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08화 (108/200)

14장 간택 : 권하는 망나니

국왕이 나를 공식 부마 후보로 인정했다.

이건 대파란이었다.

연회장은 단숨에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귀족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높아졌다.

“전하!! 그 무슨 말씀이옵니까!!”

가장 크게 반발한 사람은 아놀드 공작이었다.

“팔백년 왕국 역사에 사생아 출신이 자작 위를 받은 적도 없는데 부마 자리라니요! 당치도 않습니다.”

“과인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국왕이 우묵한 눈빛으로 아놀드 공작을 내려다보며 입을 뗐다.

“공작께서 말한 팔백년 역사가 곧 사라질지도 모르는데 출신을 따지는 게 큰 의미가 있을까.”

“전하! 망극한 말씀이옵니다.”

“아무튼 이에 대해서는 더 논의를 금하겠소. 간택식을 계속 진행하시오.”

알폰소 국왕이 필요할 때 하나 해줬다.

기세를 타고 호넷 백작에게 내 이름을 말했다.

“헤논 로이드. 등록해주시지요.”

“알겠네.”

호넷이 끄덕이며 이름을 적고.

자리로 돌아가는 발걸음.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했더니 찰리 힐튼이 이글대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굳이 발버둥을 치시겠다면 어디 해보시지요. 어차피 물을 쏟아졌고 주워담을 수 없습니다. 대세는 기울었으니까요.”

콧방귀를 끼며 무시해줬다.

내 자리에 착석하자 마찬가지로 후보 등록을 마치고 온 안드레가 호들갑을 떨며 질문 폭탄을 던졌다.

오늘 행동에 관련된 계획은 시온과 캠벨을 제외하곤 극비로 했기에 안드레도 많이 놀란 상태였다.

“자작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보고도 모르겠는가. 부마 후보로 등록했다.”

“자작님은 장차 로이드 후작령을 물려받아야 하는데 부마가 되시면 후작령은 누가 물려받습니까?”

“글쎄.”

“일단 찰리 남작을 견제해야 하니까 무작정 부마 후보에 이름을 올리셨다면 좋은 수는 아닙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떻게든 되겠지.”

태평한 모습을 보이는 나에게 안드레도 더 뭐라 못하고 옆자리에 앉아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했다.

부마 후보 등록식이 끝났다.

남은 차례는 부마 후보들의 자기 어필 시간이었다.

오늘 연회장의 보안 겸 행사 진행을 맡은 호넷 백작은 어필이 어떤 식으로 진행되는지 설명했는데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식이었다.

1. 부마 후보자는 총 세 가지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2. 첫번재 질문은 ‘왕녀님의 매력은 무엇인가?’ 다. 이에 대해 대답한다.

2. 두번째 질문은 ‘부마로서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가?’ 다. 이에 대해 대답한다.

3. 마지막 질문은 ‘나는 어떠한 능력이 있는가? 다. 이에 대해 대답한다.

한마디로 왕녀가 얼마나 아름다우며, 앞으로 내가 뭐할 건지, 그리고 나 얼마나 잘난 놈인지 말하면 된다.

호넷 백작이 차례대로 이름을 불렀다.

“도도 에브넬.”

호명 받은 부마 후보가 침을 꿀꺽 삼키며 나왔다.

아무리 결과는 찰리 힐튼 공자로 정해져 있다지만 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기 자신을 소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게다가 자기 어필 시간부터는 처음으로 레베카 왕녀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왕녀님 안녕하십니까.”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에브넬 공자에게 레베카는 무감정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가볍게 손만 흔들어줬다.

그것만으로도 감격스러운지 에브넬 공자는 어깨를 움츠렸다.

“레베카 왕녀님의 아름다움은 엘든 전역을 밝게 비추는 화려한 빛이며 어두운 밤을 물리치는 희망이십니다. 저 에브넬 도도에게 왕녀님의 옆자리에 함께할 영광을 주신다면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

이어서 에브넬 도도의 레베카 왕녀 미모 찬양은 장창 15분이 넘게 이어졌다.

미리 준비해왔는지 좔좔 읊는 모습이었다.

“안드레, 원래 부마 어필은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가?”

“저도 처음이라 잘은 모르겠습니다.”

“너도 저렇게 15분 이상 준비했어?”

“저야 가망 없어서 대충 5분 정도 준비하긴 했습니다만.”

이어서 나라를 어떻게 이끌 것인지에 대한 에브넬 공자의 답변이 이어졌다.

“만민의 백성을 편히 다스릴 것이며 영주들의 화합을 위해 힘쓸 것이고 부마로써 언제나 품위있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능력을 보이는 시간.

“저···저는 능력은 따로 없습니다만 새소리를 내는 재주는 있습니다. 바로 보여 드리겠습니다.”

에브넬 공자가 양손을 마주 잡고 입에 갖다 대더니만 뻐꾸기 소리를 냈다.

뻐꾹~ 뻐꾹~

장내는 웃음바다가 된다.

“으핫하하하!!!”

“참으로 신기한 재주로군.”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부마가 된다면 왕녀님이 재밌어는 하시겠어.”

도도 에브넬 공자를 시작으로 다른 부마 후보들도 연이어 어필을 시작했다.

첫끗발이 개끗발이라고.

나머지는 첫타자보다도 형편없었다.

왕녀님 찬양만 한시간 넘게 하다가 국왕이 하품을 하기도 했고 나라를 어떻게 이끌지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부마 후보도 있었다.

그래도 친제국파 부마 후보들은 양반이었다.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호응이라도 있었지, 반제국파 후보에게는 일방적인 야유나 냉대가 쏟아졌다.

삭막한 분위기에 짓눌린 반제국파 후보들은 말을 더듬으며 어버버거리다가 준비한 멘트의 반도 못 치고 내려갔다.

레베카 왕녀는 시작부터 끝까지 쭉 무표정이었다.

가끔 손을 흔들어 주는 것 외에는 일체의 호응도 없었다.

심지어 몇몇 부마 후보의 재치 있는 언행에 주위에서 모두 웃어도 왕녀만은 절대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오죽하면 국왕이 옆에서 그녀에게 채근할 정도였다.

“레베카, 긴장한 마음은 알겠으나 너무 그렇게 굳어 있을 필요 없다.”

“네.”

단답으로 대답하고 다시 목석처럼 굳어있는데 그녀가 별 호응이 없자 다른 부마 후보들도 덩달아 소극적이 되었다.

“다음은 안드레 뒤퐁!!”

“잘하고 와라.”

안드레를 응원해줬다.

다리를 부들부들 떨며 무대에 선 안드레에게 아놀드 공작이 무심하게 한마디 던진다.

“저렇게 사시나무처럼 떨어대는데 나라를 책임질 수 있겠는가. 안 봐도 뻔히 보이는군.”

“왓하하하하!!!”

“노래라도 하나 불러봐라!”

대놓고 깽판을 치는데 안 그래도 부끄럼 많은 안드레가 안절부절 못하며 말을 꺼낸다.

“왕녀님의 아름다움은···”

“안 들린다! 크게 말해라!”

“아니다! 그냥 내려가라.”

결국 소란은 호넷 백작이 개입하고 나서야 진정되었다.

“신사숙녀 여러분. 여기 있는 부마 후보들은 진지한 자세로 임하는 중이니 불필요한 행동은 자제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제야 가라앉았지만 이미 분위기는 개판 난 지 오래였다.

도떼기시장 같은 분위기에서 안드레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낙심하며 내려왔다.

그런 안드레를 격려해줬다.

“고생했다.”

“죄송합니다.”

“나한테 죄송할 건 없지.”

다음은 드디어 대망의 찰리 힐튼 남작.

안드레와는 달리 그가 걸을 때마다 주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까 대놓고 비아냥대던 아놀드 공작마저 이번에는 격하게 박수를 치며 주변의 호응을 유도했다.

“와아아아!!!”

“찰리! 찰리! 찰리!”

“잘생겼다!!”

이토록 주변 반응이 다르니 자신감이 절로 생길 수밖에.

찰리가 천천히 입을 떼었다.

“예전부터 레베카 왕녀님을 흠모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품속에서 붉은 장미를 꺼낸 찰리가 갑자기 무대에서 내려가더니 상석으로 뚜벅뚜벅 걸어 올랐다.

이런 행동을 보인 부마 후보자는 처음이라 지근거리를 호위하던 기사들도 멈칫하며 반응을 못했다.

레베카 왕녀 앞에 선 찰리는 머리를 가볍게 쓸어넘기고는 한쪽 무릎을 꿇은 뒤 장미를 왕녀에게 건넸다.

“왕녀님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꽃이지만 받아주신다면 평생의 은혜로 간직하겠습니다.”

다소 갑작스러웠으나 찰리의 행동은 무척이나 로맨틱했다.

이를 본 남녀노소 누구 할 것 없이 자지러졌다.

“와아아!!”

“받아라! 받아라!”

“멋있다!”

자기 자신에게 도취한 찰리가 레베카 왕녀에게 느끼한 윙크를 날렸다.

그야말로 안 받고는 배길 수 없는 분위기.

작게 한숨을 내쉰 레베카 왕녀가 슬쩍 손을 내밀었다.

희고 고운 손이 장미와 점점 가까워지는 동시에 찰리의 미소도 점점 짙어졌다.

‘로이드 자작은 기회조차 못 잡겠군.’

왕녀가 장미를 받는 순간 연회장의 모두가 축배를 들 테니 뒷순서에 누가 어필하든 이미 부마 간택식은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장미를 가져가려던 왕녀의 손이 멈추기 전까지는 말이다.

“역시···안 되겠어요. 부마가 되신다면 그때는 꽃을 받을게요.”

레베카 왕녀의 거절에 순간적으로 장내가 썰렁해졌다.

당황한 찰리가 빠르게 상황을 수습했다.

“무, 물론 그러셔야지요. 제가 너무 섣불렀군요. 그때가 오기를 고대하며 기다리겠습니다.”

다시 무대로 복귀한 찰리는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더럽게 비싸게 구는군. 언제까지 그렇게 도도하게 구는지 두고 보자.’

주변의 귀족들도 애써 무마하고자 아무말 대잔치를 벌인다.

“과연 왕녀님이십니다. 공명정대하심이 엘든 왕국의 고귀한 핏줄답습니다. 아둔한 소신은 오늘도 탄복하고 갑니다.”

“자자! 술잔이라도 한 잔 기울여볼까요? 좋은 날 아닙니까?”

“국왕 전하 만세! 레베카 왕녀님 만세!”

분위기를 환기했고.

찰리 힐튼의 유세는 계속 이어졌다.

“제가 만들어갈 왕국은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왕국이 될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갑갑하고 좁은 땅에 갇혀계실 겁니까? 대륙은 넓습니다. 가만히 있다간 도태될 뿐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질서에 편입해야 합니다.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팔백년 왕국을 팔천년 왕국으로 만들 지름길입니다.”

청산유수.

찰리 힐튼의 말은 막힘이 없었다.

그는 에둘러 표현했으나 정리해보면 엘든 왕국을 칼론 제국에 편입시키겠다는 주장이었다.

친제국파 귀족들은 이에 적극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옳소!”

“말 잘한다!”

“바로 이거지.”

마지막으로 능력 어필 시간.

찰리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뽑았다.

그러자 검신을 타고 옅게 흐르는 검기.

익스퍼트의 상징인 마나소드였다.

주변의 경악이 뒤따랐다.

“이럴 수가!”

“저렇게 젊은 사내가 벌써 익스퍼트라니.”

“기재가 나타났다. 찰리 힐튼 공자는 왕국의 보물이야.”

“부마의 자격으로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향후 세븐 스타의 계보를 누가 이을지는 이미 정해졌군.”

모두가 인정하는 분위기.

찰리 힐튼이 의기양양해져서 가슴을 쭉 펴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미 간택식은 파장이었다.

“마지막입니다. 헤논 로이드!”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무대에 올랐다.

안드레 때와 비슷했다.

나를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사람이 대다수.

몇몇은 대놓고 사생아라느니 천한 핏줄이라느니 근본이 없다는 단어를 내뱉었다.

일부러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분명했다.

“주목.”

짧게 말했지만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주목.”

역시나 안 듣는다.

이러면 어쩔 수 없지.

천마검을 뽑아 무대에 꽂아넣었다.

그리고는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외쳤다.

“주우모오오옥!!!!!”

쩌렁쩌렁한 소리가 장내에 가득 울려퍼졌다.

어찌나 마나를 많이 담았는지 소리가 퍼져나가며 연회장의 창틀과 샹들리에를 마구 뒤흔들었고 가까이 있는 자들은 반사적으로 귀를 막았다.

이렇게 어그로를 끄는데 집중을 안 하고 싶어도 안 할 수가 없다.

아놀드 공작이 벌컥 화를 냈다.

“이 무슨 무례한 짓인가! 귓청 떨어질 뻔했네.”

“다들 일부러 고막을 막고 계시니 제가 직접 뚫어드렸습니다. 이제 좀 제 목소리가 들리십니까?”

“커험험!!”

다들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어쨌든 이목을 집중시키는데는 성공했다.

이제 대놓고는 못 떠들고 수군대기만 했다.

귓가에 망나니란 단어가 자주 들렸다.

호넷 백작이 말했다.

“로이드 자작께선 왕녀님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서 지원했는지 말씀해주시오.”

첫번째 질문.

준비한 대답을 꺼낸다.

“레베카 왕녀님의 외모는 아름다우시지요.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녀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면이 아닙니다. 바로 내면이죠.”

귀족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말이다.

그런 그들에게 설명했다.

머리를 톡톡 두드리면서.

“레베카는 놀라울 정도로 비상하고 똑똑합니다. 게다가 목표를 향해 피나게 정진하는 노력가지요. 그녀는 사람들이 정해놓은 한계를 부수고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려는 탐험가입니다. 저는 부마 자리를 다 떠나서 그저 한 인간으로서 순수하게 왕녀님을 응원하고 싶군요.”

쨍그랑!!!

유리잔이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상석에서 들렸다.

내 말을 들은 레베카 왕녀가 손에 들고 있던 와인잔을 놓치고 만 것이다.

“왕녀님! 괜찮으십니까?”

“아, 네. 저는 괜찮습니다.”

등받이에서 등을 뗀 그녀의 손끝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다.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으나 그녀가 크게 동요하고 있음은 누가 봐도 분명해 보였다.

간택식이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보이는 격한 반응이었다.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비아냥대려던 귀족들은 레베카 왕녀의 리액션을 보고는 일제히 합죽이가 되었다.

“크흠흠! 잘 들었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 계획인지 알려주시겠소?”

호넷 백작의 두 번째 질문.

이 질문에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답했다.

“아무것도.”

딱 네 글자.

귀를 의심한 호넷 백작이 다시 묻는다.

“로이드 자작, 성의있게 대답하시오.”

“말 그대로입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어차피 후작령을 돌보느라 정사를 신경 쓰지도 못하고요.”

뒤에서 듣던 찰리 힐튼이 입에 게거품을 물며 따지고 든다.

“헛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부마가 되어서 나라를 내버려두겠다니. 지금 직무유기라도 하겠다는 말이오?”

“아무도 일할 사람이 없다면 제가 하겠죠. 하지만 저보다 훨씬 똑똑하고 나라를 잘 가꿔줄 사람이 있는데 굳이 제가 관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게 대체 누구요?”

찰리의 말에 나는 천천히 팔을 들어 한 명을 지목했다.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엔 레베카 왕녀가 있었다.

“지금 이 자리의 주인공이자 하루 내내 우리 모두가 구애한 바로 저 현명한 여인이 스스로 나라를 운영하게 놔둘 생각입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이내 배꼽 잡는 웃음소리가 연회장을 울렸다.

“푸하하하!! 왕녀님께 집안 살림을 맡기겠다니!”

“최근 들은 농담 중에 가장 웃겼습니다. 로이드 자작이 제법 유머감각이 있군요.”

“이쯤 되면 사내 노릇을 포기했다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살다살다 여인네에게 정치를 시킨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모두의 비웃음에도 나는 그저 가만히 레베카를 쳐다보았다.

레베카 또한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흡사 귀신이라도 본듯한 표정이었다.

흔들리는 붉은 눈동자 속에는 놀람, 신기함, 호기심···그리고 미약한 기쁨이 서려 있는 걸 확인했다.

그거면 되었다.

바닥에 꽂아넣은 천마검을 양손으로 꽉 쥐고 마나를 불어넣었다.

그러자 단전에서 끌어올린 이원마나가 검을 감싸며 눈부신 검기를 터트렸다.

파아아앗!!!

아까 전 찰리 힐튼과는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의 밝은 에메랄드 빛이었다.

마나소드가 거의 횃불 수준으로 활활 타올랐다.

엄청난 기운이 장내를 뒤덮자 방금까지 나를 비웃던 귀족들은 이내 대경실색했다.

“마, 말도 안 돼!”

“저게 지금 마나 소드라고?”

“저렇게 선명한 마나 소드는 처음 봐.”

“믿을 수 없어.”

“그것보다 로이드 자작이 정말로 소드 익스퍼트였단 말이야? 난 그게 더 의외인데?”

실력 행사만큼 확실한 보여주기는 없다.

수군대는 소리가 커졌다.

그제야 사생아라는 소리가 쏙 들어가고 악마살해자와 성파괴자, 엘프학살자란 단어가 종종 등장하기 시작했다.

구경하는 귀족들에게 더욱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호기롭게 입을 열었다.

“이 정도면 제가 어떤 강점을 지녔는지 제대로 알려드렸다 봅니다. 그럼에도 의심이 되시는 분은···얼마든지 무대로 올라오시지요.”

친제국파 부마 후보들을 스윽 둘러보면서 일일이 눈을 맞추었다.

대부분 눈을 피하거나 딸꾹질을 하거나 볼일이 급하다며 화장실을 가곤 했다.

유일하게 피하지 않은 자는 찰리 힐튼 뿐.

돌아가는 상황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인상을 가득 구긴 그에게 정식으로 권했다.

“찰리 힐튼 남작. 아까 봤을 때 검에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던데. 같은 검사끼리 몸의 대화라도 나눠보시겠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