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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2화 (2/235)

〈 2화 〉 첫번째 합궁­나르타 쿤룬

* * *

주술.

그것은 겔만족이나 프리아족의 마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개념의 이능.

제국에서는 그렇기에 늘 주술파와 마법파의 알력이 존재해왔고, 황제는 이 둘을 중재하는 중재자 역할에 충실해 왔다.

그 주술이라는 이능을 대표하는 민족 중 하나가 바로 진륜족이다.

진륜족.

주술사 민족.

이 제국에 적을 두기로 한 것은 고작 10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빠르게 주술사를 대표하는 민족 중 하나로 자리잡은 우수한 민족이다.

그 민족에서도 가장 강대한 주술사를 보유한 가문이 바로 쿤룬이고, 이번에 황제에게 보내질 여자로 선택 받은 자는 그 쿤룬 가문의 수장인 알타리 쿤룬의 장녀인 나르타 쿤룬이라는 자였다.

"나르타 쿤룬. 나이는 약관에... 화염 계통에 능통한 주술사라."

그야말로 결혼 적령기에 처자였다.

게다가 화염 계통 주술에선 벌써 그 일족에서 적수를 찾아보기가 힘든 재능을 지녔다고 하니 쿤룬에서도 인선에 신경을 쓴 것이 느껴졌다.

"유명한 여인입니다. 쿤룬의 기재라 불리던 여인을 폐하께 보낸다는 것은..."

재상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그만큼 짐에게 충성한다는 의미겠지."

그 말대로다.

저 정도로 뛰어난 여인을 망설임 없이 황제에게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다는 증거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황제는 그 의미를 잘 알았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기재라...'

황제는 여인의 외모엔 그리 관심이 없었으나 그 재능이라는 것엔 관심이 갔다.

주술사라. 겨루면 강할까?

그 주술에 직접 맞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버틸 수 있을까?

황제는 솔직히 그런 쪽에 더 흥미가 갔으니까.

그렇기에 황제는 재상에게 말했다.

"흥미는 생겼지만... 너무 이르구나. 짐은 적어도 내일이라 생각했는데."

주술엔 흥미가 있지만 그 여자의 몸엔 관심이 없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합궁 일자를 조금 미루고 싶었지만 재상은 단호했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이미 한참을 미룬 상태였으니.

그렇기에 황제는 그 이상 재상을 책망하지 않았다.

"호위는 뒤로 물리고 내관과 궁녀들도 뒤로 물리도록. 그래, 대충 50보 정도면 되겠군."

"지엄한 명을 받듭니다."

재상은 왜 황제가 사람을 뒤로 물리길 바라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의 처지에선 황제가 얌전히 합궁만 한다면 이런 부차적인 부분은 양보할 수 있었으니까. 애초에 지금의 황제에겐 호위는 그저 형식적인 것.

재상은 그 누구도 황제를 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지 않았다.

"쯧."

황제는 노골적으로 불만스러워 보였지만 재상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순순히 처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걸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재상은 곧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진과 상선에게 명령했다.

"금위대장께서는 얼른 금군을 뒤로 물리시오. 상선은 당장 내관들을 뒤로 물리고, 내명부에 이야기를 전해 궁녀들을 침소에서 50보 밖으로 물리시오."

"명 받았습니다."

진과 상선이 순순히 물러가자 재상은 그대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지치는 구나.'

그야말로 10년은 더 늙은 거 같은 얼굴로 재상은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선제께선 오히려 여색을 즐기느라 국사에 집중하지 못해서 큰 문제였거늘... 이번엔 정반대라니.

재상은 너무 성실한 황제를 만나도 피곤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

하긴 애초에 황제가 되고 싶지도 않다던 사람을 적장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황위에 올렸으니...

오히려 억지로 앉은 자리에 지금의 황제가 책임감을 가져 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별 일은 없겠지.'

재상은 알고 있었다.

황제는 책임감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사사로운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자가 아니었다.

정확히는 사적인 감정보단 공적인 것을 더 우선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까...

재상은 황제가 이번 합궁을 무사히 끝마칠 거라고 믿고 있었다.

­­

은은한 등불이 방안을 채우고, 금실로 수놓아진 용이 당당하게 자태를 뽐내는 솜이불이 깔린, 화려하고 푹신한 침대에는 아름다운 여인이 올라가 있었다.

등불에 반짝이는 붉은 머리, 백옥처럼 하얀 피부. 불꽃처럼 화려하게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

붉은색 저고리로 가려져 있지만 제법 보기 좋게 솟아 있는 가슴까지.

그야말로 경국지색이라는 말이 아깝지가 않은 미인은 얌전히 침대 위에 앉아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제라...'

이 여자는 다름 아닌 이번 합궁의 대상인 나르타 쿤룬으로 그녀는 곧 이 방으로 찾아올 황제를 생각하면서 고민에 잠겼다.

그녀는 황제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다.

살려 달라고 비는 형제들을 눈 하나 꿈쩍 하지 않고 죽인 피와 권력에 미친 자.

전장의 괴물.

북쪽의 야만족들은 지금도 황제의 이름만 들어도 공포에 몸을 떨고, 궁녀들은 얼굴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두려움에 떨며, 내관들은 자기 목이 붙어 있는지를 늘 확인한다는 공포스러운 황제.

솔직히 무서운 이야기만 가득 있는 황제였다.

그녀 역시 지금 약간의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일까...?'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그녀는 황제의 얼굴이 궁금했다.

과연 그 공포의 황제는 어떤 얼굴일까?

모두가 황제의 외모를 감히 평가하기를 두려워하였으니 솔직히 박색일 가능성이 높긴 했다. 아니면 생각보다 평범할 수도, 그것도 아니면 장애가 있어서 밖에 내놓기 곤란한 외모일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그녀는 황제가 잘생겼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황제가 빼어난 외모를 지녔다면, 연회에는 잘 얼굴조차 비추지 않으면서, 합궁까지 여러 핑계로 미루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아마도 황제의 여인이 될 여자들에게 그 흉한 외모를 보이기 싫어서 합궁을 미루고 공식적인 연회에도 잘 얼굴이 비추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소문은 흔히 들을 수 있는 소문이었고, 나르타도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

'상관없지만...'

물론 그녀에게 황제의 외모 같은 건 사소한 문제였다.

어차피 황제가 박색이든, 장애가 있든, 그녀에겐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가문의 선택을 받았고, 그 결과 황제에게 바쳐졌으니까.

내키지 않는다고 물릴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오히려 그녀는 지금 기회를 잡고 싶었다.

그런 그녀에게 외모는 부차적인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이 제국의 만인지상인 황제라는 것이고, 자신이 이 기회를 잡으면 바로 아버지조차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황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오늘은 마침 길일이고.'

그녀는 오늘이 회임하기에 좋은 날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애초에 가문에서도 합궁 일을 그런 날에 잡으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의 목적은 하나였다.

이번 합궁을 통해 회임하여 황제의 장자를 낳고 황후에 오르는 것.

고작 쿤룬의 가주가 되는 것보다 훨씬 명예롭고 가치 있는 자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눈앞에 있었다.

생각도 못한 기회였지만 나르타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드륵.

그때 문이 열리고 황제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떤 사람일까?

그녀는 조금 기대감이 어린 눈으로 열린 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아."

그러고는 순간 자기 눈을 의심하며 입을 작게 벌리고 감탄했다.

나르타는 지금 자신이 현실을 보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안으로 들어온 황제는 수라도, 괴물도, 하물며 박색도 아니었다.

'세상에...'

한족의 진한 피를 이어받았다는 증거인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그 황실의 피를 제대로 이었다는 증거인 황금색 눈동자.

처음 본 황제의 얼굴은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그녀는 살면서 자연스럽게 잘생긴 사람을 자주 보았다. 그 얼굴로 귀부인들의 환심을 사려 하는 남자들이 그녀에게 몇몇 접근했으니까.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황제는 그런 남자들도 평범해 보일 정도로 잘생긴 사람이었다.

날카로운 콧날도, 뚜렷한 이목구비도, 선 굵은 눈썹도, 모든 게 한 폭에 그림 같이 생긴 사람이었다.

피부는 티 하나 없이 맑았고, 키는 8척은 확실히 넘어 보였으며, 몸은 용포로 가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탄탄해 보였다.

"진륜의 아이인가."

'말도 안 돼.'

그때 황제의 입이 열리면서 듣기 좋은 저음이 그녀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나르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 저러면 최소한 목소리라도 별로여야 하지 않나? 이건 너무나도 이기적이었다.

인간이 이렇게 많은 것을 한 몸에 지녀도 되는 걸까?

그녀는 황제를 보면서 세상이 참으로 불공평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진륜족에서 온 나르타 쿤룬이라고 하옵니다."

허나 감상은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옳았다.

그 황제가 말을 걸었으니 소개해야 하는 게 도리에도 맞았으니까. 그렇기에 나르타는 예를 갖춰서 황제에게 자신을 소개했다.

황제는 그런 나르타를 덤덤한 눈으로 살펴보더니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없나?"

'...그런 걸 왜 물어보시지?'

상식적으로 합궁이 싫다고 해도 누가 감히 황제 앞에서 거절을 입에 담겠는가!

게다가...

"없습니다."

솔직히 그녀는 싫지 않았다.

상대가 박색이라도... 아니 그러면 조금 고민은 되었겠지만 괜찮을 거라 이미 각오를 한 상태였으니까.

오히려 지금은 기대 이상의 상황이었다.

당연히 그녀로선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

"..."

그런 나르타의 대답에 황제는 어딘지 모르게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곧 옷을 벗었다.

잘 단련된 근육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황제의 몸은 마치 잘 깎은 조각상처럼 아름답고 단단했다.

그걸 본 나르타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고 말았다.

그만큼이나 매력적인 모습이었으니까.

"다음엔 등불을 끄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어."

황제는 어느새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의 옷고름을 풀면서 중얼거렸다.

그 말이 끝이었다.

그녀는 황제가 자신의 옷을 벗기는 걸 느끼면서 살짝 눈을 감았다.

그런 그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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