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 무인은 검으로 말한다
* * *
"오늘 밤 바로... 말인가요?"
여화는 황제가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놀랐고, 심지어 황제가 오늘 밤 바로 결투하자고 말했다는 것에 한 번 더 놀랐다.
어쩌면...
'정말 소문대로의 남자일까?'
그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전부 사실일까? 여화는 솔직히 조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황제가 형편없는 남자는 아닌 거 같았으니까.
"그럼 준비할게요."
흔쾌히 대답하는 여화를 보면서 명호는 한숨을 쉬었다.
'어찌될련지...'
확실히 여화는 강하다. 하지만...
'이길 수는 없겠지.'
이 아이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어차피 황제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명호는 황제를 보는 순간 확신했다.
오늘 황제를 보았을 때 그의 경지를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으니. 그 강함은 분명 이미 상상을 초월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화야. 넌 강하다."
"?"
여화는 명호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으니까.
"허나 그 위엔 하늘이 있는 법이다. 부디 네가 이번 경험으로 그 오만함을 벗어 버렸으면 좋겠구나."
'뭐야... 저 말은...'
"그건 제가 질 거란 말인가요?"
여화의 눈이 싸늘해졌다.
그녀는 아직 황제와는 겨뤄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패배를 점치는 아버지의 모습이 서운하기도 했다.
"당연한 진실이다. 네가 둘로 늘어난다고 해도 폐하를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명호는 확신했다.
그녀는 황제를 이길 수 없다.
그 확신의 찬 말에 여화는 반감을 느끼면서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밤. 저와 폐하의 대결을 보러 와주세요. 제가, 그 의견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줄 테니까요."
여화는 열의를 다지면서 자기 애검을 닦았다.
'절대로 안 져.'
황제가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렇다고 여화는 황제의 품에 안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는 이미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절대로 질 생각이 없다.
그때 봤던 그 검, 잊을 수 없는 그 검을 펼치던 소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여화는 각오를 다지면서, 오늘 있을 결투를 준비했다.
그때는 아직 여화가 지학의 나이에도 이르지 않았던 때의 일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황궁을 방문한 그녀는 황궁의 거대함에 압도 되었고, 황제의 친위대인 금위대의 무사들이 휘두르는 검에 매료되었다.
특히 차기 대장군이 예정되어 있다는 김유선은 금위대장이라는 직위에 맞게 확실히 그 말이 아깝지 않은 대단한 무인이었다.
그의 검을 보고 있자면, 이렇게 사람의 검이 무거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뛰어난 재능이구나. 역시 그 환운 공의 후예란 말이 아깝지 않은 재능이야. 성장하면 군부로 오거라."
자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군부로 와달라 말하던 그의 말은 여화에게 큰 기쁨이었다.
"네!"
그녀의 꿈은... 유선 장군과 같은 장군이 되어서, 먼 훗날 환운 공이 그러했듯 이 제국의 대장군이 되는 것이었으니까.
"모처럼 왔으니 연무장에서 검을 단련하고 가는 것은 어떠니? 좋은 목검이 들어왔단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유선이 제안하자 여화는 눈을 반짝였다.
"하고 싶어요!"
여화는 유선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난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쪽에 있으니 마음껏 즐기고 가거라. 어른들은 할 이야기가 있으니 말이다."
그 말에 여화는 아버지를 쳐다보았고, 아버지는 그런 여화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버지의 허락까지 떨어지자 여화는 잔뜩 신이 나서는 발걸음을 서둘렸다.
'여기구나? 우와... 굉장하다.'
엄청나게 넓은 연무장에는 수련용 허수아비가 잔뜩 있었고, 목검도 하나, 하나 상등품이었으며, 신체 단련에 쓸 철물도 많았다.
여화가 눈을 반짝이면서 목검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검을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곳으로 홀린 듯이 걸어간 그녀는 검을 휘두르는 소년을 발견하고는 작게 감탄했다.
여자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로 예쁘장한 소년이 목검을 휘두르면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후우."
얼마나 휘둘렀을까?
소년이 거친 숨을 내쉬고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여화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단련... 하는 거야?"
"뭐야, 관객이 있었던 건가? 조금 부끄럽네."
그제야 여화를 발견한 소년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그 수줍은 얼굴을 여화는 홀린 듯이 쳐다보았다.
"이기고 싶은 녀석이 있거든."
그렇게 말하는 소년의 눈은 반짝였고, 여화는 그 말에 궁금해졌다.
잠깐 봤는데도 소년이 휘두르는 검은 초보자의 검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화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검이었다. 그렇기에 궁금해졌다.
그런 소년이 목표로 하는 아이는 대체 누구일지 말이다.
"저 녀석이야."
그런 소년이 가리킨 쪽에 있는 것은 검보단 붓이 어울릴 거 같은 아이. 너무나도 약해보여서, 전혀 여화의 눈엔 차지도 않는 남자 아이였다.
저런 녀석이 목표라고? 여화는 그런 생각하면서 질문했다.
"약해 보이는데."
"그렇지? 그런데 엄청 강한 녀석이야."
소년은 그렇게 말하고는 수줍게 웃었다.
그 미소에 여화는 자신도 모르게 목검을 들었다.
"나, 나랑 대련해!"
이상한 일이다.
여화는 이 소년과 결판을 내고 싶었다.
정확히는... 저 여리여리한 아이에게 간 관심을 빼앗고 싶었다.
내가 저 녀석보다 더 굉장하다는 걸.
여화는 이 소년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좋아."
그 소년은 흔쾌히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는 검을 들었다.
깔끔한 자세가 여화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선공은 양보할게."
"..."
자신이 더 강하다는 듯이 말하는 소년의 모습에 여화는 화난 얼굴로 달려들었다.
휘청!
그걸 본 소년은 깔끔하게 그녀의 검을 흘리면서 몸의 균형을 무너트렸다.
그러고는 균형이 무너진 여화의 목에 검을 두면서 웃었다.
"끝. 너무 흥분한 거 아니야?"
그야말로 그녀의 힘을 역이용해 깔끔하게 승리를 가져간 소년을 보면서 여화는 이를 악물었다.
"다, 다시해!"
여화는 벌떡 일어나서 다시 대련하자고 졸라댔으나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귀찮아질 거 같으니까. 싫어."
그렇게 말한 소년은 웃으면서 말했다.
"나중에. 좀 더 강해지면 그때 상대해 줄게."
그 미소는 정말 햇살처럼 따스해서, 여화는 한참 멍하니 그 미소를 올려다보았다.
그 말에, 그 미소에, 여화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면서 말했다.
"나, 나 강해질 거야. 엄청 강해질 거니까."
여화는 소년에게 선언했다.
더 강해질 것을, 그리고...
"그때 다시 붙어. 그리고 진 사람이 소원을 들어 주는 거야."
그때는 반드시 그를 이길 것을, 소녀는 이것이 자신의 첫사랑임을 그때는 알지 못한 채.
그를 향해 제안했다.
가슴에 작은 소망을 품은, 그녀의 제안에 눈을 크게 뜬 소년은 곧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기대할게. "
그 미소가 아직도 여화의 기억에 남았다. 그 말이 아직도 뇌리에 선명했다.
그렇기에... 여화는 황제의 품에 안길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아직 그 소년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그 햇볕처럼 밝은 미소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여화는 황궁에 도착하기 무섭게 상념에서 깨어났다.
'여전하네.'
오랜만에 본 황궁은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녀의 기억과 달라진 건 사람 뿐.
금위대장이던 유선 장군은 이제 대장군이 되었다.
그때의 금위대는 황제의 호위부대 느낌이 강했는데... 지금은 황제의 검이자 힘을 상징하는 정예부대의 느낌이었다.
실제로 금위대는 10만의 야만족 전사들과의 전투에서 압승하며 대륙 최고의 전투 부대임을 증명해 버렸으니까.
'황제가 아주 무능한 자일 수는 없겠지.'
아무리 금위대가 강군이라 해도 그런 업적을 실제로 세운 이상 그들을 이끌고 친정한 황제가 아주 무능할 수는 없다.
그 부분은 그녀도 인정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방심은 하지 않았다.
"드디어 왔군."
그때 연무장에 도착하기 무섭게 귀를 간지럽게 만드는 듣기 좋은 저음이 들려왔다.
여화는 그 목소리에 앞을 보았다.
환하게 뜬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잘 단련된 육체, 보는 순간 감탄이 나오는 수려한 외모. 그 소년을 마음에 품지 않았다면, 여화도 흔들렸을지도 모르는 미색을 지닌 남자가 달을 보면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 잡을 미색이다.
하지만... 여화의 눈을 사로잡은 건 전혀 다른 부분이었다.
'엄청난 기운...'
뭐지? 저게 인간이 품을 수 있는 기인가?
여화는 황제에게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에 자기 감각을 부정하고 싶은 감정에 사로잡히며 반사적으로 검을 뽑았다.
"윽!"
"...나쁘진 않구나."
그 모습을 보면서 남자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여화는 대적할 수 없는 절대자의 풍모를 엿보였다.
'방금 안 뽑았으면 죽었어...!'
여화는 자신이 뽑은 검에 남은 상흔을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검에 남은 상흔이 방금 자신이 검을 뽑지 않았으면 그대로 목이 잘렸을 거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 사실은 여화에게 충격이었다.
황제는... 정말 기운만으로 사람을 찢어버릴 수 있는 괴물이었으니까.
"선공은 양보하마."
황제는 검을 뽑으며 말했고, 여화는 검을 든 채 잠시 숨을 골랐다.
공기가 무겁다.
그녀를 압박하는 강한 기운에 숨을 쉬기조차 버거웠다.
'베기? 안 돼. 찌르기? 죽는다.'
여화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어떤 방식으로 공격해도 반격 당하는 모습 밖에 그려지지 않는다.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공포가... 그녀를 서서히 잠식해 들어갔다.
"후공을 선호하면 짐이 먼저 갈까?"
"!"
그때 황제의 몸이 움직이자 여화는 놀란 얼굴로 검을 들어 황제의 검을 막았다.
카앙!
"좋군."
어느새 그녀를 향해 검을 내려치고 있던 황제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그대로 그녀의 다리를 걷어차 균형을 무너트렸다.
휘익!
"!"
황제의 검이 균형이 무너져 쓰러지는 그녀를 향해 내려쳐지자 여화는 바로 몸을 그냥 굴려서 그 검을 피했다.
그녀의 깔끔하던 옷이 바로 흙먼지로 더러워졌으나 그녀는 간담을 쓸어내리기 바빴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저 검에 그대로 자신이 죽었을 거라는 건 명확했으니까.
"반응이 빠르군."
황제는 그런 그녀의 대처에 감탄했다.
다리를 부술 생각이었는데 그 와중에 기를 둘러서 방어해냈으니까.
그 후에 대처도 훌륭했다. 만약 그대로 넘어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대로 반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좋구나."
황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과연... 그런 말을 할 정도의 실력은 있다는 걸까?
"좀 더. 좀 더 짐을 즐겁게 해주거라."
그렇게 말하는 황제의 검을 검강이 뒤덮었다.
이 여자에게 좀 더 기대해도 되겠지? 그런 기대감을 담은 눈으로 황제는 여화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카앙!
여화도 검강을 보고는 자기 검에 검강을 씌웠다.
그러고는 황제의 검을 막았다.
부들부들!
검을 막은 그녀의 팔이 위태롭게 떨렸다.
그걸 본 황제는 가볍게 검을 들지 않은 손을 내리그었다.
푸아악!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피가 튀었다.
그 광경에 걱정스러운 얼굴로 결투를 지켜보고 있던 환명호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얼마나 깊게 베였는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나왔고, 여화의 어깨는 덜렁거렸다.
"이 정도로는 안 죽는건가? 좋구나."
그러나 황제는 그녀의 상처 따위엔 흥미가 없었다.
문제는 그녀가 죽지 않았다는 것.
하긴 고작 이런걸로 죽어선 재미가 없지.
그렇다면 더 할 수 있겠지?
황제는 여화를 보면서 말했다.
"죽지 않았다면 더 할 수 있겠지? 싸워라. 그대가 정녕 진정한 무인이라면 검을 든 채 죽어라."
그것은 그야말로 잔인한 폭언.
황제의 말에 이 결투를 지켜보고 있던 명호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는 더 이상 이 결투를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볼 땐 이건 이미 결투가 아니었다.
"하악...!"
여화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무엇으로 벤 거지? 분명 황제가 휘두른 손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손을 가볍게 휘두르자 큼직한 검상이 생겨났다. 여화는 그 방법을 아직 이해하진 못했다.
하지만...
'지고 싶지 않아.'
출혈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흐려진 의식으로 이미 정신이 몽롱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절대 안 져...!'
지고 싶지 않았으니까. 자신은 아직 살아있었으니까!
황제의 말대로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아직 검을 쥘 수 있는 한!
죽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질 수 없는 이유가... 나한테 있으니까!'
여화는 흐릿해지는 의식을 강하게 부여잡았다.
아무리 상대가 강해도, 그 격차가 심해도, 그녀는 질 수 없었다.
그녀에게 질 수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그 소년을 보기 전까지.
그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기 전까지.
여화는 황제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아니 질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이 황제보다 강해졌을까?'
그때의 그 아이는 얼마나 강해졌을까? 지금 눈앞에 있는 황제보다... 강해졌을까?
그렇다면... 더욱 질 수 없다. 어차피 그녀의 목적은 그 소년을 이기는 것이었으니까.
황제도 이기지 못한다면, 당연히 그 아이도 이길 수 없다고... 적어도 여화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보고 싶다. 볼 수 있을까?'
여화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그 소년을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했다.
햇볕처럼 반짝이는 금발이 인상적이던 그 소년을. 그 소년의 아름다운 미소를.
그녀는 지금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훌륭하다."
각오가 담긴 그녀의 얼굴을 보며 황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검을 막은 걸로도 모자라 기검을 통한 공격에도 살아남았다.
황제는 그녀를 봐주지 않았다.
방금 공격으로 죽으면 이 여자의 운명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이 여자는 살아남았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직도 싸우려고 하고 있었다.
감탄이 나왔다.
비록 실력은 부족하지만, 그 마음가짐이 황제의 마음을 흡족하게 했다.
"더 할 말은 없나?"
척.
여화는 그 질문에 대답 대신 검을 들었고, 그 모습이 황제를 더욱 만족스럽게 했다.
"그래, 무인은 검으로 말하는 법이지. 좋다."
황제는 그대로 검을 내려쳤고, 여화는 그 검을 보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마지막 기회야!'
하나, 둘, 셋!
타이밍을 재고 있던 그녀가 몸을 움직였다.
그대로 옆으로 몸을 비틀어 황제의 검을 피해낸 그녀는 재빠르게 황제의 뒤로 이동했다.
그러고는 빠르게 다시 자세를 잡고는 검을 횡으로 그었다. 그 검은 정확히 황제의 목을 향해 쇄도하기 시작했다.
'절대 못 막아...!'
그야말로 완벽한 공격 기회! 여화는 황제가 이 공격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완전히 사각에서 들어오는 일검이다.
황제가 금강불괴가 아니고서야 저 공격에 목이 날아가는 건 필연이었다.
그녀는 황제가 죽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은 생각은 오직... 승리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쨍그랑!
"...아?"
그러나 황제의 몸에 닿는 순간 검강이 흩어지고, 그녀가 아끼던 검은 그대로 부러져 버렸다.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제대로 목을 향해 검을 그었는데... 어째서 이런...
우득!
그리고 그 순간 황제의 주먹이 그녀의 복부에 그대로 박혔다.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이 그대로 공중에 떠올랐고, 그녀는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털썩.
"나쁘지 않았다."
황제는 쓰러진 그녀를 보며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기 목을 만지작거렸다.
'설마 이 몸에 상흔을 남길 줄이야...'
목에 남은 상처는 분명히 이 여자가 검으로 남긴 것, 황제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상처를 입었던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보았다.
이젠 기억도 나지 않았다.
"데려가서 치료해라. 합궁은..."
황제는 여화를 내려다보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명호는 그 말에 바로 딸을 안아들었다.
"이번 결과에 이의가 있다면 얼마든지 받아주겠다고 전하거라. 합궁 일자는 그 아이가 깨어나고 나면 다시 이야기해보도록 하지."
무인은 검으로 말하는 법.
황제는 그렇기에 그녀가 이번 결과에 승복하지 못한다면, 다시 한번 검으로 말해 줄 생각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