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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18화 (118/141)

118화

쿵쿵쿵.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설하윤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베리크.”

애완 몬스터라 해야 할지 동료인지, 구분이 애매한 실버울프가 올려다봤다.

가문 내에선 철저하게 늑대로 있었기에 베리크의 고개는 설하윤을 보기 위해 위로 솟아있었다.

“무슨 일인가요?”

습관 때문일까.

굳이 존댓말을 하지 않아도 되건만 무심코 나오고 말았다.

그렇지만 굳이 고칠 생각은 없다.

“알이 부서지고 있어.”

“예?”

설하윤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 알 말인가요?”

“그렇다니까. 쩌적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방을 들여다봤더니 실금이 많이 갔더라고. 지금쯤 깨졌을지도 몰라.”

베리크는 마당에 있었지만 집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까지 들을 정도로 귀가 좋은 실버울프였다.

‘갈수록 커지던 그 알이 깨지긴 하는구나.’

설하윤은 다른 의미로 약간 놀랐다.

곧바로 신발을 신고 맞은편에 있는 서진의 집으로 뛰어갔다.

거실을 지나쳐 방으로 향하는데 복도에 놓여있는 껍질이 보인다.

심지어 벽에 꽂힌 껍질도 있었다.

설하윤은 껍질을 피하며 방에 들어갔다.

쩌저적!

문턱을 넘는 순간 둥근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알 껍질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그때 설하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 광경은 죽기 전까지 절대 잊히지 않겠다는 것을.

도미노가 무너질 때 묘한 중독성 어린 쾌감을 느끼듯이 알 껍질이 차례로 바스러지는 모습도 비슷한 감상을 느끼게 했다.

껍질이 전부 바닥에 떨어지자 안에서 웅크리고 있던 생명체가 보였다.

예쁘다.

미의식이 비교적 둔감한 설하윤이 보기에도 인상 깊었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낮의 햇살을 받은 비늘이 오묘하게 빛을 발했다.

애완동물을 카메라로 찍어서 남기고 싶은 심정이 이런 걸까.

설하윤은 굳이 폰을 꺼내지 않고 눈으로 직접 그림 같은 풍경을 담았다.

생명체는 알의 크기에 비해서 매우 작았다.

설하윤의 목에서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의 아담한 체구.

그 거대한 덩치가 전부 알의 껍질이었던 것이다.

팔락!

생명체는 벌써부터 날개를 움직이며 공중에 떠 있었다.

‘드래곤.’

생김새는 서양에서 주로 묘사되는 용과 거의 흡사했다.

날개와 꼬리가 있고 다리가 네 개며 주둥이 끝이 조금 날렵한 모습.

거기다 세로로 찢어진 금빛 눈동자는 작은 체구에 맞지 않게 약간의 위압감을 선사했다.

아기용은 주변을 둘러보다 설하윤을 직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엄마!”

“....?”

설하윤은 의문의 호칭에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주변에 거대한 어미용이라도 나타난 건가.

혹시 저 알은 드래곤의 둥지에서 훔쳐 온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쳐다봤지만 다른 용은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설하윤은 그런 것조차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리고 아기용은 한 번 더 영문 모를 호칭을 내뱉었다.

“엄마.”

그러더니 이번엔 쪼르르 날아와 가슴팍에 파묻혔다.

“네?”

여전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어쩌면 하지 않으려 하는 설하윤은 당황해서 존댓말을 했다.

아무리 그래도 오늘 태어난 생명체에 존댓말이라니.

이상함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의 머리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스윽.

날개를 찰싹 붙인 채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아기용을 보고 있으니 천천히 머릿속이 정리되기는커녕 더 복잡해졌다.

난감한 설하윤은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이 상황을 확실하게 설명해줄 사람을 부르는 것이 최선이겠지.

연락처 최상단에 있는 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서진 님. 그게.”

**

“아빠!”

“음.”

서진이 왔지만 사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점입가경이었다.

하지만 혼란함 속에서 상태창만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신화 등급 ‘드래곤의 알’을 부화시켰습니다]

[‘용체화’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비접촉 대상에 대한 마나 간섭의 유효 사거리가 길어집니다]

[마법 숙련도의 축적 속도가 빨라집니다]

[공용마법 Lv.5가 되었습니다]

어쨌든 시야를 가득 채우는 알림창은 반가웠기에 서진은 하나씩 확인했다.

고생하며 알에 마나를 쏟아부은 보람은 확실히 있었다.

‘보니까 원소마법 6레벨까지 오래 걸리진 않겠네.’

다만 지금 중요한 건 서진의 주변을 날아다니는 작은 용이 아니겠는가.

설하윤도 서진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사실 서진도 예상 못 했던 상황이었다.

드래곤 레어를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는 정말 드물었으니까.

심지어 부화 과정은 같은 드래곤이라 해도 접근을 막기 때문에 서진이 확인할 길은 더욱더 없었다.

그저 친했던 드래곤과 종종 대화를 나눌 때 들었던 단편적인 정보만 기억할 뿐.

마나를 넣어야 부화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 혈육 관계도 아니고 아예 종이 다른데 부모로 인식할 줄이야.

설하윤에게 붙어있던 아기용은 서진이 온 뒤부터는 서진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럼 둘이 부부가 되는 거냐?”

베리크가 중간에서 눈치 없는 질문을 툭 꺼내놓는다.

하지만 설하윤의 무저갱 같은 싸늘한 눈빛에 슬그머니 물러났다.

“호칭을 어떻게 하긴 해야 하는데.”

밖에 데리고 나갔다간 정말 부부로 인식되게 생겼다.

아기용은 뭐가 좋은지 날개를 연신 퍼덕이며 서진의 주위를 맴돈다.

“그것도 그런데 일단 이름을 지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태어날 때부터 자기가 이름을 정해서 나오는 생명체는 없으니.

설하윤은 제법 고민되는 기색이었지만 서진은 이미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다.

“샬롯.”

너무나 빠른 작명에 설하윤이 궁금한 듯 물었다.

“의미가 있는 이름입니까?”

“조금요.”

친했던 드래곤이 종종 언급했던 이름이었다.

드래곤 언어로 수호한다라는 뜻이 담겨있다며, 연이 강해 보이니 나중에 쓸 일이 있을 거라고 추천해주었던 기억이 아직 선하다.

자신이 죽을 날짜도 맞추던 예지 능력을 지녔던 녀석이기에 설마 했는데 현실이 될 줄이야.

서진이 과거를 짧게 회상하고 있을 때 새로운 알림창이 나타났다.

[적합한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해츨링 드래곤 ‘샬롯’의 성장 속도가 빨라집니다]

[‘샬롯’과 마나 공유가 가능해집니다]

[마력이 100 상승합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서진은 샬롯이 복덩이로 보이기 시작했다.

**

‘은월각주, 네가 어느 쪽을 지지하던 상관없다.’

‘어쨌든 흑룡검가의 일원이니까.’

‘그런 네게 가문의 이름에 먹칠할 사건이 벌어진다면 방관할 건가?’

보름 전, 대뜸 서진이 찾아와서 자신에게 했던 말이었다.

냉철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에서 현 가주가 떠오를 정도의 위광이 느껴졌다.

그렇게 유약했던 도련님이 이렇게까지 성장했다니.

그간 서진이 보여준 공적으로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주 보며 실감하게 된 부분도 존재했다.

사람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걸까 싶다.

첫인상을 쉽게 잊지 않는 은월각주였기에 새삼 놀랐던 것이다.

서진이 들려준 얘기는 은월각주에게 충격적이었다.

청부업자가 숨어들어 와있다니.

그것도 흑룡대원을 심사하는 공식 루트를 통해서.

사전에 위험인물을 걸러내는 은월각을 이끌고 있는 각주 입장에서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론 서진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은월각을 문제 삼으려면 이렇게 찾아올 필요 없이 감찰각에서 털어버리면 된다.

잘못 짚었다 해도 흑룡검가 후계자라면 후폭풍은 적당히 무마할 수 있을 터.

하지만 은월각주는 서진이 사람을 잘못 보고 오해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판단했다.

그간 입증해온 서진의 안목은 가히 절대적인 정확도를 보여주었으니.

은월각주는 홀린 듯이 서진에게 뭘 해야 하는지 되물었다.

‘그림자처럼 그의 뒤를 밟아.’

간단하면서도 살짝 당혹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래도 나름 정보조직의 수장인데 자석 붙이는 용도로 쓰려하다니.

하지만 은월각주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잘못을 만회할 수 있는 길이니까.

일은 잠시 부각주에게 맡겨두면 되는 일이다.

자신이 각주 자리까지 올라온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은신과 추적 능력이다.

그렇게 업무를 제쳐두고 그를 감시했더니 과연 도련님의 말이 맞았다.

다만 레이나가 습격을 받을 땐 곧장 나서기 힘들었다.

일격에 제압하지 않으면 놓칠 수도 있기 때문.

은월각주는 미리 언질 받은 대로 서진을 불렀고, 성공적으로 생포했다.

‘첫째 도련님이야말로 진정한 가주 후계자에 걸맞지 않을까.’

예전부터 한정후 집법당주를 따르긴 했지만, 긴말 없이 행동으로 자격을 입증하는 서진을 보고 있자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은월각주는 깊은 고심에 빠지기 시작했다.

**

해가 중천에 선 점심시간.

정보건은 물을 마시고 서진에게 말했다.

“그래서 가디언 길드장이 온다고?”

“어, 얘기 전했더니 직접 오겠다고 하던데. 바로 출발한다고 했으니 이제 몇 시간 후면 볼 수 있을 거야.”

“거참 빠르네. 하긴 아끼던 딸이 타국에서 죽을 뻔했다는데 어떤 아빠든지 바로 티켓 끊어서 날아오겠지. 안 그래도 지금 자리 비우기 힘들 텐데, 가디언 길드장도 머리가 복잡하겠어.”

“왜? 무슨 일 있어?”

“영국에서 유명한 던전있잖아. 가디언 길드가 공략권을 갖고 있는 나가의 미궁.”

던전의 환경은 다양하다.

황야, 산, 동굴, 설원, 화산지대, 바다 등등.

던전에 진입했을 때 어떤 광경이 펼쳐져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미궁은 독보적으로 특이한 던전이라 할 수 있다.

길을 잃으면 구조되지 않는 이상 죽을 수밖에 없는 던전.

다만 ‘나가의 미궁’은 십 년 가까이 된 지속형 던전이다보니 상세한 지도까지 나온 상태다.

공략을 위해 헌터들의 피로 완성된 지도였기에 지금에 와선 길을 잃는 공략팀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에 미궁이 격변했어. 구조가 아예 달라져서 당시 진입했던 공략팀은 전부 사망했고. 그 뒤로 길을 뚫기 위해 들어간 공략팀까지 대부분 나오지 못했어.”

정보건은 서진에게 관련 기사를 보여주며 말을 이었다.

“원래 황색이었던 미궁 벽도 보라색으로 변했어. 살아 돌아온 공략팀 말로는 몬스터도 이전보다 강해졌다고 하더라.”

정보를 접한 서진의 눈빛이 깊어졌다.

미궁에 나오는 ‘나가’라는 몬스터는 상체는 머리와 팔이 달린 인간 형체와 비슷하면서도 아래는 뱀이 달린 괴물이다.

참고로 이계에서 서진을 제일 괴롭혔던 몬스터이기도 했다.

미궁에만 처박혀 있을 것이지 툭하면 나와서 얼마나 공격해대는지.

초반에 나가 때문에 죽을 뻔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 기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이번에 미궁이 보라색으로 변했다면 분명 ‘나가엘리’가 나타난 것이다.

뱀파이어 로드 밑에 있는 사령급 같은 존재.

나가들의 왕 ‘나가라자’보다는 약하지만 일반 몬스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의 힘을 지녔다.

이계에서 소멸의 협곡에 추락했던 날.

중간에 교활하게 빠져나가더니 역시 살아있었나 보다.

서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복수도 하고 스텟도 대량으로 올릴 기회.

정보건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렇게 무섭게 웃냐.”

“가디언 길드장 오면 할 얘기가 생긴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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