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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6화 (6/235)

〈 6화 〉 황제가 되고 싶었던 것

* * *

'대체 왜 나를 이곳으로?'

진에게 안내를 받아 이동하면서도 나르타는 의문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 길은 이상했다. 이 길로 가면 도착할 곳은 그녀가 알기로는... 그곳 뿐이었으니까.

'대체 왜?'

의문은 들었지만 그녀는 그 의문을 굳이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진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을 살펴보며 그녀는 자신의 예상이 적중했음을 깨닫고는 더욱 의문에 잠겼다.

연무장으로 자신을 부르다니?

그 의도를 도무지 짐작할 수가 없었으니까.

황제의 뜻이 무엇인지 나르타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휘익!

그때였다.

연무장에 도착한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편한 옷을 입은 채 검을 휘두르고 있는 황제의 모습이었다.

"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고 말았다.

아름다웠다.

그가 휘두르는 검은 검에 문외한이 보더라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아름다운 선을 그리고 있었고, 그때마다 요동치는 근육들은 하나의 예술품처럼 보였다.

나르타는 땀에 젖은 남자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폐하. 비 전하를 모시고 왔습니다."

그때 진이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수고했다."

진이 꾸벅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자 황제는 그제야 훈련을 멈추고는 이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나르타는 황제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움찔하면서 그 시선을 피했다. 괜히 부끄러워서 시선을 맞추기가 두려웠다.

"그대에게 부탁할 건 하나일세."

황제는 덤덤하게 수건으로 얼굴에 땀을 닦고는 입을 열었다.

"짐에게 그대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주술을 사용해주게."

"...네?"

나르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만큼... 황제가 제안한 것은 충격적이었으니까.

주술을 써달라니! 그야말로 나르타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저 그게 무슨..."

나르타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만큼 황제에게 주술을 사용하라는 말은 그녀에게 큰 충격이었다.

주술을 썼다가 그 옥체가 상하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큰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르타는 부디 폐하가 그 부탁을 물러주기를 바랐지만...

"명령이다."

오히려 황제는 부탁이 아닌 명령을 해오면서 그녀가 주술을 사용하기를 강요했다.

"...알겠습니다."

황제의 얼굴을 본 나르타는 체념했다.

전혀 포기할 생각이 없는 얼굴.

물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지만 나르타는 황제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화륵!

그녀의 손에 곧 조그마한 불꽃이 피어나더니 점점 덩치를 불려가기 시작했다.

나르타가 사용할 수 있는 화염의 술 중에서도 최고의 위력을 자랑하는 겁화(?火).

그 위력은 실로 절륜하여 전장에선 재앙이라고 불릴 정도의 위력을 자랑했다.

나르타는 겁화를 피어내면서도 여전히 머뭇거리고 있었다.

이걸 정말 사용해도 되는 걸까?

솔직히 말해서 제대로 맞으면 다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황제 시해라는 중죄를 범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나르타는 다시 한 번 망설이는 얼굴로 물었다.

"저, 정말 씁니다?"

그런 나르타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사람에게 주술을 사용한 적이 없었으니까. 하물며 그 첫 대상이 황제라니!

온몸에 소름이 돋고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폐하! 저건 어무리 그래도 위험..."

"써라."

진이 겁화를 알아보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만류하려 했으나 황제는 덤덤하게 주술을 사용할 것을 지시했다.

그 말을 들은 나르타는 눈을 질끈 감고는 그대로 황제에게 겁화를 날렸다.

화아악!

나르타가 날린 겁화는 빠르게 황제에게 쇄도했다.

그녀의 손에서 점점 커지던 불꽃은 날아가면서도 점점 그 크기를 불리더니 그대로 황제를 집어삼켰다.

타닥. 타닥.

불이 타는 소리가 나고, 황제는 그 겁화 속에서 몸을 움직여보더니 중얼거렸다.

"...이런 느낌이군."

"세상에..."

나르타는 자신이 보고 있는 광경이 믿어지지 않았다.

겁화는 확실히 황제를 먹어 치웠다.

원래라면 상대를 흔적도 남기지 않고 불태우면서 다른 사냥감을 찾아다니는 흉포한 불꽃이거늘... 겁화는 황제를 태우지 못했다.

마치 이것은 태울 수 없다고 말하는 듯이, 황제의 옷조차 태우지 못한 채, 그저 감싸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게 나르타는 믿어지지가 않았다.

겁화다.

화염 계통의 주술에선 최고의 위력을 자랑하는 주술이었고, 나르타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주술이기도 했다.

그런데 황제에겐 먹히지가 않은 것이다. 기가 찰 노릇이었다.

치이익.

"잘 보았다. 괜찮은 위력이구나."

황제는 더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대로 기로 겁화를 눌러서 꺼버렸다.

그 순간 나르타는 왜 겁화가 황제를 태우지 못했는지 알아차리고는 경악했다.

황제의 기에 눌려서 자신의 주술이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걸 알아차렸으니까.

그것은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그녀는 인간의 몸으로 주술을 무시할 정도의 기를 지닐 수 있다는 걸 황제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수고했으니 편히 쉬도록. 그리고 진은 따라와라."

"네."

더는 볼 일이 없다는 듯이 황제는 진을 데리고는 그대로 가 버렸다.

나르타는 홀로 연무장에 남아선 멍하니 황제를 떠올렸다.

'내 주술이 먹히지 않았어.'

여전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나르타는 실전에 나서본 적은 없었지만 자신이 약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가문이 낳은 천재 화염술사.

약관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겁화를 쓸 수 있는 재능은 역사를 따져 봐도 흔치 않다던 아버지의 말대로 그녀는 역사를 따져봐도 손에 꼽히는 화염술사였다.

하지만... 그런 나르타의 자랑거리인 겁화는 황제에게 전혀 먹히지 않았다.

물론 다행스러운 일이다.

설령 황제의 명령이었다고는 하지만 저 겁화가 황제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혔다면 절대 간단하게 넘어가진 않았을 테니까.

물론 저 괴물 같은 황제에게 자신의 주술이 온전히 먹힐 거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나르타는 사용하면서도 아무리 자신의 겁화라도 저 괴물 같은 황제가 상대라면 가벼운 화상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으니까.

그것만으로도 화염술사로서는 비참한 생각이었지만...

현실은 그 비참한 생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가벼운 화상?

화상은커녕 황제의 옷조차도 태우지 못했다.

'저런 강함이라니...'

나르타는 왜 지금의 황제를 모두가 두려워하는 건지, 어째서 피의 숙청 때 황제에게 제대로 된 저항조차 못하고 그토록 강대하던 세력가들이 목을 내놓았는지.

그야말로 뼈저리게 이해했다.

당장 그녀라도 황제에게 저항할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물론 개미라도 인간이 밟으려들면 물어뜯는다.

하지만 그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하늘이라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개미들이 죽으면 개미들을 하늘을 물어뜯으려고 할까?

천만에.

대처법을 찾으려고 하지 저항할 생각은 감히 품지 못한다.

황제가 그런 존재였다.

저항할 의지조차 꺾어버리는 압도적인 존재.

그럴 텐데...

두근.

'이상해.'

나르타는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럴 텐데, 황제는 그토록 두려운 존재일텐데...

왜 자신은 그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이리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걸까?

나르타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기 주술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내는 모습을, 겁화가 마치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사그라들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으니까.

이 감정은 대체 뭐라고 부르는 것이 좋을까?

지금의 나르타는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혼란스러웠다.

­­

"주술은 짐의 기에 눌려서 제대로 위력을 발휘하지 못 하는 듯 하구나."

황제는 덤덤하게 말하면서 앞서 걸었다.

"그런 거 같습니다. 역시 폐하십니다. 감히 주술 따위가 옥체를 상하게 하지 못하는군요. 그야말로 하늘이십니다."

진의 장난스러운 아부에 황제는 그런 그의 머리에 혹을 만들어 주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기를 사용하는 주술이라 그런 것이라면... 마력을 사용하는 마법은 어떨까?"

"폐하... 그거 주술파 놈들 귀에 들어갔다간 분란 거리입니다?"

"그렇겠지. 조심하도록 하마."

진의 충고에 고개를 끄덕여 준 황제는 한참을 걷더니 어딘가에서 멈춰섰다.

그리고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 그때 나와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나?"

황제가 스스로를 짐이 아닌 나라고 칭하자 진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즉 이곳은 이제 사적인 공간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이지."

진이 놀랍게도 황제를 향해 반말을 사용했다.

그야말로 누군가 보았다면 두려움에 혼절할 일이었지만 황제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난 너와 함께 전장을 누비고 싶었다. 진심이야. 믿을 수 있는 동료에게 내 등을 맡기고 전장을 휘젓고 싶었어. 그래 마치 혈혈단신으로 적진으로 돌진해 적장의 목을 따고 돌아왔다는 환운 공처럼. 나 역시 그런 장수가 되고 싶었지."

옛날을 회상하던 황제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황제가 되고 싶었던 건 그런 장수였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강한 장군. 믿을 수 있는 친우와 미친듯이 전장을 내달리며, 설령 그 자리에서 죽더라도 무기를 휘두르는 장군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역사는 설령 지금의 내가 그런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를 장군이 아닌 황제로 기록 하겠지. 나는 역사에 황제로 이름을 남길 거야. 이젠 장군으로 남을 수 없겠지."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자신은... 장군이 될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미 그때의 꿈은 바스러져 사라져 버렸다.

황제는 자신이 되고 싶었던 것이 될 수 없었다.

지금 황제의 손에 남아 있는 건 그 꿈에 대한 미련과, 지금 자리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피를 갈구하는 광기 뿐이었다.

"태자 시절에 전장에 서서 피를 묻힐 땐 만족감이 들었으나, 이 자리에선 손에 피를 묻혀도 더한 갈증만을 느낄 뿐이구나."

역시 이곳은 너무나도 갑갑하다.

황제는 더 넓은 초원에서 말을 몰며 내달리고, 상대를 향해 창을 휘두르고 싶었다.

야생을 뛰놀던 야생마를 잡아서 종마로 쓴다면 아무리 먹이와 호화로운 잠자리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 말이 행복할까?

그렇지 않으리라, 황제 역시 그러했다.

행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겠지. 진. 다음 합궁일은 언제지?"

황제는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해선 안 되는 존재였다.

그의 어깨엔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려 있었고, 황제는 그것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오늘도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

그래 이것은 황제의 의무방어전.

황제는 밤마다 스스로의 의무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의미의 전장에 나서야 했다.

"오늘 밤. 이미 재상이 준비해 두고 있을 거야."

진의 대답에 황제는 씁쓸하게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짐이 이 황실에서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건 단둘이다. 어머니와 너. 그 사실을 잊지 말아다오."

황제의 말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 켠에는 작은 의문이 남았다.

'둘...?'

누군가 한 명이 빠진 거 같은데?

진은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황제의 뒤를 따라 걸었다.

사적인 이야기는 끝났고, 이젠 다시 공적인 이야기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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