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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33화 (133/141)

133화

“하긴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아미르는 날이 선 한치성의 반응을 적당히 넘기며 말을 꺼냈다.

“어떤 놈인지 확실치도 않은 나의 요청을 받고 냉큼 왔다는 게 중요하지 안 그래?.”

“사족 그만 붙이고 본론을 얘기해. 한서진 때문에 당신도 나를 보자고 한 거 아닌가?”

“아주 가시가 돋쳐있군. 어쨌든, 너와 나의 목적은 같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야겠지.”

아미르는 마스터의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

한치성은 소가주가 된 서진을 없애기 위해.

이유는 달라도 원하는 바는 일치한다.

조금 누그러진 분위기 속에서 아미르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묻겠는데, 현재 한서진을 죽이기 위한 계획이 있나?”

“그건 왜 묻지?”

“듣고 쓸만하다면 이용해야지. 그런데 반응을 보니 없나 보군. 그러면 내가 수립한 계획에 철저히 따라줘야겠다. 불만은 없겠지?”

한치성은 불만인 듯 입매를 비틀었지만 고개를 까딱이며 승낙했다.

“충돌이 없어서 좋군. 그럼 유니온의 계획으로 진행하지.”

사실 아미르는 뻔히 예상하고 있었다.

한서진의 무력은 이미 한치성을 넘어섰다.

아미르가 판단하기에 현재 한서진은 8레벨이다.

그 정도 되면 암살자를 고용해도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8레벨 검사를 상대로 함정을 파서 습격한다고 해도 힘이 약하면 되레 당하게 된다.

암살 계획을 짜는 단계부터 난관에 부딪혔을 게 뻔하다.

‘혹시 어쩌면 9레벨에 도달했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아미르가 여유를 가지는 이유는 같은 9레벨이라는 점과 유일무이한 스킬 때문이었다.

한서진의 레벨이 뭐든 간에 정면에서 붙어서 꺾을 자신이 있었다.

여기에 함정까지 끼얹어주면 금상첨화니 실패할 리가 없을 터.

“그럼 한서진을 어디서 죽일 생각이지?”

“계획은 기밀이라 함부로 답해주기 곤란한데.”

“뭐?”

한치성이 인상을 찌푸리자 아미르는 길게 내려온 앞머리를 뒤로 넘기며 답했다.

아미르는 은근히 드러나는 한치성의 조바심을 즐기고 있었다.

“너무 화내진 말고, 그래도 한배를 탔으니 알려주지. 일단 당연하겠지만 던전이 있는 곳이다.”

그 말에 한치성이 한숨을 쉬었다.

“한서진이 입장하는 던전 입구 경계는 예전보다 훨씬 삼엄해졌어. 무작정 돌입하다간 금세 들켜서 기습은 불가능해. 입구 근방을 완전히 장악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

아미르는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을 끊었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줬으면 좋겠군. 던전이 있는 장소에서 실행한다고 했지, 던전 안에서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야.”

“뭐라고?”

한치성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던전 밖이면 사방이 탁 트인 곳에서 대놓고 기습을 한다는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조급해서 그런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나 보군.”

아미르는 냉소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듣자 하니 요즘에 한서진이 마력석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지? 관련 정보를 던전과 엮어서 흘릴 거다. 장소는 서해의 무인도.”

“주소는?”

아미르는 쪽지 한 장을 건넸다.

“이곳에 미리 네 부하들 보내놓도록. 한서진이 그 섬에 도착하는 순간, 동시에 친다.”

“한서진이 던전을 쫓아서 섬에 간다는 보장은?”

“그것까지 납득시켜줘야 하나? 계획에 따르기로 했으면 네 몫만 제대로 하면 돼.”

한치성은 성급하게 화를 내는 대신 입술을 짓이기며 쪽지를 구겼다.

“확실히 이길 순 있는 거겠지? 어중간한 헌터 여럿 있어봤자 소용없어. 그놈 팀원은 죽일 순 있겠지만 한서진까진 처리 못 해.”

“그렇게나 믿지 못하겠으면 혼자 해도 상관없다.”

한치성은 아미르를 노려보며 다짐받듯이 말했다.

“후우, 좋아. 섬에서 기다리고 있지.”

**

그로부터 일주일 뒤.

정보건은 탐이 날 만한 던전 정보를 들고 와서 서진에게 알려주었다.

“서진아, 서해의 무인도에 괜찮은 던전이 하나 발견됐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마력석 광산이 있을 가능성이 꽤 높아.”

기다리고 있던 미끼가 오자 서진은 입꼬리를 슬쩍 올렸다.

정보건은 고개를 갸웃했다.

“음? 왜 웃어?”

“아냐. 그나저나 그 정보 어떤 경로로 얻은 거야?”

정보건은 창구로 이용당했을 뿐, 기습 계획에 동참한 게 아니다.

하지만 창구 뒤쪽에는 고의로 거짓 정보를 흘린 범인이 있을 터.

속는 척해야 하니 당장 잡아서 감옥에 넣진 않겠지만 알고는 있어야 한다.

“경로? 아, 1팀에 김경언이라고, 똘똘한 애 하나 있어. 걔가 물어온 던전들이 평균적으로 수익이 높아.”

“공식 루트로 얻은 건 아니겠네?”

“당연하지. 정부에서 먼저 발견했으면 마관청에서 선점하니까. 그러면 지금 입찰 경쟁 준비하고 있었겠지.”

“정보가 빠른 친구네. 그런데 무인도에 있는 던전은 발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그 섬이 매물로 나와 있거든. 어떤 사람이 사기 전에 직접 답사하러 갔다가 본 거지.”

“그렇구나.”

서진이 연달아 질문을 던지자 정보건은 미심쩍었는지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런데 왜? 뭔가 거슬리는 게 있어?”

“잠시만.”

침묵하며 생각을 이어가는 서진의 모습에 정보건이 나직하게 말했다.

“서진아 혹시 중요한 일이라면 알려줬으면 좋겠다. 내가 너한테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고민을 같이 짊어질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내가 정보 흘릴까 봐 걱정하는 건 아니지?”

잠깐이나마 진지한 말이 어색했는지 끝에는 가벼운 어투로 진심을 섞은 정보건이었다.

서진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알았어. 말해줄게.”

유니온에서 만든 함정과 끌어들이는 방식에 대해선 윤곽이 선명하게 잡혔다.

하지만 아직 알아내야 할 게 남아있다.

김경언이라는 직원이 언제부터 유니온에게 협조하게 되었는지.

사건의 이해관계를 넘어서 소가주로서 파악해야 할 의무도 있었다.

그것을 위해선 김경언을 몰래 만나야 했다.

그러나 아직 가문 내엔 한정후와 한치성의 눈들이 남아있다.

서진이 김경언를 찾는 모습을 보인다면 계획이 틀어졌다는 걸 눈치챌 테니까.

그렇기에 상관인 정보건이 협력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긴 하다.

“사실...”

서진은 투기로 만들어낸 미러 아이즈에 대한 건 적당히 넘기고 그들의 대화 내용에 집중해서 설명해주었다.

“그런...!”

얘기를 다 들은 정보건은 벌떡 일어나며 분노를 터트리려다 참아냈다.

서진의 집인데도 그는 괜히 밖에 누가 들을세라 입술을 깨물며 다시 털썩 앉았다.

정보건은 얼굴을 붉히며 화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후우...”

“왜 그렇게 화를 내? 그리고 이 집 방음이 그렇게 약하진 않아.”

서진은 진정하라는 듯이 생수통을 탁자에 올렸다.

딸깍.

정보건은 한 번에 원샷하며 속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놈이 그럴 수가 있지? 아니 걔는 굉장히 성실하고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어. 그런데 유니온의 첩자라니.”

“아니면 내 말이 거짓일 수도 있어.”

“난 누구보다 네 말을 믿는다. 그리고 정황도 그럴듯해. 그런데 답답하네.”

“왜? 김경언이 정말 첩자인지 확인할 수 없어서?”

“그래, 걔를 조사하는 순간, 눈치챘다는 걸 저쪽이 알게 될 거야. 그래서 못 건드려.”

정보건은 목을 조이는 넥타이를 아래로 내리며 서진을 응시했다.

“그러면 너는 어떡할 셈이야. 그 대화를 일주일 전에 들었다면 대충 생각한 계획이 있을 것 같은데.”

“별거 없어. 역공이지.”

“일단 섬으로 가서 습격을 유도할 생각이구나.”

“그래야 증거가 확실해지니까.”

공격하는 순간을 포착해야 비로소 빼도 박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저쪽에서도 너를 죽이려고 상당한 헌터를 데려올 거야. 괜찮겠냐?”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당연히 서진도 혼자 갈 생각은 없다.

인맥이 닿는 고레벨 헌터는 전부 동원할 계획이다.

흑룡대장을 비롯한 부대 전원과 철혈백가, 기갑성가의 소가주가 된 성주원, 그리고 레이놀즈 부마탑주와 천궁 문선영.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사실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수준이었다.

헌터 약소국 정도는 어렵지 않게 쓸어버릴 수 있을 전력.

물론 각자의 개인 사정에 따라 오지 못하는 헌터도 있겠지만.

“그럼 전투는 소가주께서 알아서 하신다고 하니.”

정보건은 서진이 어떤 헌터들을 데려갈지도 궁금했지만 지금 말해줄 생각은 없는 것 같아 넘어갔다.

“문제는 김경언인데, 그냥 평소처럼 대하면서 놔둬야 하는 건가?”

“아니, 형은 오늘부터 적당한 핑계로 1팀 직원들을 저녁에 한 명씩 불러서 술자리를 만들어.”

“눈속임용으로 다른 직원과도 저녁 먹으라는 의도는 알겠는데 김경언 불렀을 때는 내가 뭘 해야 하는 거냐.”

“형은 그냥 의심 안 받게끔 술자리에 일대일로 불러내기만 하면 돼. 나머지는 감찰각에서 처리할 거야.”

“혹시 유니온 측에서 김경언 감시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주의해야 해.”

“그렇지 않아도 술자리 전에 파악해둘 거야.”

서진은 무인도에 향하기 전에 전후 사정을 파헤칠 생각이었다.

적이 죽이려고 함청을 파는데 대충 알고만 있어선 안 되니까.

김경언은 일반인이다.

잡아서 취조하고 나서 필요하다면 감찰각주가 거짓된 기억을 덮어씌울 것이다.

자신이 술에 취해 필름이 끊겼었다고 생각하게끔.

**

강렬한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서해의 바다.

크루즈 보트 한 척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미끼를 물었군.’

무인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미르는 육안으로 배를 확인했다.

‘인원은 한서진을 포함해서 3명.’

한서진과 호위 헌터인 설하윤, 흑룡부대장인 허대일.

그리고 한서진이 최근에 키우기 시작했다는 거대한 늑대까지.

한치성이 알아낸 정보와 일치한다.

공략 인원은 적지만 세 명 전부 고레벨이며 던전 난이도가 높지 않다는 설정이었기에 저 세 명이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을 터.

‘던전은 가짜지만.’

물론 없는 던전을 있다고 거짓말하면 쉽게 들킬 테니 페이크 던전을 만들어 놓았다.

그의 부하인 쉐르코가 ‘카피’라는 스킬을 갖고 있기에 가능했던 계획이었다.

“그런데 너무 정성 들일 필요는 없었군.”

혹시나 한서진이 사전에 헌터를 파견해서 던전 조사를 할지도 모르니 그에 대한 대비책도 있었다.

한번 입장하면 공략전까지 나올 수 없는 폐쇄형 던전을 카피해서 섣불리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마력석에 목이 말라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쉐르코는 다가오는 배를 보며 조소했다.

“이제 준비해라.”

“예.”

아미르의 지시에 직할 처형부대 헌터들이 보트를 겨냥하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서진 일행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즉시 배를 파괴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땅에 발을 딛게 되면 섬 전역에 광범위한 결계가 아티팩트와 아이템 사용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모든 도주 수단을 차단하고 나서 사지에 몰린 한서진을 죽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왔군.”

섬에 가까이 다가온 보트가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멈춰 섰다.

그리고 서진을 포함한 세 명과 늑대가 섬에 발을 디딘 순간, 아미르는 손짓으로 공격 지시를 내렸다.

그에 처형부대 헌터들은 일제히 스킬을 발동하여 배를 향해 쏟아부었다.

퍼엉! 콰가가광!

물보라가 높게 솟구치며 보트 주위는 전부 폭격에 휩싸였다.

‘그런데.’

한서진 쪽에서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거기다 보트가 파괴되는 것 같지도 않다.

“공격 중지.”

포격이 멎고 물보라가 가라앉자 아미르는 물론이고 대기하고 있던 한치성도 심장이 얼어붙을 정도로 경악했다.

보트는 파손된 흔적 하나 없이 멀쩡했으며, 세 명이었던 인원은 여섯 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추가된 인원들의 얼굴을 알아본 한치성은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철혈가주와 레이놀즈 부마탑주? 그리고 흑룡대장까지...”

그때 서진이 아미르와 한치성이 있는 곳을 정확히 바라보며 검을 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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