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2화 (2/200)

1장 빙의 : 돌아온 망나니

“망나니가 돌아왔다!”

흙투성이 헤논이 대로변을 활보했다.

걸을 때마다 흙이 떨어지며 지나간 자리에 진한 족적이 남았다.

탁! 탁! 타탁!

그를 마주한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집으로 들어가 창문과 문을 닫아걸었다.

후작가의 미치광이 헤논이 혹여 해코지라도 할까 두려워하며 말이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건 오히려 이쪽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퇴근하던 길에 새롭게 나온 한정판 게임 ‘시온 라이크’ 홍보 영상을 봤다.

스토리가 매력적이고 그래픽이 좋길래 홀린 듯이 구매해서 밤새도록 게임기를 조작했다.

해가 뜰 때까지 패드를 두드리다 내린 결론은 이거였다.

‘밸런스 개똥망 게임이네.’

나름 게임에 자신이 있었는데도 초반 스테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연신 유다희(YOU DIED)양을 봐야만 했다.

첫 번째 보스부터 지랄 맞았다.

저주받은 드루이드 헤논.

죽은 채 땅에 묻혀있다가 악마추종자에 의해 부활한 후, 본인이 자란 영지를 초토화시킨 명백한 망나니였다.

온종일 헤논을 잡으려고 씨름하다가 지쳐 쓰러진 것도 잠시,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죽도록 때려잡던 그 헤논이 되어있었다.

“이거 꿈이지? 꿈일 거야.”

애써 행복회로를 돌려보지만 그러기에는 오감이 너무 생생했다.

하수도 없는 중세 거리에서 풍기는 지독한 똥냄새.

바닥을 기어다니는 손바닥만한 바퀴벌레와 공중에 붕붕 날아다니는 파리떼.

땅을 파고 나오느라 깨진 손톱에서 흘러나오는 쓰라림.

무엇보다도.

‘히히히히.’

‘히히히히히.’

‘속닥속닥속닥.’

아까부터 귓가를 간질이는 정체불명의 이명은 꿈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얏됐다. 진짜 얏됐어.’

믿기 힘들지만 살고 싶으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나는 헬난이도 게임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그것도 주인공도 아니고 고작 첫 번째 스테이지 보스로.

정신없이 걷는 와중에도 주변에서 나를 보는 시선들이 느껴졌다.

증오, 혐오, 경멸.

호의적인 시선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런 시선들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정처없이 걷자 어느새 내성 성문에 도착했다.

창을 X자로 교차시키며 입구를 막은 경비병이 윽박지른다.

“누구냐! 신원을 밝혀라!”

‘헤논인데요?’라고 말할 수도 있으나 여태껏 겪어본 시선으로 볼 때 존댓말은 밥 말아먹은 놈이 분명하다.

그리고 아무리 사생아라고 해도 후작님 아들이면 준귀족일 텐데 조금은 편하게 대해도 되겠지.

“나다.”

“뭐? 어디서 반말이야!”

“나라고. 이 멍청한 놈아.”

얼굴에 묻은 흙을 대충 털어내고 노려봐주니 정체를 알아본 경비병이 대경하여 뒷걸음질친다.

“히익! 마, 말도 안 돼!”

저리 겁이 많은데 어떻게 내성 경비원이 됐대.

“너, 넌 죽었잖···”

“나 안 죽었어. 그러니까 문 열어.”

“······”

“문 안 열어? 맞고 열래, 그냥 열래?”

“그냥 열겠습니다!”

망나니가 이런 점은 좋다.

대충 눈 부라리면서 협박성 멘트 뱉으니 병사들이 알아서 길을 터줬다.

내성 안으로 걸어가는 내 뒤로 경비병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저 망나니를 다시 살려 보내시다니.”

“내일부터 또 지옥이겠군.”

“꼭 저런 놈들이 목숨이 질기다니까? 콱 죽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아.”

평생 동안 먹었던 욕보다 여기로 넘어와서 잠깐 먹었던 욕이 더 많다 보니 밥 안 먹어도 배부를 지경이다.

내성으로 들어오니 귀족의 거처라 그런지 외성보다는 확실히 깨끗하고 정갈했다.

다만 구역에 관계없이 사람들의 반응은 똑같았다.

나를 본 하녀들은 들고 있던 항아리를 쨍그랑 떨어트리거나 몽크의 절규처럼 양손으로 볼을 붙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이젠 저 반응도 익숙하고 식상해서 무시하고 가려는 찰나,

“뭐가 이리 시끄러운 게냐!”

날카로운 호통과 함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중년 여인이 나타났다.

얼굴 포함 온몸이 퉁퉁한 것이 체지방률이 많이 높아보이는 아지매였다.

‘로잘린 로이드. 아버지 고든 로이드의 정실 부인이자 내 계모다.’

게임을 하기 전에 대략적인 스토리를 읽어본 나는 한눈에 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봤다.

특히나 헤논 트리스는 이 게임의 첫 번째 보스라서 더 신경 써서 봤다.

원래 공부할 때도 책 앞쪽만 맨날 봐서 그쪽만 손때가 타지 않던가. 이와 비슷한 이치다.

“어머니.”

“누가 네 어미라는 게냐?”

“죄송합니다. 후작 부인.”

“그 꼴은 도대체 뭐냐? 좀 씻고 다녀라.”

분명 죽었다가 살아 돌아온 사실을 들었을 텐데 여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없다.

아쉬워하지도 않는 걸 보니 아예 사람 취급도 안 해주는 모양이다.

“어머니, 헤논에게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수려한 외모의 사내가 옆에서 슬쩍 끼어들었다.

온통 살에 파묻힌 나랑 비교하기가 미안해지는 요놈이 바로 이복형 되는 필립이다.

사회 물 좀 먹어본 내가 딱 진단 내려보면, 요 필립이란 놈은 기만질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놈이다.

“난 네가 죽은 줄 알았다.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니 반갑구나. 요새 통 안 보이던데 아침 식사라도 같이 하자.”

“네, 형님.”

내 입에서 나온 형님이란 단어에 옆에 있던 후작 부인이 바로 발작한다.

“감히 누가 네 형님이라는 게냐! 공자님이라 불러라!”

“어머니, 너무 열내지 마시고 들어가시지요.”

“공자, 아랫사람에게 너무 친절하면 장차 후작령을 통치하는데 걸림돌이 될 수 있어요. 이 어미가 하는 말 꼭 새겨들으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어머니.”

하이고.

쇼를 한다. 쇼를 해.

그냥 쌩까고 들어가니 뒤에서 인사도 안 하고 간다고 지랄발광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상큼하게 무시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우두커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 방이 어디지?”

그렇다.

난 내 방이 어딘지를 모른다.

게임 스토리에서 헤논 트리스의 가족 관계가 어떤지, 어떤 불우한 환경에 처했었는지, 무슨 이유로 저주받은 드루이드가 되었는지는 알려주지만······

얘가 어느 침실에서 베개를 베고 누웠는지는 당연하게도 안 나와 있었다.

그렇게 길 잃은 미아처럼 손가락만 쪽쪽 빨고 있을 때, 등 뒤에서 가녀린 소녀 목소리가 들렸다.

“오셨군요.”

돌아보니 무표정한 얼굴의 소녀가 눈에 들어왔다.

나팔꽃을 연상시키는 보라빛 머리카락과 이와 어울리는 보라빛 눈동자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하녀복을 입었으나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것 같은 여인.

“시온.”

나도 모르게 그 여인의 이름을 불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이 여인은 내가 밤새도록 했던 게임 ‘시온 라이크’의 주인공 시온이었으니까.

“들어오십시오. 목욕물 준비했습니다.”

시온은 모시던 주인이 살아 돌아왔는데도 태연했다.

그 모습을 보고 시온만큼은 헤논의 편이 아닐까 작은 희망을 품으려 했으나···

“음?”

시선을 내려보니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위쪽과 달리 아래쪽은 손에 핏기가 가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 있다.

미약한 잔떨림에서 그녀가 얼마나 실망하고 있는지 여실히 드러났다.

‘시온도 기대하면 안 되겠군.’

그야말로 사방이 적이었다.

* * *

시온이 안내한 곳은 개인 욕실이었다.

내가 알기로 이런 세상에서 사생아의 운명은 그 아버지에게 달려있다 봐도 무방했다.

아버지가 그래도 신경 좀 써주면 팔자 피는 거고 자식 취급도 안 해주면 바로 헬게이트 오픈이다.

내가 볼 때, 악명이 자자한 망나니를 내성에서 같이 살게 하고 이런 욕실에 하녀까지 딸려준 걸 보니 포기는 했어도 버린 자식은 아닌 모양이었다.

욕탕에 몸을 담근 후 새사람이 되어 나오자 문밖에서 기다리던 시온이 침실로 안내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아연실색했다.

“여기가 내 방이라고?”

헛웃음이 나온다.

내 방의 상황은 이랬다.

우선은 창문마다 커튼을 이중삼중으로 쳐놔서 밖에서 스며드는 모든 빛이 차단된 상태.

선반 위에는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조각상이 여러 개 놓여있었고.

피를 연상시키는 붉은색 양초가 타들어 가며 불길한 음영을 드리웠다.

바닥에는 기괴한 문양이 그려진 카펫이 깔려있었는데, 저 문양이 무엇을 뜻하는지 굳이 알아보고 싶진 않았다.

그저 여태까지 헤논이 흑마법사로 안 잡혀간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 방 꼬라지가 왜 이래?”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서 묻자 지금껏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시온이 처음으로 안면 근육을 꿈틀했다.

대충 생각을 읽어보니 ‘이번엔 무슨 지랄을 하려는 거지?’라는 표정이었다.

“도련님께서 명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이렇게 꾸미라고 했다고?”

“환청이 들리는 게 싫다면서 장사치나 사냥꾼들에게 이것저것 사들이셨습니다.”

한마디로 호갱이었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히히히’거리며 소곤대는 소리가 들리니 호갱이 확실했다.

아무튼 해골바가지들과 이상한 카페트, 두꺼운 커튼과 불길한 양초는 환청을 막는데 전혀 쓸모가 없었다.

“하 참.”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인제 와서 말로 구구절절 설명한다?

난 달라졌다.

기억 상실이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앞으로 상냥하게 대해주겠다.

어림도 없는 소리.

그런 말로 때우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헤논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그녀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시련처럼 느껴질 터.

이를 바꿀 방법은 결국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뿐이다.

“시온.”

“예.”

“내가 이 방에 있는 물건을 소중히 여겼던가?”

뜬금없는 질문에 시온이 살며시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눈치를 보려 함이다.

일부러 차가운 표정을 지어서 속내를 감췄다.

“물론입니다. 조각상들은 매일 직접 관리하셨고 카페트도 좋은 가격에 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단 말이지···내가 그랬었어···”

중얼거리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가장 가까이 있던 조각상을 잡은 다음에···

살포시 위에서 떨어트려 줬다.

“아앗!”

시온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런다고 떨어지던 조각상이 멈추진 않는다.

와장창창 소리와 함께 애지중지했던 석상이 산산이 조각났고, 그 잔해가 사방으로 튀며 바닥을 더럽혔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미친 사람처럼 선반 위에 있는 모든 조각상을 벽에 던지고 발로 차고 아이스크림 쌍쌍바 가르듯이 반으로 쪼개버렸다.

“이런!”

철썩! 콰직!

“쓸모없는!”

철썩! 콰지직!”

“애물단지를!!”

콰지지지직!!

“보았나!!!”

아직 부족하다.

창문으로 직행해서 답답함의 주요 원인이었던 두꺼운 커튼을 양손으로 잡고 북북 찢어버렸다.

솜털이 휘날려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모조리 찢어발기고 창문을 활짝 여니 찬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이제야 미쳐버릴 것 같던 정신이 좀 돌아왔다.

음산한 양초와 기괴한 문양의 카페트.

전부 열린 창문 너머로 내다 버렸다.

애장품이 떨어지면서 내는 부산스러운 소음에 창 밖에서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마지막 수집품이 없어질 때까지 거침없이 물건을 내던졌다.

“큿, 크하하! 크핫하하하하!!!!”

광기에 휩싸이자 흥이 나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치광이.

딱 나에게 어울리는 수식어였다.

한바탕 난리를 피우고 나자 어지간히 놀랐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는 시온의 눈길이 느껴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격하게 움직였더니 숨이 좀 찼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솜털과 찢어진 커튼 조각, 깨진 석상들을 발로 차서 밀어낸 뒤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한쪽으로 쓸어넘긴 후 시온을 봤더니 아직도 망부석처럼 굳어있다.

그런 그녀에게 최대한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뭐 해?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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