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83화 (183/200)

21장 영웅 : 결렬된 망나니

황금가지의 시험.

멀린과의 결투.

드루이드 훈련.

여러가지 일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드루이드에 대한 이해력이 늘어났다.

그런 내가 느낀 드루이드를 한 줄로 표현하자면 이러했다.

다수를 상대하기에 최적의 직업.

스킬셋이 하나 같이 일대 다수에 적합하다.

상대를 대규모로 옭아매는 바인드.

지형지물을 바꾸는 실드와 월.

하늘에서 대규모 폭격을 퍼붓는 스피어, 레인, 스톰.

익스퍼트 하나랑은 힘겹게 싸우지만 일반적인 백인대는 우습게 전멸시키는 골렘.

여단 하나를 삽시간에 짓눌러버리는 자이언트.

황금가지 시험에서 봤던 멀린의 스킬 효과는 산천초목을 제 맘대로 휘두르고 주무르는 수준이었다.

이런 멀린을 상대로 군단을 이끌고 간다?

병사들의 무의미한 희생만 늘어날 뿐이다.

“세븐스타와 저, 이렇게 여덟이서 황혼교주를 잡겠습니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전략은 바로 소수정예.

교주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견디면서도 싸울만한 초고수 부대로만 레이드를 진행하는 것이다.

“조금 무모한 작전 아닌가?”

한스 기사단장이 우려를 내비쳤다.

“세븐스타와 용사는 대륙 최고 전력일세.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잘못되는 순간 아르니아 대륙은 멸망 확정이지.”

옆에 있던 이름 모를 군주 하나도 한스의 말에 동조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러하네. 대군을 이끌고 최선을 다해도 모자랄 판일세. 굳이 우리 쪽 최고 전력부터 보여줄 필요가 있나? 먼저 병사들을 보내 힘을 빼놓고 들어가도 충분할 듯 싶은데.”

드루이드의 진짜 위력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설득하기란 정말 힘들다.

하는 수 없지.

또 직접 보여주고 뇌리에 박아주는 수밖에.

“잠시 저를 따라오시지요.”

이곳은 제국의 막사.

회의가 벌어진다는 소식에 각국의 병사들로 바글바글했다.

“훈련용 허수아비를 모두 모아주시겟습니까? 그리고 재료가 있다면 어설프게라도 허수아비를 만들어주세요.”

10분 안에 허수아비 2천 개가 준비되었다. 그 허수아비들을 공터에 일정 간격으로 박아두었다.

“지금부터 제가 보여드릴 건 모의전입니다. 저 허수아비들이 아군이고 제가 멀린 역을 맡을 겁니다. 한스 기사단장님, 저와 잠시 검을 겨뤄주시겠습니까?”

가장 크게 걱정을 내비쳤던 한스를 허수아비 중간에 세웠다.

“현재 단장님께서는 2천의 병사를 지휘하는 지휘관이십니다.”

“대충 무슨 느낌인지 알겠네.”

“신호하면 바로 시작하시죠.”

톰이 어디서 주웠는지 호루라기를 꺼내서 힘껏 불었다.

삐이이익!!!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쇄도하는 한스.

단단히 대비하고 있던 내가 바로 스킬을 퍼부었다.

[크리스탈 월]

쿠콰콰콰콲!!!!

한스 앞에 수정으로 이루어진 단단한 성벽이 솟아오르며 나와의 경로를 가로막았다.

“흥!”

콧방귀를 낀 한스가 수정벽을 단숨에 가로로 날려보냈다. 마치 천마가 멀린의 방어기술에 대응한 것과 흡사한 모습.

[크리스탈 스톰]

아직 안 끝났다.

하늘에서 수정기둥이 수없이 떨어졌다.

모의 시뮬레이션 중이라 전력을 다하지는 않고 3할 정도의 위력으로 시전했다.

그런데도 지면이 움푹 패이고 요란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한스는 대륙제일검답게 크리스탈 스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었다.

가끔 시야를 가로막는 수정기둥만 깔끔하게 검으로 잘라냈다.

[크리스탈 골렘]

거대할 골렘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스에게 주먹을 날리려던 골렘은 짧은 새에 검격 세례를 맞고 무려 백조각으로 분해되었다.

잘게 다져진 골렘은 핵을 숨길 새도 없이 산산 조각났다.

“하앗!!!”

결국 나에게 당도한 한스가 기합성과 내 목에 검을 겨누었다. 모의대련에서 이긴 그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모의대련은 이게 끝인가? 생각보다 싱겁군.”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이제 뒤를 돌아보시죠.”

고개를 돌린 한스.

그는 할 말을 잃었다.

평원에는 2천 개의 허수아비가 모조리 부서져서 그 잔해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한스도 제국 기사단장까지 한 엘리트라서 이해가 빨랐다.

모의전일 때는 저것들이 나무와 짚단으로 이루어진 허수아비 모형이지만, 실전에서는 피와 살점조각으로 이루어진 병사의 시체라는 것을.

“단장님에게 묻겠습니다. 방금 저와의 모의전에서 허수아비의 역할을 뭐였습니까? 제게 위협이 되었나요? 허수아비 때문에 제 힘이 빠지기라도 했나요?”

아니다.

허수아비는 그냥 허수아비였다.

직접적인 공격에 당한 것도 아니고 한스를 공격할 때 쓴 범위공격에 무력하게 쓸려나간 병력.

거기에는 어떠한 목적도 의미도 없었다.

만약 진짜 전장이었다면 어땠을까.

저건 말 그대로 개죽음이었다.

“···이해했네.”

“다행입니다.”

이후 회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두 번이나 실력을 보여주니 다들 처음보다 훨씬 협조적이었다.

물론 내가 드루이드임을 모르는 몇몇 참석자는 방금 보여준 이질적인 힘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용사임을 강하게 어필하고 지루해하는 드래곤 코코를 아공간에서 꺼내자 이내 수긍했다.

황혼교주 토벌은 보름 후로 정해졌다.

마음 같아서는 더 길게 대비하고 싶었으나, 또 어느 왕국에서 거인족이 날뛸지 모르는 상황.

불안해하는 군주들과 장기간 협의 끝에 정한 최대 날짜가 보름이었다.

남은 기간 동안 세븐 스타는 나를 멀린으로 생각하고 단체 레이드 연습을 했다.

드루이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세븐 스타가 상당수였기에 기꺼이 연습 상대가 되어주었다.

보름 후.

모두의 성원을 받으며 나와 세븐 스타가 출정식을 가졌다.

우리가 걷는 길을 따라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꽃을 뿌려주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저들을 포함한 전 인류의 생존이 달려있다.

어깨에 짊어진 짐이 제법 무거웠다.

*

버려진 폐허에 도착했다.

마침 황혼이 드리운 시간이었다.

금빛으로 물든 하늘 아래 폐허가 왠지 모르게 더욱 쓸쓸해 보였다.

일천 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버려진 폐허는 멀린의 기억에서 봤던 장면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 더 먼지가 두껍게 쌓였고 돌이 풍화되었고 이끼가 무성하고 까마귀가 까악대며 날아갔지만, 폐허 특유의 삭막한 분위기만큼은 그대로였다.

황혼교주와 분노는 부서진 잔해 한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엄청난 크기의 세계수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내가 다루는 세계수 성목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이그드라실 본체였다.

사전에 내게서 멀린의 전력을 전달받은 세븐 스타들은 세계수가 뿜어내는 압박감에도 태연함을 유지했다.

“네 이놈!! 네가 황혼교주렸다!! 벨라누스님께 맹세코 너를 가만두지 않으리라!”

성기사 요한이 살기를 가득 담아 윽박질렀으나 황혼교주는 요지부동이었다.

그의 시선은 오로지 나에게 못박혀있었다.

“헤논 로이드.”

“멀린.”

왜일까. 이상하게 멀린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동족은 동족을 서로 알아본다는 건가.

“잠시 대화를 나누고 싶군.”

“좋다.”

“헤논! 함정이다! 절대 가면 안 된다.”

“괜찮습니다. 아버지.”

로이드 후작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전진하고 있었다.

이에 맞춰 멀린도 앞으로 나섰다.

가라앉는 석양과 무너진 잔해를 배경으로 두 개의 그림자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째서인지 오늘 처음 보는데도 너무나 친숙하다.

굳이 묻지 않아도 멀린도 나와 비슷한 감정임을 알 수 있었다.

“몇 개나 모았나?”

뜬금없는 질문이지만 바로 알아들었다.

“전부. 너 하나만 남았다.”

“흐흐흐···”

멀린이 히죽 웃었다.

“영혼에 새겨진 기억을 봤으니 말이 빠르겠군. 네가 보기에 내 삶은 어땠나?”

어렸을 적 따돌림당하고 트롤의 둥지에 홀로 남겨졌다가 드루이드로 각성.

각성한 이후에도 경멸이 두려움으로 바뀌었지 괴물을 보는 시선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하프 엘프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가 마을 사람들에게 희롱당하자 그녀와 함께 마을을 탈출.

결국 실패하고 대장로에게 어머니는 살해당하고 그는 인간족에게 노예로 팔려나간다.

인간 주인에게 구르면서 여러 방면으로 학대를 당하고 가축보다 못한 삶을 살기를 십년.

신체가 자라고 드루이드로서도 성장한 멀린은 스스로 일어서서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직접 처단한다. 인간 주인을 죽이고 엘프 마을을 지워버리고.

이후 멀린은 방랑자가 되어 대륙을 떠돌았다.

변방의 오지를 직접 찾아가기도 하고 대륙인 중 누구도 가지 못했던 해저도시도 방문해서 자신과 비슷한 처우를 받는 거인과 문어를 구해주기도 한다.

이 와중에도 인간들은 멀린을 변종으로 여기며 끊임없이 공격했고 멀린은 대량 학살로 이에 보답했다.

결국 인간의 마지막 저항 세력을 몰살시키고 대륙에 멸망을 가져오려다 지나가던 색마 늙은이 하나 잘못 만나서 영혼이 분리된 인생.

“왜 대답이 없나? 네가 보기에도 내 인생이 그리 기구했더냐? 아마도 그렇겠지. 흐흐흐흐···.”

솔직히 맞다.

나도 별의별 일을 다 겪고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도 나를 아들로 생각해주는 아버지가 있었다.

무엇보다 나는 변방 왕국이라지만 무려 후작가의 비호를 받았다.

종족 전체가 그를 멸시하고 죽이려 들던 멀린과는 시작점이 달랐던 셈이다.

“비록 네가 황혼교를 죄다 박살 냈어도 나는 네가 싫지 않다. 오히려 동질감이 들어. 나와 같은 드루이드에다가 심지어 나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착각이다.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야.”

“정말 그럴까? 너는 나에게 깊이 공감하고 있어. 네 심리가 나에게도 느껴진다. 부정하지 마라. 너는 나를 이해하고 있다.”

그의 말에 정신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실제로 멀린에게 여섯 차례나 빙의되었으니까.

그의 말에 솔깃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기억에 남아있는 인간과 엘프족은 어떠했더냐? 살아남을 가치가 있더냐? 과연 그들이 생명을 연장한다고 해서 대륙이 더 나아지겠느냐?”

대답할 말이 없다.

“너라면 진정으로 나를 이해해주겠지. 어떠한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와 함께 아르니아의 멸망을 앞당기지 않겠느냐? 너와 내가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땅에서 나온 나무뿌리 하나가 손모양이 되더니 부드럽게 내 뺨을 쓰다듬었다.

“뒤를 돌아봐라.”

고개를 돌렸더니 세븐 스타들이 모두 나를 주시하고 있다.

“저들은 모두 인간, 혹은 엘프, 어느 쪽이든 순혈이다. 반면에 너는 어떻지? 너는 엘프냐 인간이냐?”

“하프 엘프다.”

“맞아. 인간도 엘프도 아닌 존재. 지금이야 나라는 절대악이 있으니 저들이 너를 용사라 떠받들어주지. 하지만 모든 악이 사라진 후에도 저들이 너를 받아줄까? 네가 필요 없어졌는데도?”

멀린이 다가왔다.

고목나무 같은 거친 피부결과 무기질적인 눈동자에는 묘한 흡수력이 있었다.

“잘 생각해. 결국 너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한 괴물이다. 내가 죽고, 혹여나 마왕까지 사라진다면 너는 저들에게 버려질 거다. 그럴 바에야 저들이 사라지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느냐?”

진짜 그럴지도 모르겠다.

멀린의 기억 속에서 봤던 인간과 엘프의 만행은 너무나 악독했으니까.

악마보다 더한 놈들.

쓰레기 같은 놈들.

이대로 멀린과 손을 잡고 그들에게 벌을 내려주는 것도 괜찮을지도.

“너와 나는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다. 나와 하나가 되자꾸나. 그리하면 우리는 비로소 소속될 수 있다. 외롭고 고독한 이방인 신세에서 벗어나 진정한 구원과 안식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정말일까?

멀린의 말이 그럴듯하다.

그의 말마따나 아르니아 대륙의 드루이드는 나와 멀린 뿐이니까.

이 자를 없애버리면 나는 영원한 외톨이가 되지 않을까.

문득 두려워졌다.

그렇게 될 바에야 멀린과 하나가 되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게 훨씬 좋을······

-야 이 씨밤바야! 아주 제대로 똥을 싸고 있구나.

의식 속을 강타하는 빈정거림.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 것마냥 정신이 번쩍 들었다.

천마의 분노한 목소리가 온통 머릿속을 울렸다.

-무슨 저런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느냐? 중원살이 80년 인생을 바탕으로 한마디 하자면, 하나가 된다느니 안식을 준다느니 씨부리는 놈은 전부 사기꾼이었다. 전직 종교 교주로서 하는 충고다.

그러고 보니 천마도 교주였다.

-무도의 진정한 끝에 올라서 극의에 다다르면 알아서 합일하고 탈각할 텐데 뭘 저런 감성팔이에 홀라당 넘어가고 있어? 애송이 녀석 그따위로 답답하게 굴 거면 당장 하녀에게 나를 넘겨라.

천마의 호통 속에 섞인 하녀라는 단어가 유독 와닿았다.

하녀 시온.

처음부터 내 곁을 묵묵히 지켜줬던 여자.

이 세계의 원래 주인공.

그녀의 예쁜 얼굴이 몽글몽글 떠오르며 동시에 그녀가 했던 말도 귓가에 아른거렸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련님이 조금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과연 나를 배신할까?

필요 없다고 버릴까?

악마와 황혼교주가 사라졌어도?

‘부단장! 이것 좀 먹고 가자. 나 배고프다.’

먹보 캠벨은?

‘역시 내 아들답게 대단하구나.’

‘내가 너의 후견인이 되어주마.’

로이드 후작은? 카리나는?

‘주군께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사령관께서는 리앙의 영웅입니다!’

‘너는 이미 나와 같은 순례자다. 나중에 한가해지면 함께 아슬란 제국의 발자취를 탐구하자꾸나.’

‘바보 아저씨! 꼭 와야 해! 알겠지? 숲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이제부터 헤논 너는 요한의 친우다.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해라.’

‘벨라누스님께 허락받았어요! 헤논님 오셔도 된대요! 와서 교황이 되어주세요!’

‘현자라 불리우며 오랜 세월을 살았는데, 자네와 함께하면 심심할 틈이 없구먼.’

‘영웅이여, 우리 해저도시는 언제나 당신을 귀빈으로 환영하겠습니다.’

‘비록 형식상 부부라지만···저는 형식으로 생각지 않아요. 언젠가 당신의 팔에서 직접 피를 뽑아마실 수 있기를.'

‘뀨우우우우!!! 아빠다뀨우우!!!’

“···하하···”

“그래, 너도 알겠지. 우리가 속할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이만 나와 하나가 되자꾸나.”

나무뿌리들이 촉수처럼 꾸물대며 서서히 나를 옥죄었다.

발끝부터 시작해서 무릎, 허리, 목, 어깨까지.

마침내 얼굴을 뒤덮었다.

멀린의 표정은 만족스러움 그 자체였다.

“바로 그거야···”

희열감에 잠긴 목소리.

어느새 나무뿌리는 내 왼쪽 눈을 제외하고 전신을 뒤덮었다.

이대로 완전히 밀봉되려던 찰나,

서걱!!

에메랄드 빛이 사선으로 그어졌다.

쏜살같은 검격에 멀린은 반응하지도 못했다.

그의 목에 그어진 실선이 점점 굵어졌다.

“어째서···”

“원래는 네 말을 들어주려고 했는데,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워낙 많아야지. 아참, 영감님이 안부 전해달라더라.”

천마검을 멀린의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자기 심장을 찌른 검인데 설마 못 알아보진 않겠지. 역시나 멀린은 천마검을 보자마자 눈동자에 증오가 스며들었다.

“그렇군···아직도 그 안에 갇혀 살아있었는가···”

“이미 늦었다. 네 목은 잘렸으니까. 잘 가라.”

목이 분리된 멀린의 몸이 풀썩 쓰러졌다.

다른 부위는 몰라도 머리통이 날아가면 이그드라실의 회복력으로도 치유하지 못한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멀린을 죽였다.

···라고 생각했는데.

원래도 고목나무 같았던 멀린의 피부가 완연한 갈색으로 변하더니 꾸물거리며 땅속으로 사라졌다.

시체 자체가 땅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그리고 세계수 뒤에서 멀쩡한 멀린이 나타났다.

드루이드의 직감이 말해주었다.

내가 벤 건 분신이었고, 저놈이 진짜 멀린이라고.

“어쩐지 너무 쉽더라.”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제시했건만, 동족답지 않게 낮은 지능을 지녔구나.”

“글쎄, 누가 멍청한지는 싸워봐야 알겠지?”

“흐흐흐···좋아. 협상은 결렬이다. 나를 거부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지.”

멀린이 신호하자 음산한 기운이 퍼지며 지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이렇게 될 싸움이었다.

뒤를 돌아봤더니 세븐 스타 전원이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 또한 그들을 향해서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줬다.

“전원 돌격.”

뒤 없는 전쟁의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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