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64화 (164/200)

20장 혈통 : 복귀한 망나니

『시온 라이크』에 들어오고 나서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소가주가 되고 도시를 구하고 악마를 퇴치하고 황혼교의 음모를 깨부수고. 일일이 열거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만한 업적을 남기면서도 앞만 보고 달렸던 이유는 전부 황금가지 때문이었다.

황금가지, 즉 세계수의 파편.

천마검의 봉인을 푸는 열쇠이자 드루이드로서 성장하기 위한 발판. 확실치는 않지만 게임 세계를 탈출하기 위한 열쇠.

나는 지금 황금가지가 모두 합쳐진 세계수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느낌이 어떠냐고?

굳이 표현하자면···영험하고 신령스럽고 신비로웠다. 무엇보다 안에 내재된 강력한 힘이 느껴졌다.

만약 세계수와 함께하면서 진다? 조종하는 사람이 완전 초짜거나 세계수가 가짜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그만큼 세계수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세계수 이그드라실이 함께합니다.]

[일대에 자연의 오오라가 깃듭니다]

[아군의 모든 스텟이 300% 증가합니다]

[회복량, 흡혈량, 재생량이 max에 도달합니다]

일단 깡스텟이 네 배로 뻥튀기된다. 그것만 해도 미친 버프인데 온갖 유틸 능력치를 한계까지 올려준단다.

읽어보고도 그 내용이 믿기지 않아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이게 끝이 아니었다. 시스템창이 연속으로 떠올랐다.

[일대에 영역이 선포됩니다]

[권속을 소환합니다]

무슨 권속을 말하는 걸까.

의문점은 금세 풀렸다.

저 멀리 자욱한 먼지구름과 함께 한 무리의 군단이 달려왔다.

하나 같이 화려한 면면이다. 흉포하기로 손꼽히는 거대 전갈과 모래 상어, 사막 늑대에 톱니이빨 독수리까지. 다채로운 포식자들이 떼로 몰려오고 있었다.

“이건 거짓말이야···”

병사 한 명의 읇조림도 잠시, 눈앞에 지옥도가 펼쳐진 건 순식간이었다.

세계수의 오오라는 맹수에게도 적용되었다. 스텟이 네 배 증가한 그들은 웬만한 상위종 몬스터만큼 강해졌다.

게다가 칼로 베어도 확실히 죽이는 게 아니면 금세 회복하고 재생해버리니, 상대하는 입장에선 환장할 노릇.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까 부서졌던 골렘들이 천천히 일어났다. 세계수의 오오라를 받고 수복을 완료한 것이다.

이로써 불리했던 전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이 모든 것이 세계수 하나로 일어난 일이었다.

“언제봐도 강력하고 아름다운 힘이다.”

나를 어깨에 태운 거인이 아래를 내려다보며 감상한다. 녀석에게는 인간이 이종족이니 별다른 느낌이 없겠지만 나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그야말로 레퀴엠. 종말.

그동안 황금가지를 모으며 멀린의 강력함을 어렴풋이 짐작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경험해보니 이건 차원이 달랐다. 혼자서 세상을 끝장낼 수도 있는 힘이었다.

[시험-드루이드의 기억을 클리어했습니다.]

[황금가지를 획득합니다.]

[승급완료!]

[최상급 드루이드로 승급하셨습니다.]

사막의 군대가 몰살당함과 동시에 시험이 종료되었다는 알림음이 떴다. 역대급으로 쉬운 시험이었지만 역대급으로 뒷맛이 찝찝한 시험이기도 했다.

‘우선 새롭게 얻은 스킬을 체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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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최상급 드루이드가 되었습니다.]

[기존 스킬을 버프합니다.]

[새로운 스킬을 습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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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드 컨트롤

-강화된 바인드(MAX)

-우드골렘(MAX)

-우드 레인(★★★)

-자이언트 우드(★★★)

2. 크리스탈 컨트롤

-크리스탈 랜스(★★★★)

-크리스탈 실드(★★★★)

-크리스탈 골렘(★★★★)

-크리스탈 레인(★★★)

-자이언트 크리스탈(★★★)

3. 윈드 컨트롤

-순보(★★★)

-헤이스트(★★★)

4. 라이프 컨트롤

- 시야공유(★★★)

- 테이밍(★★★)

- 기억회상(★★★)

- 세계수 묘목 소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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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승급에선 다른 때와 달리 기존 스킬을 버프해주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나무 스킬의 경우, 내 단골 스킬이었던 바인드와 우드골렘이 최대치인 5성을 찍었고, 이하 스킬들도 별을 하나둘씩 더 땄다.

크리스탈 스킬의 경우, 기존 스킬은 그대로지만 레인 스킬과 자이언트 스킬에서 별을 획득한 상황. 파괴력이 그만큼 증가했다고 보면 되겠다.

윈드 스킬도 각각 별을 얻었다.

제일 크게 바뀐 건 라이프 스킬이었다. 시야공유와 테이밍, 기억회상에서 별을 얻고 무려 세계수 묘목 소환이라는 새로운 스킬이 생겼다.

이참에 바로 시험해보기로 했다.

‘세계수 소환.’

몸에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만큼 정신력을 많이 소모하는 스킬이다.

자그마한 세계수 묘목이 땅에 뿌리를 박고 고고한 자태를 뽐냈다. 멀린의 기억에서 본 거대한 나무와는 달리 작고 귀여운 맛이 있었다.

묘목이라도 세계수는 세계수인지 곧바로 시스템창이 뜨며 해당 효과를 게시했다.

[세계수 묘목이 함께합니다.]

[일대에 자연의 오오라가 깃듭니다]

[아군 모든 스텟 100% 상승]

[회복량, 흡혈량, 재생량이 소폭 증가합니다]

역시나 엄청난 효과다. 아군의 모든 스텟을 2배로 뻥튀기해주는 데다가 치유량, 흡혈량, 재생량 증가 옵션까지. 뭐 하나 버릴 것 없는 알찬 효과들이었다.

아마도 묘목을 자라게 하려면 계속해서 황금가지를 얻어야겠지. 그때쯤 되면 묘목이 아니라 이그드라실 그 자체가 될 터. 멀린의 기억 속에 나온 나무를 내가 다루게 되는 거다.

스킬 체크는 이쯤 하자.

세계수를 돌려보내기 무섭게 방문이 벌컥 열리며 동료들이 들어왔다. 오르네오가 나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했다.

“풍기는 기운이 달라졌구먼. 뭔지는 몰라도 성장했어.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부단장! 우리 이제 지상으로 가는 거야? 여기 음식 맛있긴 한데 슬슬 고향식을 좀 먹고 싶은데.”

“맞다. 우리는 이제 올라갈 거야.”

한 가지 다행인 건 인어왕족인 일리나가 지상으로 통하는 길을 알고 있단다. 그녀가 직접 길을 안내해주기로 했다.

“여러분은 구원자입니다. 저희 어인족은 헤논님을 비롯한 위대한 인간족을 대대손손 기억할 겁니다.”

“고마운 말씀이군요.”

“또한 저희 어인족의 손이 필요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 그곳이 머나먼 지상 끝이라도 아가미에 땀나게 뛰어서 달려가겠습니다.”

일리나의 당찬 포부를 들으며 출구 쪽으로 이동했다. 여태껏 조용히 있던 시온이 나에게 와서 물었다.

“도련님, 앞으로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입니까?”

미래 계획이라···다른 건 모르겠으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더는 신분을 위장할 필요가 없어졌다.

난 소드마스터가 되었고 대륙의 여덟 번째 별이다. 당당하게 정체를 밝히고 황혼교와 정면으로 승부할 때가 되었다.

이를 실행하기 위한 첫번째 단계가 오리할콘 모험가 칸에서 헤논 로이드 백작으로 복귀하는 것이다.

당연히 세상은 떠들썩하겠지. 허나 그것조차도 노리는 바다. 대놓고 도전장을 던져도 무방한 체급이 되었으니까.

“돌아간다. 가서도 할 일이 많아.”

* * *

아르니아 대륙 중남부.

버려진 폐허.

반쯤 무너진 성벽에 허옇게 백골만 남은 시체, 녹슬대로 녹슬어 갈색이 된 병장기, 무성히 낀 이끼. 불길하게 우는 까마귀까지.

유령의 성이라 해도 무방한 이곳 지하에는 황혼의 대간부들이 모여있었다.

교주를 포함하여 오만, 분노, 나태.

일곱사도에 교주까지 있었던 처음에 비하면 조촐한 숫자다.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분노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식탐은 어디 있지?”

“몰라. 또 어디서 인간 먹느라 늦겠지.”

“오늘 같은 날 늦다니. 식탐도 늙어서 노망이 난 건가.”

옆에 있던 나태도 한마디 보탰다.

“새로운 탐욕도 안 보인다.”

“그놈은 일부러 안 불렀다.”

오만의 대답.

“내가 추천하긴 했지만 자격에 안 맞는 놈이다. 적당히 이용하다 버릴 놈에게 오늘 회의 내용을 공개할 필요는 없지.”

결국 참석자는 교주 포함 넷이 전부였다.

“우선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군. 헤논 로이드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가.”

교주의 목소리에 회의장 분위기가 침잠했다.

최근 아르니아 대륙을 발칵 뒤집어놓은 소식이 있었는데, 실종되었다고 알려진 헤논 로이드의 생존이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온 그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소드마스터로 올랐다고 공표했으며 스스로를 대륙의 여덟번째 별이라 칭했다.

물론 대다수는 인정하지 않고 허풍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였다.

우선 마스터로 오르기에는 헤논의 나이가 지나치게 젊었으며, 실종된 기간이 꽤 길었는데 그동안 뭘 했는지 불투명했기 때문.

하지만 이런 주제로 거짓말을 치다가 들통이 나버리면 명예부터 시작해서 많은 부분이 손해이기에 믿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어쨌든 헤논은 자신의 실종 이유를 황혼교의 암살 기도 때문이라 밝혔으며, 이로 인해 대륙 전역에 황혼교에 대한 경계심이 팽배해진 상태였다.

“나태, 어떻게 된 건가? 네가 직접 마무리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분명히 심장을 찌르고 절벽 아래로 떨어트렸습니다. 절대 살아남을 수 없는 부상이었죠.”

“황태자도 암살한 너다. 고작 엘든 왕국의 벌레 한 마리 잡는데 실패했다고? 그걸 나보고 믿으란 말인가?”

“죄송합니다.”

황혼교주의 무기질적인 눈동자와 나태의 무감정한 눈동자가 허공에서 부딪쳤다.

둘을 중재한 건 분노였다.

“교주시여, 어차피 일은 벌어졌습니다. 지금이라도 본교의 전력을 다해서 헤논을 해치우시죠.”

분노의 말에 오만이 태클을 걸었다.

“그건 곤란해.”

“어째서지?”

“만약 헤논이 정말로 소드마스터가 되었다면, 로이드 후작가에만 마스터가 둘이다. 심지어 가까운 거리에 홍염의 카리나도 있잖는가.”

오만의 말은 이러했다.

실질적으로 소드마스터 셋이 대기하는 로이드 영지. 게다가 시간이 끌리기 시작하면 대륙 전역에서 지원군이 밀려온다.

그렇다 해도 못 잡을 건 없지만, 마왕이 부활도 안 한 시점에 굳이 생쥐 한마리 잡겠다고 본교의 전력을 다 꺼낼 필요가 있겠느냔 말이었다.

“그러면 뭘 어쩌란 말인가?”

“나무가 아니라 숲을 봐야지. 전체를 흔들면 결국 꼬리는 따라오게 된다.”

오만의 손에는 편지 하나가 잡혀있었다.

“이 편지에는 아주 자그마한 진실이 적혀있지. 매우 사소하지만, 이 편지가 사막 왕국과 칼론 제국의 동맹을 파탄낼 촉매가 될 것이다.”

나태의 무심한 목소리.

“두 나라를 싸움 붙일 셈인가?”

“당연하지. 현재 칼론 제국에 반기를 들만한 전력을 가진 나라는 사막 왕국뿐. 그리고 제국의 오랜 집권으로 제국에 불만을 가진 자들도 많다. 만약 둘 간에 전면전이 벌어지면 어떤 그림이 나올까?”

혼돈, 공포, 재앙, 파멸.

나태의 머릿속에 온갖 부정적인 단어가 떠올랐다.

“이는 오로지 전야제일 뿐이다. 바알님께서 강림하시기 전에 미리 판을 깔아놓는 거지. 원래라면 힘을 합쳐 싸워야 할 인간이 서로를 불신하는 상태라면 볼만한 장면이 펼쳐질 거다.”

오만의 말은 그럴듯했다. 분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반면에 나태는 그럴싸한 포장지 속 감춰진 진실을 한눈에 꿰뚫어보았다.

“말만 번지르르하군. 사실은 네놈의 시체 수집 욕구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겠다는 말 아닌가?”

“뭐 겸사겸사 내가 부릴만한 권속이 늘어나면 좋을 일이지.”

“마왕님이 언제 부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너무 이르게 혼란을 야기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어.”

지지부진한 갑론을박. 후드 속에 가려진 황혼교주의 무면(無面)이 불길하게 꿀렁거렸다. 결국 교주가 손을 들자 장내에 싸늘한 침묵이 내리앉았다.

“여태껏 내가 버려진 폐허에 머무는 이유를 아는 사도 있나?”

교주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아무도 몰라?”

“죄송합니다.”

“마왕님을 깨울 힘을 비축하기 위해서였다. 너희의 임무는 내가 힘을 모을 동안 드루이드를 찾던가, 황금가지를 찾던가, 대륙에 평지풍파를 몰고 오던가, 무엇이라도 했어야 했어. 그러나 너희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일방적인 질타에 다들 고개를 들지 못한다.

“하지만 괜찮다. 애초에 너희 따위를 진심으로 믿은 적은 단 한순간도 없었으니.”

쿠콰콰콰쾈!!!

성 전체가 미친 듯이 진동했다. 동시에 교주의 지팡이에서 퍼져나온 검은 빛이 하늘을 가로질러 동쪽으로 쏜살같이 쏘아졌다. 미사일을 방불케하는 속도였다.

“앞으로 1년. 바알님께서 봉인을 풀고 깨어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그때까지 마음대로 날뛰어라. 어차피 종말은 정해져 있으니.”

마왕이 깨어나기까지 고작 1년.

충격적인 소식에 간부 전원이 순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뒤늦게 정신 차린 그들이 황급히 한쪽 무릎을 꿇으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위대하신 바알님의 뜻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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