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장 혈통 : 납치한 망나니
예상대로 파헬은 격한 반응을 보인다.
“힘으로 정보를 내놓으라 윽박지르는 게 흑야의 방식인가? 대가를 운운하던 것치고는 상당히 폭력적인데.”
“네 말이 맞다. 파헬, 들어와라. 너무 흥분했다.”
나태의 명령에 파헬이 주춤대며 칼을 거두었다. 눈빛만은 여전히 정보를 갈구하고 있었다.
“샌디 황후의 암살범이 누군지 확실히 아는가?”
“단독 범행인지 공동 범행인지는 모르지만 연루자임은 확실하다.”
“벌써 십수년도 전에 일어난 일이다. 어떻게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지? 네 말을 믿기 힘들다.”
“드루이드 스킬로 알아냈다.”
“믿을 수 없다.”
못 믿겠다면 믿게 만들어줘야지.
이곳은 나태의 공간.
책상에 손을 짚고 스킬을 발동했다.
[라이프 스킬]
[기억회상]
오래 볼 필요는 없다. 근 일주일 정도를 돌려가며 나태가 이곳에서 뭘 먹었는지만 체크하고 스킬을 해제했다.
“흠···어제는 토마토 스프를 먹었군. 그제는 닭다리와 빵인가. 브로콜리를 싫어하네? 따로 빼놓는 걸 보니.”
반쯤 누워있던 자세의 나태가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어떻게 알았지?”
“말했잖아. 드루이드 스킬이라고.”
“설마 과거를 알아낼 수 있는 건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
“······”
옆에 있던 파헬이 입을 떡 벌렸다.
“과거를 볼 수 있는 자라니. 저희 길드에 들어오실 생각은 없습니까?”
“응. 없어.”
“부탁입니다.”
“응. 싫어.”
어쨌든 내가 황제의 암살범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나태가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입수한 정보를 믿어주겠다. 암살을 사주한 자는 누구지?”
“맨입으로 정보를 받아가려고?”
“정보를 뱉는 즉시 그만큼의 대가를 지불하든지 장부에 빚을 달아두겠다.”
나태가 계산 하나만큼은 철저한 여자다. 가불하는 셈치고 정보를 뱉었다.
“황제.”
“···거짓말하지 마라.”
“정말이다. 혼자 저지른 일인지, 누군가의 입김이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황제가 샌디 황후의 암살에 관련되어 있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파헬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하긴 녀석은 충격이 크겠지. 친부가 친모의 암살을 의뢰한 셈이니까.
“잘 생각해라. 파헬 너의 존재 자체가 샌디 황후가 병이 아닌 암살로 죽었다는 걸 의미한다. 그런데도 제국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어. 사건을 묻기에 급급했지. 게다가 암살을 성공했다는 사실 자체도 이상해. 황궁에 얌전히 있던 대제국의 황비가 고작 암살자에게 살해당했다고? 그곳을 지키던 병사와 기사가 수백일 텐데. 이건 내부자, 그것도 핵심 내부자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조목조목 짚어주자 파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본인도 은연중에 아는 거겠지. 황제 정도 되는 사람이 도움을 주지 않고서야 황후가 죽을 리 없다는 것을.
“너도 정보 길드에 몸 담은 사람이니 그동안 네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많이 조사해봤겠지. 무슨 단서가 나오던가?”
“소득은 없었다.”
“당연하겠지. 워낙 오래된 사건인 데다가 사주한 사람이 황제니까 사건의 은폐가 가능했던 것이다.”
“어째서···”
결국 파헬도 나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어째서 황제가 그런 무참한 짓을 저질렀는지.
“밤거미, 방금 넘긴 정보료 값으로 부탁 하나 하고 싶다.”
“무슨 부탁인지 들어보고 결정하겠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파헬은 황제의 살해 동기를 알고 싶어하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너희가 황제와의 만남을 주선해줬으면 한다.”
파헬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저희에게 부탁하는 이유를 모르겠군요. 그쪽에 계신 현자님을 통해 얼마든지 황제 폐하를 알현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가 한 단어를 빼먹었군. ‘강제’로 만나고 싶다.”
강제라는 단어가 들어가자 말의 뜻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나태가 담배를 한모금 깊이 빨았다.
“설마 황제를 납치해달라는 말인가?”
“그렇다.”
“불가하다.”
“우리가 도와준다면?”
“······”
당연히 흑야에게만 황제를 납치해달라고 하는 몰염치는 아니다.
아무리 나태가 강해도 상대는 제국의 황제다. 파헬과 나태 둘로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이긴다.
하지만 여기서 나와 오르네오 영감님, 시온과 캠벨을 포함한 내 동료가 전원 가세한다면?
다들 마스터를 앞두고 있는 초고수에 영감님은 세븐스타. 여기에 흑야의 정보력까지 더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나태도 나와 비슷한 사고회로를 돌리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내 총전력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고 있는 여자다. 과연 어떤 결론을 내놓을까.
“완전히···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매우 어렵지만 실낱 같은 구멍은 있다.”
“정말인가! 폐하를 납치할 수 있다고?”
깜짝 놀란 오르네오가 펄쩍 뛰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다.”
이후 이어지는 나태의 설명.
원래라면 황제를 잡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일년 내내 황궁에 기거하기 때문에 아무리 전력으로 부딪혀도 얄짤 없다고.
그러나 딱 한 번 기회가 있단다.
바로 정월 초하룻날.
황제가 궁을 떠나 외출하는 날이다.
겨울철마다 건조한 피부로 고생하는 황제는 등창이 심하게 나서 의원을 매일 부른단다.
특히나 겨울철 막바지인 정월 초하룻날이 되면 통증이 극심해지는데, 황제는 이날마다 제국 수도에서 하루 거리에 있는 온천에 방문해서 몸을 지진다.
아무리 외출이라 해도 황제의 행차이니 경비는 철통이다. 그래도 황궁에 있을 때보단 덜하니 빈틈을 노리면 이론상으로는 가능하다는 게 나태의 주장이었다.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약간의 변수라도 생기면 끝장이고.”
“너무 무모하군. 성공해도 문제고 실패해도 문제네. 이건 없던 일로 하지.”
“하지만 현자님, 백날 황제 폐하를 알현해서 물어보십시오. 과연 폐하가 순순히 인정하시겠습니까? 현자님을 탑에 유폐하지나 않으면 다행입니다.”
“헤논의 주장에 동의한다. 만약 황제가 정말로 샌디 황후 암살 사건의 배후라면, 그를 납치하지 않고서야 진실을 듣기 힘들 거야.”
오르네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평생 제국에 충성을 다하던 영감님이 황제를 의심하는 것도 모자라 납치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는가?”
“그렇습니다.”
영감님과 대충 이야기가 끝났다. 이제 흑야와 일정을 조율할 차례다.
“나야 파헬이 원하는 건 되도록이면 다해주기로 했으니까 상관없다. 헤논 너만 괜찮으면 정보료 값을 황제 납치건 보조로 대체하겠다.”
“그렇게 해달라.”
“좋아. 그러면 한 달 후에 다시 보자. 그때쯤엔 정월 초하룻날이 코앞일 테니.”
* * *
나태와의 만남 후.
남쪽에서 군사를 일으킨 사막 왕국이 폭풍처럼 북상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원래도 척박한 환경에서 생존했던 강인한 민족이다. 똥배 나온 제국의 군대는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남부 열 개의 성채와 스무 개의 영지가 초토화되고 중남부까지 전화에 휩싸였다는 소문에 제국의 민심은 급격히 불안해졌다.
사막 왕국이 승승장구함에 따라 야만족의 모함으로만 치부되었던 샌디 황후 암살 음모론도 재조명되었다.
저렇게 눈을 까뒤집고 달려드는데 뭔가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일각의 주장이었다.
황제는 이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고 사막 왕국의 반란은 곧 제압될 거라는 언론사의 보도만 연일 계속되었다.
다시 돌아와서.
현재 나는 가부좌를 튼 채로 내면을 관조하고 있었다.
[마나 각성도 현황.]
[혼합률 현황]
[초록마나 각성도 66%] [↑33.0%]
[푸른마나 각성도 70%] [↑37.0%]
[용혈 각성도 68%] [↑27.0%]
[혼합률 60%] [↑20.0%]
단전에 똬리를 틀고 있던 인어왕의 보주와 코코가 남긴 여의주를 꾸준히 녹여내고 있었다.
그 결과 푸른마나와 용혈의 각성도가 크게 증가했다. 거의 30%에 육박한 수준. 75%의 고지가 코앞이었다.
초록마나 각성도 또한 상승했다.
해저도시에서 획득한 황금가지로 최상급 드루이드가 된 다음부터였다. 추가적으로 황금가지를 획득하면 각성도는 계속해서 오를 거로 예상한다.
마지막으로 혼합률이 50%에서 60%로 올랐다.
혼합률은 삼원마나 간의 관계를 가시적으로 표현해주는 수치. 세 종류의 기운이 순조롭게 융합되는 중이다.
심호흡으로 심법 수련을 끝낼 때쯤, 문이 열리고 시온이 들어왔다.
“도련님.”
“무슨 일이지?”
“지원군이 도착했습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손님이 오셨다. 몸을 일으켜서 이들을 맞이했다.
“다들 오랜만이군.”
나를 찾아온 이들은 바로 푸른매 용병단장 라칸과 리앙 수호군의 부사령관 에이든, 머나먼 동부 대산림에서 여기까지 온 아멜리아였다.
저번 왕궁 습격 때와 마찬가지로 무력이 필요한 순간이라 이들을 불렀고, 고맙게도 한달음에 달려와주었다.
원래라면 제국까지 오는데 한참 걸리지만, 다행히도 현자의 탑에 설치된 웜홀 생성기로 금세 여기까지 왔다.
추가적으로 레베카가 있는 왕궁 병력과 신성국에서 친구가 된 성기사 요한, 해저도시에서 인연을 맺은 테오도르와 일리나 총리까지 부르려다가 참았다.
“주군! 오랜만입니다! 신수가 더 헌앙해지셨군요.”
“사령관님, 리앙에 한 번 놀러오시지요. 시장님도 학수고대 중이십니다.”
“사샤가 안부 전해달란다.”
반갑게 인사하는 에이든과 라칸, 여전히 차가운 태도의 아멜리아까지. 모일 사람은 모두 모였다.
“그런데 저희는 무슨 일 때문에 모인 겁니까?”
“그다지 큰일은 아닙니다. 납치할 사람이 한 명 있어서요.”
“누구지요?”
“제국 황제 칼론입니다.”
“······”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한다.
라칸이 귀를 의심하며 몇 번씩 되물었고 에이든은 실성한 듯 실실 웃었다. 아멜리아는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놀라면 나중에 황혼교주나 마왕 바알을 잡을 때는 어쩌려는 건지 원.
물론 임무를 포기하거나 거부한 자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이들이 나와 생사를 함께한 순간이 상당히 많았다.
“정말이지, 주군의 템포는 따라가기 힘들군요.”
“어쩔 수 없지요. 수호군의 일원으로써 사령관님을 돕는 게 의무니까요.”
“사샤님과의 약속을 지킬 뿐이다.”
모두가 황제 납치 작전에 동의했다. 마침 나태와 파헬 쪽도 준비되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남은 건 정월 초하룻날까지 기다리는 일이었다.
* * *
칼론 제국의 상징은 비상하는 드래곤이다.
타국은 당연하거니와, 자국 귀족도 드래곤 문양이 새겨진 깃발을 사용하지 못했다. 이는 오로지 황가만의 특권이었다.
그런 드래곤 깃발이 오밤중에 오스딘 성문에 펄럭이고 있었다. 황제 폐하의 외출 때문이었다.
“충! 성!”
배불뚝이 수비대장이 오랜만에 정복을 입고 나와서 경례 구호를 붙였다. 긴장한 그의 턱 끝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한스 기사단장은 그런 수비대장을 근엄한 표정으로 지켜보다 입을 열었다.
“폐하와 내가 없는 동안에는 자네가 제국 시민의 방벽이 되어주어야 하네. 그 사실은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긴장 똑바로 하고 근무하라.”
“충성!”
황제를 태운 화려한 팔두마차가 조용히 성문을 빠져나갔다.
제국 황실에서 고르고 고른 정예기사 12명이 모든 방위에서 둘러싼 채 엄중하게 호위했다.
황제의 호위병력치고 열둘은 적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들의 면면을 본다면 절대 그렇지 않았다.
각자가 검의 대가라 불릴 정도로 초고수였으며, 어중이떠중이 익스퍼트가 아닌 최소 완숙에 이른 잔뼈 굵은 기사였다.
무엇보다 호위를 총괄하는 한스 기사단장. 그는 명실상부 대륙 최고수로 제국의 무력을 상징하는 자였다.
소드마스터에 오른지는 벌써 25년이 지났다. 중년을 눈앞에 둔 그는 현재 검사로서 전성기를 맞이했다.
마왕을 토벌하던 최후의 전투 당시에는 황제의 호위를 명분으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세븐 스타 중 으뜸이라는 데에는 다들 이견이 없었다.
과거 황제는 한스 기사단장을 두고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열 개 군단에게 호위받느니 한스 하나를 옆에 두겠다.’ ― 그만큼 황제가 한스에게 보내는 신뢰는 제국의 두뇌라는 오르네오 이상이었다.
“잠시 휴식.”
황제가 쉬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자 어가가 멈추었다.
최정예 기사들은 쉬는 와중에도 절대 말에서 내리지 않고 주위를 경계하며 휴식을 취했다.
부기사단장이 한스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녀석은 마스터의 벽을 눈앞에 둔 준소드마스터라 다음 기사단장으로 한스가 낙점하고 있는 인재였다.
다만 확실한 실력과 달리 수다스러운 면이 흠이라면 흠이랄까.
“단장님.”
“무슨 일이냐?”
“태자 저하 이야기를 들으셨나 해서요.”
“아.”
소식을 듣긴 들었다.
오랜만에 입궁한 오르네오 현자와 알렉스 황태자가 궁 내에서 다투었다고.
두 사람 사이야 예전부터 견원지간이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오르네오가 데려온 로이드 백작이 보인 무위였다.
“정말일까요? 검도 뽑지 않고 맨손으로 황실 호위기사를 제압했다던데요.”
한스가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그려보았다. 나라면 할 수 있을까. 결론은 가능하다였다.
그래서 문제였다. 마스터에 오른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로이드 백작이 했다면, 로이드 백작 또한 마스터가 맞다는 의미니까.
“로이드 백작이 몇 살이지?”
“이제 약관 근처로 알고 있습니다만.”
“약관에 소드마스터라···”
“당연히 헛소문이지요. 대륙제일검이라는 단장님도 스물다섯에 마스터에 오르셨는데, 제깟 놈이 어떻게 단장님보다 어린 나이에 마스터에 올랐겠습니까?”
“모르지. 대륙은 넓고 고수는 많으니까.”
“고수는 많아도 정점은 하나입니다. 여태껏 살면서 단장님을 넘어서는 천재는 보지 못했습니다.”
시답잖은 잡담을 나눈 후 다시 이동했다.
잠시 후 온천에 도착했다.
마차를 끄는 말들이 워낙 명마인데다가 야밤에 주변 신경 쓰지 않고 내달린 덕분이었다.
벌써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있었다.
일출을 바라보며 즐기는 온천욕. 폐하께서 가장 선호하는 순간이다.
한스는 타이밍을 잘 맞췄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제 온천욕을 마치신 폐하를 모시고 황궁으로 복귀하면 끝이다.
그래서였을까.
긴장이 풀리면서 방광이 요동쳤다.
“볼일 좀 보고 오마.”
큰 것도 아니고 작은 거다. 일분도 안 되는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진 않을 터. 수풀 속으로 들어간 한스가 황궁에서부터 계속 참았던 물을 비워냈다.
머릿속에서는 여러 상념이 교차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역시나 사막 왕국의 준동. 제국이 과연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차하면 나도 전쟁터로 나가야 하나. 같은 세븐 스타인 사막왕 가젤과 싸우면 어떻게 될까.
가젤과의 전투를 이미지로 형상화해 모의전투를 벌이고 있었을 때, 귓가에 미세한 소음이 들렸다.
바스락 바스락
잘못 들었나? 아침이라 풀벌레가 움직일 때가 되긴 했다. 하지만 그의 짐승 같은 직감은 움직여야 할 때라고 말했다.
“모두 전투 준···”
쐐액!!
어디선가 날아온 비수가 한스의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동시에 사방에서 튀어나온 복면 무사들이 온천을 향해 쇄도하는 것이 아닌가!
“막아!”
아차 싶었다. 적은 그가 자리를 비운 틈을 노렸다. 조금만 더 참을걸.
‘괜찮아. 욕탕 앞에는 정예기사들이 지키고 있다.’
부하들을 믿기로 했다. 잠깐의 틈만 벌어주면 된다. 이후엔 자신이 다 때려눕힐 수 있으니.
우선은 건방지게 맨 앞에서 길을 가로막는 놈부터 치우자. 검을 든 한스가 오러를 뿜어내며 검을 횡으로 그었다.
“죽어라!!”
콰아앙!!
한스는 오러블레이드를 막지 못하고 단칼에 잘려나갈 적의 모습을 예상했다.
그러나 벌어진 장면은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상대의 비수에도 눈부신 오러가 퍼지며 그의 검을 막았다.
“소드···마스터?”
어처구니가 없다. 소드마스터씩이나 되는 자가 어째서 이런 짓을 한단 말인가.
당황한 순간 상황 종료. 다른 적들이 정예기사를 막아서고 가장 선두에 선 놈이 목욕탕에 들어갔다.
잠시 후.
낯선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원 칼 버려. 안 그러면 황제의 목숨은 없다.”
다리에 힘이 풀린 한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 호위는 완벽한 실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