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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16화 (116/141)

116화

협회장 자택 주변은 여전히 삼엄한 경비와 엄숙한 정적이 유지되고 있었다.

의식을 차렸다는 사실이 퍼졌다면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였을 터.

아직 조용한 걸 보면 알리지는 않은 듯했다.

‘하긴 그 편이 낫나.’

깨어나자마자 자신 때문에 주위가 시끌벅적하면 정신이 없을 테니.

서진은 마중 나온 집사의 안내를 받아 3층으로 올라갔다.

안방에 들어가니 상반신을 일으킨 협회장이 보였다.

“서진 씨!”

그리고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던 임유나는 벌떡 일어서서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렇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 임유나는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감사 인사는 진작에 수없이 했지만 그 외에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얘기는 협회장님께 인사를 드린 후에 하도록 하죠.”

그런 그녀의 심정을 짐작한 서진은 대화를 미루고 협회장에게 다가갔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자네에겐 말로 다 하지 못할 은혜를 입었군. 죽기 전까지 갚지 못할 정도로 말이야.”

“방금 깨어나신 분이 불길하게 그런 말씀을.”

협회장도 아직 혼란스러운 감정을 수습하지 못한 상태인듯했다.

하기야 서진도 병상에서 일어난 다음에 일주일간 칩거하지 않았던가.

서진은 용체화를 발동해서 그의 체내 마나 경로를 살폈다.

막대한 마나는 안착이 되었지만 전신에 뻗어있는 마나 경로로 잘 흘러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마나 주입을 막 끝냈을 때와 별 차이가 없군.’

시간이 지나면 뚫리지 않을까 했는데 자연히 해소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저러면 마나를 아무리 쌓아두고 있어도 제대로 쓸 수가 없다.

즉 10레벨이라 해도 저레벨 헌터 수준의 마나 출력밖에 내보이지 못한다는 의미.

본인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언급을 안 할 수는 없겠지.

“협회장님.”

“괜찮네.”

협회장은 느릿하게 고개를 저었다.

“정신을 되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네. 자네는 이 기분을 모르...지는 않겠군. 생각해보니 자네가 먼저 비슷한 경험을 겪었군.”

서진은 희미한 웃음을 보였지만 협회장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기껏 이계에서 지구로 되살아났는데 힘을 쓸 수 없게 됐다면 짙은 상실감에 빠졌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서진은 우연으로 일어난 것에 비해 협회장은 서진의 도움을 받았다는 면에서 다르다 할 수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마나가 어디 가진 않을 테니 실의에 빠지기엔 이르다.

“유나야. 문 좀 닫아주거라.”

협회장은 손녀를 잠시 밖으로 보내고 서진에게 말했다.

“유나의 마광병이 많이 진정됐던데, 그것도 자네 덕분이라고 하더군.”

그동안 서진은 협회장의 몸 상태를 확인할 겸, 저택에 방문해서 임유나의 침식된 마나 경로를 정화시켜주고 있었다.

딱히 힘들거나 위험하거나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니까.

“이렇게 된 마당에 에둘러 말할 필요는 없겠지. 혹시 원하는 게 있는가? 이제 부탁 한두 개 들어준다고 끝날 관계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들어주겠네.”

직설적으로 변한 협회장의 표현은 서진에게 불필요한 체면을 차리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상대에게 떠보듯이 의사를 확인하는 일은 협회장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지금은 딱히 원하는 건 없습니다.”

협회장과 임유나를 도와준 이유는 이전 성격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안드레이와 엮이지 않았다면 내버려 두었겠지만.

“알겠네, 그래도 나중에 필요한 일이 생기면 언제든 말하게.”

“대신 부탁이라고 하긴 애매하지만 현재 협회장님의 몸 상태는 비밀로 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일시적으로 공석이 된 협회장 자리에 무사히 복귀하려면 10레벨의 위명에 흠집이 나선 안 되었다.

“그건 걱정 말게. 그럴 생각이었으니. 그래야 다음에 자네가 부탁하면 들어줄 수 있는 범위가 넓을 테니. 그런데 정말 이렇게까지 도움을 준 다른 이유는 없는 건가?”

협회장은 묘한 눈빛으로 서진을 응시하더니 영문 모를 소리를 내뱉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자면 자네라면 나는 허락하네. 아니 매우 찬성이지.”

“네?”

“...모르면 됐네.”

**

[묵령검(墨靈劍)]

-등급 : 전설

-내구도 : 10000/10000

-마나 전달률 : 500%

-효과 : 흑뢰(黑雷) 증폭률 200% 증가, 사령은신(死靈隱身), 수 속성 마법 감응력 150% 증가.

서진은 새로 받은 검의 정보창을 열어보고 있었다.

전예선의 인챈트 덕분인지 이전보다 한 등급 높은 전설이 나왔다.

사령은신(死靈隱身)

▶하루에 한 번, 사자의 영혼을 불러내어 일시적으로 존재를 지운다.

서진이 요청했던 효과도 성공적으로 각인되었다.

거기다 아쿠아 마법의 위력을 올려주는 효과까지.

검 손잡이를 매만지고 있는 서진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검 바뀌었네?”

던전 진입을 앞두고 있는 백화연은 서진의 무기를 힐긋 쳐다봤다.

“전에 쓰던 게 부러져서.”

“하긴 네가 쓰는 검은 번개는 적당한 검으로는 버티기 힘들어 보이더라.”

그때 철혈단장이 다가와 보고했다.

“가주님, 준비 끝났습니다.”

백화연은 고개를 까딱이며 그를 다시 물리고 서진에게 말했다.

“혹시 들어가 본 적 있어?”

“아니 처음이야.”

서진은 시선을 돌려 용봉산 던전 입구를 바라봤다.

스무 살 이전엔 던전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고, 오 년 뒤에 깨어나고 나선 굳이 다른 가문의 던전에 갈 이유가 없었으니까.

다만 이번에 얻은 이중던전은 신약 개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한 번쯤 확인할 필요는 있었다.

**

던전에 들어가니 넓고 푸른 평야가 펼쳐져 있었다.

“무난한 환경이네.”

다양한 던전 환경 중에서 상당히 쾌적한 축에 속했다.

백화연은 철혈단을 앞으로 보내며 말했다.

“그야 D급 던전이니까. 꽤 넓다는 것만 빼면 특별한 건 없어.”

끼에에엑!

이곳에서 나타나는 몬스터는 코카트리스.

기본적으로 닭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꼬리와 다리가 길고 날개도 크다.

공격력과 방어력은 시원찮은 편이지만 괴성과 함께 걸어오는 석화 디버프는 주의해야 했다.

물론 그것도 저레벨 헌터에게 해당하는 얘기.

디버프 저항력이 올라간 중상급 헌터는 그냥 쓸어버리면 되는 일이다.

서진과 백화연은 직접 나설 필요도 없이 정리된 길을 걸으며 나아갔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2차 던전.

아직 입구인데도 청량한 마나의 기운이 입구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대되네.”

서진은 바로 두 번째 던전에 진입했다.

들판 위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던 1차 던전과는 역시나 다른 환경이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수풀이 빽빽이 들어차 있고, 훨씬 날카로워진 바람이 살갗을 베는 듯이 지나간다.

쿠웅!

침입자를 환영하듯 무거운 발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낸 몬스터.

초록빛 피부의 트롤 한 마리가 속도를 높이며 이쪽으로 달려온다.

가장 먼저 진입한 서진이 목표인 듯했다.

“B급 몬스터니까 마법 시험해보니 딱 적당하겠네.”

허공에서 생성된 네 개의 물줄기가 재빠르게 트롤을 향해 쏘아졌다.

차아악!

아래로 뻗어나간 물줄기는 트롤의 발목을 묶고 위쪽 물줄기는 팔뚝을 휘감았다.

사지를 결박한 순간 새로이 나타난 물덩이가 트롤의 안면에 쏟아졌다.

크르륵!

숨이 막히자 강하게 몸부림치는 트롤.

하지만 서진이 만들어낸 물줄기는 굳건하게 유지되며 움직임을 억제했다.

끄륵.

속수무책으로 숨이 막힌 트롤은 눈을 까뒤집으며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

준수한 회복능력도 결국 외상에 국한된 것.

호흡을 막아버리면 트롤이라도 죽을 수밖에 없다.

“우와.”

서진의 마법 운용을 본 백화연은 작게 감탄했다.

“언제 그 정도로 마법을 익힌 거야?”

서진이 마법을 배웠다는 정보는 접한 적이 있지만 직접 목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으니.

“조금 됐어.”

굳이 검이 아니라 마법을 꺼낸 이유도 숙련도를 쌓기 위함이었다.

정소율이 말하길, 이해도는 5레벨을 넘어섰는데 실전 사용 경험이 부족해서 4레벨에 머물고 있는 거라 했으니까.

그래서 적당히 강한 트롤은 서진에게 좋은 경험치 수급원이었다.

저번 실버울프와의 전투에서 마법의 효용성을 재확인했기에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수십 마리의 트롤을 해치우며 나아간 결과.

[원소마법(수) Lv.5가 되었습니다]

부족했던 숙련도를 채워 넣으니 레벨을 올릴 수 있었다.

“저기!”

동시에 순도 높은 마나가 흘러나오는 원천도 찾아냈다.

트롤 열댓 마리가 들어앉으면 가득 찰 정도의 작은 호수.

그렇지만 내재된 마나량은 심상치 않은 수준이었다.

액체 형태라 마나 추출도 상당히 쉬울 터.

‘정선 아저씨와 약화련주가 기뻐하겠네.’

서진은 보관 케이스를 꺼내서 호숫물을 퍼담았다.

백화연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게 조금만 가져가려고? 어차피 우리 가문에서 흑룡검가로 따로 보내줄 텐데.”

“이건 따로 쓸데가 있어서.”

**

주르륵.

“이건 안 먹는 건가.”

서진이 마나가 담긴 호숫물을 알에 부어봤지만 하나도 흡수하지 않는다.

심지어 싫다는 듯이 알이 살짝 떨린다.

“기분 탓인가?”

“저도 그렇게 보입니다.”

서진만의 착각이 아닌지 설하윤도 같은 감상을 내놓았다.

혹시나 해서 서진이 직접 마나를 넣으니 역시 잘 받아먹는다.

이제 드래곤의 알은 밖에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

그때 서진의 방에 들어온 누군가가 신기한 기색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그 알인가요?”

서진이 5레벨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마법 수련을 도우러 온 정소율이었다.

“소율 씨도 마나를 넣어보시겠습니까?”

“그래도 되나요?”

“상관없습니다.”

정소율은 손을 뻗어 천천히 마나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끝없이 들어가나요?”

“네, 그러니 무리하지 말고 적당한 선에서 떼면 됩니다.”

하지만 정소율은 묘하게 피곤해 보이는 서진을 보고 원래 생각보다 많은 마나를 끌어냈다.

그러자 서진의 안색이 밝아지는 것이, 기분 탓이 아닌 것 같았다.

**

카앙!

검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연무장에 울려 퍼졌다.

“도련님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흑룡대장은 옆에 앉아있는 서진에게 견해를 물어보았다.

“준수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대련은 새로 들어올 흑룡대원을 최종 결정하는 심사 과정이었다.

흑룡대원이 되기 위한 길은 두 가지가 있다.

백랑대, 자호대를 거쳐서 올라가거나 가끔 열리는 시험을 통해 들어가거나.

전자는 확실하게 검증이 된다는 장점이 있고 후자는 즉시 전력감을 빠르게 채울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다만 후자의 경우, 검증 단계가 얕아서 뛰어난 안목으로 지원자를 골라내야 했다.

그래서 흑룡대장에게 부탁받은 서진이 마지막 심사 자리에 참석하게 된 것이었다.

“흑룡대원 상대로도 밀리지 않고 실전 감각이 돋보이는 검술을 구사하는 걸 보니 바로 팀에 투입해도 될 것 같습니다.”

흑룡부대장은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 같은 말을 꺼냈다.

“그렇네.”

하지만 연무장을 쳐다보고 있는 서진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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