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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21화 (121/141)

121화

“궁금하면 맞춰보든가.”

서진은 조금 전에 마도가주가 했던 말을 돌려주며 검을 들었다.

마도가주는 서진이 접근하기 전에 선공을 취했다.

풍회탄(風廻彈)

그의 손바닥에서 다섯 발의 마법 탄환 생성되어 발사되었다.

변주 없는 일직선의 공격이지만 권총탄과 맞먹는 속도.

하지만 아직 점멸 대기 시간이 돌아오지 않은 상황.

타앙!

서진은 급소 방향으로 오는 풍회탄만 막아냈다.

[민첩이 51 상승합니다]

마나전개와 여뢰가 아니었다면 몸이 따라가지 못했겠지.

5대 원소 중에서 제일 살상력이 뛰어난 바람 속성답게 마도가주의 마법은 상당히 위력적이었다.

공격뿐만 아니라 회피도 까다로운 상대다.

블링크를 연속으로 쓰는 마법사에게 어떻게 검을 찔러넣을 것인가.

성공할 수 있냐 없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리게 되겠지.

서진이 발을 움직이려 할 때 마도가주는 준비했던 마법을 발동했다.

적화조휘(赤火鳥揮)

새빨갛게 불타는 독수리 수십 마리가 공중에 떠올랐다.

홰애액!

불새들은 저마다 날개를 펼치며 서진을 향해 급강하했다.

광범위한 영역을 장악하는 화염 마법은 서진의 움직임을 제한하기에 제격이었다.

하지만 마도가주가 미처 염두에 두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바로 화염 내성이 7레벨이라는 것.

서진은 앞길에 방해되는 불새만 쳐내며 마도가주와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화염이 잘 통하지 않는가 보군. 하지만 완전한 내성은 아니야.”

마도가주는 단번에 내성의 수준을 꿰뚫어 보고 더욱더 짙은 화염을 불살랐다.

풍화격장(風火激障)

바람 속성에 화염을 더해 공동이 가득 찰 정도로 규모를 키운 불길이 서진의 앞을 막아섰다.

서진도 마냥 무시하고 전진하기 힘들 정도의 열기.

백창(白槍)

주변의 공기까지 순식간에 앗아가는 화염 너머에서 또 하나의 마법이 날아온다.

파앙!

서진은 강화된 육감과 반사신경으로 바람으로 만들어진 창을 쳐냈다.

[체력이 53 상승합니다]

흡수된 스텟이 방금 마법에 담긴 살상력이 매우 높다는 걸 증명해주고 있었다.

화염 마법으로 활동 반경을 제한한 뒤 관통력 높은 바람 마법으로 숨통을 끊어내려는 전술.

범위와 단일 마법을 절묘하게 활용해 서진을 압박하는 것이다.

‘우선 답답한 공기를 만드는 불길부터 꺼트려야겠지.’

서진은 흑룡검술이 아닌 원소마법을 꺼냈다.

‘블리자드 플라워.’

곡선으로 휘어지는 검로를 따라 시리도록 새하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얼음으로 이루어진 꽃잎들은 화염과 닿자마자 서리를 퍼트리며 터져나갔다.

“저건?”

마도가주조차 놀랄 만큼 정교한 마법 발현.

5레벨에 벌써 빙결 마법을 시전하는 것도 대단한데 그중에서도 고난이도 마법을 선보이다니.

화아아악!

불길로 가득했던 공간이 서진을 중심으로 백색의 서리가 퍼지며 열기가 시들어간다.

서진과 마도가주 사이에 3레벨의 마법 격차가 존재함에도 블리자드 플라워는 기세를 잃지 않고 확장되어 갔다.

서진의 마법 실력과 속성 간의 상성이 시너지를 일으킨 것이다.

앞길을 뚫은 서진은 다리에 마나를 집중해서 가속했다.

지근거리에 도달한 서진의 검이 마도가주를 목과 어깨 사이를 노리고 내리그어졌다.

풍벽첩(風壁疊)

그때 여러 겹의 얇은 바람벽이 나타나 서진의 검과 충돌했다.

하지만 급하게 만들어낸 방어 마법으로 흑뢰검을 막는다는 건 불가능하다.

콰아앙!

뇌검이 풍벽첩을 종이 자르듯 가르는 순간, 마도가주는 블링크로 자리를 벗어났다.

두 번 연속해서 쓸 수 있다 해도 나름 아끼려 방어마법을 두른 모양인데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간신히 잡은 마도가주가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갔지만 서진은 그대로 둘 생각이 없었다.

흑룡검술 제5식 전광검.

마도가주가 마법을 쓰기 전에 느려진 흐름으로 정신을 붙잡았다.

눈 깜빡임마저 아주 느릿하게 보이는 시간 속에서 서진의 검 끝이 마도가주의 목을 향했다.

파지직!

강렬한 스파크가 발산되며 흐름이 돌아온 순간, 마도가주는 다시 공격을 피했다.

‘두 번째 블링크.’

여기까진 예상했다.

서진은 곧바로 묵령검의 ‘사령은신’을 발동했다.

어두컴컴한 영혼들이 땅에서 솟구쳐 나와 서진을 감싸며 존재를 가렸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쿨타임이 돌아온 점멸을 사용해 마도가주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마도가주는 서진을 막아줄 마법을 발동해냈다.

풍여와(風余渦)

발밑에서 회오리치는 바람이 작은 토네이도를 형성하여 마도가주를 보호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도가주에게 향하는 서진의 움직임은 망설임이 없었다.

‘뇌영환보.’

사령은신 상태의 서진이 둘로 나뉘어 분신이 먼저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극한까지 압축된 뇌검은 소용돌이와 격돌하여 빈틈을 만들었다.

풍여와가 흔들리는 순간, 서진의 검이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파지지직!

칠흑의 전격은 무자비하게 마도가주를 집어삼켰다.

“크아악!”

서진이 어느 방향에서 올지 몰라 실드를 8중첩까지 쌓고 있었음에도 번개가 닿았다.

풍여와에 실드까지 이리 쉽게 갈라버릴 줄이야.

마도가주는 발밑에 바람을 일으켜 한 번에 뒤로 물러났다.

“으윽.”

마지막 실드 한 장이 완전히 깨지진 않아서 치명상은 피했다.

옷이 피로 붉게 물들고 있지만 마도가주의 의식은 더욱 또렷해졌다.

은연중에 서진을 아래로 여기던 자만심을 버려야 했다.

나가의 힘을 받았음에도 이 지경이라니.

마도가주는 무너지는 자존심을 멀리 치워버리며 마나를 끌어냈다.

하지만 마법이 완성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푸욱!!

흑룡검술 제8식 무영뢰.

마도가주가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서진은 이미 접근해 있었으니.

검은 번개가 덧씌워진 검은 정확하게 심장을 뚫었다.

“끄...억.”

마도가주는 제대로 된 말도 잇지 못하고 눈을 뜬 채로 절명했다.

서진은 기쁘지도 통쾌하지도 않은 감정으로 검을 빼냈다.

시체가 돼버린 마도가주의 몸에 보존 마법을 걸고 확장 마법이 각인된 가방에 넣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났군.”

마도가주가 지닌 실력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한 격전이 계속 이어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리 허무할 정도로 죽일 수 있었던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마법사로서의 기본 소양을 저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마도가주가 조금만 더 냉정했다면 전투의 양상은 다르게 흘러갔을 터.

사령은신과 무영뢰의 조합이라 해도 8레벨 마법사가 작정하고 감지한다면 눈치채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다.

이는 마도가주의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는 증거.

물론 그 정도로 차분한 이성을 유지했다면 여기서 기다리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의미가 없는 가정이다.

그럼에도 곱씹고 있는 이유는 뒷맛이 씁쓸하기 때문이겠지.

“후우.”

서진은 짧은 한숨으로 잡념을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설하윤과 베리크가 나가 석상과 함께 이동했지만 엄청 위험할 거라 생각되진 않는다.

‘그렇지만 합류는 해야 하니.’

서진은 공간 전이 했을 만한 곳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미궁의 전체 구조가 머릿속에 들어있으니 찾는 건 어렵지 않다.

**

“어이. 우리도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주인을 찾아야지.”

나가의 석상 파편들이 흐트러져 있는 미궁 안.

공간 전이로 오게 된 이 거대한 방은 입구도 출구도 없는 밀폐된 곳이었다.

움직이는 나가 석상을 다 부숴버린 지 약 20분 정도 흐른 지금, 베리크는 답답함과 지루함이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에 있을 거야.”

“서진 님이 곧 오실 테니 기다려야 합니다.”

베리크의 투정에 설하윤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미궁의 지리는 서진이 제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괜히 이쪽에서 찾는답시고 움직인다면 엇갈리게 되어 시간만 버릴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여기서 빨리 나가고 싶은데.”

베리크는 축축하고 음습한 미궁에서 가만히 있자니 견디기 힘들었다.

“으으!”

통제 가능한 서진이 없으니 슬슬 멋대로 행동하려고 하는 베리크.

“안됩니다.”

설하윤은 무력을 써서라도 막을 생각이었다.

그때 한쪽 벽면이 갑자기 터졌다.

그리고 설하윤과 베리크에게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리크, 넌 앞으로 하윤 씨 말에도 복종할 것.”

서진은 벽을 부순 검을 늘어트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쓸데없이 움직였으면 찾기 귀찮을 뻔했잖아.”

“서진 님!”

설하윤은 서진이 다친 데는 없는지 살폈다.

서진은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계속 가보죠.”

“괜찮겠습니까? 마도가주 상대하면서 상당히 심력을 소모하셨을 텐데.”

“생각보다 오래 걸리진 않아서요. 그대로 갈 겁니다. 거의 다 왔으니까요.”

설하윤과 베리크가 공간 전이한 이 방은 보스방과 가까이 있었다.

**

“용케도 여기까지 왔구나.”

미궁의 최심부에 도달하니 나가엘리가 목소리를 깔며 무게를 잡고 있었다.

이계에서 저놈을 봤던 서진은 그런 모습이 같잖아서 실소했다.

그러자 나가엘리가 심기가 상한 듯 붉은 눈동자를 섬뜩하게 빛냈다.

“누가 웃은 것이냐.”

“내가.”

“감히...”

나가엘리가 건방진 인간을 직시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허억!”

표정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반갑군.”

“네, 네가...왜 여기에?”

이계에서 지구로 귀환하면서 한번 몸을 갈아타긴 했지만 어차피 같은 얼굴이다.

나가엘리는 단번에 알아봤다.

“오랜만이지? 네가 마지막 기회를 걷어찼으니 결말을 맺어주러 왔다.”

사실 서진은 저 나가엘리를 죽일 기회가 있었다.

초창기에 나가에 미친 듯이 시달리며 살아남아서 결국 투신이 되고 난 뒤, 미궁에 쳐들어간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울며불며 엎드려 빌길래 흠씬 두들겨 패는 대신 살려주었다.

당시에 서진의 정신도 정상이 아닐 때라 변덕이 심했던 시기였다.

어쨌든 그렇게 넘어가 줬는데 아니나 다를까, 나가엘리는 투신 척살전에 참여했다.

투신인 서진이 이계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원흉으로 지목되고 전쟁이 시작되어 소멸의 협곡에 떨어지게 되기까지.

나가엘리는 그 척살전의 중반에 간을 보며 들어와 후반에 전투가 격화되자 몸을 내뺀 것이다.

하여간 제 목숨 하나만큼은 끔찍이 챙기는 놈이다.

서진의 섬찟한 살기를 감지한 나가엘리는 허리를 숙이며 빌기 시작했다.

“그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사실 저도 억지로 참여한 거라...”

“하. 거짓말을 하려면 좀 그럴듯하게 하던가.”

당시 번들거리는 눈빛으로 성주들 뒤에 숨어 공격을 날리던 나가엘리의 모습이 아직 또렷하게 남아있다.

“흥, 숙여줬더니 주제도 모르고! 보아하니 예전보다 약해진 것 같은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이곳을 네 무덤으로 만들어주마.”

나가엘리도 큰 기대는 안 했는지 바로 돌변하며 손에 든 검으로 바닥을 강하게 찍었다.

쾅!

그러자 서진이 들어온 입구 방향에서 수많은 나가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크하하! 살아서 나갈 거라 생각하지 마라!”

확신에 찬 웃음을 터트리는 나가엘리.

하지만 서진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설하윤을 불렀다.

“하윤 씨.”

“예.”

눈짓으로 의사를 전달받은 설하윤은 나가 무리를 향해 거대한 은빛 검기를 쏘아 보냈다.

콰가가가!

일격에 쓸려나가는 수십 마리의 나가들.

눈앞에서 압도적인 강함을 체감한 나가엘리는 식은땀을 흘렸다.

“이제 네 차례다.”

“잠, 잠시만..!”

서진은 가뿐하게 씹으며 흑뢰를 방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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