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31화 (31/235)

〈 31화 〉 황해(??)

* * *

"이동이 불가하다?"

황제는 크라이스의 대답에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그 모습에 크라이스가 움찔하긴 했지만 그는 솔직한 답변을 늘어놓았다.

"마법으로 이동할 경우엔 당분간 저희 마법사들의 전투가 불가능합니다. 그쪽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는데 무리한 이동은..."

그런 크라이스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황제는 고민했다.

그곳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법 부대가 전투 불능이 되는 건 위험했다. 그 정도의 수를 지키면서 싸우라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마법 부대의 마법없이 말을 타고 이동할 수도 없는 것이 그러면 너무 늦었다.

스윽.

"후후, 도움이 필요한 거 같구나."

그때였다.

정말이지 자연스럽게 황제의 어깨에 기대면서 마리아가 말을 걸어왔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곰방대에선 연기 대신 알 수 없는 방울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이동이 가능한가?"

그녀는 위대한 현자.

설령 그녀가 이동으로 전투 불능이 되더라도 한 명을 지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황제는 그녀에게 기대를 걸었고, 그녀는 그 기대에 부응했다.

"어렵진 않은 일이구나. 1500명 남짓한 장정들을 옮기는 것은 본녀에겐 간단한 일이니라."

그 대답에 황제는 그녀에게 부탁했다.

"그럼 이동을 부탁하지."

"흐음, 그런데 말이다. 본녀라고 해도 그만한 거리를 그만한 인원을 이동시키면 무력해지는 게 사실이니라. 그렇다면 본녀를 지켜 줄 수 있겠느냐?"

그 정도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지켜주마. 그 어떤 위협에서도. 그러니까 부탁한다."

황제의 말에 마리아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심을 움직일 줄 아는 아해로구나. 자각이 없다면 무서운 아해로다."

마리아는 작게 중얼거렸으나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황제는 그 말은 듣지 못한 채 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부디 별일은 없어야 할 터인데...'

황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금위대 전원을 소집하는 황제의 움직임은 조금 급해 보였다.

­­

재앙이 있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일까?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힐 거 같은 풍경에 이제 관서 지역에서도 유일하게 도시로서 기능을 하고 있는 함서의 성을 지키고 있던 병사는 이쪽으로 점점 다가오고 있는 황색 물결을 보며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황충.

고작해야 메뚜기떼가 아니던가.

그런 생각하던 때가 이 병사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재앙을 보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미친 놈을 없을 게 분명했고, 유감스럽게도 병사 역시 그런 미친 놈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병사는 공포에 질린 채 점점 다가오는 그들을 보고 있었다.

'중앙군은... 아니야. 중앙군으로는 답이 없어.'

수도에서 내려왔다던 조사관 나리가 순식간에 메뚜기 밥이 되던 모습을 상상하며 병사는 자기 죽음을 직감했다. 중앙군으로 막을 수 있을까? 무리다. 못해도 금위군은 와야 희망이 보일 거 같았다.

심지어 이젠 도망칠 곳도 없다.

사방에서 밀려 들어오는 저 거대한 메뚜기들은 혐오스럽기만 하다.

그것들은 메뚜기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컸고, 병장기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주술사 몇 명이 불로 태우며 소기에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그 수에 밀려 개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그들에게 밀리고, 밀려서 도착한 마지막 보루가 이곳.

병사는 창을 굳게 쥐고는 점점 다가오고 있는 저 흉물스러운 바다를 보며 바다가 보고 싶단 생각했다.

'목책 따위 의미 없잖아...'

성 앞에 세워둔 목책이 부질없다는 건 그간의 경험으로 잘 알았다.

실제로 메뚜기들은 목책 따위 순식간에 먹어 치웠으니까. 이제 자신들 차례가 다가왔을 뿐이었다.

'죽는 건가... 빌어먹을 황제란 놈은 대체 뭘 하는거야!'

정말 하늘이라면 이런걸 해결해 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에 병사가 황제마저 원망스러워질 때였다.

파다닥!

"으, 으아아아악!"

메뚜기 놈들이 날아서 성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혐오스러운 모습에 병사가 비명을 지를 때 하늘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징그럽네요. 일단 올라오지 마시길."

따악!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성벽 주변에 거대한 화염 장벽이 솟아났다.

타닥. 타다닥!

순식간에 불타버린 메뚜기들이 시체가 되어 땅으로 떨어졌고, 그 엄청난 불길에 메뚜기때의 진군이 잠시 멈췄다.

"폐하. 일단 움직임은 저지했습니다."

'뭐야 저 괴물은...'

저 거대한 장벽을 아직도 유지하고 있으면서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는 안경을 쓴 중년 남자를 보며 병사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저런 괴물이... 아니 그보다...

"황제 폐하...?"

폐하께서 이곳에 직접 오셨다고?

병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나 저 괴물이 보는 곳엔... 분명 있었다.

순간 이 재앙보다도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외모의 남자가...

불의 장벽을 보면서 어느새 이곳에 있었다.

"다른 병사들은?"

황제는 입을 열었고, 병사들은 홀린 듯이 그런 황제를 보고 있었다.

어느새 그들에게 메뚜기의 위협보단 눈앞에 황제가 더 존재감이 넘쳤다.

"일단 이곳의 병사들은 무사한 모양이지만... 상황이 말이 아니군요."

"...확실히 난잡하구나."

황제는 엉망인 성벽을 보면서 덤덤하게 말했다.

그 순간 화염의 장벽이 사라졌고, 메뚜기들이 다시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고작 두 명이라고?'

정신을 차린 병사는 다시 절망했다.

이곳을 구원하기 위해 온 것이 황제와 저 마법사 둘?

지원 병력이 고작 저 둘이 다라면 이곳엔 미래가 없다.

병사가 그런 생각에 절망하고 있을 때 황제는 검조차 뽑지 않았다.

그저...

"일단 저것들이 못 올라오게 하거라."

"네."

명령했을 뿐.

황제의 명령에 마법사는 가볍게 지팡이를 휘저었고, 그러자 엄청난 크기의 불새가 날아다니며 올라오는 메뚜기들을 떨어트렸다.

"짐이 직접 가겠다. 대충 이번만 저지하면 금위대가 이곳으로 올 기회가 나겠지."

내려... 가겠다고?

병사들은 자신들이 들은 게 진짜인지 믿을 수 없었다.

몇 천의 병사도 목숨을 잃었다.

그런데 고작 한 명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쿠웅!

'미, 미친놈 진짜 뛰어내렸어!'

병사는 진짜 아래로 뛰어내린 황제를 보면서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이번 황제가 미친놈이라는 소문은 자자했지만 실제로 보니 그 이상이었다.

'끔찍한 걸 다시 보겠군.'

병사는 황제에게 물밀듯이 달려드는 메뚜기떼를 보면서 죽음을 직감했다.

그 끔찍하게 여기저기 살점을 뜯겨 먹히는 모습을 상상하며 병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확실히... 죽음이 있긴 했다.

"...말도 안 돼."

황제를 물어뜯고 있던 메뚜기는 그대로 황제가 귀찮다는 듯이 쥐어박자 머리가 터져 버렸고, 황제의 다리를 물은 메뚜기는 가볍게 발길질을 하자 저 멀리 날아가서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에도 피해를 발생 시켰다.

서걱!

황제가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병사들의 병장기도 튕겨 내던 메뚜기들은 순식간에 여러 마리가 베어져 죽어 나갔고, 그럴 때마다 시체에서 폭발이 일어나서 연쇄적으로 메뚜기들이 목숨을 잃었다.

"조금 많구나."

황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손을 위로 들었다.

"무슨..."

그 순간 병사와 다른 녀석들도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심지어 미물인 메뚜기들조차 이상을 눈치채고는 멈춰서는 위쪽에 시선을 주었다.

무수히 많은 기의 검.

그것들은 도저히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았다.

휘익.

황제가 무심하게 손을 아래로 내리긋자 그것들은 말 그대로 메뚜기떼를 폭격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폭격이자, 학살이었다.

기검이 떨어질 때마다 폭발이 일어났고, 그 기검에 맞은 메뚜기는 물론이고 그 주위에 있던 메뚜기들까지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순식간에 정리된 이번 메뚜기떼들을 보면서 황제는 가볍게 뛰어서 성벽 위로 올라왔다.

'50미터는 족히 넘는데...'

이걸 그냥 맨몸으로 올라온다니... 병사는 질린 표정을 지었으나 그 황제의 시선이 자신에게 닿자 몸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무, 무슨 말을 하시려는 거지?'

점점 이쪽으로 다가오는 황제를 보면서 병사가 덜덜 떨고 있을 때 황제가 입을 열었다.

"저게 전부는 아닐 테지. 메뚜기떼는 더 있는가?"

"네, 네... 저게 아마도 선발대일 것이고, 그 뒤에도 앞으로 더 올 겁니다."

저 엄청난 수에 메뚜기떼도 고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사실에 병사가 다시 절망하고 있을 때 황제가 입을 열었다.

"모두 수고했다. 그대들은 이제 후방으로 물러나도록."

"폐, 폐하...!"

병사들은 황제의 말에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지존께서 자신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그것만큼 기쁜 것이 어디 있을까?

특히 바로 앞에서 칭찬을 들은 병사는 자신이 이곳을 두려워했다는 것도 잊은 채 감격에 눈물을 흘리며 이곳에 있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했다.

"모두 잘 들어라."

황제는 어느새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서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 크지 않은 목소리였는데도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 황제가 무슨 수를 쓴 것은 분명해 보였다.

심지어 도시 안에서 떨고 있던 사람들의 귀에서도 생생하게 들렸다.

"황충으로 인해 그대들이 고통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 말에 이곳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누군가는 메뚜기들에게 친구를, 누군가는 가족을, 누군가는 연인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짐이 이곳으로 왔다."

황제는 그런 그들의 슬픔을 위로하지도, 공감해주지도 않았다.

다만...

"그 고통은 이제 끝날 것이다."

그저 이 재앙을 끝내겠다는 말만 해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황제의 말은 그 어떤 위로보다, 그 어떤 공감보다도 믿음직스러웠다.

­­

"기 폭발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이럴 때엔 쓸 만하구나."

황제는 병사들을 전부 뒤로 물리고 크라이스와 단둘이 남아서는 앞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가 메뚜기를 처리할 때 사용한 기술은 기 폭발이라는 기술로, 기를 폭발시켜 주변에 피해를 주는 기술이었는데... 황제는 그 기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베는 맛이 없으니까.

"수는 대충 어느 정도로 예상하나?"

"흠... 모르겠습니다. 크기가 크기니 그렇게 많진 않겠고... 500만 마리 정도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이 황충의 평균 수가 5천만 마리에서 심하면 1억 마리까지 올라가니 기존의 황충에 비하면 적은 수이긴 하나...

사람 크기의 메뚜기가 500만 마리나 있는 건 꽤 부담이긴 하다.

당장 황제가 이번에 처리한 메뚜기 수가 15만이 채 안 되거늘...

"재앙이구나."

황제는 이번 사태가 관서 지역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재앙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경로가 일정하니 다행이지요. 그러지 않았으면 어디로 튈지 모를 재앙을 상대해야 했으니까요."

크라이스가 신호를 보내면서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겠지.

"그보다 슬슬 자리도 확보했으니 신호를 보내거라."

처음부터 금위대를 한 번에 보내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단체 이동을 위해서는 그만한 공간이 이동할 곳에 필요했으니까.

정확히는 마법 부대에서 한 두 명이 같이 이동하는 방법으로 이동시킬 땐 장소를 정할 필요가 없었지만... 단 한 명이 그만한 수를 이동시키려면 그 인원을 둘만한 장소가 필요하단 이야기였다.

아무튼 그 공간을 확보할 겸, 정찰을 위해 먼저 선발대로 나선 것이 황제와 크라이스였다.

둘은 선발대의 역할을 확실하게 수행했고, 이젠 금위대를 소환하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이미 보내고 있습니다. 곧 오실..."

그 순간이었다.

화려한 빛무리가 일어나더니 황제가 마련해 둔 공간에 금위대 전원의 모습이 드러났다.

"금위대 전원. 지금 도착했습니다."

가장 선두에 서 있던 모용진이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말하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했다. 언제 습격이 발생할지 모르니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편히 쉬도록."

"존명!"

금위대원들이 황제의 명령에 경례하고 사라지자 뒤에서 곰방대를 물고 있던 마리아가 흐느적거리며 다가와선 황제의 몸에 기댔다.

"사람을 많이 이동시키니 너무 힘들구나. 보상이 필요할 거 같으니."

"보상 말인가?"

황제의 질문에 마리아는 눈을 살짝 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보상 말이다. 키스 한번 해주면 기운이 날 거 같은데..."

입술을 쓱 내밀면서 그녀가 요구하자 황제는 그런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현자님께서 고작 그 정도로 지치실리..."

스륵.

"아! 쓰러질 거 같구나. 뭐라도 있어야지 기운을 차릴 거 같은데..."

순식간에 눈치 없는 말을 하려던 크라이스를 재워 버린 마리아는 엄살을 부리면서 황제에게 기대왔고, 황제는 한숨을 쉬고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춰주었다.

"되었는가?"

"후후, 덕분에 기운이 난 거 같구나."

금방 기운을 차린 마리아가 주변을 둘러보겠다며 사라지자 황제는 처음부터 이곳에 왜 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그대가 오다니 의외구나."

그녀는 이곳에 올 이유가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그게 저도 일단 주술사고... 도움이 되고 싶어서 왔습니다."

방금 황제의 애정 행각에 꽤 충격을 먹었는지 붉어진 얼굴을 하고 있던 나르타는 황제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확실히 그대라면 도움이 되겠지만, 괜찮겠는가?"

황제의 질문에 나르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습니다."

'뭐, 상관없겠지.'

그녀는 뛰어난 주술사. 제 몸 하나는 건사할 수 있을 테니 문제는 없겠지.

황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따라오도록."

황제는 잠들어 버린 크라이스를 안아 들고는 나르타를 데리고 성벽을 올랐다.

그녀가 이곳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니... 황제는 확실히 그녀가 이곳에 도움을 줄 수 있게 해 줄 생각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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