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엘프 : 똥침한 망나니
피엔토 자작가는 엘든 왕국 소속 가문으로 로이드 후작가 산하에 편입되어 오랫동안 봉신의 의무를 다해왔다.
가문의 주인인 피엔토 자작은 본인 가문이 뼈대가 굵고 전통 있는 귀족 가문이란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사내였다.
그는 이러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로이드 가문의 다른 봉신과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는데, 그중 특히 친밀했던 사람은 몰티 자작이었다.
최근 그는 몰티 자작으로부터 로이드 가문의 아쉬운 대처에 대해서 뒷담을 들어오던 차였다.
‘로이드 후작의 뜻을 이해할 수 없소. 귀족 출신도 아닌 천한 피를 우대해서 뭘 어쩌자는 건지.’
피엔토 자작은 몰티 자작의 딸인 로잘린 몰티가 로이드 가문의 정실부인이 되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봤고 결혼식까지 참석했던 사람이다.
그때 당시는 몰티 자작가가 세븐 스타를 배출한 로이드 가문과 사돈댁을 맺는다는 게 미칠 듯이 부러워서 배가 아팠었다.
‘사생아 녀석이 북부에서 이름 좀 날렸다고 신경 쓰는 꼴이라니!’
헌데 이제와서 보니 로잘린이 로이드 후작과 결혼한 게 오히려 독이 된 건지 몰티 자작은 나날이 머리카락이 빠져갔다.
옆에서 몰티 자작을 보던 피엔토 자작은 고소하다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결혼시킬 딸이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헤논 그 망나니가 정식 후계자가 되었다고? 믿을 수 없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몰티 자작을 질투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자격조차 없는 사생아가 새로운 로이드 후작이 되어 자신의 머리 꼭대기에 오르는 꼴은 절대 바라지 않았다.
이쯤 되니까 몰티 가문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적절한 대가를 바탕으로 말이다.
‘이럴 수가···악마 소환? 로이드 자작?’
하지만 시간은 빨랐고 엄청난 대사건이 손 쓸 방도도 없이 연속해서 터졌다.
정신 차리고 보니 헤논이라는 천출 망나니는 명실상부한 차기 후계자가 되었고 새로운 영웅이란 명성까지 얻었다.
한 번 천한 놈은 영원히 천한 놈이라는 철학을 가진 피엔토 자작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몰티 자작에게 제안했다.
다같이 모여서 로이드 후작에게 헤논의 후계자 자격 박탈을 정식으로 요청하자고.
그러나 그 마지막 수단조차 몰티령을 침범한 엘프족 때문에 완전히 무산되었다.
“놈이 운이 좋은 건지, 아니면 몰티 자작이 운이 나쁜 건지 모르겠단 말이지···”
2천 병력을 이끌고 야지에 진을 치고 있던 피엔토 자작이 책상에 손가락을 툭툭 치며 중얼거렸다.
옆에 있던 부관이 입을 열었다.
“한 대 태우시겠습니까?”
부관이 담뱃불을 붙여줬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자 이내 속이 편안해지며 안정감이 찾아온다.
“역시 이 맛이야.”
지금 엘든 왕국에는 담배가 귀했다.
칼론 제국에서는 광풍이 불어 열 살배기 아이도 피운다는 소문을 듣고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엘든 왕국의 수도에도 제국에서 흘러들어온 담배가 알음알음 퍼졌고 피엔토 자작도 호기심에 담배를 몇 개비 얻어보았다.
처음에는 기침만 나오는 이걸 왜 태우나 싶었는데 지금은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는 애연가가 된 상태다.
시가 한 대를 다 태우는 데는 약 15분이 걸렸다.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끌 때쯤 부관이 밖에서 보고했다.
“손님들이 오셨습니다.”
“안으로 뫼시게.”
천막을 열고 화려한 갑주로 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들어와 피엔토 자작에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자작님.”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반갑네. 앉게.”
방문한 사람들은 피엔토 자작과 마찬가지로 로이드 후작을 섬기는 봉신들이었다.
엘프와의 전쟁을 위해서 로이드 가문의 소집에 응하던 도중 새로운 소식을 듣고 선회해서 모인 참이었다.
“소식 들으셨습니까? 저희 연합군을 이끌 사람이 로이드 후작님이 아니라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헤논이란 망나니라더군요.”
젊고 혈기 넘치는 캉테 남작이 분개하며 외치자 봉신들 사이에서 불만이 고조되었다.
피엔토 자작은 팔짱을 끼고 묵묵히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봤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사생아 새끼가 여기 계신 귀하신 분들을 부하처럼 부리고 말입니다.”
“맞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듣고 엘든 왕국 역사서를 뒤져봤습니다. 하다못해 20년 전 최후의 전투 때도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은 없었습니다.”
“솔직히 이번 몰티령 사건에 헤논이란 망나니 책임도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놈 때문에 몰티 자작께서 심란해하셔서 엘프의 공격에 대처를 못하신 겁니다.”
아무말 대잔치였지만 그 끝은 모두 근본 없는 망나니 헤논에 대한 욕설로 귀결됐다.
그리고 또 다른 봉신 중 한 명인 노른 남작은 헤논을 넘어서 로이드 후작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건 후작께서 진작에 교통정리를 해줬어야 하는 일입니다. 어째서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셨는지···쯧쯧.”
천막 안에 잠시 정적이 맴돌았다.
이 자리에 만만한 헤논은 욕해도 로이드 후작까지 건들 자신이 없는 귀족이 태반이었기 때문.
침묵을 유지하던 피엔토 자작은 슬슬 끼어들 타이밍이라는 걸 인지하고 입을 열었다.
“세월에는 장사 없는 법이지. 아무리 대단한 세븐 스타라도 말일세.”
무리 중 암묵적인 리더인 피엔토 자작의 말에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러니 후작님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도 충성을 맹세한 봉신된 도리 아니겠나?”
“그말인 즉슨···”
“간단하네. 이번에 처음 만날 로이드 자작이 우리 전부를 통솔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보면 될 뿐.”
“어미가 누군지도 모를 천출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솔직히 피엔토 자작 또한 캉테 남작과 같은 심정이었다. 그저 점잔을 빼고 있었을 뿐, 헤논을 인정할 생각 따윈 추호도 없었다.
“대놓고 꼽을 주면 후작님의 체면이 상하지 않겠나. 우리는 체면도 세워주면서 슬기롭게 일을 해결해야 하네.”
“역시 자작님이십니다!”
“로이드 후작께서 피엔토 자작님의 혜안을 반이라도 본받으신다면 참 좋았을 텐데요.”
“허허, 이 사람들 참. 큰일 날 소리하지 말게.”
이후에는 엘프를 완전히 몰아내고 덩그러니 남은 몰티령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대한 화제로 한창 이야기꽃을 피웠다.
충성심이다 봉신 계약이다 어쩌다 하지만 결국 이들의 본질은 영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잡은 영주.
그들에게 이번 기회는 주인 잃은 커다란 땅덩이를 앞에 두고 하하호호 즐기는 하나의 축제에 불과했다.
* * *
봉신 소집령이 내려지고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후작령에서 공문을 발송하고 내용을 확인한 봉신들이 군사를 모으고 집결하기로 한 기한이 벌써 열흘이 지났다.
원래 살다 보면 정해진 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고 웬만하면 이해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 많은 봉신 중에 수백수천 단위의 군사를 끌고 오는 중대형급 영주들이 하나도 안 온 건 아무리 봐도 수상했다.
“오늘도 안 오는군요. 이쯤 되면 일부러 안 온다고 봐도 되겠지요.”
보통 이 정도로 늦으면 어떠한 사유로 늦는다고 전갈이라도 보낼만한데 단체로 작당이라도 한 듯 어떠한 응답도 없었다.
이쪽에서도 몇 번 파발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아직 준비가 덜 됐다는 똑같은 답변뿐이었다.
“도착한 영주들은?”
“총 열다섯입니다.”
열다섯이 많은 수 같지만 이들이 끌고 온 병사를 모두 합해봐야 고작 삼백. 중대형급 영주 한 명이 끌고 올 머릿수보다 작은 셈이다.
돌아가는 꼴을 본 캠벨이 주먹을 쾅쾅 치며 콧김을 내뿜었다.
“이것들이 빠져가지고! 부단장, 명령만 내려줘. 당장 말 타고 달려가서 가장 많은 군사를 거느린 놈부터 머리채를 붙잡고 끌고 올라니까.”
“그럴 필요 없어.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지금이야 버티겠지만 후작의 눈치가 보일 테니 언제까지고 그럴 순 없겠지.
마침 저쪽에서 뭉게구름을 일으키며 파발이 모습을 보였다.
소집령이 떨어지고 처음으로 봉신 쪽에서 보낸 파발이었다.
“혹시 로이드 자작님 되십니까?”
“그렇다.”
“피엔토 자작께서 서신을 보내셨습니다.”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자 저절로 실소가 나왔다.
옆에서 궁금했던 시온이 물었다.
“뭐라 그럽니까?”
“몰티령 근처에 전부 모여있으니 나보고 그곳으로 오라는군.”
“이런 씨부럴 잡것들이!”
캠벨이 발로 땅을 쾅쾅 찍었다.
“상관의 명령에 불복종하다니. 북부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거기는 매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험지였잖아. 게다가 사령관이 카리나님이었고.”
“그렇다 해도 이건 지나치게 무례한 처사입니다. 도련님을 너무 쉽게 보는 것 같군요.”
혈통에 대한 자부심을 빼면 시체인 귀족들이 사생아 출신인 나를 눈엣가시처럼 여길 거로 생각하긴 했다.
그런데 이렇게 대놓고 도발해주니 나로서는 오히려 편했다.
겉으로는 대우해주고 뒤통수 치는 녀석들보다는 백번 나았다.
양심의 가책 없이 마음껏 두들겨 줄 수 있으니 말이다.
“초대를 받았으니 가줘야지.”
“굳이 가줄 필요 없습니다. 신하의 소집에 응하는 군주라니, 모양새가 이상합니다.”
“어차피 여기에 모였어도 인사나 좀 하고 몰티령 근처까지 다함께 이동할 예정이었다. 저들이 미리 도착한 셈이니 잘 된 일이야.”
어깨를 으쓱이고 출발명령을 내렸다.
내가 거느린 병력은 평상시 후작성의 경비대로 근무하는 상비군 일백.
이미 힐튼 백작가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장정들을 차출해서 영지민에게 부담감을 지우지 않겠다는 내 배려였다.
여기에 중소 봉신들이 끌고 온 삼백을 포함한 총 사백의 아담한 부대가 몰티령을 향해 진군했다.
* * *
몰티 자작령 경계.
삼 일 만에 도착한 평야에는 군용 천막이 개미떼처럼 새까맣게 펼쳐져 있다.
가지각색 가문 문양이 새겨진 수많은 깃발이 바람에 날려 나부꼈다.
“전부 여기 모여있었군.”
모두 몇 명일까.
얼핏 봐도 5천은 되어 보이는 대군세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등에 피엔토 가문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맨 전령이 말을 타고 다가왔다.
“잠깐 정지. 신원을 밝혀라.”
지금 내가 전령을 마주하고 있는 상황 자체가 웃기다.
원래라면 저기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봉신 전부가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나를 마중 나와도 모자랄 판인데.
옆에서 지켜보던 캠벨이 심기가 불편해졌는지 전령을 잔뜩 노려보며 다가갔다.
“몇 대 맞다 보면 우리가 누군지 기억이 날 거야.”
말에서 내렸는데도 말을 탄 전령과 덩치가 엇비슷한 캠벨이 쿵쿵대며 다가가자 전령이 겁을 먹었는지 주춤댔다.
“됐다. 캠벨, 그만해.”
캠벨을 제지하고 앞으로 나섰다.
“나는 위대하신 엘든 국왕을 섬기는 영원한 동반자이자 아르니아 대륙의 구원자 로이드 후작의 차남, 장차 이 땅의 정당한 지배자가 될 헤논 로이드 자작이다. 안쪽에 이렇게 전해라.”
“아, 알겠습니다.”
내 기백에 압도된 탓일까.
전령은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렸다.
나와 사백의 군사가 연합군에 합류했다.
“이거야 원. 무슨 적진에 들어온 기분이군.”
캠벨이 중얼댔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데려온 사백 군사를 그 열 배가 넘는 숫자인 오천 군대가 둥글게 에워싸는 형세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건 화살만 겨누지 않았지 숫제 포위한 거나 다름없었다.
봉신들이 나를 압박하고 기 싸움에서 이겨 먹으려는 속내가 훤히 보였다.
“이게 누구십니까? 로이드 자작님 아니십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정면에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우르르 가까워져 왔다.
가장 정면에 선 장년 사내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 가식 어린 웃음과 함께 자신을 소개했다.
“처음 뵙습니다. 피엔토 자작이라 합니다.”
“반갑군요. 헤논 로이드 자작입니다.”
보통은 이런 경우에 봉신 쪽에서 군주에게 경례하거나 군주 쪽에서 봉신에게 손을 내민다.
하지만 피엔토 자작은 뻣뻣하게 뒷목을 세웠고 나도 굳이 놈에게 잘해줄 필요성을 못 느껴서 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뭐···들어가실까요?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따뜻한 빵과 소량의 술을 준비해뒀습니다.”
천막 안에 들어갔다.
안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훗.”
안쪽에는 직사각형이 아닌 원형 탁자가 놓여있었다.
사각형 탁자는 어떤 식으로든 상석이 생기지만 원형 탁자는 상석과 하석의 구분이 따로 없다.
군주든 봉신이든 똑같은 자리에서 먹자는 얄팍하고도 치졸한 속셈 때문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 거다.
어차피 원형 탁자니까 아무 자리나 골라서 털썩 앉은 다음 냉큼 빵을 하나 집어서 입에 넣고 포도주로 입을 헹궜다.
“크흠흠!”
“으음···”
귀족들은 의외로 내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편하게 행동하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심 내가 열 받아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길 기대했나 보다.
만약 그랬다면 그걸 또 꼬투리 삼아 후계자에 어울리지 않는 성품이라며 시끄럽게 굴었겠지.
“다들 뭐해요? 와서 같이 식사합시다.”
그런데 나는 일 초의 주저함도 없이 원형 탁자에 앉았고 독이 들었을지 모를 포도주를 시원하게 들이켰다.
물론 나에게는 자정작용이라는 개사기 완전 면역 스킬이 있어서 가능한 행동이었으나 남들이 보기엔 호탕한 행동으로 보일 법했다.
그때였다.
봉신 중 한 명이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꽂혔다.
“길바닥 출신이라 그런가···자존심도 없나 보네.”
스프를 떠먹으려던 숟가락이 멈췄다.
작게 말했다지만 속삭임이나 귓속말도 아니었고 솔직히 못 들을 수가 없는 데시벨이었다.
“그대 이름이 뭔가?”
“캉테 남작이라고 합니다만.”
삐딱하고 경박한 자세를 보아하건데 이놈이 영주들을 주도한 놈은 아닐지라도 행동대장격은 되는 듯했다.
“방금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아무 말도 안 했는뎁쇼?”
딴청을 피우던 그가 다른 영주들을 보며 동의를 구한다.
“혹시 뭐 들으셨습니까?”
“아니, 나는 아무것도 못 들었네.”
“자네 무슨 말 했나?”
영주들도 죄다 한통속이 되어서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을 해준다.
다들 자기편을 들어주자 의기양양해진 캉테 남작이 으스대며 말한다.
“자작님이 잘못 들으신 것 같군요. 새파랗게 젊으신 분이 벌써부터 귀가 어두우신가 봅니다. 흐핫하하!”
“하하하하하!!”
이어지는 영주들의 비웃음.
나는 침착하게 포도주를 한 모금하고 캉테 남작을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서 있을 텐가. 와서 들게.”
내 말을 듣고도 콧방귀를 뀌며 가만히 있던 캉테 남작이 피엔토 자작을 본다.
“그럼 식사 좀 할까.”
피엔토 자작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다들 앉았다.
리더는 피엔토 자작.
행동대장은 캉테 남작인가.
그렇다면 캉테부터 조져야지.
[스톤 컨트롤]
[스톤 랜스]
캉테가 앉아있는 네 개의 의자 아래로 송곳같이 뾰족한 돌이 솟아올랐다.
유심히 관찰하지 않고서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이어서 연계 기술로 우드 컨트롤을 발동시켰다.
[우드 컨트롤]
[바인드]
중급 드루이드가 되면서 바인드의 숙련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따라서 단순히 상대를 속박할 뿐만 아니라 이를 잡아서 휘두른다든지, 나무뿌리 자체가 채찍이 되어 상대를 타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지금 나는 바인드로 대상을 붙잡아서 부숴버릴 계획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바로 캉테 남작이 앉아있는 의자였다.
스르르륵
땅에서 솟아오른 나무뿌리가 캉테가 앉은 네 개의 의자 다리를 꽁꽁 묶었다.
나를 견제하느라 바쁜 영주들은 캉테 남작의 의자를 묶은 나무뿌리를 발견하지 못했다.
애초에 의자도 나무 재질이라 알아채는 것도 힘들었다.
그렇게 의자는 완전히 묶였고.
내 신호 하나면 산산조각이 난다.
아래에는 뾰족하게 솟은 돌 송곳.
마지막으로 캉테에게 기회를 준다.
“그런데 캉테 남작, 연합군 사령관으로서 묻겠는데, 아까 정말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나?”
“하하! 또 그 얘깁니까? 자꾸 환청 들으시고 생사람 잡으시면 곤란합니다.”
나는 분명 기회를 줬다.
걷어찬 건 저놈이다.
우지끈—!
나무 뿌리가 잡아당김과 동시에 의자 다리가 사방으로 튀었다.
어떤 다리는 허공을 회전하다가 벽에 박혔고 어떤 다리는 바닥을 굴러다녔고 어떤 다리는 식탁 다리에 부딪혀서 튕기더니 다른 영주의 얼굴을 가격했다.
“어이쿠!”
“이게 뭐야!”
마지막 다리는 피엔토 자작 쪽으로 날아갔는데 자작은 고개를 살짝 비틀어서 피했다.
그리고 대망의 캉테 남작.
앉아있던 의자 다리가 전부 사라질 줄 꿈에도 몰랐던 그는 완전히 방심한 상태로 있다가 중력의 힘에 이끌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가 앉은 자리에는 정확히 돌송곳이 대기하고 있었다.
뾰족한 돌송곳이 나무로 된 의자바닥을 가뿐히 뚫고 남작의 영 좋지 않은 곳을 찔러버린다.
푸우욱—!!
“끄아아아아아!!!!!”
어이쿠.
보는 내가 다 아프네.
캉테 남작의 터널 확장 공사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고, 오늘을 기점으로 캉테 남작에게 똥기저귀는 필수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