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98화 (98/200)

13장 부름 : 돌격한 망나니

요새에 도착하기 하루 전.

해가 뜨기 무섭게 출정할 준비를 했다.

웜홀 앞에 늘어선 육천 대군은 대장관이었다.

우리가 출발한다는 소식에 부족의 주술사이자 임시 족장까지 된 사샤가 마중 나왔다.

“아저씨,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러마.”

“꼭 이번 전쟁이 아니더라도 말이야. 나중에라도 우리 엘프족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도와줄게.”

나 또한 사샤의 말처럼 향후 엘프들과 문화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교류하게 되길 원했다.

특히 숲에서 활동하거나 교전하게 될 때 엘프 전사가 있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레이븐 숲에서는 운 나쁘게 드루이드인 나한테 걸려서 별다른 활약을 못했으나 상황이 평범하게만 흘러갔다면 얼마나 활약했을지 훤히 보였다.

“아멜리아도 아저씨를 도와주겠대.”

아멜리아는 표정에서부터 싫은 티가 팍팍 묻어나왔지만 어쨌든 내가 엘프족의 은인이니 협력하겠다는 태도였다.

“사샤님의 명이라면 도와줄 용의가 있다.”

“그것참 고맙군.”

아멜리아와 어색한 악수를 나눴다.

손을 흔들던 차에 그녀가 입을 연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말해라.”

“스콧에게 편안한 안식을 부탁한다. 녀석은 강해지기 위해서 세례식을 받았을 뿐이다.”

“적 지휘관 말인가?”

“그래.”

“최대한 고려해보지.”

“고맙다.”

아멜리아와의 대화도 끝내고.

이제는 정말 출발할 시간.

그런데 어딘가 허전하다.

무엇을 까먹었더라?

“뀨우우우!!!”

아.

코코를 두고 갈 뻔했다.

저 멀리서 퍼덕대는 날갯짓 소리.

황급히 다가온 코코가 내 어깨에 내려앉았다.

“욘석! 어딜 갔다 왔어?”

“뀨뀨!! 뀨뀨뀨뀨!!”

직역하면 ‘어떻게 나를 버리고 갈 생각을 했어!?’ 정도가 되려나.

본인이 제멋대로 사라져놓고.

이런 천덕꾸러기가 없다.

그래도 귀여우니까 봐준다.

“···응?”

코코의 입가에 물기로 반짝인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데.

아기용이 뭘 마셨는지 알 것 같다.

“너 설마 생명수 마셨냐?”

“뀨우!!”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는 코코.

요 녀석이 성역에 있던 생명수를 눈여겨봤나 보다.

그러다가 기회가 나오자 냉큼 꿀꺽했겠지.

[코코 — 헤츨링 Ⅰ]

[진화율 — 50%]

그 증거로 진화율이 2%에서 50%까지 올랐다.

무려 48%가 증가한 셈.

생명수의 효과는 탁월했다.

몬스터를 그렇게 잡아먹어도 미미하게 오르던 진화율이 급상승했으니 말이다.

“넌 진짜 잡식이구나.”

코코의 강철 같은 위장은 어떤 종류의 기운이든지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흡수했다.

기운이 특별히 강력할수록 요 녀석에게는 별미였다.

그것이 설사 악마의 시체에서 나오는 사기거나 수천 년간 숲에 고인 농축 엑기스 같은 샘물이어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드래곤의 클래스인가.

아무튼 진화율이 크게 올랐으니 나로서는 좋은 일이다.

엘프의 숲에서 짭짤한 수확을 많이 거두었다.

멀린을 잡고 세 번째 황금가지를 얻었고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믿음직한 우방이 될 엘프족의 협력도 얻었으며 나 자신도 상급 엑스퍼트의 고수가 되었다.

세상에.

상급 엑스퍼트라니.

슬슬 초고수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경지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게다가 중상급 드루이드가 되어서 스킬 버프에 새로운 스킬 업데이트까지 완료되었으니 어서 빨리 실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손가락에 낀 반지도 있다.

지금도 반지에 박힌 보석은 기이한 기운을 풍기며 절대방어막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고수 간의 싸움에서 이러한 개사기 아이템은 언제나 유용하기 마련. 과연 어떤 좋은 결과를 불러올지 기대되었다.

“주군! 출정하시죠!”

마지막으로는 수하들의 두터운 신임과 충성심이 부가적인 소득이라 할 수 있겠다.

여태껏 긴 여정을 달려오면서 나에게만 충성하는 군부대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서출에 망나니였으니까.

북부에 다녀올 때까지만 해도 내 주변에는 시온과 캠벨이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다르다.

시온. 캠벨. 라칸. 에이든. 사샤. 코코.

푸른매 용병단 3천.

리앙 수호군 3천.

이번 엘프전에서 내 지휘를 통해 승리를 맛본 수많은 병사가 나를 진정한 리더로 인정했다.

내 능력을 확실히 체감한 그들에게 출신이나 혈통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었다.

언제나 내 부름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있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심지어 친위대의 규모는 점점 커질 예정이고 아버지에게 후작위까지 물려받으면 그때부터는 제국의 대귀족급에 해당하는 세력을 갖게 될 것이다.

행복한 상상은 여기까지.

진짜로 출발하기로 했다.

우선 스콧부터 마무리해야 하니까.

“사샤, 또 만나자.”

“응, 아저씨. 조심해.”

사샤와의 포옹을 마지막으로 엘프의 안식처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웜홀을 통해 차원벽을 통과했고.

어느새 나는 몰티성이었다.

* * *

세 시간 후.

엘프족이 동부 대산림에서 나온 이래 처음으로 점령했던 거점인 몰티성이 함락되었다.

나름 굳건한 수비력을 자랑하던 성이었지만 허무할 정도로 무너졌다.

레이븐 숲에서부터 사기가 하늘을 찔렀던 리앙 수호군과 푸른매 용병단의 작품이었다.

방패로 화살을 막으며 진군하다가 충차로 성문을 부수고 난입하니 안쪽에 웅크리던 엘프들은 우왕좌왕하다가 죽거나 사로잡혔다.

물론 측근들의 도움도 컸다.

캠벨은 제일 먼저 성벽 위로 올라가 바스타드 소드로 궁병들을 제압했으며 시온 또한 비수를 던져 지휘관들을 저격했다.

성문이 뚫리고 제일 먼저 발을 내디딘 사람은 라칸과 에이든이었다.

둘은 나를 두고 충성 경쟁이라도 하듯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엘프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성을 함락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엘프족 본대가 없어서였다.

몰티성에 있는 엘프족 전사의 수는 고작 삼백 명.

이 모든 요소가 합쳐져서 도출된 결과가 몰티성 세 시간 함락이었다.

“살았다!!”

“만세! 만세!”

“흐흑···감사합니다···”

엘프족 치하에서 지옥 같은 나날들을 보내던 몰티령 주민들은 물밀 듯이 쏟아져 오는 인간 군대를 보고 환희에 차서 너나 할 것 없이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기쁨에 젖은 거주민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우리를 껴안고 방방 뛰고 온갖 난리법석을 피워댔다.

몇몇은 몰래 쟁여왔던 빵이나 감자를 꺼내서 거듭 거절하는 병사의 주머니에 억지로 넣어주는 사람도 있었다.

바깥이 한참 축제분위기일 때.

나는 실내에서 엘프 포로들을 심문했다.

포로도 얼마 없었다.

리처드 대장로가 행한 세례식 효과가 뛰어났는지 놈들은 죽는 와중에 한 명이라도 더 데려가려고 발악했다.

그 결과 삼백 명 중 포로로 잡은 놈은 고작 스무 명이었다.

“너희 본대는 어디에 있지?”

“지휘관 스콧의 위치를 대라.”

“캬악!! 퉤엣!!”

내 발밑으로 가래침이 떨어진다.

“더럽고 열등한 인간 놈과 말 섞고 싶지 않다.”

굳이 고문을 당하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줄 수밖에.

시온과 캠벨에게 눈짓했다.

이 순간만을 기다린 듯 두 남녀가 입맛을 다시며 엘프 간부에게 다가갔다.

“북부식 고문을 보여주긴 오랜만인데.”

“색다른 맛이라 아주 좋아할 것 같군요.”

“너무 빨리 불지는 말라고. 재미없으니까.”

이어서 엘프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각오에 비해 간부의 인내심은 짧았고 북부식 고문은 효과적이었다.

고작 한 시간 만에 바지에 똥오줌을 지린 간부가 미주알고주알 굳이 필요 없는 정보까지 모조리 불었다.

“그래서 영주연합군은 정면 승부에서 대패하고 요새에 갇혀 몰살되기 일보직전이다?”

“그···그렇다···그러니 제발···죽여줘···”

서걱!!

소원대로 목을 날려줬다.

손깍지를 뒤통수에 대고 다리를 건들대던 캠벨이 아쉬움에 혀를 삐쭉 내밀었다.

“제법 강단 있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부실하기 그지없네. 원래 귀쟁이들은 다 이런가?”

“종족 차별적인 발언입니다.”

“쳇! 하녀는 언제나 꼬장꼬장하지.”

“당신한테만 꼬장한 겁니다.”

대놓고 티는 안 내도 시온도 성에 안 찼던 모양.

아무튼 엘프족 본대가 어디 있는지 알아냈고 사령관 스콧의 위치도 파악했다.

시간이 없다.

모든 정보를 입수한 뒤 내린 결론이다.

간부를 소집해서 급히 회의를 열었다.

방금의 정보를 전달하자 라칸과 에이든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주군, 어찌하실 겁니까?”

“혹시 여러분께서는 자리를 비울 경우에 대신 부대를 지휘할 사람이 있습니까?”

“최근에 주군께서 보내주신 유칼이란 아이가 똘똘합니다. 알아서 맡겨두면 잘하더군요.”

“저 역시 부관을 두고 있습니다. 리앙은 신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뽑아서 인재가 많은 편이지요.”

대체자가 있다니 잘 됐다.

“다들 들으셨다시피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입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영주연합군은 모조리 망령이 되겠지요.”

“부단장, 그냥 죽게 내버려두면 안 돼?”

“그럴 순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전에 결론을 냈던 것 같은데.”

“쳇, 부단장은 너무 착해서 탈이라니까.”

착한 게 아니다.

그저 필요할 뿐.

앞으로 나는 점점 싸돌아다닐 일이 많아질 텐데 그때마다 로이드 후작령에서 일이 터지면 번거롭다.

비록 로이드 산하 영주들이 무능하고 욕심 많은 건 맞지만 어쨌든 귀족이란 타이틀을 쥐고 있다.

그들에게 이참에 빚을 좀 지워두고 내 능력을 확실히 각인시켜서 내부 단속을 확실하게 끝내놓기로 했다.

겸사겸사 불쌍하게 차출된 농노병들의 불필요한 희생도 막아주고 말이다.

“어쨌든 시간이 금인 상황이다. 육천 대군과 함께 움직이면 한참 걸린다. 게다가 가는 길에 요새도 함락해야 해.”

“혹시 자작님께서는 선발대를 따로 뽑아 운용하실 계획입니까?”

“정확하게 짚으셨습니다. 여기 있는 인원이 선발대로 먼저 영주연합군을 구하고 후발대 용병단과 수호군은 요새를 무너트리고 우리와 합류합니다.”

에이든이 우려를 표했다.

“엘프족이 무려 천오백명이라 들었습니다. 고작 저희만으로 될지 모르겠군요.”

“무슨 그런 걱정을 하나. 자네 눈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직도 모르겠나?”

라칸의 말.

에이든의 시선이 나에게 꽂힌다.

그러자 막힌 체증이 쑥 내려간 듯 표정이 편안해졌다.

“아! 자작님께서 계시는데 괜한 걱정을 했군요. 믿고 따르겠습니다.”

“너무 저를 믿으시는군요. 항상 모든 변수를 계산해야···”

“아뇨.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자작님이야말로 모든 계산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변수 그 자체이시니까요.”

캠벨이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으핫하하!! 드디어 에이든 형님이 부단장의 위대함을 깨달았군.”

“패배 따위는 없지. 그저 얼마나 크게 승리할지만 생각하면 되네.”

“맞습니다. 도련님만 믿으면 됩니다.”

“뀨우우우우!!”

다들 광신도 같다.

어쩌면 이들은 나에게 이미 단단히 세뇌되었을지도.

심지어 이건 탈출구조차 없었다.

* * *

다시 돌아와서.

성벽 위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던 피엔토 자작.

그는 상수리나무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언덕 위에서 펄럭대는 모습을 보고 입을 떡 벌렸다.

그 바람에 귀한 시가가 땅바닥에 툭 떨어져 버렸다.

“정말 지원군이 왔다고?”

마나를 이용해 안력을 집중했더니 등장한 사내의 얼굴이 더욱 선명해졌다.

바로 헤논 로이드 자작이었다.

믿을 수 없었다.

일전에 의논했던 바에 따르면 피엔토 자작이 이끄는 영주연합군은 몰티성을 점령하기로 했다.

그 사이에 로이드 자작은 용병단과 수호군으로 레이븐 숲을 돌파하고 엘프의 본거지를 토벌하기로 했다.

그래서 목표를 먼저 달성한 쪽이 향후 몰티령 영지 배분 과정에서 우선권을 가지기로 합의까지 했잖는가.

그때만 해도 자신 있었다.

몇 번씩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야만적인 귀쟁이에게 질 것 같지 않았다.

이대로 풋내기 사생아의 콧대를 바짝 눌러주고 몰티령의 큰 땅덩이를 먹은 후에 로이드 후작령 전체를 좌지우지할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었다.

그러나 뜻대로 수월하게 흘러가면 세상일이 아니라고 했던가.

엘프족 전사들은 너무나 강력했고 용감한 데다가 악랄하기까지 했다.

반면에 아군은 오합지졸에 소속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우당탕탕 군대였으니 결국 그는 요새에 갇힌 채 죽을 날을 받아놓은 처지가 되었다.

내심 로이드 자작도 자신과 똑같이 패배했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나마 영주연합군 쪽은 평야에서 제대로 된 회전이라도 치뤘지, 저들은 숲에서 평생을 산 엘프족이 도사리는 장소에 제발로 걸어들어갔으니까.

동부 대산림이 얼마나 거대한 밀림인지는 피엔토 자작도 잘 아는 부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는 헤논이 승리를 챙기기는커녕 레이븐 숲조차도 통과 못하고 병력 대부분을 잃을 줄 알았다.

그런 헤논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나타났다.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하고서.

“어떻게···??”

저도 모르게 나오는 중얼거림.

그만큼 피엔토 자작은 놀랐다.

하지만 놀람이 의문으로 변하는 건 금세였다.

“혼자인가?”

그가 자랑하던 육천 군대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

뭘 하려는가 싶어서 지켜봤는데.

갑자기 단기필마로 엘프군을 향해 무작정 돌격하는 게 아닌가!

“저런 미친놈!!”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대관절 뭘 믿고 저러는 건가.

같이 지켜본 병사들도 당황하긴 매한가지였다.

“피엔토 자작님!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성문을 열어서 구조합니까?”

혼자서 죽겠다고 들이박는 놈 때문에 전원 몰살을 각오하고 성문을 열 순 없다.

애초에 당사자가 구조를 바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돌격하는 헤논의 주변으로 폭풍 같은 투지가 휘몰아쳤으니까.

포위망을 형성하던 엘프들은 처음에는 당황한 듯 싶다가 이내 조소 가득한 표정으로 헤논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전군이 움직이지도 않았고 일개 중대 정도만 나서서 시위에 화살을 먹이고 칼을 뽑고 기다렸다.

엘프군은 고작 한 명을 상대하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다는 듯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넘쳤고 낙관적인 태도였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표정이 급변하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게 뭐야!”

“처음 보는 괴물이다.”

“몬스터인가?”

돌격하는 헤논의 주변에서 땅이 움푹 치솟더니 커다란 돌덩이와 나무뿌리가 엉켜서 거인의 형상을 만들었다.

그 개체 수만 무려 열 기가 넘어갔다.

덩치 큰 그들이 평원을 뛰는 것만으로도 쿵쿵대며 지축이 흔들렸다.

무식한 병사들은 몰라도 피엔토 자작만큼은 저것의 정체를 잘 알고 있다.

“골렘이다···”

콰콰콰쾅!!!

달려든 골렘이 엘프 일개 중대를 무참히 휩쓸었다.

모든 보병을 짓밟는 거침없는 진격이었다.

엄청난 체급차이.

어중간한 화살 따위는 우스웠다.

가끔 익스퍼트 전사의 마나소드가 먹혀들었는데, 이들은 로이드 자작에게 최우선적으로 제거되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저런 지능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헤논에게 피엔토 자작은 전율을 느꼈다.

“전원공격!!!”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엘프군이 허둥지둥 전력을 다하려 했지만 이미 골렘들은 진영 중앙까지 길을 뚫어버렸다.

그리고 쭉 뚫린 길을 따라 일단의 기마대가 프리패스로 지나쳤다.

“으랴아아!!!”

“주군을 위하여!”

“모조리 죽입니다.”

익숙한 안면이었다.

로이드 자작의 측근들.

어마무시한 무력.

하나같이 일당백이다.

바스타드 소드를 휘두르며 적을 동강 내는 괴물 기사.

잔뼈 굵은 솜씨로 지휘관만 골라잡는 우수한 용병대장.

정교하고 깔끔한 검술로 상대를 꼬챙이로 만들어 버리는 군인.

마지막으로 기묘한 움직임으로 공격을 회피하며 적의 동맥만 끊어버리는 하녀까지.

심지어 하녀의 경우는 저번에 일부러 시비를 걸었던 그 여인이었다.

저렇게 가냘픈 여자가 사실 엄청난 실력자였다는 걸 깨닫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저들의 인상적인 활약도 맨 처음 돌격한 헤논의 무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땅바닥을 전부 헤집어놓으며 진격하는 무적의 골렘 부대와 눈부신 에메랄드 빛 검기로 가로막는 모든 것을 베어내고 전진하는 로이드 자작.

“인세의 전쟁이 아니다.”

피엔토 자작은 확신했다.

지금 자신은 전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목격하는 중이라고.

또한 이 광경을 연출한 장본인 로이드 자작에 관한 소문은 과장이 아니었다.

오히려 축소되었다.

그는 진짜 영웅이었다.

새삼스레 자신이 그에게 행했던 무례했던 언행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에게 손을 내밀 때가 아니다.’

절대복종.

피엔토 자작의 본능이 속삭인다.

최대한 납작 엎드려야 한다고.

그것만이 유일한 활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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