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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5화 (15/200)

2장 음모 : 복귀한 망나니

털썩!

마침내 누더기 용병단장 게빈이 허물어졌다.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상황은 긴박했다.

병사들은 죽어나가고 있었고, 시온도 마나 유저 세 명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뺐다.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기절한 게빈의 뒷목을 잡고 큰소리로 외쳤다.

“게빈이 쓰러졌다!”

“헤논이 게빈을 이겼다!”

마나를 담아 내지르자 평야에 메아리가 들릴 정도로 크게 소리가 울렸다.

뒤엉켜 싸우던 양측이 모두 나를 바라보았다.

망나니라 생각했던 헤논이 축 늘어진 게빈을 붙잡고 있자 양측의 희비가 엇갈렸다.

“세상에! 공자님이 그 가죽수집가를 잡아버렸어!”

“좋아! 밀어붙여!”

병사들은 기가 살아서 더욱 거세게 달라붙었고.

“이럴 수가, 단장이 당하다니.”

“망나니 사생아가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

“하녀도 뭔가 이상해. 이건 잘못됐다. 이쯤해서 발 빼자.”

자기네 대장의 패배에 충격을 받은 누더기 용병단 놈들은 벌써 와해 조짐을 보였다.

일단은 시온부터 구하기로 했다.

게빈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가장 가까이 있던 마나 유저를 향해 쇄도했다.

녀석은 심히 당황했는지 서투르게 검을 횡으로 그었지만 가볍게 피하고 심장에 검을 박아주었다.

“끄억!”

적중당한 놈이 단발마의 비명과 함께 입에서 울컥 피를 토했다.

같은 마나 유저라고는 하나 게빈에 비하면 형편없는 놈이었다.

이로써 또 하나의 유저급 용병이 사라졌다.

1대3이 1대2가 되자 시온도 분발했다.

수비만 펼치던 그녀는 갑자기 달려들어 다른 한놈의 목을 수확했다.

이제 남은 마나 유저는 꼴랑 한 명.

그는 싸울 의지를 잃고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쳤다.

그리고 이것이 기폭제가 되었다.

“도망쳐!”

“에이, 모르겠다!”

“여기서 용병단이 끝장날 줄이야.”

각자 산개해서 도주하는 놈들.

이제부터는 사냥과 수확의 때다.

병사들은 함성을 터트리며 등 돌린 용병들을 향해 검을 꽂아넣었다.

나와 시온도 합세해서 최대한 많은 적의 수급을 취하고 사로잡았다.

그렇게 누더기 용병단과의 전투가 마무리되었다.

우리 쪽의 승리였다.

“사···살았다···”

“세상에! 이겼어! 이겼다고!”

“만세! 으아아아!!”

당연히 이길 전투를 이기는 것보다 누구라도 지리라 생각했던 전투를 역전했을 때가 백 배는 더 짜릿하다.

승리의 달콤함과 생존의 안도감을 맛본 병사들은 서로 얼싸안으며 방방 뛰었다.

그리고는 오늘 전투의 MVP인 나를 칭송했다.

“감사합니다, 흑흑···! 공자님 아니었으면 우린 다 죽었을 겁니다.”

질질 짜는 병사부터 시작해서.

“그동안 제가 공자님에 대해서 뭔가 착각을 하고 있었나 봅니다. 이토록 훌륭하신 분이 어찌하여 그런 망측한 별명으로 불리셨는지.”

오늘부터 입덕하겠다는 사생팬까지.

각자 다양한 반응을 보였지만, 공통점은 다 나에게 감사한다는 말이었다.

대충 고개를 끄덕여주고 시온에게 다가갔다.

“괜찮나?”

“괜찮습니다.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렇군.”

비록 자신보다 몇 수 아래라고 해도 동급 전사 세 명을 상대로 버티다니.

과연 대단한 여자였다.

“수고했다, 시온.”

기특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보랏빛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줬다.

시온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번쩍 들어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얌전히 쓰담쓰담 받았다.

전투가 끝났으니 그 뒤처리를 해야할 차례였다.

우선 인원 집계부터 했다.

병사 서른 중에 그 짧은 사이에 열두 명이나 죽었다. 남은 자는 열여덟.

누더기 용병단은 쉰 명 중에 스물이 죽고 스물이 도망쳤으며 열 명이 포로로 잡혔다.

사로잡힌 사람 중에는 용병단장 게빈도 포함이었다.

“공자님, 단장놈은 왜 안 죽이시는 겁니까?”

병사 한 명이 와서 물었다.

“게빈은 끌고 가서 후작님에게 보여 드린다.”

“하지만 저놈은 고수입니다. 밧줄로 묶어봐야 그냥 풀어버릴 겁니다. 정신 차리기 전에 죽여야 합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이에 관해서는 따로 방법이 있었다.

나는 시온에게 낡은 천을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는 누워있는 게빈을 위에서 아래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깔을 허옇게 뒤집은 뱀상 사내.

놈의 손목에 걸린 허접한 유리조각 팔찌가 보이자 괜히 부아가 치밀었다.

“에라이!”

콰직!

검을 뽑아 냅다 녀석의 왼쪽 발목을 썰어버렸다.

몰아치는 고통에 게빈의 눈이 번쩍 떠졌다.

사태를 파악한 놈이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아악!!”

“이제 시작이야. 공평하게 오른쪽도 가야지.”

콰지직!!

오른쪽도 잘렸다.

시온은 들고 있던 천으로 능숙하게 절단 부위를 압박했다.

옆에서 질린 표정으로 나를 보던 병사에게 말했다.

“아직 부족한가? 손목도 잘라줄까?”

“아닙니다. 데리고 가겠습니다.”

“좋아. 끌고 가도록.”

이후에도 게빈이 나만 보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놈을 괴롭혔다.

사람의 피부 껍질을 벗기면서 쾌락을 느끼는 놈이니 똑같이 해주기도 했다.

매일 같이 죽여달라는 비명을 듣던 와중.

어느새 저 멀리 후작성이 보였다.

* * *

폭풍 같은 한달이 지나고 드디어 후작성에 복귀했다.

후작성 주민들은 뭔가를 잔뜩 실은 수레들이 연이어 들어오자 호기심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그러다가 병사들이 반수 이상 줄고 피 칠갑을 한 녀석들도 보이자 무슨 일인지 궁금해했다.

“구경났나! 모두 꺼져라! 안 그러면 목을 베겠다!”

후작성 대표 망나니인 내가 대표로 지랄해주자 다들 투덜대며 해산했다.

그렇게 내성에 들어왔다.

출발했을 때와는 다르게 로이드 후작을 포함한 가족 전체가 나와 있었다.

로이드 후작은 척 보자마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충 짐작한 표정이었다.

“꽤 격렬한 전투를 벌인 모양이구나.”

“그렇습니다.”

옆에는 후작 부인 로잘린과 필립도 같이 있었다.

누더기 용병단에게 살인청부를 했는데 어떻게 내가 살아돌아왔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나와봤겠지.

의뢰자인 로잘린을 보니 순간적으로 눈에 살심이 튀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억눌렀다.

“오, 헤논. 다친 곳은! 다친 곳은 없느냐!”

언뜻 보면 어머니로서 위로해주는 듯하지만 마치 다친 곳이 있기를 바라는 말투다.

나는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아주 멀쩡합니다.”

“참으로 다행이구나. 나는 네가 처음 임무를 맡았는데 실수라도 하면 어찌하나···”

아주 생쇼를 하길래 가볍게 무시하고 후작에게 직접 말했다.

“후작님, 보고할 게 하도 많아서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전투부터 보고하거라. 몬스터가 습격이라도 했느냐? 피해 상황이 심상찮구나.”

“몬스터가 아니었습니다. 웬 용병단이 저희를 노리고 습격했습니다.”

포로로 잡은 열 명을 앞으로 내세웠다.

맨 앞에 있는 자는 용병단장 게빈이었다.

장내에 있던 모두가 그의 처참한 꼬라지를 보고 시선을 돌리거나 미약한 구역질을 했다.

“어우, 이건···”

“지독하군.”

게빈은 참혹한 모습이였다.

양손과 양다리는 잘려있었고 얼굴 아래의 피부가 죄다 벗겨져서 살아있는 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게빈은 이미 만사를 포기한 표정이었다.

후작이 대표로 게빈에게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누더기 용병단 단장 게빈입니다.”

로이드 후작 옆에 있던 집사장 세바스찬이 후작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아마 게빈에 대한 정보를 말하는 거겠지.

후작의 인상이 미미하게 찌푸려졌다.

“그래서, 로이드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보고도 습격한 이유가 뭐지? 재물이 탐났나?”

“그게···”

게빈이 말꼬리를 흐리자 옆에 쭈그려 앉아서 녀석에게만 들리게 작게 말했다.

“똑바로 말해. 안 그러면 일 년 뒤에도 넌 살아있을 거야.”

“히이익!”

어느새 바지를 축축하게 적신 게빈이 횡설수설 떠들었다.

“아닙니다. 의뢰! 의뢰를 받았습니다.”

로잘린을 힐끗 보았더니 이미 그녀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후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의뢰? 무슨 의뢰를 받았다는 말이냐?”

“헤논님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헤논님을 죽이고 세금 수레를 탈취하려 했습니다.”

“!!!”

주변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놀라서 일제히 웅성댔다.

“조용!”

후작이 외치자 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누가 의뢰를 했지?”

“그게···”

게빈은 나와 로잘린을 번갈아가며 눈치를 보았다.

둘 중 누구를 더 무서워할까.

로잘린은 눈을 부릅뜨고 게빈을 노려보았고 나는 그저···싱긋 웃어 보였다.

내 표정에서 섬뜩함을 느껴서일까?

마음을 정한 그가 입을 열었다.

“제 친누나가 의뢰했습니다.”

“누나? 네 누나가 누구냐.”

“후작성의 하녀장입니다.”

어우야.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 한마디가 후작성에 피바람을 몰고 올 단어들이다.

당연히 하녀장은 발악하며 부정했다.

“무슨 개소리야! 전 저런 놈 모릅니다.”

손절하려는 하녀장에게 게빈도 화가 나서 소리쳤다.

“야, 이 개년아! 다 너 때문이잖아! 의뢰를 할거면 똑바로 하든지. 헤논이 마나 유저에 엄청난 고수라는 사실을 왜 안 알려줬어!”

“뭐?”

후작성의 모두가 놀라서 날 쳐다봤다.

시선이 좀 따가운걸?

이러다 내 고운 피부가 뒤집어질지도.

볼을 긁적거리고 있으니 하녀장과 게빈의 입씨름은 계속되었다.

“아무튼 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

“정말 이럴 거야?”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후작성에만 있는 제가 어떻게 저런 더러운 놈과 혈연관계겠어요? 저놈이 그냥 미친 겁니다.”

“오냐,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누나는 어렸을 적부터 오른쪽 팔뚝에 손바닥만한 붉은 점이 있었습니다. 확인해보시면 알 겁니다.”

이런 걸 확인 안 하면 섭섭하지.

역시나 후작도 궁금했는지도 하녀장을 보고 말했다.

“하녀장, 소매를 걷어주겠나?”

“후작님! 설마 저 녀석의 말을 믿으시는 건가요? 아무리 그래도 외간 남자들 앞에서 어떻게 맨살을 보여줍니까?”

격렬하게 부정하는 하녀장에게 간 건 시온이었다.

시온은 하녀장의 팔을 홱 잡아채더니 번개같이 소매를 걷었다.

과연 게빈이 말한 대로 누가 봐도 선명한 붉은 반점이 새겨져 있었다.

“맞지 않습니까? 저년이 제 누나입니다. 저년이 나보고 헤논을 죽이라고 했어.”

“아니야! 아니라고! 나도 시켜서 한 일이야!”

결국 하녀장 입에서도 진실이 튀어나왔다.

좌중은 이미 패닉 상태였다.

무슨 말이 더 나올지 멍하니 지켜보았다.

“나도 이런 더러운 일 하고 싶지 않았어! 그런데 부인께서···아악!”

서걱

하녀장의 목에 혈선이 그려졌다.

필립이 칼을 뽑아 그녀의 목을 친 것이다.

결정적인 단서를 말하기 직전.

하녀장이 쓰러졌다.

로이드 후작의 눈빛이 서늘해졌다.

“필립, 누가 제멋대로 하녀장을 참하라 했지? 죄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죄송합니다. 후작성의 기강을 해치는 여자라 즉결처형했습니다.”

“네 죄는 따로 물을 것이다.”

필립의 표정이 침통해졌다.

로잘린은 실신 직전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아직 한 발 남았다.

“누나가 말해줬습니다. 후작 부인께 의뢰를 받았다고요.”

게빈이 기어이 하녀장이 끝맺지 못한 말을 마무리해준다.

후작성에는 싸늘한 바람이 불었다.

나와서는 안 될 이름이 나왔다.

그리고···

나는 검을 뽑아 단숨에 게빈의 목을 쳤다.

촤아아악!!

분수처럼 피가 튀며 목 없는 게빈의 몸뚱어리가 무너졌다.

예상치 못한 내 행동에 후작이 눈썹이 꿈틀했고 다른 사람들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런 그들에게 내가 말했다.

“아무래도 이놈은 죽기 전에 아무 말이나 지껄였던 것 같습니다. 설마하니 후작 부인께서 그런 참담한 음모를 꾸미셨겠습니까? 안 그럽니까? 어머니?”

로잘린을 정면으로 보며 말하자 그녀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지. 내가 왜 헤논을 죽이려 들겠니? 그런 끔찍한 생각은 꿈에서도 해본 적 없단다.”

그녀는 얼마나 정신이 나가 있었는지 내가 슬쩍 어머니라 부른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당연하지요. 어머니께서는 늘 온화하시고 다정하셔서 레이디의 귀감이 되어오셨습니다. 이런 잡놈의 유언비어 따위에 명예가 더럽혀질까 부득이 참했으니 후작님께 죄를 청합니다.”

이게 바로 처세술이란다. 필립아.

냅다 목 자르고 어버버하는 거랑 좀 차이가 나지?

“후작님, 여기서 따로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사람들을 물려주십시오.”

여기서 독대까지 신청한다면?

로잘린과 필립은 신경 쓰여 죽겠지.

로이드 후작은 당연히 승낙했다.

“좋다. 전부 들어가라.”

내성의 구경꾼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시온도 볼일을 보러 갔다.

하지만 로잘린과 필립은 목석마냥 우두커니 서서 떠나질 않는다.

“고든, 잠시 할 얘기가 있어요.”

“부인도 들어가 계시오. 필립, 너도 물러가라.”

후작이 로잘린의 말을 끊었다.

필립은 더 어찌할 수 없다고 여겼는지 돌아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잘린은 여전히 버텼다.

“고든, 설마 아까 이야기 정말로 믿는 건 아니죠?”

“물러가라고 하지 않소!”

후작이 고함을 지르자 그제야 움찔거린 로잘린이 퇴장했다.

가는 와중에도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힐끔 보는데 성격 좋은 망나니인 나는 미소로 화답해줬다.

결국 로이드 후작과 둘만 남았다.

십 년 늙은 표정으로 한숨을 쉰 후작이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더냐? 이번 습격에 관해서 추가로 설명할 게 남았나?”

“아닙니다. 다른 일입니다.”

“말하거라.”

이미 충분히 고뇌하고 있는 후작에게 또 다른 걱정거리를 안겼다.

“후작령에 흑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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