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52화 (52/200)

7장 소환 : 선물한 망나니

피바다가 된 실내.

부하의 목을 베어놓고도 나태는 아무런 감흥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백발 머리카락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젊은 남자가 나타났다.

“결국 저지르셨군요.”

짧게 말한 사내는 엉망이 된 바닥과 시체를 능숙하게 치웠다. 그렇게 헤논이 드루이드라는 걸 알았던 부하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삭제됐다.

실내가 다시 깔끔해지고.

사내가 나태에게 묻는다.

“헤논을 지켜주시는 이유가 궁금하군요. 혹시 시온 때문입니까?”

보라빛 머리카락을 찰랑이던 나태가 장죽을 한모금 깊게 빨고 연기를 내뱉으며 대답했다.

“세바스찬과의 계약을 어길 순 없거든. 어쨌든 나를 이 자리까지 올려준 사람이니까.”

“그랬군요. 저는 마스터가 시온에 대한 모성애라도 생긴 줄 알고 설렜습니다.”

“후훗, 그럴 리가 있겠어? 너도 알다시피 나는 감정을 느끼지 못해.”

그랬다.

황혼의 대간부 나태.

그녀는 내면이 공허한 인물이었다.

“언제고 숨길 수는 없을 겁니다. 특히나 황혼교주가 알게되는 날에는 마스터까지 위험해집니다.”

“아직까지 내 직감은 괜찮다 말하고 있어. 여차하면···황혼 따위 버리지 뭐. 어차피 악마 부활엔 관심 없으니.”

속 편하게 포도알을 하나 더 집어넣는 나태에게 사내가 추가보고를 올렸다.

“그리고 탐욕이 로이드 가문 근처를 계속 배회 중입니다. 무언가 일을 꾸미는 듯합니다.”

포도알을 입에 넣으려던 나태의 손이 멈췄다. 이내 포도알은 그녀의 손에서 바스락 터졌다.

“그 욕심쟁이 놈이 가만히 있을 리 없지. 또 사고를 칠 거야. 파헬, 네가 직접 가서 그놈을 지켜보아라.”

“혹시라도 시온이 위기에 처하면 구합니까?”

나태는 잠깐 대답이 없었다.

“···마음대로.”

“예스, 마스터.”

파헬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서렸다.

이내 그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수준급의 물도마뱀 발걸음이었다.

* * *

새벽 4시.

일출까지 한참 남았지만 나는 항상 꼭두새벽에 기상했다.

드루이드의 패시브 스킬 끈질긴 생명력은 잠을 자지 않아도 언제나 풀컨디션을 유지하게 해준다.

그래도 생각을 정리하고 의식을 환기할 겸 두 시간 정도의 수면은 취해주는 편이었다.

일어나자마자 한 시간 동안 명상 수련을 했다.

의식 속에서 나는 내 역량을 정확히 산정하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하며 화끈한 공격력을 뽐냈다.

한편으로는 최근 후작과의 전투에서 배운 영역 전개에 대해서도 연구해보았다.

여전히 아리송했지만 명상이 길어질수록 이미지가 구체화되면서 실마리가 잡힐 듯도 했다.

평소대로라면 명상 수련은 새벽 6시까지 계속되지만 오늘은 조금 일찍 끝냈다.

특별히 다른 할 일이 있어서였다.

“이건 정말 봐도 봐도 신기하군.”

허리춤에 매단 흰색 호리병을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드래곤 레어에서 카일의 부탁으로 얻은 이 호리병은 레어의 모든 보물을 품고 있는 엄청난 가치의 아공간 주머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웬만한 황금을 다 합친 것보다 이를 담을 수 있는 호리병이 더 귀해 보였다.

[고대의 유물 — 아공간 호리병]

게다가 시스템까지 고대의 유물에 반응했으니, 여기에 얽힌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호리병을 잡으니 머릿속에 파팟! 하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한눈에 들어왔다.

의식과 연결된 이 유물은 내가 꺼내고 싶다고 생각한 물건을 정확히 눈앞에 대령했다.

아공간에서 꺼낸 건 바로 팔뚝만한 알이었다. 여기에는 드래곤 카일이 부탁한 헤츨링이 잠들어있다.

“깨어날 기미가 안 보이는군.”

레어에서 탈출한 이후로 드래곤 에그는 처음과 똑같이 미동도 없었다.

혹시나 몰라서 마나의 집약체인 드래곤 하트를 에그 옆에 계속 붙여주었다.

확실히 반영구적 마나결정체인 드래곤 하트의 마나는 잘 섭취하고 있다.

그런데도 큰 변화가 안 생기는 모습을 보면 헤츨링이 부화하는 데는 상상 이상의 마나가 주입되거나 특별한 계기, 혹은 기본적인 시간 투자가 필요할 듯했다.

“기다려주자.”

드래곤 에그를 호리병에 넣었다.

그리고는 오랜만에 황금산을 훑어보았다.

금빛으로 반짝여서 황금산이라 부르긴 했으나, 실제로 황금산이 금화로만 이루어지진 않았다.

최고급 병장기부터 시작해서 화려한 장신구들, 눈이 부실 정도로 빛나는 보석, 반짝이는 예복까지 다양한 귀물들의 섞여있다.

그중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자그마한 함에 들어있는 만드라고라였다.

나뭇잎 부분이 머리카락 같고 뿌리 부분이 인간의 몸통 같아서 기분 나쁘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지만 사실 만드라고라는 굉장한 영초다.

섭취하는 것만으로도 몸속의 마나를 급격히 늘려주는 효과를 보인다.

만드라고라는 묻혀 있는 땅의 마나 포화도와 성장 기간에 따라 품질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헌데 드래곤 레어에 있던 만드라고라들은 카일이 직접 수집한 보물답게 같은 영초 중에서도 최상급에 속할 만큼 엄청난 영기를 뿜어냈다.

-드디어 때가 되었군. 하나 먹거라.

천마의 목소리가 의식을 울렸다.

그동안 나는 만드라고라가 있어도 일부러 먹지 않았다.

이유는 확실했다.

천마가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약과 영초는 많이 먹는다고 좋은 게 아니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듯이, 때에 맞지 않게 과다 섭취하면 네 몸속의 마나회로를 해친다.

-신체의 기틀을 잡거나 적정한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영약과 영초 섭취를 지양해야 하며, 혹여 섭취하게 되더라도 그 종류를 가려먹거라.

그동안 이런 소리를 들으며 만드라고라가 있음에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요새 몸 컨디션이 급격하게 올라오고 세바스찬과 로이드 후작과의 연이은 대련으로 많은 수확을 얻으면서 한 단계 도약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검사로서의 길을 먼저 걸어왔던 천마 또한 지금 내가 어느 지점에 있는지 정확히 인지하고 아공간 호리병에 잠들어있던 만드라고라 섭취를 권했던 것이다.

[만드라고라를 섭취합니다.]

[마나가 크게 증가합니다.]

영초를 씹자마자 상큼하고도 청량한 향기가 입안 가득히 퍼졌다.

서둘러 가부좌를 취하고 새롭게 들어온 만드라고라의 마나를 단전에 머물러있던 용혈과 융합하는 과정을 밟았다.

솔직히 말해서 유저에서 익스퍼트에 오르기 위해 기혈을 뚫었을 때보다 훨씬 쉬웠다.

아무래도 마스터의 경계를 넘는 게 아니라 같은 익스퍼트 내에서의 발전이었기에 평소보다 수월한 듯했다.

파앗!

명상이 끝나고 눈을 번쩍 떴다.

잠깐이지만 눈꺼풀 사이로 정광이 흘러넘쳤다.

몸이 훨씬 가벼워지고 시야가 트였다는 느낌이 들었다.

-축하한다. 네놈은 이곳 대륙 용어로 익스퍼트 중급에 올랐다.

익스퍼트에 오른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중급이라니, 대륙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불가해한 성장 속도다.

이것이 모두 천마의 도움과 그간 적들과 사선을 넘나들며 싸운 경험치, 소드마스터와 그에 준하는 고수와의 잦은 대련을 통한 수확이 모여 이뤄낸 쾌거였다.

“이렇게 된 거, 여세를 몰아 만드라고라 하나를 마저 복용해야겠습니다.”

-아서라. 영약을 연속해서 복용하는 건 악수 중에 악수라 하지 않았느냐. 게다가 다른 영초도 아니고 똑같은 영초를?

“별로입니까?”

-별로인 정도가 아니라 영초를 땅바닥에 버리는 셈이다. 특히나 너 정도 되는 경지면 이제 같은 영초로 얻는 성과는 미미하다 봐야겠지.

이런 면에서의 천마의 조언은 믿을만하다.

그렇다면 아무리 최상급의 만드라고라일지라도 나에게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졌단 이야기인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굳이 복용하는 사람이 내가 아니어도 되잖는가.

‘시온에게 먹이자. 요새 벽에 가로막혀 기연에 목말라하고 있을 테니까.’

마음을 정하고 만드라고라를 품에 넣은 채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시온이 찾아올 때가 됐는데 오질 않는다.

그녀는 항상 아침 6시 정각에 내 방문을 두드려 기계처럼 날 깨우곤 했는데, 오늘은 감감무소식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매일을 먼저 찾아왔으니 하루 정도는 내가 역으로 그녀를 방문하는 것도 괜찮겠지.

시온의 침실은 내 방에서 상당히 가까웠다.

원래 내성의 사용인들은 전용 숙소에 따로 모여서 살지만 그녀는 짐을 싸고 뛰쳐나왔다.

모두가 만류할 때 시온은 아득바득 고집을 부리면서 내 방 근처에 있는 빈 창고를 침실 삼아 지냈다.

이유는 물어보니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도련님이 암살자에게 습격이라도 당할 경우 거리가 멀면 대처하기 힘듭니다. 제가 항상 옆에서 지켜드리지요.’

누가 누굴 지킨다는 건지.

그래도 날 위해주고 배려하는 마음 하나만큼은 가상하다.

품속에 있는 만드라고라가 하나도 안 아까웠다.

그녀는 영초를 먹을 자격이 충분했다.

똑똑

“시온.”

문을 두드렸는데 답이 없다.

귀를 기울였더니 안쪽에 고른 숨소리가 들린다.

혹시나 싶어서 문을 열어봤더니.

“···이런.”

시온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주변에는 온갖 책들이 널려있다.

무슨 내용인지 살펴봤다.

대부분이 검술서와 마나연공서.

아무래도 시온은 밤늦게까지 자신의 경지를 올릴 방법을 연구하다 기절하듯이 곯아떨어졌나 보다.

집안일까지 하면서 밤새 훈련까지 하는 하녀라니.

나처럼 체력무한도 아닌데.

시온이 이 세계의 주인공이어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도 한계에 부딪친 듯 오늘 늦잠을 자버렸다. 난관에 처한 아랫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주인된 도리겠지.

‘일단은 좀 더 자게두자.’

숙면을 취하는 게 눈에 보여서 깨우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더 자라고 이불을 목 끝까지 덮어줬더니, 낯선 감촉을 느끼고 시온이 눈을 번쩍 뜬다.

“···어!?”

충혈된 눈으로 나를 본 시온은 잠깐 동안 몸이 경직 상태가 되었다. 자신의 침실에 도련님이 와있으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는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언제까지 드러누워 있을 거지? 누가 주인이고 누가 하인인지 헷갈리는군.”

일부러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 시온이 벌떡 상체를 일으킨다.

“죄송합니다, 도련님.”

“성실함이 그나마 몇없는 너의 장점 아니었나? 그조차도 해내지 못하는군.”

시온의 얼굴이 벌게졌다. 내가 질책했다고 꽁해 있을 스타일은 아니다. 그저 본분을 다하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운 자기 자신에 대해 화가 났겠지.

“체력부터 시작해서 넌 너무 약하다. 눈에 거슬릴 정도로.”

참고로 지금 시온의 경지는 소드 유저 최상위권이다. 이런 여자를 약하다고 하는 건 솔직히 기만이다.

그러나 익스퍼트인 나와 캠벨 사이에서 껴있는 그녀로서는 내 주장이 그럴싸하게 느껴질 거다.

“부족한 점이 보이면 밤을 새워서라도 그 노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내 앞에서 퍼질러 자고 있군.”

“죄송합니다.”

“요새 나와 좀 가까워졌다고 편해지기라도 한 건가? 원래 내가 가문에서 어떤 별명으로 불렸는지 까먹기라도 했나?”

그랬다.

요근래 내가 주변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다 해도 날 처음부터 봐왔던 시온은 누구보다 내 본질을 잘 알고 있다.

결국 눈앞의 요요한 눈빛을 뿌리는 사내는 후작가의 망나니란 사실을.

“실망이다. 시온.”

실망이란 단어를 직접 언급하자 그녀의 동공이 커졌다. 충격이 많이 커보였다. 침대에서 내려온 그녀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불가하다. 넌 벌을 받아야 해.”

그녀가 불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본다. 그런 그녀에게 어떤 벌을 내릴지 친절히 설명해줬다.

“오늘 하루 동안 밖으로 나오지 마라. 외출금지다. 비좁은 방 안에서 네가 저지른 잘못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풀 죽은 채 고개를 떨구는 그녀.

지금이 바로 타이밍이다.

“그래도 하루에 한 끼 정도는 먹어야겠지.”

품속에서 만드라고라를 꺼냈다.

방안에 확 풍기는 청량한 영기에 시온의 동공이 확장된다.

그녀의 눈앞에는 당근만한 영초가 존재감을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츄릅!?”

츄릅은 선 넘었지.

군침을 질질 흘리던 시온은 침샘 조절을 못했다는 걸 깨닫고 당황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래도 그녀의 몸이 본능적으로 영약이나 영초를 원하고 있음은 확실히 파악했다.

그동안 시온은 나를 따라다니며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했고, 그 과정에서 충분한 경험과 깨달음을 쌓았다.

다만 암살자들이 배우는 무술이 마나 축적에 불리해서 다음 단계로 못 올라가는 중이었던 거다.

“특별히 간식거리 하나를 놓고 갈 테니 먹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도록.”

간식거리치고는 조금 많이 비싸다.

나는 마치 강아지에게 쿠키 주듯 땅바닥에 영초를 툭 던졌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그녀는 내 명령에 의해 방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명목상으론 벌이 맞지만 그녀에게 꼭 필요했던 휴식을 부여한 셈이다.

오늘 그녀는 그동안 부족했던 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할 것이다.

때가 되면 바닥에 놓인 만드라고라를 먹겠지.

그리고는 영초의 힘을 양분 삼아 마나회로를 개통하고 새로운 경지에 오르리라.

<시온 라이크>의 주인공 시온이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 믿었다.

“내일 아침엔 오늘과는 다른 모습이었으면 좋겠군.”

몸을 돌려 나가는 길.

시온이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도련님!”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아무래도 벌을 받아서 속상한가 보다.

“할 말이라도 있나?”

쉽게 입을 떼지 못하는 시온.

그런 그녀가 고개를 푹 숙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감사···합니다.”

“시답잖군. 제대로 반성하거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방문을 닫았다.

하루는 쏜살같이 지나갔고.

바로 다음날.

시온은 익스퍼트가 되어서 나타났다.

* * *

로이드 후작성 근처에는 힌즈라는 경관이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이곳은 후작성 주민들의 귀중한 수원이자 따뜻한 날에는 물놀이 장소가 되기도 한다.

하현달이 뜬 밤.

힌즈 호수 주변에 위치한 낡은 오두막으로 두 명의 인원이 다가가고 있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쓴 이들은 뭐가 불안한지 걸음을 옮기면서도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마님, 시간도 늦었고 느낌이 좋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게 어떨까요?”

같이 따라온 어린 하녀는 불안한지 손끝을 덜덜 떨었다. 로잘린 또한 오면서 몇 번이나 하녀와 같은 생각을 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헤논 녀석이 후계자가 되는 꼴은 눈에 흙이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못 본다.’

악마의 힘을 빌린다는 게 꺼려지긴 했으나 힐튼 가의 책사는 자신에게 해가 될 일어 절대 없다고 신신당부했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이번 딱 한 번만 눈 감으면 될 일이다.

이후에는 헤논이 죽고 알아서 필립이 가문을 접수할 테니 말이다.

끼이익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르며 오두막에 로잘린과 하녀가 왔음을 알렸다.

힐튼 가의 책사는 안쪽에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중절모와 가면을 쓴 정체불명의 사내.

그는 로잘린을 보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끈적한 웃음을 짓는다.

“어서 오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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