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30화 (30/200)

4장 발견 : 발견한 망나니

황혼의 7간부.

질투의 사도.

얼음마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여자의 본명은 니플헤임이다.

그녀는 선천적으로 얼음을 다루는 자질을 타고난 빙결술사였다.

아르니아 대륙에서 특이한 재능은 귀족에겐 축복이 될 수 있으나 빈곤한 평민, 혹은 농노에게는 저주로 돌변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여자의 경우는 후자였다.

원소술사라는 역천의 재능을 타고나서 그녀가 팔려간 곳은 서커스단이었다.

그것도 가난에 못 이긴 부모가 단 10골드에 팔아버렸다.

광대가 되어 대륙을 전전했다.

얼음을 쓰는 소녀라니.

외모마저 얼음으로 빚어놓은 듯했다.

특이함으로 비롯된 희귀성은 지체 높으신 귀족들의 뒤틀린 소유욕을 부추겼고 소녀는 희생양이 되었다.

그때 두 다리를 잃었다.

아르니아 대륙 어디에나 존재하는 흔하디 흔한 이야기.

그러나 결말은 조금 달랐다.

여자의 힘은 성장할수록 강해졌고 일개 귀족이 감당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소녀는 손에 피를 묻혔다.

자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자에게는 자비없는 철퇴를 내렸다.

심지어 새로운 능력도 각성했다.

기초적인 세뇌 능력이었는데, 지능이 낮은 몬스터를 다량으로 조종하는 참으로 무서운 능력이었다.

오랜 기간 공을 들이면 지능이 높은 인간마저 어느 정도까지는 자신에게 호의적이게 만들 수 있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불만을 가득 품고 있던 그녀가 황혼에 간부로 영입된 건 어찌보면 필연이었다.

당시 그녀는 콧대가 하늘로 승천할 지경이었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이제 남은 건 마왕 바알을 도와 빌어먹을 세상을 끝장내는 것만이 인생 최대 목표이자 사명이었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너처럼 어린 소녀가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마왕을 돕는 것이냐. 참으로 안쓰럽구나.”

고든 로이드.

그가 전장에서 니플헤임을 보고 한 첫마디였다.

고요한 호수에 조약돌이 퐁당 빠졌고 소녀의 심장에는 격렬한 파동이 일어났다.

이미 망가진 정신세계에 유일하게 던져진 따뜻한 말 한마디는 그녀의 소유욕을 부추겼다.

하지만 고든은 원한다고 해서 쉽게 가질 수 있는 남자가 아니었다.

세븐 스타에 소드마스터.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이상의 강자였으니.

오히려 그 점이 니플헤임이 더욱 집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부러 그가 있는 전장만 골라갔다.

그가 지배하고 있는 영지를 방문해 분탕을 치기도 했다.

관심받고 싶어서 물병을 깨는 아이처럼 온갖 치기를 다 부렸다.

거기서 카리나를 처음 만났다.

붉은 머리의 소녀.

비슷한 나이의 그녀는 자신과 정반대되는 능력을 지녔고 걸어온 발자취조차 반대였다.

소드마스터이자 화염검사, 이와 더불어 아름다운 외모를 갖춘 그녀를 모두가 추앙했다.

자신을 장난감처럼 휘둘렀던 탐욕스러운 귀족들마저 소녀에게는 굽신거렸다.

똑같이 태어났는데 어째서 저 여자와 나는 어떻게 이렇게 다른 걸까.

그래.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어.

원래 세상은 불공평한 법이니까.

그러나 진정으로 분노했을 때는 카리나가 고든 로이드를 바라보는 눈빛을 목격했을 때였다.

짝사랑하는 처지라 알 수 있다.

같은 짝사랑녀의 눈빛을.

저 여자와 나는 똑같은 사내를 마음에 두고 있다.

그리고 저 여자와 고든은 같은 세븐 스타다. 나는 그들이 처치해야 할 적일 뿐이고.

‘질투 나. 질투가 나서 미칠 것 같아!!!’

카리나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싶었다.

고든 로이드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었다.

질투가 났다.

질투가 나서 미치겠다.

그의 옆자리는 내 자리인데.

그는 내 것인데.

내가 가져야만 하는데.

어째서? 왜?

마왕 바알이 봉인되고 난 이후에 스스로 자원해서 북부산맥에 온 이유가 있었다.

조직의 숙원인 마왕 부활을 위해서도 위해서지만 이곳은 고든 로이드가 있는 후작령과 꽤 가까운 거리다.

또한 빌어먹을 카리나의 턱밑이기도 하니 언제든 그녀의 등 뒤로 비수를 꽂을 수 있었다.

‘새로운 귀족 출신 신병이 왔습니다. 고든 로이드 후작의 아들이랍니다.’

게다가 우연이긴 하지만 고든의 새로운 조각도 발견했지 않는가.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납치라도 하고 싶었으나 임무가 더 급했기에 참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제 발로 내 영역까지 찾아온 놈을 거절할 필요는 없지.

벌써부터 머릿속에는 좋아하는 남자의 편린을 어떻게 가지고 놀지 수많은 상상이 떠올랐다.

‘내 말만 듣는 개로 만드는 건 어떨까? 고문을 가한 다음 죽어가는 모습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도 즐거울지도. 노예로 삼아달라고 애원하는 비참한 얼굴을 보고 싶어.’

그녀의 즐거운 계획은 세뇌한 예티를 끌고 빅터의 흔적을 따라갔을 때 물거품이 되었다.

“···떨어졌다고?”

“죄송합니다. 나사 하나 빠진 미친놈인 줄은 몰랐습니다. 정말이지 망설임 없이 뛰어들더군요.”

크레바스 안쪽을 보았다.

설령 자신이라 해도 저기에 빠지면 곤란할 텐데 유저급 무인이라면 볼 것도 없다.

이마의 핏대가 솟으며 짜증이 몰려왔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는지 예티가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빅터의 멱살을 잡고 들어 올렸다.

“컥! 커컥!”

“빅터, 내 인내심을 시험한 거라면 성공했어. 칭찬해줄게. 만약 다음에도 장난감을 가져오는데 실패하면 다음은 없어. 알았지?”

“며, 명심하겠습니다!”

익스퍼트에 이른 빅터라도 마스터급의 니플헤임 앞에서는 어른 앞의 어린아이 신세다.

예티가 손을 내려놓자 겨우 자유를 찾은 빅터가 땅바닥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었다.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카리나를 처리하는 계획만큼은 완벽히 실행하겠습니다.”

“어떻게 할 건데? 이미 네 정체는 들켰어. 헤논이 미리 뒤처리하고 왔을 테니까.”

“그···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네가 직접 미끼가 되어 카리나를 아울베어 서식지로 유인해. 난 그곳에서 기다리며 그녀를 맞을 준비를 하겠다.”

“존명.”

니플헤임은 고개를 숙이고 달려가는 빅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음 속에서 질투가 들끓었다.

일초라도 빨리 카리나를 잡고 고든을 곤란하게 해서 갈증으로 메마른 가슴을 채우고 싶었다.

* * *

니플헤임이 크레바스에 도착하기 5분 전.

-뛰어내려라. 그 방법뿐이다.

절벽 아래는 천장단애라는 말이 어울릴 만큼 속이 비치지 않은 암흑이지만 황금가지를 얻기 위해선 내려가야만 한다.

내가 크레바스 쪽으로 시선을 던지자 빅터가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뛰어내릴 생각은 아니겠지. 멍청한 생각이다. 저기에 떨어졌다간 뼈도 못 추린다.”

빅터의 칼에는 푸르스름함 마나가 씌어 있었다.

익스퍼트의 상징인 마나소드였다.

이대로 빅터와 싸우다가 질투의 사도에게 붙잡히느냐, 천마의 말대로 크레바스 속으로 뛰어들어 확률 낮은 도박이라도 하느냐.

사실 어떻게 행동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나는 로이드 후작가에서 망나니로 불렸다.”

뜬금없는 소리에 다가오던 빅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다. 나는 영지에서 망나니 취급을 받았다. 모든 영지민들이 날 혐오하고 경멸하고 피했지.”

“의외로군. 북부에서 근무하는 것만 보면 성실한 군인 그 자체였는데 말이야.”

“누구나 숨기고 싶은 과거 하나씩은 있는 법이니까. 그런 내가 왜 망나니 소리를 들었는지 아나?”

“글쎄. 뭔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끌 요량으로 잡담을 꺼냈다면 소용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군.”

“청개구리처럼 사람들이 원하는 바의 반대로만 행동했기 때문이야. 그럼 나중에 보자구.”

말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크레바스로 몸을 던졌다.

안 무섭냐고?

당연히 무서웠다.

그러나 활로가 여기밖에 없으니 그대로 뛰었다.

“이런 미친놈을 보았나!”

저 위에서 경악한 빅터의 고함이 들렸고 그마저도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점점 작아졌다.

곧 있으면 딱딱한 지면과 충돌한다.

아무리 회복력이 좋아도 이 높이에서 떨어진다면 회복할 여지도 없는 즉사였다.

이를 알고 있음에도 뛰어든 이유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킬 우드 컨트롤을 발동합니다.]

[나무의 성장이 촉진됩니다.]

콰콰콰콱!!!

떨어지는 와중에 빙벽을 뚫고 나온 나뭇가지를 잡고 추락 속도를 줄였다.

어려운 일이었다.

낙하 속도가 상당했기에 나무줄기는 붙잡을 때마다 부러졌고 그때마다 새로운 나무줄기를 소환해야 했다.

‘제발!’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드 컨트롤 발동했다.

그 결과, 열 번째 나무줄기를 붙잡고 벽에 대롱대롱 매달릴 수 있었다.

죄다 까진 손바닥에서는 피가 뚝뚝 흘러내렸고 떨어지다가 전신을 부딪쳐서 피멍이 문신처럼 새겨졌다.

[스킬 끈질긴 생명력이 발동합니다.]

[회복력이 증가합니다.]

패시브 스킬로 인해 자잘한 부상들은 점차 회복되긴 했다.

빙벽을 뚫고 나온 나뭇가지를 손잡이 삼아 천천히 하강했다.

한참을 내려가야 했다.

만약 맨몸으로 바닥까지 내려갔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만으로도 끔찍했다.

탁.

결국 바닥에 도착했다.

어둠만이 존재하는 심연.

위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여기는 어딜까.

땅을 더듬어보니 크레바스 아래쪽은 얼음이 아닌 돌바닥이었다.

죽음과도 같은 침묵이 온몸을 옥죄었고 걸을 때마다 뚜벅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 지점을 딱 넘자 움직임을 감지하기라도 한 듯 갑자기 사방에 횃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사방이 환해지며 주위가 식별됐다.

“!!!”

놀랍게도 그곳은 유적이었다.

낡은 이끼로 뒤덮인 돌들이 장엄한 건축물을 형성했다.

천장까지 높게 솟은 기둥과 곳곳에 위치한 가고일 조각상의 눈에 박힌 붉은 수정이 요요하게 빛났다.

솔직히 가고일 조각상이 움직이면 어찌할까 쫄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이곳은 대체···”

정면에는 피라미드가 하나 있었다.

이집트 피라미드는 우스울 정도로 커다란 피라미드였고, 그 앞에서 사람 하나 정도는 개미처럼 보였다.

사각문의 입구가 보였고 그쪽으로 시선을 두니 머릿속에 목소리가 울렸다.

-애송이, 저기다. 저기에서 황금가지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확실해.

제대로 찾은 듯했다.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드루이드의 직감을 최대로 활성화해서 위험요소가 있는지 살폈으나 크게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마침내 도달한 곳은 제단이었다.

찾고 있던 나뭇가지는 제단 위에 둥둥 떠있었다.

눈부신 황금빛을 뿌리고 있는 나뭇가지를 본 내 심정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에 차올랐으며 심박수는 미칠 듯이 치솟았다.

두근! 두근! 두근!

단순한 나뭇가지인데 왜 이리 맛있어 보이는지.

새삼스레 내가 드루이드임을 실감했다.

천마의 말이 맞았다.

저 나뭇가지는 분명 나를 더 높은 레벨로 도약시켜 줄 터.

홀린 듯이 제단을 향해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감히 마검을 들고 오다니. 목숨이 여러 개인 모양이구나. 죽어라.

광대한 기운이 나를 내리눌렀다.

그 누구에게서도 느껴본 적 없던 압도적인 살기였다.

소드마스터인 로이드 후작과 사령관 카리나의 기세도 살벌했지만 여기에 비교하면 어린애 수준이었다.

너무 강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없고 우러러보게 하는 기세였으니, 기운으로만 사람을 죽인다는 말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지 오늘 처음 알았다.

만약 내가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 즉시 죽었을 테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그러나 나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스킬 자정작용이 발동합니다.]

[모든 상태이상에 면역입니다.]

인간을 초월한 살기조차 나를 어쩌지 못했다.

드루이드의 능력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인과율의 구성요소 중 하나기 때문에.

-어떻게! 한낱 인간이 견딜만한 피어가 아닐진대···

상대가 당황한 틈에 공격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뒤돌자마자 시야에 들어온 거대한 거체에 호흡이 절로 멈췄다.

오우거?

트롤?

비교하기 민망하다.

지구에 존재하던 가장 큰 포유류 대왕고래 두 마리는 합쳐놓은 듯한 엄청난 크기의 지성체는 바로 드래곤이었다.

파충류 특유의 쭉 찢어진 노란 눈동자가 번뜩이며 나를 직시했다.

-마검을 가져온 인간이여. 대답하라. 너는 나를 죽이기 위해 레어에 찾아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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