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22화 (122/141)

122화

크아악!

나가엘리는 겁먹은 척 눈을 깔다가 입을 벌리고 독을 쏟아냈다.

‘하여간 교활한 놈이야.’

서진은 피식 웃으며 그대로 독무에 뛰어들었다.

8레벨급의 독 면역이 있는 서진에게 나가엘리의 독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독을 타고 전해지는 나가 특유의 악취가 더 견디기 힘들 정도.

일반 나가들은 견딜만 했는데 상위종이라 그런지 후각으로 전해진 냄새 때문에 정신이 조금 어지럽다.

“뭣?”

나가엘리는 전혀 물러서지 않는 서진을 보며 당황하며 뒷걸음쳤다.

촤악!

서진의 검은 나가엘리의 오른팔을 잘라냈다.

“키아아악!”

“시끄럽군.”

서진은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나가엘리는 들고 있는 철퇴로 어렵사리 서진의 뇌검을 쳐냈다.

그리고 무게추가 바닥을 때리자 막대한 마나가 폭사되어 전방을 휩쓸었다.

“그게 네가 흡수한 영혼의 스킬이군.”

방금 무기를 부딪치며 느꼈듯이 나가엘리의 근력은 서진보다 약하다.

그럼에도 튕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철퇴와 연계되는 스킬 때문이겠지.

하지만 나가엘리가 죽인 헌터가 과연 서진보다 강할까.

그럴 리가 없다.

애초에 미궁 속에 몸을 숨기고 있는 이유는 비교적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던전이 복잡한 구조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토벌되었을 터.

성주급인 ‘나가라자’라면 모를까 나가엘리급은 마도가주보다 약한 존재다.

물론 이계에서 지구로 건너오면서 약화된 면도 있겠지만.

서진은 빨리 끝내기 위해 흑뢰를 최대한 방출했다.

어차피 퇴로가 없는 나가엘리는 지닌 마나를 전부 꺼내 철퇴를 휘둘렀다.

[근력이 49 상승합니다]

콰과가가!

서진은 투기를 흡수하며 거대한 마나 폭풍을 직시했다.

강해 보이긴 하지만 그뿐이다.

멋대로 발산하는 뇌기를 다듬은 서진은 한 발짝 내딛으며 검을 내리그었다.

횡으로 곧게 뻗어나간 검강은 마나 폭풍을 반으로 가르며 나가엘리를 직격했다.

촤아악!

제법 튼튼한 몸을 갖고 있는 나가엘리는 피를 울컥 쏟아냈지만 목숨줄은 붙어있었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은 시점에서 나가엘리의 죽음은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서진은 점멸로 거리를 좁히고 전광검으로 목을 쳐냈다.

서걱.

그리고 목이 분리되어 바닥에 떨어진 나가엘리의 사체에서 심장을 도려냈다.

이 심장이 있어야 나가라자의 악취에 흔들리지 않고 정상적으로 싸울 수 있다.

‘그때는 베리크는 못데려가겠군.’

일반 나가 미궁도 견디기 힘들어하는데 나가라자는 근처에 가기도 싫어하겠지.

후각이 남들보다 뛰어나니 나가엘리의 수십 배나 되는 악취를 내뿜는 나자라자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서진이야 나가엘리 심장으로 충분하지만 말이다.

**

쿠구구궁!

미궁의 주인, 나가엘리가 죽어버리자 십 년 가까이 유지되었던 던전은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던전의 소멸을 지켜보던 가디언 길드장은 만감이 교차했다.

길드의 재정을 든든하게 받쳐주다 최근엔 골칫덩이로 전락한 나가의 미궁이 소멸하는 모습에 심경이 복잡할 터.

핵심 수익원이 사라졌지만 뭐라 말할 순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딸을 살린 은인이 한 일이기에.

프레드릭은 공략하고 나온 서진과 악수하며 입을 열었다.

“이제 가시는 겁니까?”

혹여나 주위에 누가 들을까 한껏 낮춘 목소리.

서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럼 가디언 길드에서도 준비하겠습니다.”

서진이 영국에 온 목적은 나가의 미궁 공략만이 아니었다.

‘남의 가문을 함부로 들쑤셨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지.’

흑룡대 심사를 이용해서 암살을 행한 짓거리를 흑룡검가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레이나가 한치성 소속 팀원이라 해도 가문을 건드린 건 마찬가지다.

그러니 가디언 길드가 암살을 공표하기 전에 흑룡검가에서 먼저 나서야 하는 것이다.

‘전쟁을 해도 상관없으니 확실하게 보여주고 오너라. 흑룡검가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영국으로 가기 전, 흑룡가주가 서진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리고 흑룡검가에서 그리 방침을 정한 이상, 가디언 길드는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서진이 보복을 감행한 직후에 곧바로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전면전을 벌이는 것.

그 뒤에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서진이 관여할 바는 아니다.

가디언 길드에서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하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 포스터 길드는 반쯤 무너질 테니까.

서진은 설하윤과 베리크와 함께 포스터 길드로 향했다.

“저깁니다.”

안내역으로 따라붙은 가디언 길드원이 포스터 길드 건물을 손으로 가리켰다.

서진은 전면이 전부 유리창으로 번쩍이는 20층짜리 건물을 올려다봤다.

“부수는 맛이 있겠네요. 길드장은 최상층에 있습니까?”

“그, 그렇습니다.”

가디언 길드원은 긴장어린 기색으로 답했다.

서진은 마나를 발아래로 흘리며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아스팔트가 파이며 서진의 몸은 위로 솟구쳤다.

벽을 밟으며 올라가니 순식간에 20층이었다.

콰앙!

서진은 두꺼운 외벽 유리창을 일격에 깨버리고 길드장실에 착지했다.

의자에 앉아있던 포스터 길드장은 난데없는 침입에 비산하는 유리 파편을 뒤집어썼다.

“큭! 어떤 새끼야!”

책상 아래 긴급 호출 버튼을 누른 길드장은 눈을 부릅뜨며 침입자를 확인했다.

“넌..!”

이름은 몇 번이고 들었으며, 얼굴은 해외 뉴스를 통해 두어 번 본 적이 있었다.

“흑룡검가의 한서진.”

“그쪽은 포스터 길드장, 로건 포스터 맞지?”

“이게 무슨 짓이냐!”

“무슨 짓이긴, 네 암살 사주 때문에 온 건데.”

“그걸 어떻게?”

서진은 암살자 루벤을 포획한 직후에 바로 흑룡검가의 뇌옥에 가두어 철저히 통제했다.

아직까지 암살이 실패했다는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할 정도.

암살이 실패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 로건의 얼굴이 붉으락해졌다.

“그렇다 해도 이런 식으로 쳐들어와? 국가 간 외교 문제로 번질 텐데 감당할 수 있겠어?”

가뜩이나 두 달 전 자폭 테러 때문에 시가지에서의 마나 사용에 아주 예민해져 있는 상황.

포스터 길드에서 먼저 잘못을 하긴 했지만 서진의 무력 침입을 문제로 삼을만한 여지가 있었다.

그리고 흑룡검가가 강하다고 한들 이곳은 영국.

함부로 힘을 쓸 수 없을 터.

하지만 이 모든 건 포스터 길드장의 얕은 판단이었다.

그는 상기했어야만 했다.

적륜성이 흑룡검가 헌터로 인해 지워져 버린 사건을.

“외교 그딴 건 상관없어.”

서진은 차가운 미소를 흘리며 검을 들었다.

그때 포스터 길드의 공략팀장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길드장님!”

공략팀장, 코터는 타워실드를 앞세운 채로 서진을 노려봤다.

“길드장님, 이 자는 제가 막을 테니 어서 피하십시오.”

포스터 길드장은 주력기가 원거리 공격 스킬이라 접근전에 매우 취약했다.

“누구 맘대로.”

서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늦게 올라온 베리크가 공략팀장에게 뛰어들었다.

“크릉!”

그사이 포스터 길드장이 빠져나가려 했지만 서진이 놔줄 리 없었다.

서진은 그의 뒷목을 움켜쥐고 전격을 때려 넣었다.

파지지직!

“아아악!!”

포스터 길드장의 체내에 파고들어간 전류는 마나가 모여있는 단전을 헤집었다.

용체화의 묘리가 담겨있는 전격은 단전을 철저하게 파괴하기 시작했다.

서진의 목적은 포스터 길드장을 마나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

용체화의 숙련도가 많이 쌓인 덕분인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전격을 거두자 그는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서진은 축 늘어진 길드장을 바닥에 던졌다.

나머지는 가디언 길드의 몫이다.

**

서진이 포스터 길드를 급습한 사건 때문에 영국은 발칵 뒤집혔다.

자폭 테러의 악몽이 이제야 잊혀져 가는데 또다시 비슷한 일이 벌어지다니.

물론 이번엔 일반인 피해자는 한 명도 없고 포스터 길드장만 중상을 입었을 뿐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받은 충격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다.

포스터 길드가 어떤 곳인가.

가디언 길드 다음으로 강한 곳이 아니던가.

기습적인 공격에다 포스터 길드장이 근거리에 약하다 해도 무기력하게 당한 사실을 쉬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하지만 서진을 향해 여론이 과하게 쏠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습격 직후에 가디언 길드에서 발표한 내용 때문이었다.

레이나 블랜차드 암살당할 뻔한 얘기와 전면전을 선언한 탓에 사람들의 이목은 분산되기 시작했다.

다만 서진은 그런 여론에 신경 쓸 생각도 겨를도 없었다.

-서진아, 약화련이 습격받았다.

정선이 보내온 한 통의 문자 때문에.

서진은 먼저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이 저녁 6시니까 시차를 계산하면 한국은 대략 새벽 3시.

전쟁이나 보복이 아닌 은밀한 목적을 갖고 심야에 쳐들어간 듯했다.

서진은 바로 정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도 지금 막 전해 들어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약화련에 대여섯 명이 잠입하다가 천궁 길드원에게 들키는 바람에 전투가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건물이 좀 무너졌다.

“그놈들은요?”

-놓쳤다. 너도 알다시피 약화련엔 비전투원이 많은 데다 천궁의 집행부가 도착하기 전에 내뺐다고 하더라.

서진에게 약화련 습격은 남 일이 아니다.

약제원과 협력해서 마광병 치료약을 개발하고 있는 관계이기에.

“하윤 씨, 아무래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다음날 출국하려고 했지만 그런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베리크는 은색 꼬리를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런데 괜찮은 거냐? 출국 금지 어쩌고 떠들어대던데.”

“괜찮아. 그 정도는 가디언 길드에서 막을 테니까.”

**

영국이 난리 나든 말든 무사히 한국에 도착한 서진은 곧바로 백야의 한약방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외관은 멀쩡한 모습이다.

지상 5층, 지하 7층으로 이루어졌기에 지상이 괜찮다면 지하에서 전투가 벌어졌다는 거겠지.

서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 5층으로 올라갔다.

커튼으로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을 가린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약화련주가 보였다.

“어서 와.”

“대충 듣긴 했는데 다친 곳은 없습니까?”

“운이 좋았지. 골절로 끝났어.”

최이린은 가운 안쪽에 깁스한 왼팔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상황은 단순해. 약화련에 누군가 쳐들어왔다가 천궁 길드원에게 들켜서 전투를 벌이다 감쪽같이 도망간 게 전부야. 그 과정에서 지하 연구실이 무너져서 새로 리모델링해야 하고.”

“그럼 마광병 연구 데이터와 샘플은?”

“그거 포함해서 사라진 자료가 몇 개 있어. 아마 그게 놈들의 목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도 빨리 발견해서 중요한 건 못 가져갔더라.”

누군지는 몰라도 놈들이 실수한 점은 천궁 길드원이 지켜보고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

잠입을 빠르게 눈치채지 못했다면 다 털렸을지도 모른다.

최이린은 길이가 짧아진 담배를 끄며 옅게 웃었다.

“네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고마워.”

서진과 천궁 길드장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기에 그의 협력 연구조직인 약화련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일단 천궁이나 은월각에서 조사는 하고 있을 테지만 개인적으로 짚이는 곳은 있어. 너도 알고 있는 곳이야.”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