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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14화 (114/141)

114화

발을 내디딜 때마다 저마다 다른 감정을 품은 눈동자들이 서진을 쫓는다.

말없이 눈길만 주고 있음에도 서진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쳐다보고 있는지 알 것만 같았다.

-마광병이 얼마나 심각하게 나올까.

-수치에 따라 흑룡검가의 후계 판도가 달라지겠지.

-설마 100%에 가깝진 않겠지. 그러면 당장 도망가야 할지도.

단순한 흥미 위주의 시선들.

-예비 마인 주제에 뭐 저리 당당해?

-저런 위험한 놈은 밖에 풀어놓으면 안 되는데.

-이왕이면 높게 나왔으면 좋겠다.

아니면 적의 어린 시선들.

천재라 불리는 헌터가 병으로 인해 추락하게 되는 기념비적인 순간을 보고 싶은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물론 저런 종류의 시선만 있는 건 아니었다.

-제발 마광병 진행도가 낮게 나오기를.

-당당한 모습 보니 뭔가 수가 있는 것 같은데 그랬으면 좋겠다.

서진은 음습한 감정들 사이에 섞여 들어오는 온기를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고 보니 직접적으로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은 건 오랜만이었다.

기억하기론 백랑대원과의 대련 이후로 두 번째인 거 같은데.

사실 서진이 원했다면 이런 상황은 충분히 피할 수 있었다.

천궁의 길드장부터 시작해서 기갑성가의 성주원과 성가을, 레이놀즈 부마탑주에다 마관청까지.

서진을 걱정하면서 도움을 주려 했으니까.

하지만 그 손길을 사양한 건 다름 아닌 서진 본인이었다.

마광병을 치료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지금 이 자리는 서진을 위한 레드카펫이었다.

자기네들이 고생해서 깨끗한 몸 상태를 증명해준다고 하니 그 수고를 마다할 필요가 있겠는가.

생각을 이어가던 서진은 블루게이트 앞에서 발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위로 들어 블루게이트를 한번 살폈다.

테두리에 박혀있는 마력석에서 나오는 녹광이 나름 인상적이었다.

이 마력석들이 대상에게 마나를 투사해서 마광병의 침식 정도를 파악해내는 것인가.

제작에는 문외한에 가깝지만 대략적인 구조는 파악할 수 있었다.

‘잘 만들었군.’

서진이 잠시 서 있자 겁이 나서 그런 줄 착각한 누군가가 비웃음을 흘렸다.

작은 소리가 서진의 귀에까지 들릴 만큼 좌중엔 정적이 짙게 깔린 상태였다.

‘관중들이 답답해하는 것 같으니.’

서진은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로 블루게이트에 발을 들였다.

지잉!

생명 반응을 감지한 블루게이트가 가동되고 마력석에서 초록빛 마나를 환하게 내보냈다.

녹색마나가 서진을 감싸며 마광병 특유의 오염된 마나를 탐색한다.

그리고 10초도 안 돼서 결과를 토해냈다.

[0%]

마광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뭐!”

제일 먼저 놀란 사람은 적호가주였다.

그는 의자에 깊게 파묻고 있던 몸을 단번에 일으켰다.

“말도 안 돼.”

적호가주의 경악스러운 감정은 컨벤션 홀에 앉아있는 이들 모두에게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0%로 나온 거야 지금?”

“한서진이 사실 마광병 걸린 게 아니었나?”

“그건 아냐. 한서진이 몇 년 전에 혼수상태일 때 마광병이라고 기사도 나고 흑룡검가에서 인정까지 했었는데.”

일반인들도 의아해하는데 작전을 진행한 적호가주는 오죽할까.

그는 흉흉한 기세를 뿌리며 불같은 어조로 말했다.

“금사 길드장! 블루게이트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서진이 마광병을 치료했다는 생각보다 아이템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실을 외면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솔직히 확률상 후자가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금사 길드장도 억울할 따름이었다.

작금은 상황은 그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에.

“아닙니다! 블루게이트는 문제없습니다.”

공들여 개발한 아이템이 불량품이라는 낙인이 찍힐까 봐 고개를 홱홱 저으며 부정했다.

당연히 말만으론 부족하기에 다른 마광병 환자를 단상에 불렀다.

시연회하는데 한서진만 테스트하기엔 부족할까 싶어 준비해두었던 참이다.

“보십시오.”

마른 인상의 남자를 통과시키자 마광병 45%라는 수치가 나타났다.

블루게이트는 문제없다는 증거.

당연히 금사 길드장도 알고 있다.

한서진이 마광병 수치가 높게 나와야 작전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을.

하지만 계획의 성패보다 중요한 건 블루게이트 성능의 입증이다.

어차피 작전이 실패했다면 정상적인 개발품이라는 인식이라도 챙겨야 했다.

“대박, 그럼 진짜 서진이 나은 건가?”

“혹시 금사 길드하고 짜고 치는 거 아냐?”

“아이템 신뢰도를 떨어트리는 일을 개발 길드가 직접 한다고?”

“하긴 그런가.”

“애초에 적호검가랑 금사길드가 협업해서 서진을 압박하는 상황인데 말이 안 되지.”

거기다 안절부절 못하며 식은땀을 흘리는 금사 길드장은 누가 봐도 당황한 모양새였다.

저게 꾸며낸 모습이라면 올해 연기대상은 금사 길드장의 것이 되겠지.

그때 또렷한 여성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제가 한번 해볼게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본 사람들 일부는 그녀를 알아봤다.

“어. 저 사람은.”

“누군데?”

“이혜지 기자라고, 마광병 앓고 있는 기자로 조금 유명해.”

이혜지는 빠른 걸음으로 단상에 올라서며 입을 열었다.

“금사 길드장님. 한번 해봐도 괜찮을까요?”

“예, 물론이죠!”

허락을 받은 그녀는 블루게이트로 직행했고, 녹빛의 마나는 결과를 알려주었다.

[19%]

각성자지만 마나를 쓸 일이 없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기에 마광병 진행도는 아직 낮았다.

“상태창에 적혀있는 수치와 똑같네요.”

이혜지의 증언으로 사람들은 서진의 검사 결과를 온전히 믿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마광병 치유 사례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잖아.”

“애초에 서진이 이 자리에 냉큼 온 이유도 완치했으니까 자신 있게 온 거겠지.”

사람들의 대화를 흘려듣고 있던 적호가주는 여전히 납득하기 힘들었다.

‘정말 나았다고? 너무 터무니없이 낮은 확률 아닌가?’

탁.

그런 적호가주의 생각은 바로 앞에 다가온 서진의 발소리로 인해 끊겼다.

“적호가주, 이 정도면 증명이 되었겠지.”

차갑게 가라앉은 서진의 눈동자가 적호가주를 직시했다.

“한서진!”

적호가주만큼이나 현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든 박연우는 눈이 뒤집혀서 소리쳤다.

“소가주도 아닌 후계자가 가주인 아버지께 이 무슨 건방진 언사냐.”

“가주가 가주다워야 존중해주지.”

스릉!

박연우는 검을 뽑아서 서진에게 겨누었다.

“속임수를 쓴 주제에 상당히 뻔뻔하구나.”

“무슨 말이지?”

“오염된 마나를 숨기는 재주가 있는 거 알고 있다. 마광병의 특징은 마나를 움직일수록 침식이 가속화된다는 것. 전투로 인해 마나를 쓰게 된 직후라면 방금처럼 블루게이트를 속이기 힘들겠지.”

요컨대 서진이 마나를 격하게 움직이면 숨겼던 오염된 마나가 드러난다고 생각하는 모양.

“나름 그럴듯한 망상이군.”

“진실을 망상으로 치부해 넘어갈 속셈이냐! 검을 뽑아라, 한서진. 내가 직접 너를 시험해보겠다.”

박연우는 말뿐만 아니라 검에 마나까지 담으며 기세를 일으켰다.

서진은 왜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블루게이트의 시연회가 대한가문회의 컨벤션 홀에서 열린 이유는 이후에 바로 중재 회의를 열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표결을 시작하면 무조건 철혈백가의 승리다.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이 자리에서 마광병의 존재를 드러나게 만들고 싶겠지.

투명한 시냇물 아래 바닥처럼 의도가 훤히 보여서 서진은 웃음이 나왔다.

“니들이 준비한 테스트에 성실히 임했는데 그걸 안 믿으려 하는 꼴이 참 우습군.”

“다섯을 세겠다. 그때까지 검을 안 뽑으면.”

박연우가 살기를 흩뿌리며 자세를 취하자 보다 못한 백화연이 나섰다.

“적호가주는 아들을 안 말리고 뭐 하는 겁니까?”

“괜찮아.”

서진은 오히려 백화연을 말리며 검 손잡이를 잡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의문이 풀린다면야.”

갑자기 성사된 대결에 놀란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한서진이 응할 줄은 몰랐는데.’

‘근데 박연우가 하는 말 억지 아냐? 저걸 받네.’

‘꼴불견이긴 한데, 가능성이 없는 말은 또 아니야.’

‘근데 한서진이 거절 안 한 거 보면 의미 없지 않을까.’

서진이 박연우의 제안을 받은 이유는 간단했다.

박연우처럼 격화된 감정에서 발산되는 투기는 평소보다 짙을 테니.

마광병 치료 검증도 해주고 양질의 투기까지 주려 하다니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아직 검을 못 받았었지.’

현재 서진의 손에 들린 검은 다른 효과 없이 높은 내구도에만 집중한 검이었다.

이래야 흑뢰를 조금이라도 쓸 수 있으니까.

그마저도 두세 번이 한계지만.

물론 박연우를 상대하기엔 한두 번의 흑뢰로도 충분하다.

콰앙!

박연우는 어지간히 조바심이 났는지 서진이 발검하자마자 지면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리고 아직 검의 간격이 서진에게 닿지 않는 거리에서 박연우는 횡으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보는 이는 없었다.

호화맹위(虎火猛威)

적호검가 특유의 검술은 중거리에서 상대에게 유효한 공격을 가할 수 있었으니까.

불꽃처럼 타오르는 세 마리의 호랑이가 서진을 향해 짓쳐들어왔다.

동시에 주변의 공기까지 가열시키며 호흡마저 방해했다.

[근력이 45 상승합니다]

“좋긴 한데 약하군.”

스텟을 더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진은 아쉬움을 느끼며 단순한 검강만으로 호랑이를 베어냈다.

“그 오만한 여유를 없애주마.”

서진은 투기를 보고 말했지만 이를 알 리 없는 박연우는 심기가 더욱 뒤틀렸다.

콰가가가!

강대한 마나를 끌어낸 박연우는 태산 같은 압력의 검기로 서진을 내리쳤다.

[체력이 49 상승합니다]

보는 이조차 감탄할 위력의 검격이지만 서진의 눈에는 훤하게 빈틈이 보였다.

서진은 검격을 받아치는 대신 마나 전개를 발동해서 전광검을 펼쳤다.

그리고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는 박연우의 복부를 검면으로 후려쳤다.

퍼억!

8레벨의 전유물인 각성된 육체에 시간을 뒤트는 전광검의 조합은 박연우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콰앙!

한순간에 벽까지 날아가 처박힌 박연우.

“...”

그런데 몇 초가 지나도 일어나지 않자 적호검가의 헌터가 조심스레 다가가 의식을 확인했다.

“기절하신 것 같습니다.”

“허업.”

그러자 주변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헛숨을 들이켰다.

고작 일격에 저리되다니.

도대체 무력 차이가 얼마나 난단 말인가.

사람들의 경악 어린 시선을 받은 서진은 내심 불만족스러웠다.

‘너무 세게 때렸나? 투기를 더 뽑아낼 수 있었는데.’

그런 서진이 입맛을 다시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더 패지 못해서 아쉬워하고 있다니!’

서진의 마광병 테스트를 가벼운 마음으로 관람하러 온 사람들은 오금이 저려왔다.

사지가 박살 난 채 축 늘어진 박연우의 꼴이 마치 자신들에게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졌기에.

무심하게 좌중을 둘러보는 서진의 눈빛에 흠칫 놀라는 이들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적호검가에게 돈을 받은 기자들은 서진에 대해 부정적으로 써 내려간 기사 내용을 슬그머니 수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은 라이브로 중계가 되고 있었으니.

쾅!

라이브를 지켜보던 한치성은 책상을 내려치며 거친 욕설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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