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 황해(??)
* * *
[막내야! 아침이다. 일어나라!]
이젠 들을 수 없는 장난스러운 목소리.
그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 착각에 황제는 눈을 떴다.
"폐하. 메뚜기들이 옵니다."
역시 그 목소리는 환각이었다는 듯이 그런 황제를 반긴 것은 모용진이었다.
그것이 당연한 것인데... 황제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다.
'짐은 아직도 거기에, 그 전장에 얽매여 있는지도 모를 일이구나.'
어쩌면 자신은 아직도 그때의 전장에서 돌아오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운 전우들이 몸을 뉘인 그 전장에서... 사실 마음은 이미 같이 누워있는 걸지도 모른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는구나."
상념을 끝낸 황제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확실히...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가 이쪽을 향해 밀려오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바다와 같았다.
황색의 바다가 해일이 되어 이곳에 몰아치고 있는 걸 보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 압도적인 광경에도 황제는 덤덤하게 전투를 명령했다.
"마법 부대는 마법을 준비하라. 그리고 다른 병사들은 불화살을 쏘도록."
황제는 신속하게 명령을 내렸고, 어느새 이곳에 대기하고 있던 금위대의 병사들은 바로 화살에 불을 붙이고는 불화살을 쏘기 시작했다.
마법 부대는 불의 장벽을 세우고, 화염구를 날렸으며, 불의 고리로 메뚜기들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메뚜기들은 그야말로 활활 탔다.
황색의 바다가 불꽃의 바다가 될 정도로 활활 타서 오히려 저 불길이 심해지지 않기를 걱정해야 할 정도였다.
그 광경을 묵묵히 보고 있던 황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래의 펼쳐진 전장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황제는 갑자기 저 아래에서 춤을 추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짐은 아래로 내려가마."
"폐, 폐하!"
병사들이 당황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나 황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아래로 내려갔다. 사방에선 아직 불타지 않은 메뚜기들이 황제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황제는 검을 뽑았다.
그리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촤악!
그것은 그야말로 죽음의 춤이었다.
황제가 춤을 출 때마다 생명이 꺼져나갔다.
아름다웠다.
그 모습은 죽음을 연료 삼아 더욱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듯했다.
그걸 본 모용진은 홀린 듯이 그런 황제의 뒤를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쿠웅!
그리고 그건 모용진 뿐만이 아니었다.
"크하하! 역시 몸을 직접 움직이는 게 마음이 편하긴 하죠."
할바르가 바로 황제의 옆에 서선 메뚜기를 박살 내며 말했고, 다른 백부장들도 묵묵히 황제를 뒤따라 메뚜기를 베어갔다.
그들에게 화살은 의미가 없었고, 마법도 무의미했다.
지금, 이 순간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곁에 서로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왜 따라왔느냐."
그런 그들을 보며 황제가 메뚜기를 베며 묻자 그들은 웃었다.
"폐하가 계신 곳에 저희가 따르는 게 당연한 일 아닙니까."
깔끔한 솜씨로 날아드는 메뚜기 세 마리를 단숨에 베어낸 모용진의 대답에 황제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새삼 깨달았다.
어느 곳에 있던지... 황제의 목숨은 비단 그만의 것이 아니었다.
당장 이 불바다에도 같이 뛰어 들어가는 미친 놈들이 있었으니까.
"그래, 짐이 가는 곳에 그대들이 있는 것이 맞겠지. 그래 이참에 내기나 하자꾸나. 누가 가장 많이 메뚜기를 베었는지 말이다."
황제가 그대로 메뚜기를 밟아서 죽이면서 말하자 백부장들은 바로 반응했다.
"폐하께서 빠지시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창으로 메뚜기를 꼬챙이로 만들던 황보철궁이 말하자 할바르는 그의 머리를 후려치며 말했다.
"설마 폐하께서 유치하게 우리들 상대로 내기를 하시겠냐. 당연히 우리끼리 경쟁하란 이야기겠지."
"할바르 저 친구가 말을 참 잘해. 이것들아! 폐하의 포상은 나 박철준이 가져간다!"
어느새 서로 싸우면서 메뚜기를 베어 넘기는 녀석들의 모습에 황제는 피식 웃으며 보상을 약속했다.
"그래, 가장 많이 잡은 자한테는 짐이 상으로 검 하나를 내주마."
그 말에 백부장들의 태도가 돌변했다.
당장 움직임부터 달라졌으니까.
그야말로 야수처럼 메뚜기들을 베어나가는 그들을 보면서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하여간 못 말리는 놈들이구나."
검 하나에 눈이 돌아가서 저 모습이라니... 참으로 재미있는 녀석들이었다.
"그 정도로 미친놈들이니 이런 미친 짓을 같이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모용진의 능청스러운 말에 황제는 긍정했다.
이곳에 있는 모두가 미친놈이기에 자신의 이런 미친 짓에 어울려주는 거겠지.
황제는 갑자기 하늘이 보고 싶어졌기에 메뚜기를 베는 것을 멈추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이구나."
사방에서 달려든 메뚜기가 황제의 몸에 달라붙었으나 황제는 전혀 개의치 않으며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참으로 맑은 하늘이었다.
이런 미친 짓을 하기엔 아까울 정도로 말이다.
푸아악!
그 순간 황제에게 달라 붙었던 메뚜기들이 갈라지면서 체액을 뿜어냈다.
황제의 몸은 체액으로 더러워진지 오래였으나 그는 그 더러운 체액을 뒤집어쓴 채로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
하늘은 맑고, 주변은 불바다.
사방엔 메뚜기가 타는 고소한 냄새가 나니.
황제는 그제야 자신이 전장에 서 있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전투의 승자는 당연히 금위군이었다.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나오지 않은 금위군은 승리의 기쁨에 취해 살아남은 시민들과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그 축제를 묵인해준 황제는 백부장들과 함께 모처럼 술판을 벌이고는 잘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 내가 좀 너무 뛰어나긴 해. 백부장들 중에서 격이 다르다는 게 이런걸까? 하! 이 몸의 유능함에 질투해도 어쩔 수가 없지. 질투한다고 깎아내릴 수 없는 유능함이라서."
내기의 승자는 창의 명수인 황보철궁으로 그는 승리를 기뻐하며 다른 백부장들에게 도발을 날리고 있었다.
"야! 저 새끼 조져!"
"재수 없는 새끼. 넌 오늘 죽는 거야!"
"아악! 폐, 폐하! 이 미친 놈들이 유능한 부하를 잡아요!"
어느새 황보철궁을 집단구타하는 그들을 보면서 황제는 피식 웃었다.
축제가 벌어진 주변은 그야말로 메뚜기 시체의 산.
그 많은 메뚜기들은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전부 죽임을 당했다. 그 말도 안 되는 위업에도 황제는 그리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메뚜기들의 변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상하구나. 어째서 메뚜기들이 이런 변화를 일으킨 것일까?"
황제는 이젠 아예 서로에게 술을 부으면서 소란을 피우는 백부장들을 깔끔하게 무시하며 모용진에게 질문했다.
"잘은 모르겠군요. 하지만 보통의 일은 아닐 겁니다. 자연적인 변이는 아닌 듯하니 말입니다."
모용진도 이번 메뚜기들의 변화에 대해선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뭔 과거의 요괴들이 부릴 거 같은 거대 메뚜기떼의 출몰이라니... 이게 자연발생이라고 믿는 게 더 어이가 없는 일이긴 했으니까.
"그 말이 맞단다. 이건 누군가가 강제로 변이를 일으킨 것이구나."
어느새 이곳으로 다가온 마리아가 곰방대를 입에 문 채 긍정했다.
그녀는 이미 꽤 취했는지 잔뜩 붉어진 얼굴로 나르타를 무슨 인형처럼 끼고 있었다.
나르타는 어색하게 그런 그녀의 품에 안긴 채 술을 홀짝이면서도 그 대화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든 재앙이라는 이야기인가."
마리아는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겠구나. 그것도 이 정도의 변이를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마법사가 아니면 주술사겠구나. 뭐, 요괴일 수도 있고. 요괴란 것들이 아직도 실존한다면 말이다."
황제는 그런 마리아의 말에 용의자를 유추해 보았다.
그 정도의 주술사는 없을 거고, 마법사는 눈앞에 마리아 정도다. 요괴는 인마대전의 패배로 자취를 감춘 지 오래...
범인이 누군지 좀처럼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미지의 적이라는 건가."
일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적이라고 봐야 하리라.
그런 생각이 들자 황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런 이야기가 되겠구나. 제국은..."
마리아는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어쩌면 꽤 귀찮은 존재를 적으로 돌린 것일지도 모르겠어."
적수가 없던 제국에 새로운 적이 도래했다라... 솔직히 그녀 입장에선 꽤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적이라..."
그 말에 황제는 생각했다.
이 재앙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들은 누군가에겐 아버지었고, 어머니었으며, 자식이었고, 연인이었으며, 친구기도 했다.
그런 목숨들이 고작 메뚜기들에게 덧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제국의 적이라면 제거하면 될 일이다."
그들의 원혼을 달래주기 위해서라도 그 원흉을 제거해야 한다.
황제는 싸늘한 얼굴로 모닥불을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금위대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금위대와 함께 조사해라."
일단은 조사가 먼저겠지.
그렇기에 황제는 바로 모용진에게 명령했다.
"존명."
"...짐은 느낌이 좋지 않구나."
황제는 아무리 생각해도 느낌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이 일... 단순히 사람의 문제가 아닌듯하였으니까.
"...황해 작전은 실패인가. 아쉽군."
어두운 방 안에서 등불 아래 놓인 지도를 보고 있던 검은 인형은 불타서 사라진 메뚜기 모양의 말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과연 황제인가? 고작 메뚜기로는 커다란 피해를 주지 못한 모양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아직 시각은 많으니까."
소머리를 한 거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여차하면 이 몸이 직접 가 볼까?"
"...경거망동은 하지 마라."
그런 소머리 거한의 행동을 검은 인형은 바로 제지했다.
인간이란 종을 통합한 것도 모자라 용인과 묘인, 심지어 어인까지 통합한 거대한 제국의 황제를 상대하는 일이다.
아무리 자신들이라고 해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 봐야 인간. 그리 경계해야 할 이유가 있나?"
소머리의 거한은 그런 그의 말에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가 그들을 전설 속에 존재로 생각하지만 인간에게 한 번 패배하였을 뿐.
그들은 살아 있었고, 아직도 힘을 기르고 있었다.
소머리의 거한은 자신들의 힘이 이젠 인간을 넘어섰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많던 동지도 이젠 너와 나, 그리고 막내 밖에 남지가 않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않냐."
그의 말에 소머리 거한은 침묵을 지켰다.
확실히... 요괴들을 이끌던 거두라 불리던 그들은 이제 그 수가 세 명밖에 남지 않았으니...
자신감 넘치던 소머리 거한도 그 말을 들으니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전쟁의 여파를 해결했다고 하더라도 당장 강성해진 인간과 정면 승부를 하는 것은 무모해 보였으니까.
"믹내를 보냈으니 막내가 가져온 정보를 보고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의 말에 소머리 거한은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런가. 뭐, 그럼 기다리지 뭐. 나 기다리는 것도 잘하거든."
소머리 거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웃으면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 말대로... 인마대전 이후 천 년을 기다렸다.
몇 년 정도야... 그는 웃으면서 기다릴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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