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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터가문의 천재는 사실 귀환자-134화 (134/141)

134화

서진은 포격이 날아온 방향을 보며 두 사람을 특정했다.

익숙한 마나를 드러내는 한치성과 저들 중에서 가장 강대한 마나를 품고 있는 헌터.

“정말 아예 눈치를 못 챘나 보군, 그래.”

레이놀즈는 아직 신기함이 가시지 않는 눈빛으로 서진을 바라봤다.

생전 처음 보는 붉은 기운으로 은신 마법을 걸겠다길래 반신반의했는데 정말 감쪽같았다.

마법의 구조를 띠고 있음에도 상대 쪽에서 전혀 알아보지 못했으니.

레이놀즈는 학구적인 욕망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혹시 그 투기라는 것, 나도 쓸 수 있나?”

“배에서 말했듯이 가신이 되면 제한적으로 사용 가능합니다.”

9레벨의 문턱을 밟고 있는 마법사가 가신에 추가된다면 서진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봐야겠구먼.”

“남은 자리는 하나뿐이니 너무 오래 끌면 늦을지도 모릅니다.”

“허허, 빨리 결정하겠네.”

레이놀즈는 웃음을 거두며 포격이 날아온 곳을 향해 대규모 마법을 캐스팅했다.

바다가 출렁거리면서 엄청난 양의 물이 솟구치더니 천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상공에 띄워진 대형 소용돌이는 레이놀즈의 손짓에 따라 앞으로 쏘아졌다.

콰가가가!

깊게 뿌리박고 있던 나무가 쉽게 뽑혀 나갈 정도로 소용돌이에 닿은 영역은 전부 쓸려나갔다.

“크아악!”

그리고 유니온과 한치성 측에서 버틸 힘이 없는 헌터들도 같이 휘말려갔다.

하지만 레이놀즈의 마법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바다가 있으니 마법 쓸 맛이 나는구나.”

바로 거대한 파도를 일으켜 세우며 해일처럼 밀려드는 물폭탄이 헌터들을 덮쳤다.

촤아아악!

아미르는 물을 피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바위, 나무들은 저 멀리 밀려 나갔고 언덕을 이루던 토양까지 깎이며 숲 속이었던 곳이 허허벌판이 돼버렸다.

각기 위치에 있던 처형 부대원들도 잘 보이지 않는다.

단 두 번의 대형 마법으로 전력의 반절 가량이 소실된 것이다.

주변에 바다만 없었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을 터.

경지에 이른 마법사가 자연을 이용했을 때 무서운 위력을 발휘한다는 건 아미르도 알고 있었다.

다만 공략 참석 인원에 고레벨 마법사가 없었기에 상정하지 않았다.

한서진이 숨겨서 데려온 인원 때문에 계획이 완전히 빗나갔다.

‘알고 있었던 건가.’

언제부터 눈치챈 건진 몰라도 무인도의 던전이 함정이라는 걸 간파한 게 분명했다.

아미르는 재빨리 차선책을 떠올려야 했다.

‘지금 한서진을 죽이는 건 불가능하다.’

레이놀즈, 철혈가주, 흑룡대장을 뚫고 한서진을 공격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섬이라서 도망치는 것도 여의치 않다.

한서진의 무덤으로 만들기 위한 섬이 도리어 족쇄가 돼버린 셈이다.

그리고 아미르가 머리를 굴릴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쐐애액!

서진이 지척에서 검을 내려치고 있었으니까.

카앙!

아미르는 급히 검을 휘둘러 받아쳤다.

‘제 발로 오다니.’

이렇게 된 거 한서진이라도 무조건 죽이기로 결심했다.

안광을 번뜩이며 스킬을 발동했다.

‘리덕션 블레이드.’

아미르의 검이 서진의 뇌검과 충돌한 순간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검을 맞댄 상대의 능력을 전부 축소시키는 스킬.

스킬 적용 대상이 시전자의 레벨보다 같거나 낮아야 하지만 아미르는 9레벨이기에 문제가 없었다.

타앙!

스킬을 쓰자마자 서진의 근력과 민첩이 떨어졌다는 게 느껴졌다.

검을 받아치는 게 한결 편해졌으니.

그뿐만 아니라 검에서 나오는 번개의 출력까지 떨어졌다.

아미르는 배수의 진을 친 심정으로 검을 휘둘렀다.

아직 남아있는 처형부대원들이 나머지 다섯 명의 발을 묶고 있을 동안 서진만이라도 죽여야 한다.

한치성이 데려온 헌터들도 있으니 시간 정도는 끌 수 있을 터.

아미르는 마나를 쏟아부어 리덕션 블레이드를 극한으로 발동했다.

단계별로 진행되는 스킬이지만 하나씩 올라갈 여유 따윈 없었다.

부작용을 감수하고 바로 5단계를 사용했다.

콰앙!

그 결과, 서진은 제대로 대응도 못한 채 회피에 급급했다.

“내가 여기서 죽더라도 너 정도는 저승으로 같이 끌고 가주마.”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서진을 몰아붙이는 아미르.

하지만 서진은 분명 밀리는 형세인데도 전혀 다급한 안색이 아니었다.

“애써 냉정한 척하는 거냐.”

아미르는 심장을 향해 검을 찔렀고, 서진은 종이 한 장 차이로 피하며 대답했다.

“마음대로 생각해.”

[근력이 62 상승합니다]

서진은 그의 적의를 끌어내며 스텟을 흡수하기 바빴다.

물론 그의 스킬은 확실히 위협적이긴 했다.

오랫동안 쌓아온 전투 경험과 마나 전개, 여뢰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어딘가 잘리고도 남았을 터.

아미르가 보이는 자신감이 일견 이해가 갈 정도.

그렇지만 서진의 회피가 길어지자 아미르의 낯빛에는 초조함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실 공격을 못 하고 있는 건 서진도 마찬가지였다.

리덕션 블레이드로 모든 힘이 줄어들어 제대로 된 검격을 휘두를 수 없기에.

하지만 서로의 기세가 갈리는 이유는 주위의 판세가 기울었기 때문이다.

레이놀즈의 범위 마법이 헌터들을 덮치고 전원 최소 7레벨이 넘는 고레벨 다섯 명이 한 명씩 정리해나간다.

유니온과 한치성 측 헌터들은 일방적으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시간을 끌수록 유리한 쪽은 서진이다.

그렇기에 아미르는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만약 계획대로 되었다면 상황은 정반대였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상황은 되돌릴 수 없다.

후회에 젖은 아미르의 뒤편에서 검강이 날아왔다.

콰앙!

감지는 했지만 정면의 서진을 상대하던 아미르는 완전히 피하지 못했다.

검강의 주인인 설하윤은 비틀거리는 아미르를 향해 검을 찔렀다.

그는 가까스로 피했지만 다른 방향에서 파고든 뇌격에 직격당하고 말았다.

파직!

이미 다른 헌터들을 전부 정리하고 한 명씩 서진을 도와주러 오고 있는 것이었다.

스텟도 이만하면 다 뽑아냈겠다, 서진은 그들에게 처리를 맡겼다.

퍼억!

마지막 일격으로 아미르를 쓰러트린 사람은 백화연이었다.

당연히 죽이진 않았다.

뽑아내야 할 정보가 있었으니까.

“소가주님. 김경언 가족도 피해 없이 구출했습니다.”

흑룡부대장의 보고에 서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인도에 오기 이틀 전, 정보건과 술자리를 가지던 김경언을 감찰각에서 잡아들여 취조했다.

거짓 정보를 흘린 이유는 쉽게 밝혀냈다.

유니온에서 타지에서 지내던 김경언의 부모를 납치해 협박한 탓이었다.

서진은 감찰각주를 시켜서 김경언의 취조 기억을 덮고 모른 척했다.

그리고 이현지 과장에게 연락해서 김경언 부모의 위치를 파악했다.

언제라도 구출할 수 있게끔.

그러고 나서 섬에 도착한 순간, 신호를 보내면 흑룡검가의 헌터들이 진입해서 구해내도록 지시했고,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소가주님.”

그때 흑룡대장이 다가와 눈짓으로 한쪽을 가르쳤다.

시선 끝에는 한치성이 검을 지팡이 삼아 간신히 버티고 서있었다.

마나와 기력이 전부 바닥나 일격으로 끝낼 수 있는 상태였다.

서진은 한치성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퉤.”

검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한치성은 서진에게 침을 뱉었다.

더 오지 말라는 듯이.

서진은 피식 웃으며 걸음을 멈추었다.

타오르는 눈빛으로 서진을 노려보던 한치성은 마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결국 다 죽이고 가주가 될 생각이었지?”

“먼저 검을 겨눈 건 그쪽이지 않나?”

“하, 개 같은.”

한치성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듯 고개를 떨구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물어보자. 어떻게 갑자기 변하게 된 거지? 분명 너는 어떤 지원과 가르침을 받아도 백랑대원을 못 이길 만큼 둔재였어.”

“천 년.”

“뭐?”

“몸이 아무리 무거워도 그렇게 살면 되더라.”

“그게 무슨...”

한치성이 미간을 찌푸렸을 때, 서진은 검을 들어 가볍게 일자로 그었다.

툭.

머리가 땅에 떨어지면서 검으로 지탱하고 있던 한치성의 몸도 힘없이 쓰러졌다.

이로써 후계자였던 혈족들은 서진 외에 남지 않게 되었다.

서진의 발치엔 새빨간 피가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주변에도 수십 구의 시체가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서진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정말 대조적일 정도로 청명하고 푸르른 하늘이었다.

**

한치성이 함정을 파놓고 한서진을 습격한 사건은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생존자는 아미르와 처형부대 소속 헌터 세 명.

전부 흑룡검가의 뇌옥에 갇혀있는 신세.

그런데 사건이 알려진 이유는 서진이 은근슬쩍 정보를 흘렸기 때문이다.

유니온 헌터야 어찌 됐든, 한치성이 사망한 원인에 대해선 확실한 명분을 챙길 필요가 있었으니.

다만 완전한 진실을 퍼트리진 않았다.

취조를 통해 유니온 마스터가 지시한 건 알아냈으나 동기를 알 수 없다.

서진도 이해가 안 가는데 대중들이 쉽게 납득할 리 없을 터.

그럴 바엔 차라리 유니온을 빼고 한치성의 단독 범행으로 꾸미는 편이 낫다.

한치성의 사망에 한정후와 일부 집법회 장로들이 강하게 반발했지만 소용없었다.

무인도에 도착하자마자 공격을 퍼붓던 모습을 담은 녹화본과 아미르의 증언까지.

이제 그들이 설 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외부에선 그간 서진이 쌓아온 이미지 덕분에 사람들은 이미 죽은 한치성을 욕하며 서진에게 응원을 보냈다.

-소가주 경쟁에서 졌으면 승복할 것이지 추잡하게 뭔 짓이래.

-가문이 참 살벌하네. 한서진이 안 죽어서 다행이다.

-한서진도 동생을 죽여서 마음이 착잡할 듯.

-그건 아닐 것 같은데...뭐 어쨌든 둘 중 한 명 고르라면 한서진이 백배 낫긴 해.

“와, 이거 무서운데?”

폰으로 반응을 살피던 백화연은 서진을 흘겨보며 장난스레 몸을 떨었다.

“뭐가?”

“사람들이 네 말이면 다 믿잖아. 여기서 내가 무슨 짓을 당해도 네가 아니라고 잡아떼면 난 억울하게 당해야 할지도 몰라.”

“한가한 소리 하는 거 보니까 오늘은 일이 적나 본데.”

서진의 말에 가볍게 웃음 지은 백화연은 다른 주제를 꺼냈다.

“참,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뭔데?”

“미네소타 주에 나타난 성 말이야.”

“아. 그거?”

이틀 전, 아미르의 취조를 마친 직후에 서진의 어떤 해외 소식 하나를 접했다.

미국 미네소타 주에 핏빛의 고성이 나타났다는 뉴스.

그것은 서진이 보기에 명백한 뱀파이어 로드의 성이었다.

**

출근 시간대, 서울 시내의 우정국로는 늘 그랬듯이 차가 막히고 있었다.

심지어 평소보다 더 심한듯한 정체 상황에 운전대를 잡은 한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좀 가자.”

그때, 멀리서 폭발음 같은 소리가 차 안까지 들려왔다.

“뭐지?”

그는 두리번거리다 금세 관심을 껐다.

지금 문제는 가슴을 답답하게 만드는 교통 체증이었으니까.

괜히 전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는 잠시 후, 허공에 나타난 믿지 못할 장면을 목격했다.

“저...저거!”

공간이 세로로 쭈욱 찢어지더니 안에서 몬스터가 툭 튀어나온 것이다.

드물게 생겨난다는 돌발성 던전 브레이크였다.

콰앙!

그가 경악하는 사이, 매처럼 생긴 날개 달린 몬스터가 차량 하나를 짓뭉갰다.

“미친! 왜 하필 내가 있는 도로에!”

그는 손을 벌벌 떨면서 폰을 꺼냈다.

헌터협회나 마관청에 바로 신고하는 것만이 살 확률을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신호음만 들리고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씨발 왜 안 받아!”

전화가 안 된다면 문자나 앱을 통해 신고할 수도 있지만 그는 차 문을 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당장 몬스터들이 가까이 오는데 폰 잡고 두드릴 여유는 없으니까.

다른 운전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런 참상은 한국뿐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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