 공략권을 얻어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뜻이겠지?”

“하여간 눈치가 빠르다니까. 사실 그 이중던전의 주인은 둘이거든.”

“누군데?”

“철혈백가와 적호검가.”

“합동 공략을 했나 보네.”

던전의 규모에 따라 둘 이상의 가문이 힘을 합쳐서 공략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의아한 점은 합동 공략을 하기엔 현재 두 가문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

“물론 최근에 공략한 던전은 아니야. 이제 거의 이십 년 가까이 됐을걸. 그러니까 그만큼 오래된 지속형 던전에서 갑자기 2차 던전이 나타나서 이중던전이 돼버린 거지.”

“특이하긴 하지만, 두 가문이 합의해서 추가 공략을 하면 될 텐데. 무슨 문제가 생겼나 보네.”

“맞아. 용봉산 던전은 두 가문이 5년을 주기로 번갈아가면서 공략 권한을 행사하거든. 계약이 그렇게 되어있어.”

대략 어떤 상황인지 파악한 서진은 눈을 빛냈다.

“과연, 이번에 2차 던전이 생겨났는데 하필 권한을 이양하는 시기와 겹쳐버린 거군.”

한쪽은 이중던전의 보상을 하나도 못 챙기고 넘겨줘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둘 중에 어느 가문이 공략권을 넘겨받을 차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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