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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25화 (125/141)

125화

눈 깜짝할 사이에 파고들어 간 서진의 뇌격.

하지만 바네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숙이는 것만으로 피해냈다.

그 상태에서 서진의 복부를 향해 올라오는 발차기.

서진은 급하게 검을 회수하며 뒤로 물러났다.

서로 공격이 맞지는 않았지만 실력의 수준을 대략 가늠할 수 있었다.

그 증거로 바네사는 오래간만에 만족스러운 눈빛을 보이고 있었다.

“제법인데.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간다.”

제혼쇄검(帝魂碎劍) 제1식 중검참(重劍斬)

우웅!

그녀의 검에서 울려 퍼진 둔중한 소리와 함께 대지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내려앉았다.

서진이 쉽게 움직이지 못할 정도의 압력.

그렇게 멈칫하는 사이 대검은 머리를 향해 낙하하고 있었다.

1식도 못 이겨내고 절단돼버린 헌터가 수천은 넘어간다.

과연 한서진은 어떤 대응을 보여줄지.

바네사가 입꼬리를 올리며 내려치는 검에 힘을 더한 순간, 서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음?’

하지만 곧바로 그녀의 감각은 서진이 바로 자신의 뒤로 이동했다는 것을 잡아냈다.

바네사는 내려 베기 하던 검을 그대로 땅에 꽂으며 검을 지지대 삼아 뛰어올랐다.

파직!

가까스로 스쳐 지나간 전격.

바네사는 살짝 소름 돋는 스릴이 즐거워 진한 미소를 지었다.

중검참을 가볍게 벗어난 걸로도 모자라 위험한 반격까지 하다니.

“흑룡검가의 한서진이 강하다더니 뜬소문은 아니었나 보네.”

서진도 내심 놀라고 있었다.

무영뢰에다 전광검까지 가볍게 피해버렸으니까.

역시 단순한 기습이 먹힐 헌터는 아니었다.

잠시 서로를 응시하며 생긴 침묵 속에서 바네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말야, 마령전에 들어오는 건 어때.”

“뭐?”

“미궁에서 마도가주 그놈이 뭐라 떠들지 않던?”

“종속된 세계 어쩌고 하는 건 들었지.”

“반응을 보니 내키진 않나 본데.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봐.”

“어이가 없군. 흑룡검가의 후계자더러 마령전에 들어오라고?”

“그 멋들어진 간판도 어차피 쓸모 없어질 테니까.”

서진은 여유로운 바네사의 표정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럴만한 상황을 너희들이 만든다는 건가.”

“이런, 힌트를 너무 많이 줬나?”

그러면서 바네사의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다.

이 정도는 알려줘도 전혀 상관없다는 태도.

이미 방해하기는 늦었거나 방해해도 이뤄낼 자신이 넘치거나.

“마력석을 수집하는 것도 그 일환인가.”

“비슷해.”

“그렇군, 알려줘서 고맙긴 하지만 내 대답은 거절이다.”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마령전에 들어오지 않으면 넌 죽어.”

서진은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마령전에 해가 되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가?”

“잘 알고 있네.”

“그래도 대답은 같아. 마령전 때문에 죽을 거라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서.”

“실력은 제법이지만 자만심이 과한데.”

“자만인지 아닌지 네가 확인해 보던가.”

“그래야 되겠어.”

제혼쇄검 제3식 편검환(鞭劍幻)

대검을 두르고 있던 검강이 길게 솟구치며 서진을 향해 쏘아졌다.

검강의 곧은 형태를 무너트리고 유선형의 궤적을 그리며 시야를 교란한다.

마치 채찍 같은 움직임이지만 8레벨 극한에 달한 헌터의 검강이란 걸 잊으면 안 된다.

어지간한 절삭력으론 다가오는 검강 채찍을 끊을 수 없다.

흑룡검술 제1식 개변·일섬(改變·一殲)

안드레이와의 일전에서 보였던 변형 기술이 다시 한번 펼쳐졌다.

한순간에 흑뢰를 압축시킨 서진의 뇌검은 섬전처럼 편검환의 허리를 잘라냈다.

아나콘다처럼 서진을 옭아매려는 검강이 깔끔하게 반 토막 났다.

서진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흑룡검술 제3식 나선뇌격포.

바네사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중거리에서 전격이 발사되었다.

그녀는 급히 검강이 덧씌워진 넓은 검면을 들어 포격을 받아냈다.

콰앙!

여태까지 입구에서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던 바네사의 몸이 사옥 로비 안까지 밀려났다.

‘사령은신.’

그녀의 방어태세가 풀리기 전에 서진은 기척을 지우며 거리를 좁혔다.

“큭.”

흑룡검술 제8식 무영뢰.

뇌격포 방어 직후, 짧은 신음을 흘리는 바네사의 정면에서 서진은 8식을 펼쳤다.

간파당했던 아까와 달리 이번엔 사령은신이 더해졌다.

중첩된 기술의 효과로 과연 바네사의 괴물 같은 기감을 속여 넘길 수 있을지.

서진은 불확신을 품은 채 바네사의 목을 향해 뇌격을 내질렀다.

키이잉!

기묘한 마찰음과 함께 푸른 색광이 번뜩이며 시야를 어지럽혔다.

본능적인 위협을 느낀 바네사가 대검으로 무영뢰를 맞받아치며 터져 나온 현상이었다.

자칫하면 목이 뚫릴 위험에도 바네사는 방어나 회피 대신 공격을 택한 것.

덕분에 양측의 상태는 멀쩡하지 않았다.

바네사는 좌측 어깨에 깊은 자상을 입었고, 서진은 팔뚝이 찔려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둘은 동시에 검을 다시 부딪치고 반탄력으로 거리를 벌렸다.

바네사는 잠깐 중얼거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뭐? 알았어.”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보인 그녀는 대검을 오른쪽 어깨에 걸치며 말했다.

“다음에 봐야겠네. 간다.”

그러고선 서진이 막을 새도 없이 사라졌다.

서진은 그녀의 마나를 떠올리며 기감을 확장했다.

‘없다.’

주변에 바네사의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니 텔레포트는 아닐 테고, 아마 아티팩트의 효과일 터.

뒤를 돌아보니 세 마리의 소환수도 이미 없어졌고 결계도 사라졌다.

완전하게 철수했다는 의미.

서진은 설하윤과 마관청 요원들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다.

설하윤은 검은 가죽옷이 검붉게 될 정도로 사투를 벌였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하기야 헬와이번과 데스나이트를 동시에 상대했으니 그럴만했다.

전투가 조금 더 지속되었다면 서진은 몰라도 설하윤은 큰 부상을 입고 마관청 요원은 몇몇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마령전은 왜 물러났을까.

그에 대한 의문은 금세 풀렸다.

RS제약 사옥을 향해 다수의 헌터가 몰려오고 있는 게 보였으니까.

수도방위사령부 소속의 헌터들과 철혈백가의 무력부대.

‘그러고 보니 여기가 서울이었지.’

결계를 유지하고 있던 게일러가 저들의 접근을 알아채고 후퇴한 모양이다.

사실 그 세 마리의 소환수와 바네사의 무력이라면 지금 오고 있는 이들 전부 동시에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제일 강한 바네사를 서진이 묶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되는 전력이 부담스럽게 느껴졌을 터.

설하윤이 두 마리를 어떻게든 상대해냈다는 점도 예상외였을 것이다.

결국 물러날 수밖에 없었겠지.

“수고하셨습니다. 서진 님.”

“하윤 씨도요.”

기진맥진한 설하윤을 보며 서진도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

RS제약의 김창주 회장은 마관청 요원에게 결국 붙잡혔다.

부산항을 통해 일본 후쿠오카로 가려고 했지만 배에 타기도 전에 잡아냈다.

일반인이라 신병을 구속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곧바로 마관청 수사실로 직행했다.

퍼억!

CCTV도 없는 회색 벽면으로 밀폐된 방.

서진은 김창주의 복부를 걷어찼다.

“커헉!”

명백한 죄가 있는 데다 도주하다 잡혔으니 더 이상 일반인이라고 봐줄 필요가 없었다.

물론 서진은 레드체인에게 사주한 사실을 안 시점부터 용서할 생각이 없었지만.

현재 서진은 마관청장의 편의를 받아 수사실에서 김창주와 독대하고 있었다.

“금고 여는 방법을 말해.”

대형 마력석 하나는 마령전에서 가져갔지만 아직 하나가 남아있었다.

먼저 취조했던 얘기를 들어보니 하나는 바로 넘겨주었고 다른 하나는 30분 뒤에 카드가 활성화되게끔 설정해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령전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철수했고 카드를 전부 가져갔다.

다만 김창주 회장은 카드가 없어도 열 방법을 알고 있을 터.

금고의 개폐를 보험도 없이 카드 두 개로만 의존할 리가 없으니.

“빨리 대답하면 그나마 몸 성하게 교도소 가겠지만 아니면 상상에 맡기지.”

“끅.”

마치 울분이 차오르는 표정을 짓는 김창주 회장.

서진이 몇 대 더 패주니 바로 고분고분해져서 입을 열었다.

“...자택에 비상용 카드가 있네.”

서진은 구현수 비서를 시켜서 카드를 가져오게 했다.

마관청에서 대형 마력석을 탐내는 기색은 보였지만 이건 서진이 가져갈 생각이었다.

습격을 받고 고생까지 했으니 보상을 챙길 자격이 있었다.

그리고 RS제약이 생산하는 프리미엄급 항마제의 성분과 제조 방법까지 넘겨받기로 했다.

약화련주와 정선 아저씨가 마광병 신약 개발에 도움이 되는 자료라며 얻고 싶어 하길래 이 기회에 챙기기로 했다.

명분을 쥐고 있을 때 최대한 뜯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서진은 카드의 생체 데이터를 활성화시킨 다음, RS제약 본사의 지하로 향했다.

곁에는 아기용, 샬롯이 함께 있었다.

위험한 곳엔 못 데리고 다니지만 이럴 때는 괜찮으니.

누가 보면 이목을 쉽게 끌어들일 테니 투명화 마법을 걸어두었다.

“아빠, 빨리!”

어이없는 호칭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고치라고 해도 들어 먹질 않으니 반 포기 상태였다.

금고가 열리니 영롱한 빛을 내뿜는 거대한 마력석이 시야에 가득 찼다.

샬롯은 마력석을 향해 쪼르르 날아갔다.

아무래도 마음에 든 모양이다.

우우웅!

그때 마력석 안에 들어있던 마나가 샬롯에게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니 샬롯이 흡수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정확한가.

깊이를 알 수 없는 호수 같은 마나가 샬롯에 의해 사라지기까지 1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

서진의 여러 감정이 섞인 시선이 꽂히자 샬롯은 황금빛 눈동자를 굴리더니 얌전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서진의 다리에 들러붙어서 비비적거린다.

“하아. 샬롯.”

서진이 말을 하려는 순간, 시스템 창이 주르륵 나타났다.

[‘샬롯’이 대량의 마나를 흡수했습니다]

[‘샬롯’과의 마나 공유 수치가 15%로 증가합니다]

[용체화의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마력이 100 상승합니다]

[지력이 100 상승합니다]

“음.”

별로 크지도 않았던 화가 말끔히 풀렸다.

마나 공유를 어떻게 올리나 했더니 흡수하게 놔두면 되는 거였나.

알에서 깨어나서 그런지 이제 혼자서도 잘 먹을 수 있는 것 같다.

서진은 샬롯을 두 손으로 들고 마나량을 확인했다.

‘헌터로 치면 대략 4레벨 수준의 양.’

깨어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이 정도라니.

그만큼 대형 마력석에 담겼던 마나가 많았다는 거겠지만.

어쨌든 많이 흡수할수록 성장이 될 테고 스텟 면에서도 득을 보게 되겠지.

서진의 표정이 풀리자 샬롯은 꼬리를 흔들며 머리 위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

흑룡검가 가주실.

가주에게도, 그의 비서에게도 굉장히 의외의 손님이 발을 들이고 있었다.

“잘 지냈는가.”

“내가 할 말을 자네가 하면 어떡하나. 정정해 보이니 됐군.”

한벽호는 헌터협회장을 맞이하며 반대편 소파에 앉았다.

“내가 정정한 거야, 그쪽 손자 덕분이지.”

“불만은 없어 보이는군.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협회장의 마나 운용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한벽호는 단번에 알아봤다.

마치 물탱크에 물은 많은데 마음대로 꺼내쓸 수 없는 상태와 같았다.

“자네는 모르겠지만 죽다 살아나면 움직이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하게 된다네.”

“그러면 됐고.”

서로 차를 한잔 마시며 짧은 침묵이 지나가고 한벽호가 입을 열었다.

“한창 바쁜 사람이 여긴 웬일인가.”

“무슨 일이긴, 자네가 가문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으니 내가 왔지. 그놈의 무관심은 여전하구만 그래.”

“시답잖은 소리 할 거면 가는 게 어떤가.”

그에 협회장은 대뜸 본론을 던졌다.

“소가주직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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