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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9화 (9/235)

〈 9화 〉 실패한 합궁, 황제의 자비

* * *

황제는 예전엔 자기 친형제를 믿었었다.

그렇기에 그 자리에서도 당당하게 황제가 되고 싶다고 말해 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의 동생은 그런 황제의 믿음을 배신했고, 그 뒤로 황제는 단 한 번도 자기 친동생을 신뢰한 적이 없었다.

그래, 그를 미친왕으로 봉할 때도 황제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모두가 황제가 그를 신뢰하여 친왕으로 봉했다고 생각했으나 정작 황제는 그를 아낄지언정 신뢰는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아우야. 황제가 되고 싶었느냐?"

"폐, 폐하."

미친왕은 자신을 보면서 느긋한 어조로 말하는 황제를 보며 몸을 떨었다.

그 이유를 모르는 것이 자신이 미친왕인 이유라니? 그리고 황제가 되고 싶었냐고? 그걸 왜 물어보는 거지?

여전히 미친왕은 황제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랬으면... 그때 말했어야지. 그때 이미 네가 황제가 될 기회는 날아가 버렸는데 왜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 게냐. 이 미련한 녀석아."

원망.

황제는 약간의 원망을 담아서 미친왕에게 말하고는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네가 미친왕인 것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미한 존재. 짐에게 너란 녀석은 어느새 이리도 작아졌구나."

미친왕.

그 앞에 붙은 미는 아름다울 미가 아닌 작을 미(?)였다.

작고 보잘것 없는 동생.

미친왕이란 호는 그를 신뢰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황제가 그에게 실망했다는 실망감을 드러내는 칭호였다.

그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 미친왕은 공포로 몸을 떨었다.

그 모습을 황제는 가만히 내려다 보면서 고민하고 있었다.

"작구나. 참으로 작아. 짐을 시해하려한 이 미미한 아우를 짐은 어찌해야 할까?"

"즈,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제가 이 일에 개입되었다는 증거가! 어머니! 제발! 제발! 형님을 멈춰주세요. 형님은 지금 분노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계십니다!"

미친왕은 여전히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이대로 흘러가다간 자신이 험한 꼴을 당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으니까.

황태후에게 애절하게 매달리는 그의 모습에 황태후의 눈동자가 흔들렸으나 그녀는 곧 그런 미친왕의 애원을 외면했다.

"모든 것은 황상의 뜻대로 될 거란다."

물론 황태후는 그런 못난 아들이라도 사랑했지만... 그런 아들이 자기 형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모든 처벌은 황제에게 맡긴 채 침묵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증거... 말이냐."

미친왕의 절규에 황제는 덤덤하게 말하고는 그대로 미친왕의 머리에 손을 올려 두었다.

방금까지 발악하던 미친왕은 황제의 손이 자신에게 닿자 두려움에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었다.

"네! 즈, 증거 말입니다. 제가 그들과 내통한 물질적인 증거가 있다면 순순히 죄를 인정하겠습니다. 허나... 이런 처사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미친왕은 다시 입을 열어선 황제에게 따지고 들었다.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데 친왕인 자신에게 이런 대우는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너는 참으로 미련하구나. 짐이란 증거가 있는데 다른 증거가 필요하더나?"

정말이지 멍청한 말이다.

황제에게 물증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었다.

"...예?"

그 말에 미친왕은 멍청한 얼굴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그게 대체 무슨...

"짐이 그대를 처벌하기로 이미 마음을 먹었는데 다른 증거가 더 필요하냐는 이야기다. 저 여자가 그대와 공모한 사실을 자백했고, 저 남자가 그대와 함께한 사실을 내게 고했다."

'역시...'

저들은 결국 입을 열었나? 하지만 물증이 없을 텐데?

미친왕은 고작 그런 증언으로 황제가 자신을 처벌하진 않을 거라 믿었다.

고작 범죄자의 증언 따위로는 자신을 처벌할 증거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황제에겐 아니었다. 황제에겐 그 자백은 충분한 증거였고, 황제가 그 사실을 인정한 순간 그 이상의 증거는 필요가 없었다.

"그걸 짐이 인정하겠다는 데 누가 이론을 제시하겠는가? 그래, 한 번 들어 보자꾸나."

황제에겐 그 증언이 다른 증거가 필요 없을 정도로 충분한 증거였으나 아우의 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으니 황제는 주변을 싹 둘러보고는 물었다.

"미친왕을 위해서 짐이 인정한 증거를 반박할 자가 있는가?"

"..."

"..."

모두가 침묵했다.

미친왕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이미 황제의 뜻은 완고했다.

"없구나. 그럼 이제 너의 처벌을 결정하겠다."

황제는 덤덤하게 미친왕을 처벌하겠다 선언했다. 그걸 들은 미친왕은 눈을 질끈 감고는 곧 다시 눈을 떴다.

그러고는 발악하듯 외쳤다.

"폐하께선 저를 죽이실 겁니까? 형님! 아우를! 피가 통한 형제를 죽일 셈입니까? 형제입니다! 그것도 같은 어미를 둔! 폐하께서는 천륜을 저버리실 생각입니까? 부디... 선처를..."

미친왕은 형제의 정을 호소하며 황제에게 선처를 요구했다.

그건 정작 형제를 죽이려던 미친왕이 할 말은 아니었지만, 황제는 그런 정신 나간 소리도 그저 가만히 들어 주고 있을 뿐이었다.

"그대는 짐을 죽이려 하였지."

"그, 그것은."

그 부분에선 미친왕도 할 말이 없는지 우물거리기 시작했다. 그 말대로 그 부분에선 미친왕이 오히려 할 말이 없는 게 정상이었으니까.

그걸 본 황제는 재상에게 물었다.

"재상은 이 죄를 어찌 처벌해야 한다고 보나?"

"친왕의 죄는 참으로 무겁고, 천륜을 거슬렀으니 사지를 자르고 늑대에게 던져 주는 것이 법도에 맞습니다."

덜덜...

재상의 차분한 말에 미친왕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떨었다.

황태후는 그 말에 눈을 질끈 감긴 했지만 부정하진 않았다.

그 말대로 법도대로 처리하자면 같은 황족이 황제를 시해하려 했을 땐 사지를 자르고 짐승의 먹이로 주는 것이 옳았으니까.

"허나 짐은 그대에게 이번에도 자비를 베풀 생각이다."

그러나 황제는 이번에도 자신의 동생을 위해서 자비를 베풀 생각이 있었다.

죽이진 않을 것이었다.

그래도 사랑하는 동생인데 약간의 탈선 정도야 이해해줄 수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폐하."

'역시! 형님이 나를 죽일 리 없지 않은가! 별궁에 유폐되는 정도로 끝날 것이다.'

황제의 말에 미친왕은 바로 머리를 박으면서 감사를 표했다.

그렇게 미친왕은 겉으로 감사한 척 머리를 땅에 박으면서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역시 형님은 자신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심한 처벌은 없을 것이다.

끽 해야 별궁에 유폐하는 정도겠지.

미친왕은 그 기간 동안 다시 힘을 길러 다음엔 확실히 성공하겠다는 각오를 굳히고 있었다.

그때였다.

"미친왕은 고개를 들라."

황제의 말에 미친왕은 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런 미친왕을 향해 황제의 손이 뻗어졌다. 미친왕은 황제가 그 손으로 자신을 일으켜줄 거라 생각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푸욱!

"끄아아악!"

그러나 그 손은 미친왕의 생각대로 그를 일으켜 세워주지 않았다.

그대로 얼굴로 향한 황제의 손은 미친왕의 두 눈을 뽑아갔다.

"눈!!!!!! 내 눈!!!!!"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구는 미친왕을 보면서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너한테 무슨 죄가 있겠느냐. 죄가 있다면 감히 하늘을 넘본 이 두 눈이 죄인이고."

꽈악.

황제는 그대로 미친왕의 턱을 잡아 입을 강제로 벌리고는 혀를 잡았다.

그러고는 턱을 쥐고 있던 손을 뒤로 내밀었고, 무사가 다가와선 그런 황제의 손에 단도를 쥐여주었다.

서걱.

황제는 그대로 그 단도로 미친왕의 혀를 잘랐다.

"!!!"

잘린 혀가 바닥을 뒹굴었고, 미친왕은 고통에 더욱 몸부림 쳤다.

"사람들을 현혹한 이 간교한 혀가 죄인이니. 그것들을 거둬가도록 하마."

고통에 여전히 몸부림치고 있는 미친왕을 보면서 황제는 덤덤하게 이야기했다.

이것은 처벌이 아니었다. 황제가 아우에게 내리는 자비였지.

죄인을 아우의 몸에서 떨어지게 했으니 이게 자비가 아니면 무엇이 자비란 말인가!

황제는 미친왕을 위해 자신이 행한 일에 보람을 느꼈다.

"짐의 자비에 미친왕도 몸둘 바를 모르는 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그리고 그 자비를 아우도 이해하고 있는지 감사함에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기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황제가 보기에 참으로 흡족했다.

덜덜...

수장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덜덜 떨었다.

설마... 황제가 그 미친왕에게까지 저런 짓을 할 줄은 생각도 못 했으니까.

"그대들은 아무것도 몰랐다지만 모르는 것도 죄가 된다는 것까진 모르지 않으리라 믿네."

"그, 그렇습니다."

붉은 달의 수장이 덜덜 떨면서 긍정하자 황제는 웃으면서 무사들에게 검을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짐은 자비를 베풀어 그대들에게 자기 충정을 증명할 기회를 주겠네."

황제는 수장들에게 검을 쥐어 줄 걸 지시하고는 그들이 전부 검을 든 걸 확인하자 가벼운 어조로 말했다.

그런 황제의 눈엔 광기가 어려 있었다. 그 눈에 깃든 광기에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겁에 질렸다.

"그 손으로 달막족의 수치들을 베어내도록."

수장들은 몸을 떨었다.

그제야 황제가 자신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푸욱!

수장들은 망설임 없이 검을 찌르고 벴다.

푸른 달의 일족들은 그 검을 피하려고 발버둥 쳤으나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윽고 광장에 피가 강이 되어 흘렀고, 달막족 수장들은 황제처럼 피에 젖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대들의 충정은 잘 알았네. 기쁜 일이군."

"가, 감사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붉은 달의 수장을 보면서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달막족에게 죄를 묻지는 않겠으나 그대들의 일족에서 문제가 발생하였으니 이번 대에서 달막족의 여인은 받지 않겠다. 이론이 있는가?"

즉 황제는 자신의 대에선 달막족과는 혈맹을 맺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달막족은 그 선언을 묵묵히 받아들였다.

'좋군.'

황제는 꽤 마음에 드는 결과를 얻고는 내심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오늘은 즐거운 날이었다.

"미친왕을 치료하고 별궁에 유폐하도록."

미친왕에게 자비는 베풀었으니 이젠 처벌을 해야할 차례였다.

황제는 미친왕이 생각한 대로의 처벌을 명하고는 단도를 돌려주었다.

"네."

황제의 명령에 무사가 기절한 미친왕을 정중하게 안아 들고는 저 멀리 사라졌다.

그걸 본 황제는 덜덜 떨고 있는 궁녀에게 말을 걸었다.

"친왕비. 부족한 아우를 잘 부탁하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궁녀의 대답에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

부족한 아우는 이제 보필할 사람이 필요할 터이니.

황제는 자리를 파하고는 씻기 위해 탕으로 향하면서 뒤를 따라 걷는 진에게 말을 걸었다.

"짐이 너무하다고 생각하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조금 잔인했을 수는 있으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고, 오히려 원래의 처벌보다는 훨씬 온건한 처벌이었다.

그들은 폐하의 자비를 모른다.

이 모든 걸 법도대로 처리했다면 푸른 달 뿐만 아닌 달막족이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며, 미친왕도 죽었을 테니까.

모두가 지금의 황제를 피도 눈물도 없는 피에 미친 사람으로 보지만, 진이 보기에 황제는 생각 이상으로 관대했고, 자비로웠다.

다만 그 자비를 모두가 자비로 여길지가 문제였을 뿐.

"그런가... 짐은 조금 과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거늘."

황제는 눈을 감았다.

방금 그 자리에 있는 자신은 참으로 혐오스러웠다.

그곳엔 사람의 죽음과 고통을 보며 즐기는 미친 광인이 있었다.

이 광증은 점점 커지고, 결국은 황제 자신을 집어삼킬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황제는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 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황제는 광기에 몸을 던지고 있었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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