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하늘 아래 막을 자가 없더라
* * *
"쿠류 지방에서 온 하즈미 소야라고 하오."
다음 날.
황제는 축제의 첫 참가자를 보면서 그가 꺼낸 도를 쳐다보았다.
'그런가.'
이 녀석은 황위에 관심이 없다.
녀석에게 있는 것은 강자의 검을 견식해 보고 싶다는 무인 특유의 감정 뿐.
당장 느껴지는 기운도 그리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면 이건 검만 자르고.'
황제가 죽일 놈, 무기만 벨 놈, 상처까지 입힐 놈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했다.
그는 인간의 기운을 통해 대충 상대가 자신에게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를 들면 황제가 되고 싶어서 탐욕을 부리는 녀석에게선 미친왕에게 느꼈던 것과 비슷한 느낌의 기운이 느껴졌다. 애초에 미친왕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도 그걸 통해서 알아낸 거니까.
눈앞에 남자는 할바르와 비슷한 느낌의 기운이. 요행을 바라는 녀석에겐 그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기운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런 점에서 황제도 모르는 느낌의 기운을 뿜어내는 사람도 있긴 했다.
처음엔 한 명이었는데... 그 녀석이 오고 나서 둘이 되었다.
황제는 솔직히 그 기운도 어떤 감정인지 알아보고 싶긴 했지만...
'일단은 지금 일에 집중해야겠지.'
지금은 사람을 도살하는 일에 집중해야했다.
하즈미의 검에 어린 검기를 보면서 황제는 자기 검에 검기를 실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상대의 검을 베어냈다.
"...더 필요한가?"
"...졌습니다. 역시 굉장하시군요."
하즈미는 잘린 자기 검을 보고는 바로 항복을 선언했다.
'과연... 하늘 아래 당해낼 자가 없구나.'
역시 예상대로였다.
황제는 이미 이 세상에서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존재였다.
그렇기에 하즈미는 황제가 조금 불쌍했다.
적수가 없는 강자라는 것은... 그야말로 고독하다는 의미였으니까.
그는 황제가 느낄 고독감이 얼마나 클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거 같았다.
황제는 그 뒤로도 계속해서 자기 기준대로 사람을 베어갔다.
하즈미 이후로는 살아서 투기장을 벗어난 자가 없을 정도였다.
피가 강이 되어 흐르고, 기권자들이 속출했다.
황제는 자신이 도살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늘이 정한 황제에게 바칠 제물을 도살하는 도살자.
그야말로 천황제에 잘 어울리는 역할이었다. 그런데도 황제는 전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이렇게 피로 몸을 적셨는데도...'
이상한 일이었다.
피로 몸을 칠갑하면 이 갈증이 사라질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구나.'
자신이 진정 원한 것은 남들이 흘리는 피 따위가 아니었구나.
단지... 그것은 대용품에 지나지 않을 뿐. 정작 자신이 정말 원한 것은...
'대적자였단 말인가...'
자신에게 대적할 수 있는 누군가였다는 걸 황제는 알아버렸다.
황제는 그제야 왜 자신의 갈증이 해소되지 않는 것인지 깨닫고는 절망했다.
이 빌어먹을 축제를 개최하면서, 아니 어쩌면 아주 예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만 부정하고 있었던 것을, 이번에 확실하게 깨달아버리고 말았으니까.
이젠 자신에게 대적할 자는...
적어도 이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당장 이 일검을 막을 자도 존재하지 않는데 대체 목숨을 걸 맞수가 어디에 있을까?
황제는 그 사실에 절망했다.
어느새 도전자도 더 이상 올라오지 않았다.
그때였다.
"이건... 사기야! 빌어먹을! 애초에 그 검부터 공정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한 덩치 큰 남자가 욕설을 내뱉으며 외쳤다.
황제는 그제야 그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천박하기 그지없는 얼굴, 그리고 무뢰배나 가질법한 몸을 가진 남자.
그 얼굴엔 천박한 욕망이 그대로 묻어나왔고, 그 입은 저속하기 그지없었다.
신경 쓸 가치도 없는 쓰레기.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한눈에 봐도 불쾌했고, 혐오스러웠다.
"황제가 정당하다면 무기를 바꿔라! 그리고 우리한테도 공격할 기회를 달라고!"
"...공격할 기회라."
그러나 녀석의 발악하는 듯한 외침에 황제는 들을 필요도 없는 무뢰배의 의견에도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공격할 기회! 애초에 우리한테 너무 불리한 조건 아닌가! 공격할 기회를 준다면 다를 거다!"
"...다르단 말이지. 좋다."
황제는 순순히 녀석에게 자기 철검을 던져 주었다.
남자는 그 행동에 놀랐지만, 곧 웃으면서 그 검을 주워들었다.
그걸 본 황제는 실망했다.
검조차 제대로 못 보는 녀석이 검의 품질을 탓하는 게 우스웠기 때문이었다.
"무기를 들어라! 내가 먼저 공격할 거니까!"
이젠 막 나가기로 했는지 건방지게 반말하는 모습에 대기하고 있던 무사들이 오히려 분통을 터트렸지만 황제는 덤덤했다.
단지...
"무기 따위 들 필요도 없으니 언제든 공격하거라. 그래, 그대에게 딱 맞는 조건을 걸어 주마."
황제는 당당히 서선 그를 쳐다 보면서 말했다.
"그 검이 짐의 몸에 조그마한 상흔이라도 남기면 너 같은 버러지라도 황제로 만들어 주마. 어떤가? 나쁘지 않은 조건이 아닌가."
사아악...!
그 순간 관중들은 알 수 없는 공포에 침묵했다.
남자만이 신난 얼굴로 장미빛 미래를 그릴 뿐이었다.
"명색이 황제인 자가 두 말하지 않겠지. 좋다! 그렇다면 난 네놈을 죽이고, 황제가 될 거다. 저기 저건 황태후인가? 과연... 엄청난 미인이구나. 침대에서 깔리는 맛이 있겠어. 크하하!"
"..."
황제는 그 엄청난 모독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다.
오히려 재상이 길길이 날뛰어서 그 모욕을 들은 당사자인 황태후가 진정시켜야 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도 모르는 남자는 신이 나서는 검을 들고서 있는 힘껏 휘둘렀다.
빠각!
그것은...
살을 베어내는 소리가 아니었다.
피도 튀지 않았다.
단지...
"끄아아악!"
부러진 검과 함께 부러진 팔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지르는 추한 남자가 이 투기장에 생겨났을 뿐.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다시금 경악했다.
황제는 아무런 방어도 하지 않았다.
달려들어서 검을 내려치는 남자를 상대로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되려 황제를 내려친 남자의 검과 팔이 부러졌다.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은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설마 전설에나 나오는 금강불괴라도 된단 말인가?
"이제 짐의 차례구나."
"자, 잠깐! 난 방어도 할 수 없..."
황제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남자는 공포에 질려선 도망치기 위해 버둥거렸다.
하지만 공포로 풀린 그의 다리는 말을 듣지가 않았다. 그토록 당당하고 위세넘치던 모습은 사라지고, 비참하고 공포에 질린 겁쟁이만이 존재했다.
"잡철로 만든 싸구려 검이 그렇게도 좋아 보였느냐. 그래, 써 보니 어떠한가? 좋던가?"
황제는 그런 남자를 조소했다.
애초에 어미의 모욕을 듣고도 화가 나지 않는다면 정상이 아닐 테니. 황제는 지금 인생에서 가장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짐은 말이다. 그대들이 참으로 미미한 존재라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느니라. 짐의 검이 그리 좋아 보이더냐?"
황제는 겁에 질린 남자의 얼굴에 부러진 검을 보여 주며 말했다.
그러고는 그 검을 관중들에게 던져 주며 말했다.
"부수거라."
"네?"
가장 앞자리에 있던 관중은 이미 부러진 검을 받아서 들고는 힘을 주었다.
그러자 그 검은 그대로 부러지고 말았다. 관중들은 그 광경에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황제가... 지금까지 이런 말도 안 되는 쓰레기 검으로 사람들을 죽여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미미한 그대들을 위해 짐이 자비를 좀 베풀었느니라. 짐이 친서까지 써가면서 공방에 무른 검을 만들어달라 사정했지. 그런데도 불리하다? 그럴 수 있지. 개미에겐 그 어떤 것도 불리하지 않겠느냐."
허나...
"허나 그렇게 주장해 놓고, 정작 유리한 부분을 스스로 지워 버리려드니 어찌 우습지 않겠느냐. 아해야. 덩치만 컸지 너무나도 어리고 약하구나."
"폐, 폐하... 소, 소인이 너무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자비를..."
남자는 비참할 정도로 빌었다. 그걸 본 황제는 덤덤하게 손을 뒤로 내밀었다.
"...무사들은 검을 가져오라."
"네."
황제의 말에 무사들이 자신이 차고 있던 검을 가져다 바치자 황제는 그 검을 만져 보며 말했다.
"이건 말이지. 짐이 짐의 무사들을 위해 준비한 명검이다. 이게 그대의 마음에 차지 않겠나? 자, 들게."
황제는 억지로 남자의 부러지지 않은 팔이 있는 손에 그 검을 정성스레 쥐여주었다.
그러고는 말했다.
"다시 공격해 보게. 그대는 어리광이 심한듯하니 짐이 그 어리광을 좀 받아주도록 하마. 설육 공께서도 말하지 않았나. 황제는 백성을 자식처럼 여기라고."
황제는 두려움에 덜덜 떨다 못해 오줌까지 싸지른 남자를 보면서도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짐이 그대를 자식처럼 여겨보도록 하겠네. 기회를 더 주겠다는 말이야. 이번에 제대로 휘두르도록."
"폐, 폐하... 부디..."
이젠 더 이상 공격할 의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지 남자가 덜덜 떨면서 빌었다.
그걸 본 황제는 크게 한탄하며 그대로 남자의 머리를 잡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강제로 일으켰다.
"기회는 여러 번 주겠네. 계속해서. 계속해서 도전해 보게나. 그대는 할 수 있어! 짐이 그대를 응원해주겠네."
"폐, 폐하! 부디 살려주시옵소서! 제, 제발."
이미 마음이 꺾인 그는 황제를 공격한다는 발상은 할 수 없는지 그저 목숨만을 구걸했다. 그게 황제는 불쾌한지 조금 인상이 구겨졌다.
"...정말이지 말귀를 못 알아먹는 자식이구나."
서걱!
황제는 가볍게 남자의 부러진 팔을 잘라버렸다.
순식간에 생겨난 기의 검에 관중들은 경악해 버렸다.
저건 이미 검강을 뛰어넘는 그 무언가의 경지였으니까. 아무리 무에 무지한 사람이라도 지금 황제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끕!"
남자는 팔이 잘린 고통에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황제에 대한 공포가 그 비명을 막아 냈다.
"체벌이 더 필요하느냐? 검을 들고 얼른 짐에게 휘두르래도?"
황제가 강하게 명령하자 남자는 덜덜 떨면서 검을 살짝 휘둘렀다.
사실상 휘두른 것도 아니요, 그저 검을 가져다 댄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그걸 본 황제는 이번엔 다리를 잘랐다.
"도약하지 않을 거면 뭐 하러 그걸 달고 있지? 이 아비가 특별히 잘라주마."
"부디 자비를..."
엄청난 고통이 남자를 덮쳤으나 그런데도 그는 황제에 대한 공포에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걸 본 황제는 한숨을 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비라... 그래, 두려워하는 아해를 위해 짐이 자비를 베풀어 주마."
서걱!
황제의 기로 만들어진 검이 그대로 남자의 목을 깔끔하게 날렸다.
그의 피로 온몸을 덮은 황제는 덤덤하게 말했다.
"짐의 자비 덕분에 이제 그 어떤 고통도, 두려움도 느끼지 못할 테니 참으로 다행이구나."
"..."
정적.
다시 한번 이 투기장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 있던 참가자도 모두 기권해 버리고 말았다.
방금 그 잔인한 인간 해체극에서 모두가 알아버렸으니까.
황제는 처음부터 진심이 아니었고, 그런 진심이 아닌 황제의 일검조차 막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한 지금.
이 하늘 아래에서...
이 사람을 막을 자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