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95화 (95/200)

12장 잠식 : 오우야 망나니

게임 속 세상에 빙의한 이후로 대륙 평화와 이세계 탈출을 목표로 꾸준히 달려왔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러 능력이 필요했기에 헤논이란 캐릭터를 분석하여 검술과 드루이드를 주축으로 부단히 육성해왔다.

검술 방면으로는 천마검이라는 명검과 그 속에 봉인된 훌륭한 스승을 찾으면서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어쨌든 천마는 아르니아 대륙에서 적수를 찾기 힘든 고수고 그의 지도만 잘 따라가면 순탄하게 성장이 가능했다.

특히나 헤논에게는 세븐 스타 중 하나이자 천재 검사로 이름을 날렸던 로이드 후작의 피도 흐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드루이드 방면은 성장하는 방식이 두루뭉술했다.

헤논의 친모도 드루이드가 아닌 순혈엘프였고 스승으로 삼을만한 선배는 천 년 전 드루이드뿐이니 배움을 청할 상대가 없었다.

검술은 검을 휘두르기라도 하면 되지, 이쪽은 백날천날 자연과 대화를 나눠봐야 교감력의 증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 애매하다.

따라서 득템 순간에 한 단계 승급이 확정적으로 가능한 황금가지는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보물이었다.

현재 내가 확보한 황금가지는 총 세 개.

그중 한 개는 북부의 크레바스 틈새에서 발견했고 다른 하나는 리앙에서 만난 순례자 톰에게 얻었다.

황금가지는 나와 접촉할 때마다 내가 드루이드임을 인식하고 힘을 건네줬는데, 그냥 주진 않고 시험을 준비해서 나에게 자격이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자격 확인 시험은 황금가지 안에 봉인된 멀린의 기억을 재생시켜 특정 상황을 해결하는 방식이었다.

여태껏 나는 그 시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했고 겸사겸사 최초의 드루이드 멀린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똑같이 세계수의 시험을 볼 줄 알았다.

하지만 저번에 두 개의 가지를 얻었을 때와는 색다른 시스템창이 나를 맞이했다.

[황금가지를 발견하셨습니다.]

[획득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ERROR]

[감독관의 부재로 시험이 생략됩니다.]

시험을 건너뛰다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이유는 감독관의 부재란다.

짚이는 바가 있었다.

‘황금가지 속에 있던 멀린의 영혼 조각이 리처드 대장로에게 가는 바람에 시험을 치러줄 사람이 없어진 거로군.’

대신에 리처드 대장로를 잠식했던 멀린의 화신과 피 말리는 진땀승부를 벌여서 힘겹게 승리했으니 이를 시험에 합격했다 여겨도 될 듯 싶었다.

[저장된 기억이 있습니다.]

[기억을 회상하시겠습니까?]

[Y/N]

시험은 스킵되었지만 본래 시험에 등장했어야 할 멀린의 기억은 남아있단 소리다.

멀린의 기억을 봐서 나쁠 것은 없기에 회상하기로 결정했다.

한편으로는 어떤 일을 겪었길래 그런 극단적인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YES를 선택하셨습니다.]

[기억 회상을 시작합니다.]

[회상은 총 두 편입니다.]

[기억1 — 멀린]

필름이 돌아가며 영화가 재생된다.

회상씬에서 멀린의 기억은 대장로에게 어머니를 잃은 시점부터 시작되었다.

“저런.”

절로 탄식이 나온다.

그정도로 멀린의 경험한 일은 참혹했다.

엘프 대장로에 의해 노예로 팔린 그는 악덕 상인과 부패한 인간 귀족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짓을 당했다.

기억은 한동안 재생되다가 뚝 끊겼다.

‘멀린이 왜 인간과 엘프 둘 다 멸족시키고 싶어했는지 아주 조금은 공감이 가는군.’

본의 아니게 지성체의 추악한 밑바닥을 봐버린 기분이다.

하지만 공감이 간다고 해서 그가 한 악행이 정당화될 순 없다.

우선은 남은 기억이 하나 더 있다고 했으니 이어서 열람하기로 했다.

[기억2 — 리처드 대장로]

두 번째 기억의 주인은 특이하게도 이번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 리처드 대장로였다.

이 사람이 천년 전 멀린과 함께 천마를 봉인하진 않았을 텐데 어째서 황금가지는 그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까.

내 추측으로는 멀린의 영혼이 리처드를 잠식하는 과정에서 리처드의 영혼 일부도 황금가지로 흘러들어온 모양이었다.

‘심연을 들여다보는 자 심연 또한 너를 들여다본다. 뭐 그런 느낌인가.’

어쨌든 기억 좀 본다고 손해는 아니어서 수락을 선택했다.

그러자 눈앞이 밝아지며 또다시 필름이 돌아갔다.

처음 보이는 장소는 익숙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 박터지게 싸웠던 엘프의 성역이었다.

몇 년 전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역이라 그런지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봤을 때의 풍경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성역 위에는 두 남녀가 바람을 맞으며 대치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남자와 여자 둘 다 아는 얼굴이었다.

남자 쪽은 예상대로 리처드 대장로였다.

수염 색깔이 훨씬 짙었고 얼굴에 패인 주름살도 옅은 것이 확실히 젊어 보였다.

오히려 의외인 건 여자 쪽이었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얼굴.

내가 드루이드로 각성하도록 도움을 준 인물.

신비로운 연녹빛 눈동자와 가녀린 몸매의 하이엘프.

헤논의 친모 하이엘프 헤나였다.

아는 사람들이 나오자 저절로 몰입해서 기억회상을 지켜보았다.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던 둘은 리처드 대장로 쪽에서 먼저 말을 걸며 무거운 분위기를 깨트렸다.

“어째서지? 왜 내게 생명의 샘을 허락하지 않느냐?”

헤나의 대답.

“당신이 애지중지 여기는 세계수의 파편 때문이지요. 그건 당신에게 과분한 물건이에요.”

“고작 나뭇가지에 이토록 과민반응하는 이유를 모르겠군.”

“외견은 평범해 보일지 몰라도 안에 들어있는 힘은 광대합니다. 자격 없는 자가 억지로 취하려 했다가는 오히려 지배당할 겁니다.”

“주술사여,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게 아닌가? 엘프족 대장로는 아무나 맡는 직책이 아니다. 정신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어.”

“지금 대장로께서 성역까지 들어와서 저에게 생명의 샘을 요구하시는 상황 자체가 이미 잠식이 진행되었다 보시면 됩니다.”

다시 흐르는 침묵.

이번에는 헤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히 생명의 샘이 필요하시다면 묻지요. 샘물로 무엇을 하실 계획입니까?”

“엘프족의 번영과 영광을 위해 필요한 행위라면 무엇이든지.”

“혹시 그게 전쟁입니까?”

“전쟁 또한 계획의 일부지. 하지만 당장 일으킬 생각은 없다. 이미 인간의 숫자는 엘프의 숫자를 한참 추월했어. 확실한 기회가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다.”

헤나의 고운 얼굴에 주름이 잡힌다.

“그렇다면 더더욱 생명의 샘을 허락할 수 없겠군요.”

“단순히 전쟁이 싫어서인가?”

“아뇨. 그 전쟁이 종족을 위해서가 아닌 대장로님 개인을 위해서라고 판단해서입니다.”

리처드 대장로가 어깨를 으쓱한다.

“반대해도 상관없다. 허락을 받으려고 들어온 게 아니니까.”

“그게 무슨 말이죠?”

“헤나, 오늘부로 너는 주술사 자리에서 물러난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원인 모를 병에 걸려 죽은 걸로 처리되겠군.”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헤나의 눈빛에 공포가 깃들었다.

“날 죽일 건가요?”

“설마. 그간 엘프족에 헌신한 주술사를 죽여버릴 정도로 매정한 인물은 아니다. 협조만 잘해주면 추방으로 끝내주지.”

“리처드 대장로, 이건 정말 미친 짓이에요. 내가 없으면 누가 주술사를 맡을 건데요.”

“너도 기억하겠지. 얼마 전 하이엘프 소녀가 태어났다. 내 친히 사샤라는 이름도 지어줬어. 그녀가 자라면 너의 뒤를 이어 새로운 주술사로 임명할 것이다.”

리처드 대장로가 헤나 쪽으로 성큼 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헤나가 저항하려 했으나 영적인 능력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평범한 그녀로서는 리처드의 우악스러운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결국 헤나는 리처드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성역에서 질질 끌려 내려왔다.

“대장로! 지금이라도 다시 생각하세요! 이건 정말 아닙니다. 그 나뭇가지가 당신과 종족 전체를 망치고 있어요!”

숲 아래쪽에는 이미 건장한 엘프 서넛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있었는지 머리카락이 산발이 된 헤나를 보고도 별말 없이 양팔을 잡고 억지로 이끌었다.

숲 밖으로 추방당하는 헤나.

그런 그녀의 뒤로 리처드의 당부가 뒤따랐다.

“조용히 살거라. 혹시라도 숲에 돌아오거나 네 소식이 귀에 들려온다면 그때는 추방이 아닌 죽음을 선사하겠다.”

헤나는 끌려나가는 순간까지 발버둥쳤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

이내 그녀의 목소리는 숲 속 너머로 사라졌다.

[회상이 종료되었습니다.]

여운이 많이 남는 기억이었다.

무엇보다 헤논의 어머니가 아버지인 로이드 후작을 만나기 전까지 이러한 배경이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번에 엘프족이 일으킨 전란이 충동적인 게 아니라 리처드 대장로가 십수년 간 꾸준히 준비한 결과였다는 것도 소름이었다.

어쨌든 기억 회상은 끝났다.

이제는 달콤한 과실을 맛볼 차례.

황금가지의 힘이 흡수되면서 내면이 신록의 기운으로 충만해졌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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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중상급 드루이드가 되었습니다.]

[기존 스킬을 버프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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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드 컨트롤

-바인드(★★★)

-우드골렘(★★★)

-우드 스피어(★)

-자이언트 우드(★)

2. 스톤 컨트롤

-스톤 랜스(★★★)

-스톤 실드(★★★)

-스톤 골렘(★★★)

-스톤 스피어(★)

-자이언트 스톤(★)

3. 윈드 컨트롤

-순보(★)

-헤이스트(★)

4. 라이프 컨트롤

- 시야공유(★)

- 테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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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이번 황금가지 습득을 통해서도 많은 발전을 이루어냈다.

가장 눈에 띄는 문구는 중상급 드루이드. 중급 드루이드에서 중상급 드루이드로 승급했다.

그밖에도 우드와 스톤 계열 스킬들이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되었다.

스킬이 얼마나 강화되었는지는 나중에 훈련 때 따로 점검하기로 했다.

새로운 스킬들도 보였다.

우드와 스톤 원소 쪽에서 스피어와 자이언트라는 기술이 추가되었다.

아마 멀린이 썼던 스킬이 아닐까 싶은데, 어떤 기술인지 대충 예상이 갔다.

마지막으로는 라이프 원소 쪽에 테이밍 스킬이 추가되었다.

테이밍이란 이름 답게 동식물을 조종하는 형식의 스킬이 아닐까 사료된다.

이번 엘프와의 전쟁에서 라이프 원소가 얼마나 쏠쏠했는지 제대로 체감했기에 새로운 스킬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이렇게 승급 과정까지 완료했다.

눈을 뜨기만 하면 되는데···

몸이 너무 무겁다.

눈꺼풀이 도저히 들려지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멀린과의 전투에서 심각한 상처를 입었었다.

보통 인간이었으면 골백번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부상이었으나 끈질긴 생명력으로 괴랄한 회복력이 있다해도 쉬어야 할 타이밍이었다.

‘조금 있다 일어나자.’

엘프와의 전쟁이 시작된 이래로 내내 유지하고 있던 긴장의 끈을 풀기 무섭게 수마가 닥쳐왔다.

의식이 천천히 심해로 침전했다.

* * *

어둠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한 마리 고래가 되어 칠흑 같은 바다를 거닐었다.

지느러미를 흔들며 물살을 헤칠 때마다 동그란 공기 방울이 보글대며 수면 위로 올라갔다.

평화로웠다.

마치 어머니의 뱃속이 이러할까.

영원히 이곳에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무렵에 위로부터 아련한 메아리가 울려왔다.

‘아저씨!’

멀리서 들리는 소리였다.

그만큼 음량은 작았고 음정도 불안했다.

환청으로 치부하고 재차 의식 속을 거닐려는 찰나, 이번에는 좀 더 크고 확실한 목소리가 들린다.

‘아저씨이!!!!’

누구의 목소리였더라.

어딘가 익숙한데.

사고회로를 회전시켜 천천히 되짚어보았다.

급할 건 없었다.

언젠가는 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아내······

‘아저씨!! 언제까지 자고 있을 거야!!!’

콰아아앙!!!

엄청난 성량.

천지가 뒤집힌다.

수면부터 심해까지 파도가 일제히 절반으로 갈라지며 푸른 하늘이 보였다.

지표면의 맑은 공기가 쏟아져 오자 불현듯 한 소녀의 얼굴이 떠올랐다.

리앙의 보름달 시장에서 만난 은색 머리 소녀.

아르니아 대륙의 그 누구보다도 자연과 가까우며 영적인 세계를 모험하던 그녀.

탐욕에서의 전투 당시 환상안으로부터 나를 구해준 엘프족의 정신적 지주.

늘 나에게 좋은 냄새가 난다며 쫄래쫄래 따라오는 귀여운 녀석.

사샤.

얼굴이 떠오르자마자 아래에서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용오름이 나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어느새 수면은 한참 아래 있었고 나는 하늘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하늘로 올라왔으니 작열하는 태양을 예상했다.

하지만 태양보다 더한 존재감을 풍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 무언가는 거대한 나무였다.

바다 깊은 곳부터 하늘까지 이어진 비현실적인 크기.

세상에 저것보다 큰 나무가 있을까.

전신에서 뿜어내는 황홀한 금빛이 하늘과 바다를 모두 비추어 보듬었다.

나무를 보고 경건한 마음이 들기는 처음이었다.

나도 모르게 손을 내뻗어 나무에 손을 대려 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청량한 내음에 정신을 맑아졌고 고향에 돌아온 듯한 따스한 안정감이 몸을 감쌌다.

내뻗은 손이 나무와 맞닿았다.

바로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들었다.

-반가워.

눈이 번쩍 떠졌다.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상황을 파악했다.

아기자기한 나무집.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주전자.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는 나와 그런 나를 그렁그렁한 눈망울로 쳐다보고 있는 사샤.

나와 눈을 마주친 사샤가 냉큼 침대 위로 올라와 나에게 안겼다.

“아저씨! 왜 이렇게 안 일어나! 걱정했잖아.”

품에서 사샤의 온기가 느껴지자 현실감이 들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내가 얼마나 잤지?”

“무려 나흘을 잤어!”

저번에 피곤하다고 시온과 한 침대에서 내리 사흘을 퍼질러 잤는데 이번에는 하루를 더 자서 신기록을 세웠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이번에는 단순 피로회복이 아니라 죽을 뻔한 부상에서의 치유도 겸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살펴보니까 온몸이 붕대로 칭칭 감겨있었고 집 전체에서 고소한 약초향이 가득했다.

“사샤, 네가 나를 치료해줬나?”

“응!!”

해맑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샤.

그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맙다.”

“으응···”

머리만 쓰다듬어줬을 뿐인데 사샤의 볼이 살짝 상기된다.

“붕대 감는 솜씨부터 해서 단순한 응급처치 수준이 아니군. 어디서 전문적으로 배운 것 같아.”

“맞아. 엘프족 주술사는 평상시에 아픈 엘프들을 많이 치료해주거든. 사람들이 나보고 약손이라고 많이들 칭찬해줬어.”

사샤가 허리춤에 양손을 갖다 대며 콧대를 세운다.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웠다.

어쨌든 사샤에게 고마움을 표했으니 다음에는 내가 잠든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을 차례다.

“어떻게 되었냐면은···”

내가 성역으로 올라간 후에 사샤는 엘프족 전원을 모아두고 리처드 대장로의 음모를 만천하에 공개했다고 했다.

당연히 친 대장로파 엘프들과 그의 친위대는 격렬하게 반발하며 여론을 뒤집으려 했다.

이에 사샤는 모든 군중이 모인 곳에서 사로잡힌 강화전사들의 잠식 상태를 풀어주었고 온전한 정신을 되찾은 그들의 후회와 한탄 어린 행동은 그 무엇보다 뚜렷한 증거가 되어주었다.

심지어 정신적 자유를 찾은 강화전사들이 무리한 성장의 반작용으로 피를 흘리며 죽어가자 충격을 받은 엘프들은 완전히 사샤 편으로 돌아섰단다.

“그랬군. 심심한 위로를 전하지. 나 때문에 모두가 원치 않은 진실을 알게 되었으니.”

“아냐. 아저씨는 우리 부족의 영웅이고 대은인이야. 애초에 아저씨 아니었다면 엘프족은 단체 세례식을 받고 멸족했을 테니까.”

사샤의 눈빛에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감정이 가득했다.

“아저씨 그보다 질문이 있어.”

“물어봐라.”

“성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궁금할 만 하겠네.”

“솔직히 그렇잖아? 성역에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나는 금방 끝날 줄 알았어. 그만큼 아저씨는 항상 강한 모습을 보여왔는데···”

“싸움이 많이 길어졌지.”

“맞아. 나는 산 전체가 무너지는 줄 알았다고. 세상의 종말이 온 줄 알았어.”

사샤가 그렇게 여길 만도 했다.

밑에서는 골렘들과 나무줄기가 전쟁을 벌이고 위에서는 나와 멀린이 총과 돌덩이를 던져댔으니 말이다.

나는 산 정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사샤에게 상세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진지한 태도로 내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랬구나. 대장로를 잠식한 사람이 드루이드였어.”

“드루이드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

“단어와 뜻은 알고 있지.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아저씨를 보고 나서야 알았고.”

사샤는 그녀 전에 주술사였던 헤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내 이전에 주술사가 있다고는 들었어. 병으로 죽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는 숲에서 쫓겨났고 심지어 아저씨의 엄마였다니. 이건 어머니 나무의 안배라고 볼 수밖에.”

“어머니 나무라면 세계수를 의미하는 건가?”

“응. 맞아.”

“너희 엘프족은 어머니 나무를 숭상하는 듯하군.”

“당연하지. 숲에 사는 모든 종족은 세계수를 어머니로 모시고 있어. 세상에서 제일 큰 나무인데다가 그 영험함은 이루 말할 수 없거든.”

갑자기 세계수의 외형이 호기심이 들어서 이 부분에 대해 사샤에게 질문했다.

그러자 들려오는 사샤의 대답.

“나도 본 적은 없어서 몰라. 구전으로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아래로는 바다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위로는 하늘 높이 솟아서 따가운 태양빛을 가려준다고 하더라.”

어디서 본 듯한 나무인데.

“가끔 과장 심한 노인네들은 어머니 나무가 세계를 관통한다고까지 하는데 그건 내가 봐도 과장인 것 같고...아무튼 그래!”

사샤의 설명은 방금 전 의식 속을 부유하다 만났던 거대한 나무의 외형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나에게 반갑다고 인사를 건넨 그 나무는 단순히 꿈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상상 속 환영이었을까.

아니면 세계수의 가지를 모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진짜 세계수와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는 걸까.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고 계속해서 황금가지를 모아가다 보면 조금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아저씨.”

사샤의 목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지?”

“이번에 우리 종족은 아저씨에게 큰 은혜를 입었어.”

“나 또한 내 이득을 위해서 참전했을 뿐이니 신경 쓸 것 없다.”

“아니야. 이대로 넘어가면 내 마음이 불편해서 안 돼.”

뒤돌아선 사샤는 종종걸음으로 방에 있던 장롱을 열더니 한참을 뒤적였다.

그런 그녀가 꺼낸 것은 심상찮은 기운을 흘리는 옥색 반지였다.

반지를 소중하게 쓰다듬던 그녀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그것을 나에게 건넸다.

“엘프족 주술사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반지야. 무슨 효과가 있는지는 나도 몰라. 그렇지만 귀해 보이니까 아저씨가 이걸 가져줬으면 좋겠어.”

주술사에게 대대로 내려온 반지라니.

솔직히 받기에 부담스러웠다.

손사래를 치며 거절하려 했는데.

마침 눈앞에 시스템창이 떠오른다.

[고대의 유물 - 절대 방어막]

[모든 공격을 무효화하는 방어막을 1회 발동합니다. 하루에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외 - 시공간과 인과율을 초월한 공격 방어 불가.]

시스템창을 읽은 내 입에서 저절로 이런 소리가 나왔다.

“오우야···고맙다. 잘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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