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19화 (119/200)

15장 모함 : 호출한 망나니

로이드 후작령.

알버스 성.

로이드 가문과 힐튼 가문이란 거대고래 틈바구니에서 납작새우가 된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영지전은 로이드 가문의 승리로 끝났고 현재 이곳의 정당한 지배자는 헤논 로이드 자작이었다.

다만 헤논은 로이드 후작령 전체를 물려받을 후계자인데다가 워낙 바쁜 몸이라 실질적인 통치자는 푸른매 용병단장 라칸이었다.

“좀 더 열심히 하란 말이다!”

“검을 그렇게밖에 못 휘두르나?”

“너한테 처먹인 밀가루가 아깝다!”

용병들의 삶은 고달프다.

매일을 떠돌며 수많은 영지전에 휘말린다.

때로는 윤리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더러운 뒷일에 동원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운이 없으면 전사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개죽음이다.

용병들이 원해서 이런 삶을 살까.

가끔 전장의 열기를 동반한 피와 살육에 취한 미친놈들이 있다지만, 푸른매 용병단의 대다수는 정상인이었다.

그저 돈이 없으니까.

평생 농사를 짓는 일보다 용병으로 바짝 버는 게 그나마 괜찮은 밥벌이니까.

그마저도 객지 생활에 대한 외로움 때문에 착실하게 돈을 모으고 이 판을 뜨는 사람은 극소수다.

용병단장 라칸은 수십년 간 유랑생활을 한 진짜배기 용병으로서 이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자기를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부하들을 항상 안타까워했다.

그가 원하는 바는 딱 하나였다.

‘나처럼 살지 마라.’

늘 그렇게 생각했다.

이 짓거리는 할 짓이 못 된다.

싸늘한 시신이 되어버린 동생들을 땅에 묻을 때는 특히나.

하지만 바보 같은 놈들은 언제나 헤실거리며 라칸의 여정에 동행했다.

언젠가는 정착하리라.

늘 간직하던 꿈이었다.

당연히 실현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푸른매 용병단이 칼론 제국의 초일류 거대 용병단도 아니고.

어떤 머리에 칼 맞은 귀족이 거금을 먹여가면서 중급 용병단을 키우고 먹여 살릴까.

“정말로 그런 귀족이 있었지.”

헤논 로이드 자작.

처음 봤을 때만 해도 북부에서 전역했다는 타이틀만 빼면 뭣도 없는 사생아 출신 망나니였다.

누가 보면 허풍쟁이라 착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풋내기.

하지만 왜일까.

라칸만은 그에게 묘한 기대감을 품었다.

첫만남부터 범상치 않았다.

게다가 지닌 실력 또한 진짜였다.

‘이 녀석 대형사고를 칠지도 모른다.’

야지에서 구를 대로 구르면서 생긴 자신만의 감이었다.

혹시 몰라 그에게 판돈을 걸었고 결과적으로 도박은 성공했다.

‘단기필마로 알버스 성을 무너트렸고, 숲의 종족이라 불리는 엘프를 숲에서 무찔렀다.’

헤논의 잘난 점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고.

라칸이 고마운 점은 그가 푸른매 용병단에게 보낸 전폭적인 지원과 믿음, 그리고 신뢰였다.

현재 푸른매 용병단은 알버스 성에서 장기체류 중이다.

이곳에 거주하면서 행정업무와 치안업무를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거친 사내들은 조금씩 이 작은 도시에 뿌리를 내렸고, 동시에 가슴 한구석에서 따뜻한 정도 함께 쌓여갔다.

“최근에 유부남 됐다고 완전 빠졌군.”

“저리 시원찮게 해서야 밤일은 제대로 치르는지 모르겠어.”

“으핫하하하!”

농담따먹기를 하면서도 치열하게 훈련하는 용병단원들을 내려다보았다.

잘 먹어서인지 전체적으로 덩치가 커졌고 전장에서 약탈한 낡은 장비 대신 통일된 무기와 방어구를 갖추었다.

우당탕탕 용병집단이 아니라 정예 정규군이라 여겨도 무방했다.

“이제야 주군의 친위대 같은 느낌이 드는군.”

리앙에서 보내주는 지원금은 꾸준했다.

자유도시의 금력은 어마무시했고 라칸은 돈을 절대 허투루 쓰지 않았다.

뒷주머니를 차거나 재물을 낭비하기에는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행복감은 너무나도 달콤했다.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푸른매 용병단은 헤논에게 그들이 가치 있는 군대임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했다.

“날씨가 좋군요.”

상념에 빠져있던 사이에 뒤에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빡빡머리에 무표정을 한 젊은 사내가 서 있었다.

“왔구나. 유칼.”

리앙에서 헤논이 직접 맡기고 간 젊은 사내였다.

처음 봤을 때만 해도 애송이였건만.

검술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더니 어느새 폭풍성장해서 익스퍼트의 고수가 되어버렸다.

지금은 그의 뒤를 이어 푸른매 용병단을 이끌어 갈 명실상부한 후임자였다.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주군을 떠올리고 있었다.”

“로이드 자작님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유칼이 라칸 옆에 서서 창문 너머로 그와 똑같은 광경을 바라보았다.

밑에서 훈련하던 병사 한 명을 가리키던 그가 입을 뗐다.

“저기 방패를 들고 있는 레만 보이십니까?”

“그렇다.”

“불과 일주일 전에 연인이 생겼다는군요. 그 좋아하던 술도 끊고 훈련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잘된 일이군.”

“그뿐만이 아니죠. 펠릭스는 한 달 전에 결혼식을 올렸고 개럿은 그동안 모은 봉급으로 변두리에 작은 집을 샀답니다.”

“······”

유칼이 계속해서 말했다.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누구 덕분에 우리가 이런 호사를 누리는지요.”

“그런가.”

“당연하지요. 손이 부르트고 무릎에 물이 차도 저들은 자신에게 다시 없을 행복을 안겨준 로이드 자작님을 위해, 그리고 단장님을 위해 달릴 겁니다.”

본래 유칼은 과묵한 편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하는 편.

그런 그가 헤논의 이야기가 나오자 오늘따라 수다스러워졌다.

“그리고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제 과거가 어떤지는 단장님도 잘 아실 겁니다.”

라칸의 머릿속에 앙상한 갈비뼈를 훤히 드러냈던 유칼의 첫모습이 잠깐 스쳤다.

“그때만 해도 귀족이 너무 무서웠습니다. 악마가 있다면 그들인가 싶었죠. 당시 저는 평생 이용만 당하다 죽을 운명임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은 아닌가.”

“당연하죠. 귀족이라고 다 똑같은 귀족이 아니었습니다. 로이드 자작님 같은 별난 귀족들도 있죠.”

그는 꿈꾸는 듯한 목소리였다.

“제국에는 벨라누스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믿는 신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진짜 신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유와 희망을 가져다주신 로이드 자작입니다.”

“이 친구 중증이군.”

“저만 이렇게 생각하진 않을 겁니다. 단장님도 그렇지 않습니까?”

사실 라칸도 마찬가지다.

헤논에게 평생을 갚아도 갚지 못할 은혜를 입었으니까.

옅게 숨을 내쉰 그에게 유칼이 편지를 내보였다.

“이게 무엇인가.”

“저도 모릅니다. 방금 전 파발이 떠서 내용 확인 없이 전달한 겁니다.”

봉투 뜯어 내용을 확인한 라칸이 씩 미소를 짓는다.

“하여간 주군도 양반은 아니셔.”

“무슨 일입니까?”

그가 편지를 흔들어 보였다.

“그분께서 나를 부르신다. 긴급 출장이니 용병단을 잘 지키고 있거라.”

* * *

아르니아 대륙 동남부.

자유도시 리앙.

커튼 사이에 비치는 햇살이 에이든의 눈을 찔렀다.

찌뿌둥한 상체를 일으켜 기지개를 켜자 어느새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가 놓여있었다.

“이것 좀 마셔요.”

사랑하는 아내 케일린이 준비한 모닝티였다.

“고맙소. 부인.”

멋쩍어서 뒤통수를 긁적이는 에이든에게 케일린이 싱긋 웃어준다.

“요새 당신 너무 좋아요.”

“뭐가 말이요.”

“그냥 다요. 예전처럼 술에 절어살지도 않고 얼굴빛도 좋아졌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넘쳐서 마치 신혼 때로 돌아온 느낌이랄까요.”

확실히 최근에 좋아지긴 했다.

술을 끊은 건 아니지만 고주망태가 되도록 마신 적은 없었고 매일 같이 단련하고 부대를 지휘했다.

자연스럽게 케일린에게도 잘해줬는데 아내가 이를 느꼈나 보다.

“이게 모두 그분 때문이겠죠?”

“그분이라면···”

“헤논님이요. 악마를 물리쳤다매요.”

에이든의 뒷목에 소름이 돋는다.

“부인, 대체 그 말은 어디서 들었소?”

“어디서 듣긴요. 당신이 매일 잠꼬대로 로이드 자작님 이름을 얼마나 부르는데요.”

부끄러움이 올라온 그가 서둘러 손사래를 쳤다.

“그 소리 절대 바깥에 퍼트리면 안 되오. 아시겠소?”

“물론이죠. 저도 그 정도 눈치는 있다고요. 솔직히 질투가 나긴 하는데 그래도 고마워요.”

“헤논님한테 말이오?”

“네, 왜냐하면 그분께서 원래 제가 알던 남편을 돌려줬으니까요.”

“허허···”

말꼬리를 흐리던 에이든은 과거 자신이 위축되었을 때 같이 우울증에 걸렸던 에일린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 눈앞에서 환하게 웃는 그녀의 얼굴에서는 예전의 침울한 그늘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또한 자작님의 덕인가.’

황혼교의 끈적한 땅거미를 리앙에서 걷어냈을 뿐인데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가정의 평화를 가져다줬다는 점에서 그는 헤논에게 진심으로 감사했다.

푸짐한 아침을 먹고 출근했다.

시청사로 들어서자마자 부하들이 도열한 채 칼같이 경례를 붙인다.

“부사령관님 오셨습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충성!”

출근을 하든 말든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취급하던 옛날과 비교하면 놀랄 만한 변화였다.

그만큼 에이든의 영향력은 수직상승했다.

지금은 무려 오천에 달하는 수호군을 이끄는 부사령관이었고 여차하면 웬만한 중소영지를 뒤집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겸손했다.

주어진 권력이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힘이 아니라는 걸 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부사령관’이지, ‘총사령관’이 아니니까.

이 부대를 자신의 뜻대로 쓰실 합당한 분은 오직 헤논 로이드 뿐이었다.

시장실에 들어오니 아침부터 서류에 파묻혀있는 유론 시장이 에이든을 반갑게 맞았다.

“어서오게.”

“너무 무리하지 마시지요. 몸 상합니다.”

“죽을 위기를 한 번 건너고 나니 일하는 행위가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네.”

주름살이 늘고 머리칼이 하얗게 세었지만 유론 시장은 건강해 보였다.

헤논이 황혼교의 칠대사도 탐욕과 부패한 상인 조합장 하만을 해치워주고 나서 유론 시장은 가장 바쁘게 움직였다.

그 결과 리앙은 시장 중심의 견고한 집권체제가 형성되었고 늘 말썽이었던 상인 조합도 통제가 가능해졌다.

겸사겸사 보름달 시장의 노예 거래도 완전히 근절시켰고 말이다.

“헌데 무슨 일로 저를 부르셨는지.”

“먼 곳에 갔다와야겠네.”

리앙에만 있어야 할 그에게 출장업무라니.

누구 때문인지는 분명했다.

“로이드 자작과 관련되어 있습니까?”

“맞네. 그가 자네를 필요로 하네.”

로이드 자작은 에이든의 은인이기도 하지만 유론 시장의 은인이기도 하다.

그의 부름은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다녀오지요.”

“몸조심하게.”

“네, 어디로 가면 되겠습니까?”

잠시 뜸을 들이던 유론 시장이 말했다.

“엘든 왕국의 수도. 폰타노로 가게나.”

* * *

동부 대산림.

엘프의 안식처.

짹짹거리는 참새 소리가 아침을 밝힌다.

마을 한편에는 밑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깨끗한 시냇물이 졸졸 흘렀고.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아멜리아는 잘 익은 사과를 우적우적 씹으며 목을 축였다.

“히히히!!”

“거기 서!”

어린아이들은 활력이 넘친다.

귀가 뾰족한 엘프 아이가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술래잡기를 했다.

그 귀여운 모습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자연스레 미소가 서렸다.

참으로 평화로운 정경이다.

원래 엘프 마을은 이런 분위기였다.

자신이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최근은 그렇지 못했다.

리처드가 대장로에 오르고 나서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전사들의 훈련시간이 늘어났다.

전사로 뽑히는 아이들의 연령대도 점점 낮아졌다.

인간에 대한 혐오감과 적개심을 불태우는 엘프들도 심심찮게 늘어났다.

당시에는 이 모든 변화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했었다.

눈과 귀를 닫고 그녀 개인의 강함에만 몰두하던 시절이다.

그 사이에 엘프족은 안쪽에서부터 느리지만 확실하게 썩어가고 있었다.

‘나까지 세례식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녀는 엘프 전사의 마지막 보루였다.

어렸을 적부터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스콧마저 세례식을 받았을 때도 그녀는 자신의 힘만으로 강해지기를 원했다.

그런 아멜리아의 완고한 고집이 오히려 그녀를 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저벅저벅

아침마다 아멜리아가 가는 곳이 있다.

바로 공동묘지.

리처드 대장로의 단체 세례식 사건 이후 엘프의 안식처에는 희생자를 기리는 묘지가 생겼다.

비석 하나를 앞에 두고 걸음을 멈추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스콧]

이야기는 들었다.

몰티령을 점령하고 인간족 군대를 쳐부수며 승승장구하다 결국 ‘그놈’을 만나버렸다고.

‘그놈’을 만났다고 했을 때 아멜리아는 스콧이 고인이 될 줄 확신했다.

‘괴물 새끼.’

적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헤논 로이드.

놈은 비상식적인 놈이었다.

숲의 종족인 엘프가 주무대인 숲에서 제대로 전투조차 못하고 패배한 게 부끄럽지 않냐고?

전혀.

엘프족이 숲의 종족이라면 헤논은 숲 그 자체였다.

적어도 아멜리아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한쪽 무릎을 꿇고 스콧에 대한 명복을 빌어줄 때, 뒤에서 익숙한 소녀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네.”

“사샤님.”

엘프족 주술사이자 임시 족장인 소녀는 세례식 사건 이후로 내면으로도, 외면으로도 훌쩍 컸다.

벌써 여인의 태가 나고 있었다.

반짝이는 은발머리는 풍성해졌고 특유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

역대 어떤 주술사도 사샤만큼 고생한 경우는 없을 거다.

리처드 대장로의 음모를 반대하다가 리앙의 노예시장에 팔렸고 인간족 틈바구니에서 온갖 수모를 당했으니까.

당시에 리처드를 따르느라 사샤를 외면한 아멜리아는 아직도 그녀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어쨌든 사샤 덕분에 엘프족은 세례식 사건 이후로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지금 안식처 내 모든 엘프들은 사샤를 어머니로 모시며 똘똘 뭉쳤다.

“스콧의 명복을 빌어줬구나.”

“그렇습니다.”

“너랑 스콧은 특히 친했지.”

“친하고 자시고도 없었습니다. 강함이라는 같은 목표를 지향했을 뿐이죠.”

“스콧을 죽인 헤논 아저씨가 미워?”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에 아멜리아가 숨을 멈추었다.

“밉다기보단···얄밉습니다.”

“얄밉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제 동료와 친구를 수없이 앗아간 놈입니다. 헌데 종족의 대은인이니 대놓고 미워할 수도 없죠. 그래서 얄밉습니다.”

아멜리아가 토로한 솔직한 심정을 들은 사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전에 했던 말은 진짜였어?”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리 헤논 아저씨가 미워도 내 부탁이라면 그를 도와주겠다고 했잖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맞습니다. 선후관계야 어찌 되었든 사샤님은 저희의 지도자입니다. 제 개인적인 은원보다 주술사님의 명령이 더 중요하지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런 김에 염치불구하고 부탁할게. 아저씨를 도와줘.”

아멜리아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예?”

“도와줬으면 좋겠어.”

“누구를요?”

“헤논 아저씨.”

이어지는 사샤의 설명을 들은 아멜리아가 혀를 내둘렀다.

헤논 로이드가 리처드 대장로와 손잡았던 인간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고, 그동안은 혀로 싸웠다면 이제는 칼이 필요할 때라고.

“그 얌생이는 가는 곳마다 폭풍을 몰고 다니는군요.”

“그게 아저씨의 매력이지. 마음 같아서는 내가 가고 싶은데 힘이 없어서 아쉬워.”

다른 일도 아니고 리처드 대장로와 동맹을 맺었던 인간이라면 엘프족도 아예 무관한 건 아니다.

아멜리아가 등 뒤에 맨 활을 만지작거렸다.

“최근에 미약한 발전을 이루었는데 마침 시험해볼 좋은 상대가 생겼군요. 다녀오겠습니다.”

“응. 부탁해. 웜홀을 이용하면 금방 갈 수 있을 거야. 꼭 다치지 말고 돌아와야 해. 알겠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후딱 끝내고 돌아오겠습니다.”

방금까지 코앞에 있었던 아멜리아의 신형이 흐릿해졌고.

어느새 안식처를 벗어난 그녀는 무서운 속도로 멀어졌다.

아멜리아가 사라진 자리를 응시하던 사샤가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중얼거렸다.

“아저씨, 건투를 빌게.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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