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작가 망나니가 천재임-188화 (188/200)

22장 결착 : 벼락친 망나니

어느 사회나 소외당하는 계층은 있게 마련이다.

인간의 어두운 면이 생산해낸 양산물.

이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빠듯했으며 심지어 그마저도 힘들었다.

귀족과 부유한 상인이 내성 안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하다못해 평민마저 외성벽 안쪽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때, 이들은 성 바깥에 내몰려서 몬스터와 도적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야만 했다.

이렇게 고통을 감내하면 대우라도 좋아야 할 텐데, 그들을 향하는 시선은 멸시와 경멸, 가끔은 동정을 가장한 위선이 다였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그들에게 내려진 선택지는 단 두 개였다.

‘그래도 저렇게 사는 것보다는 낫지.’ 혹은 ‘너도 일 안 하고 빈둥대면 저렇게 된다?’ 혹은 ‘엄마 말 안 들으면 저기 더러운 사람들이 너 잡아간다?’

이 따위 조롱을 참으면서 바닥을 박박 기던가. 아니면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라도 떠나던가.

절반 정도는 남았다. 아무리 비루하더라도 자신의 터전을 버리지 못했다. 이들의 뇌는 관성에 잠식되었다. 보이지 않는 목줄에 매인 노예나 마찬가지였다.

나머지 절반은 떠났다. 이렇게 사느니 죽더라도 새로운 운명을 개척하자는 마음으로.

비록 자유를 얻었다고는 하나, 떠난 이들에게 닥친 운명은 너무나도 가혹했다.

도박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듯, 바깥세상은 험난하기 그지없었다.

몬스터를 만날 때마다 가족과 친구를 먹이로 주고 빠져나왔고, 도적에게 속옷까지 탈탈 털렸다.

겨울이 올 때마다 절반은 동사했고, 혹여 살아남았더라도 얼어붙은 손발을 잘라내야 했다.

수많은 악재와 악조건이 겹치는 상황에서도 떠난 이들의 무리는 점점 불어났다.

죽더라도 운명을 바꿔보자는 개척자들이 모여들어 점점 거대한 집단을 형성했다.

그 숫자가 일정 기준을 돌파하자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숫자에 도적들이 질겁하여 꽁무니를 뺐고 몬스터를 역으로 사냥했다.

하도 돌아다니다 보니 미리 닥쳐올 기후를 예측해서 대비하게 되었고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손재주 좋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생활도 조금이나마 윤택해졌다.

그쯤 되자 지역 주민들은 이 떠돌이 군단에게 이름을 붙였다.

‘집시족’이라고.

집시족의 황금기는 나름 찬란했다.

용병 대신 집시가 되겠다고 선언한 젊은이가 영지마다 한 수레는 나왔다.

가난하거나 현실에 불만족하거나 방랑벽이 도진 인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집을 떠나 합류했다.

처음에 거지와 빈민으로만 구성되었던 집시족도 귀족가 사생아라든지, 철부지 상인의 자제라든지, 끈 떨어진 용병대장이라든지, 점점 다양한 계층의 인간들로 채워졌다.

그래서였을까.

이들은 결국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버렸다.

“뭐라? 에스델 영지에서 집시족이 공격받았다고? 이건 참을 수 없소! 우리 집시족의 힘을 보여줍시다!!!”

“옳소! 옳소! 옳소!”

“우오오오!!!”

그 많던 집시족이 무기를 들고 폭도가 된 순간, 삽시간에 군대 하나가 뚝딱 만들어졌다.

이들을 지휘하던 집시족장은 수많은 인간이 자신을 따르자 영웅병에 도취되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는 집시들을 모아놓고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할 계획을 주구장창 떠들었다.

세상의 속박과 구속을 집어던지고 자유롭게 생활하겠다던 옛날의 집시족은 사라졌다.

이제 이들은 영토만 없다 뿐이지, 그 안에서 신분과 계급을 나누고 식량을 차등분배하는 또 다른 국가가 되고 말았다.

집시족의 무장 소식에 국가 단위의 토벌군이 조직되어 내려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시족의 지도자는 기세등등했다.

아무리 말 탄 기사가 있어도 우리쪽 숫자가 훨씬 많으니 괜찮다는 안일한 마음가짐이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 결과는 처참했다.

눈 뜨고 보기 힘든 지리멸렬한 참패.

이후에 이어지는 지독한 학살.

그랬다.

집시의 근본은 자유를 찾아 떠난 여행자였지, 땅을 찾아 정복하고 지배하는 무력 집단 따위가 아니었다.

집시의 암흑기는 제법 길었다.

국가는 빈민들이 집시가 되지 못하게 통제했다.

기존의 집시들은 귀족이나 용병, 혹은 도적들의 사냥감이 되었다.

이들은 집시를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았다. 심심할 때 숲으로 가서 사냥하듯이, 눈에 띄는 족족 화살로 쏴죽였다.

집시족은 명맥만 겨우 유지하게 되었다.

핍박 속에 진정한 자유를 추구하는 극소수만 남게 되었다.

그들은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최소한의 방어 무장을 원했다.

그때 발견된 것이 아슬란 제국의 유적이었다.

원래도 전 대륙을 떠돌아다니며 발이 넓었던 집시족이 유적을 제일 먼저 발견한 건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람의 목숨을 갈아 넣으며 도굴에 성공한 유물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유물은 집시족의 희망이 되었다.

유물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이 늘어났고, 이 힘을 이용하여 몇 번이나 위기에서 탈출했다.

그 이적을 목격한 사람이 점점 많아지자, 어느새 집시족은 일반인의 뇌리 속에서 신비집단으로 인식되었다.

집시족 수뇌부는 이쯤 해서 집시족에 대한 인식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

그들은 기존 집시족의 고루하고 낡은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새롭게 변모하자는 뜻에서 새 이름을 지었다.

진리를 구도하고 진실을 찾아 떠나는 자.

‘순례자’라고.

*

순례자들은 기본적으로 외지인에 대한 배척이 심했다.

오랜 핍박의 역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물의 보안을 위해서도 경계심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런 톰이 처음 본 헤논의 첫인상은 경계대상 1호였다.

소문이야 자자했다.

후작가의 덜떨어진 망나니.

어미 모를 더러운 사생아.

무능력하고 성질 더러움.

최후의 전투 당시 함께 싸웠던 고든을 기억하던 톰은 어떻게 용맹한 호부(呼父) 밑에서 저런 견자(犬子)가 나왔는지 의문이었다.

북부에서의 군복무로 사람이 되었다느니, 알버스 영지전에서 세 치 혀로 성을 무너트렸다느니, 별별 소문이 많았으나 전부 과장이라 여겼다.

특히나 동료 순례자를 죽이고 황혼교의 대간부 탐욕이 된 마일로 때문에 사람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헤논은 톰의 고려대상이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순례자인 자신만의 직감이었을까.

동료 고든 로이드에 대한 의리였을까.

톰은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헤논을 시험하기로 했다.

리앙 시가지 중심에 있는 화려한 레스토랑.

헤논은 그중에서도 전망이 좋아 귀족과 부유한 상인만 출입이 가능한 2층에서 식사 중이었다.

일부러 더러운 흙발로 들어간 다음, 종업원에게 외상을 요구하며 억지로 떼를 썼다.

‘헤논 너는 어떻게 반응할 거냐. 무관심으로 일관할 것이냐. 오히려 기분 나쁜 티를 낼 것이냐.’

원래도 성질 나쁘기로 유명한 종업원은 톰을 노예로 팔겠다 선언하고 끌고 내려가려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헤논은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역시나인가.’

순례자는 철저한 사회적 약자.

약자에게 무관심한 자에게 이쪽도 손을 내밀 필요는 없는 법이다.

소문이 어찌 되었든 헤논은 나와 가까워질 수 없다.

속으로 포기하고 있었을 때였다.

퍼억!!

어디선가 금화가 날아와서 종업원의 얼굴을 정통으로 맞췄다.

금화를 날려보낸 건 놀랍게도 헤논.

그는 이렇게 말했다.

“소년이 제대로 못 먹고 다니는 것 같군. 밥이나 좀 먹이고 싶으니 여기로 올려보내게.”

톰은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이루어진 높은 벽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순간적인 변덕일 수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대놓고 헤논의 곁에 머물렀다.

얼마 후,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헤논 로이드.

이놈은 보통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층민을 감싸기 위해서 귀족과 충돌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단순히 노예를 구해주는데 그치지 않고 갈 곳 잃은 그들에게 살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상인조합장을 습격하여 리앙의 그림자를 파악하고 노예시장을 급습하여 썩은 뿌리를 도려낸다.

마침내 이 모든 일을 야기한 배신자 탐욕을 사실상 혼자 잡아내서 순례자가 배출한 역사상 최악의 치부를 처리해주고 리앙을 구한 영웅이 되었다.

이쯤 되자 톰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헤논 로이드, 이놈은 될 놈이다.

약자를 보호하는 마음만으로도 순례자가 될 자격은 충분했다.

그를 순례자 집단에 가입시키고 각종 유물을 제공했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향후 순례자를 기억해달라는 부탁도 포함되어 있었다.

톰의 투자는 대성공이었다.

헤논의 향후 행적은 그야말로 눈부셨으니.

황혼교의 대간부가 차례로 침몰했다.

도시마다 드리운 어둠이 그가 방문할 때마다 사라졌다.

그야말로 빛, 그 자체였다.

교주를 마지막으로 황혼교는 지워졌고 마왕 바알과의 최후결전을 앞둔 상황.

용사가 된 헤논은 검이 필요하다며 자신을 찾아왔다.

능력이 되는 한에서 최대로 도와주고 싶었으나 재료가 없는 건 톰으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헤논이 말했다.

“저에게 적당한 재료가 있습니다.”

톰은 어리둥절했다.

무려 마왕을 상대해야 한다.

어떤 금속이 와도 부족할 텐데.

적당한 재료는 무슨 재료를 말하는 걸까.

“이걸 보시지요.”

아공간 주머니에서 꺼낸 건 기이한 동물의 뼈였다.

백색의 뼈는 존재만으로 주위의 마나를 끌어들이고 은은한 전자기력을 발생시켰다.

살짝 두드려봤는데 반탄력이 되돌아왔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도대체 어떤 동물의 뼈인가?”

“맞춰보시지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오우거.

탄력적이고 유연하며 머리까지 좋은 숲의 포식자는 신체가 강인하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오우거 뼈를 실제로 본 적 있던 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오우거 뼈가 단단하다 해도 눈앞의 ‘이것’과는 비교가 불가했다.

하늘의 왕자라는 와이번, 용의 사촌이라는 드레이코, 리자드맨 킹, 고블린 로드, 별의별 몬스터가 뇌리를 스쳤지만 느낌이 꽂히진 않았다.

“잘 모르겠네. 지금 살펴본 것만으로는 드래곤의 뼈라고 해도 믿겠어.”

“제대로 맞히셨습니다.”

톰은 귀를 의심했다.

“잠깐? 그 말은 지금 이게 드래곤본이 맞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결국 터져나온 건 헛웃음.

“하, 하핫, 하하하하하!!”

“왜 그렇게 웃으십니까? 무섭습니다.”

“흐하하하하!!!!”

집시족으로 시작해 수백년 간 전 대륙을 떠돌았던 그들도 드래곤 본은커녕 드래곤 똥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헤논은 장날에 집에 숨겨놓은 꿀단지를 내놓은 것처럼 태평하게 드래곤본을 꺼냈다.

톰이 보기에 이미 헤논은 평범함과는 궤를 달리하는 인간이었다.

“드래곤본이라···내 생전에 전설로만 전해지던 신물을 보게될 줄이야. 하긴 진짜 드래곤도 봤는데 드래곤본도 있을 법하지.”

“드래곤본이 더 있긴 합니다. 드래곤 스케일도 있고요. 혹시 대량양산이 가능하겠습니까?”

“내가 대장장이는 아니지만, 최고급 재료는 다듬는 데만 한세월일세. 남은 6개월 동안 검 한 자루나 뽑아내면 다행이야.”

“그렇군요. 그렇다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다소 아쉬운 기색으로 인사하는 헤논.

톰은 저 사내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짐작하기를 포기했다.

또한 닥쳐오는 절망 속에 저 사내라면 마왕을 물리치고 대륙을 구원할 수 있지 않을까.

작지만 확실한 희망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 * *

톰에게 검을 맡기고 로이드 후작령으로 돌아왔다.

얼마 만의 복귀인지.

갈라나흐에서 신성국으로, 신성국에서 해저도시로, 해저도시에서 칼론 제국으로.

모험가 칸으로 위장한 이래 처음 고향 땅에 돌아온 셈이다.

낯익은 풍경이 보이자 반가운 마음에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르니아 대륙에 온 지도 벌써 수년.

이미 내 마음속 고향은 지구가 아니라 이곳 로이드 후작성이었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들어서자 외성을 지키던 경비병이 창을 X자로 교차하여 가로막았다.

“누구냐! 후드를 벗고 신원을 밝혀라.”

후드를 벗었다.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카락.

요요한 빛을 뿌리는 녹안.

새하얀 피부.

평균을 상회하는 장신.

후작령에서 이 외모를 보고도 누군지 못 알아보면 간첩이다.

땡그랑

놀란 문지기가 창을 떨어트렸다.

“어···어? 어? 어라? 어?”

“도시의 방어를 책임지는 자가 무기를 허투루 놓쳐서는 되겠나. 여기 있네.”

창을 주워서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병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용사님을 뵙습니다!!”

“뵙습니다!!”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튀어나온 경비대장까지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인사했다.

마침 검문을 받기 위해 줄 서 있는 사람들에게도 소문이 퍼졌는지 웅성거리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용사라···물론 과분한 칭호지만, 고향에서만큼은 소영주로 불리고 싶군. 무리한 부탁일까?”

“아닙니다! 소영주님! 어서 오십시오!”

“충!!!”

병사들의 각진 인사를 받으면 성으로 들어갔다.

성 안에서는 이미 소식을 들은 영주민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나와서 성대하게 환영해주었다.

“와아아아아!!!!!”

금의환향이었다.

모두가 나를 바라보며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질러댔다.

길가는 꽃잎으로 뒤덮였고 해맑은 아이들이 부모의 만류를 뿌리치고 뛰어와서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나는 아공간에 쟁여둔 쿠키를 꺼내서 그들의 손에 쥐어주었다. 참고로 쿠키는 현자의 탑에서 직접 만든 다과다.

몇 명은 손수건으로 눈가를 훔치며 나를 반겼다.

그동안 내가 어떤 고생을 했는지, 그 고난을 극복하고 어떤 업적을 이뤄냈는지 들은 이들이었다.

“헤논! 헤논! 헤논! 헤논!”

영주민들이 소영주님 실명을 대놓고 부르는 건 불경한 일이지만, 여기 있는 모두는 제2의 가족이나 마찬가지.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줬고, 이에 호응하듯 함성은 더욱 커졌다.

격한 환영인사를 받고 내성에 도착했다.

블랙캐슬로 떠난 로이드 후작 대신에 하인과 하녀들이 전원 도열한 채 나를 맞이해줬다.

제일 앞에는 주름살이 더 깊어진 세바스찬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반겼다.

“오랜만입니다. 도련님.”

“그새 많이 늙으셨군요. 제가 너무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살아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이 늙은이는 감사할 따름입니다.”

“시온과 캠벨을 보고 싶은데요. 이 녀석들은 어디 있습니까?”

황혼교주를 처치할 때 나와 세븐스타끼리 가는 바람에 할 일이 없어진 두 녀석은 로이드 후작령으로 복귀했다.

“훈련 중입니다. 여기에 도착하고 나서 훈련장에서 나온 적이 없습니다.”

이게 현실이다.

밖에서 나를 환호하는 군중들은 안전불감증에 걸려있다.

마왕의 부활이 얼마나 큰 재앙인지 모르고 막연히 용사가 해치우겠거니 생각한다.

그러나 실상을 파헤쳐보면 마왕과 붙어서 승리할 확률은 1% 미만이다.

게다가 남은 기한은 고작 반년.

그걸 아는 시온과 캠벨은 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수련하고 있었다.

“바로 훈련장으로 가겠습니다.”

나도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

내성 뒤편에 위치한 연무장에 갔다.

땀을 비오듯 흘리며 칼을 맞댄 두 남녀의 검에는 마나소드가 선명하다.

특히 시온의 마나소드는 가끔씩 불꽃이 튀는 게 오러 블레이드와 상당히 흡사했다.

익스퍼트 최상위에 오른 검사가 보이는 현상으로, 여기서 깨달음을 얻고 내면의 벽만 넘으면 시온도 소드마스터가 될 수 있다.

나를 발견한 시온과 캠벨이 무기를 내려놓고 달려왔다.

“도련님! 오셨습니까?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부단장, 이야기 들었어. 그 강력한 황혼교주를 처리했다며. 역시 부단장이야.”

반가운 해후는 금세 끝났다.

“너희도 들었을 거다. 마왕의 부활이 6개월 남았다.”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그전까지 할 수 있는 건 최대로 해보려고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었습니다.”

“우선 우리와 같이 훈련할 친구를 불러야겠지.”

아공간에서 코코를 불러냈다.

다행히 이곳 연무장은 내성 중에서도 상당히 깊은 곳에 있었고 세바스찬이 출입을 엄금해서 코코의 커다란 몸뚱어리가 다른 사람 눈에 띄진 않았다.

“뀨!!”

코코가 나오자 시온이 반가운 표정으로 드래곤을 껴안았고 캠벨의 얼굴이 죽상이 된다.

“또 얻어맞을 일만 남았군.”

“맞는 만큼 강해진다 생각해.”

코코도 마왕 바알이 어머니 카일과 관계되어 있다 보니 진지한 태도였다.

게다가 예로부터 드래곤은 중간계를 수호하는 임무를 타고난 종족.

여러 요인이 겹쳐서 코코의 훈련 욕구는 최대치였다.

“마지막으로 우리 훈련을 전체적으로 지도하고 봐주실 교관님을 불렀다.”

시온과 캠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교관? 부단장을 가르칠 사람이 대륙에 남아있기는 해?”

“그렇습니다. 세븐스타 중에서도 도련님과 검을 겨룰만한 사람은 카리나님과 한스 기사단장 정도일 겁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만···조심해라.”

“조심? 뭘 조심···으헉?”

캠벨이 말을 하다 끊고는 주저 없이 몸을 굴렀다.

그의 머리가 있던 곳에는 나무 막대기가 휙 지나갔다.

“클클클, 제법 쓸만하구나.”

방금까지만 해도 텅 비었던 공간이 일렁이더니 천마 영감님이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시온과 캠벨은 낯선 인간이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는데 기척조차 못 느꼈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표정이었다.

“누, 누구십니까?”

“내가 누군지는 알 것 없고, 마왕보다 내가 더 싫어지게 만들어주마.”

천마의 신형이 흐릿해졌고.

지옥의 벼락치기가 시작되었다.

마왕 부활까지 [D-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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