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 하늘 아래 막을 자가 없더라
* * *
"폐하의 일검을 겪을 수 있다니 영감입니다!"
다음에 들어온 청년은 비쩍 마르고 왜소했지만 눈은 반짝였다.
그 청년을 보는 관중들의 눈에 안타까움이 물들었다.
방금 황제가 벌인 일을 생각하면 저 청년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었으니까.
"영감이 아니라 영광이라 하고 싶었나?"
"아! 죄, 죄송합니다. 긴장해 버려서..."
황제는 그런 청년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쉬고는 덤덤하게 명령했다.
"자세를 잡아라."
"전력으로 막아보겠습니다!"
청년이 필사적으로 검으로 방어 자세를 잡았다.
그걸 본 황제는 검을 휘둘렀다.
서걱.
"...다음."
황제는 청년의 검을 깔끔하게 베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청년은 스스로가 본 것이 제대로 본 게 맞는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잘린 검을 들고는 멍하니 서 있었다.
놀랍게도 청년은 상처 하나 없었다. 그게 구경하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참가비를 쥐어 주고 밖으로 내보내라."
어느새 초롱초롱한 눈을 하고 나갈 생각이 없는 청년을 보면서 황제는 무사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무사는 청년을 그대로 끌고 아래로 내려갔다. 청년이 끌려가자 이번엔 젊은 청년이 호기롭게 먼저 나섰다.
"호산에서 온 금봉이라 합니다!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운이 좋으면 황제가 될지도 모를 기회다.'
금봉은 이곳에서 지급 받은 검을 든 채 속으로 생각했다.
앞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서 놀라긴 했지만... 그다음 청년은 죽이지 않은걸 보니 이런 건 역시 전부 운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받은 검은 상당히 좋은 철로 만든 명품이었다.
이 정도면 쉽게 잘리지는 않을 것이다.
"준비되었습니다!"
황제가 자세를 잡으라고 하기도 전에 준비를 끝낸 금봉이 외치자 황제는 그대로 검을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내리쳤다.
푸아악!
"...어?"
금봉은 검과 함께 제대로 깊게 베인 자기 어깨를 보면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서서히 허물어질 뿐.
"...의원들은 저자를 치료해라."
황제는 검에 묻은 피를 가볍게 털어내면서 대기하고 있던 의원들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의원들은 쓰러진 금봉을 데려가서는 고약을 바르고는 붕대를 감아서 치료했다.
'그런 기준이군요.'
그 모습을 본 나르타는 그제야 황제가 상황에 따라서 다르다고 한 이유를 알 거 같았다.
확실히... 이건 단순히 본인의 흥미로만 벌인 축제는 아닌 거 같았다.
"여전히 무서운 검이네."
오르테가는 황제의 검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그런 그녀의 얼굴엔 약간의 그리움과 아쉬움이 번져있었다.
"내가 사실 검을 포기한 게 저 검을 보고 나서거든."
그렇게 말한 오르테가는 굳은살이 박힌 자기 손을 나르타에게 보여 주면서 말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결국 따라가는 거조차 버겁더라고. 그때 알았어. 저 녀석은 진짜... 괴물이구나."
오르테가는 어린 시절 검에 있어서는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다.
검을 계속 수행하다 보면 검기는 물론이고 나아가면 검강을 사용할 수 있는 영역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천재라면... 약관도 되기 전에 이미 검강을 사용하는 녀석은 대체 뭐지?
자신 같은 게 천재(??)면... 저 재미없는 녀석은 천재(?災)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새... 오르테가는 도저히 검을 잡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녀석은 그런 자신에게 실망한 거 같지만...
'기대의 부응할 자신이 없는걸...'
오르테가는 검을 잡았다고 녀석의 기대에 부응할 수는 없을 거 같았다.
오히려 계속 검을 잡고 있었는데 녀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하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오르테가는 검을 잡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검을 놓고 살았다. 대신 언젠가 녀석이 자신을 한 명의 여인으로 봐주길 바라면서 그쪽에 더 힘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제법... 여성스러워졌다고 생각했는데. 저 녀석은 그런 건 칭찬도 안 해주고... 참으로 야박한 녀석이었다.
오르테가는 그런 녀석이 정말 미웠지만...
"그래도... 진짜 멋진 검이네."
그래도 녀석의 검은 여전히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오르테가는 상대의 방패를 베어 버리며 그 목숨까지 가져가는 깔끔한 검에 사람을 죽이는 기술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역시... 저 녀석은 검을 휘두를 때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여전히 살벌한 검입니다."
크라이스는 황제의 검을 보면서 감탄했다. 옆에 서 있던 할바르는 부러운 눈으로 황제의 검에 반으로 갈라져 피를 뿜어내는 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번 참가자는 아예 무거운 중갑을 입고 대방패까지 들고 나왔지만 황제의 검 앞에는 의미가 없었다.
"나도 저렇게 베이고 싶은..."
"할바르. 네가 그렇게 죽어 나가면 난 누구를 부려 먹으라고."
그 옆자리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던 진은 그런 할바르에게 잔소리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런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될지도...'
진도 조금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무인이라면 누구나... 저 검에 한 번 당해 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만큼 황제의 검은 완벽했다.
진은 몇 번이고 저 자리에 대신 있는 자신을 상상해봤지만 자신이 저 검을 막을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대단한 기의 운용이겠군요. 저는 상상도 가지 않습니다."
크라이스의 말에 할바르는 크게 웃었다.
기의 운용이라니 당치도 않았다.
"크하하! 기의 운용이라니. 그런 거라면 우리가 놀랄 이유도 없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대장."
할바르의 질문에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황제가 기를 이용해 저 두꺼운 갑옷과 방패를 베어내고 있었다면 별로 놀라진 않았을 테니까.
"그렇지. 크라이스 마법부장. 저건 기를 운용하지 않고 하기에 놀라운 겁니다."
크라이스는 그 말에 충격을 먹었다.
저게 그렇다면 기를 운용하지 않은 순수 육체의 힘과 기술로 해낸 기예란 말인가? 놀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기를 운용한다면 금위대장이나 백부장 또한 저런 짓을...'
크라이스는 새삼 자신의 옆에 있는 두 명도 상당한 실력의 검사라는 걸 실감했다.
역시 황제의 검이라 불리는 금위대의 대장과 백부장.
상상 이상의 괴물들이다.
크라이스는 자신이 무인에 대해서 너무나도 무지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제법 그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던 모양이었으니까.
'반사 마법인가.'
이번에 나온 것은 다름 아닌 겔만족에서도 유망하다 평가받는 젊은 마법사. 리치아노 리베르토였다.
리치아노는 뭔가를 중얼거리고는 검을 들고 방어 자세를 취했다. 그걸 본 크라이스는 과연 폐하께서 마법엔 어떻게 대처할지 궁금해져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과연 폐하께선 어떤 대처를 보여주실지...'
크라이스는 곧 자신이 본 광경을 보고는 입을 쩌억 벌리고 말았다.
아니 주변에 모두가 놀라고 있었다.
어느새 황제의 검에... 커다란 변화가 생기고 있었으니까.
'반사 마법이군.'
황제는 한눈에 상대가 마법을 사용했음을 알아차렸다.
'봐줄 필요는 없겠군.'
상대가 마법을 쓴다면 봐줄 이유가 없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며 검에 기를 실었다.
"오오 검기!"
관중 중에 한 명이 황제의 검에 희미하게 서린 기를 보면서 감탄했다.
검에 검기를 피워낼 수 있는 검사는 대륙에서도 5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중들은 자신이 검기를 보았다는 사실에 감탄을 내뱉고 있었지만...
황제가 보여 준 것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는 걸 느낀 마법사가 식은 땀을 흘리고 있을 때, 황제의 검에 서렸던 기는 점점 형체를 갖춰가더니 단단하게 검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검강!"
앞에서 보고 있던 무사가 감탄사를 내뱉었다. 관중들은 자신이 이 대륙에서도 고작 5명 밖에 쓰지 못하는 검강을 보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 이미 마법이나 주술도 의미가 없었다.
황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마법사를 향해 검을 휘둘렀고, 마법사는 마법과 함께 베여선 그대로 바닥을 뒹굴었다.
"시체를 치워라."
황제는 순식간에 검강을 흩어 버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감탄했다.
저걸 저렇게 가볍게 흩어버린다는 것은 저 엄청난 검강조차도 황제에게 전력은 아니란 이야기였으니까.
"다음."
벌써 시각은 저녁을 향해 흘러가지만... 황제는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고, 참가자들은 황제의 그 말에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나서질 못했다.
"...다음은 없는가?"
한참 다음 참가자를 기다리던 황제는 앞으로 나서지 않는 참가자들을 훑어보더니 검을 내려놓았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어차피 시각은 충분하니까.
황제는 오늘은 이걸로 만족하기로 하고는 그대로 투기장을 나섰다.
참가자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기권할 자는 기권을 위해서, 방법을 강구할 자는 방법을 새로 강구하기 위해 급하게 투기장을 벗어났다.
"대단하십니다."
어느새 다가온 재상이 수건으로 피를 닦아내면서 말하자 황제는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중이떠중이들 뿐. 내일부터는 진짜 자신이 있는자들만 나오겠지."
그리고 내일부터는 다 죽여야 될지도 모른다.
황제는 그런 생각하면서 차가운 눈으로 시체를 쌓아둔 곳을 쳐다보았다.
"역심을 품은 이들이 이리도 많아. 반발은 있던가?"
대충 알고는 있었다.
황제의 자리를 원하는 역도들이 아직도 제국에 존재한다는 것을.
황제는 이 자리가 대체 뭐기에 이리도 많은 사람들 목숨을 거는 가 싶었지만, 정작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도 이 자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건 인정해야 했다.
"없습니다. 아니, 있어도 어느 누가 폐하께 대놓고 반발을 하겠습니까?"
황제는 그런 재상의 대답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축제는 반란의 씨앗을 제거하는 의미도 약간은 있었다.
그렇기에 황제는 일단 귀족 참가자는 대부분 죽였다.
그런 과한 처사에 희생자가 나온 귀족 가문 중에서 슬슬 반발이 나오면 그쪽을 정리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쉬운 일이었다.
이건 뒤에서 역심을 품은 이들을 자극하는 의도도 있었는데 말이다.
"내일은 좀 더 날 즐겁게 해주면 좋겠군."
황제는 그렇게 말하면서 황궁으로 돌아갔다.
일단은... 이 온몸에 들러붙은 피를 씻어낼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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