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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55화 (55/235)

〈 55화 〉 열한 번째 합궁­달리아 키무르다인

* * *

황제는 침소로 향하면서 합궁 상대에 대해서 생각했다.

달리아 키무르다인.

그 유명한 용사냥꾼 바른의 아들이자 현 루루족의 족장인 다인 키무르바른의 딸.

바른은 황제도 알고 있었지만 다인은 이번 사직 때 본 게 전부였다.

바른 키무르베리

늪을 지배하던 독룡을 사냥한 용 사냥꾼이자 야만족과의 전쟁에서도 크게 활약한 전쟁 영웅이기도 했다.

그 공적을 높게 사서 선선대인 독무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전해지는 위대한 사냥꾼으로 모든 사냥꾼의 꿈이자 목표인 존재. 그게 바른 키무르베리.

황제도 그가 살아있었다면 반드시 만나보고 싶었을 테지만... 애석하게도 좀 옛날 사람이었다.

아무튼 호부 밑에 견자가 없다고, 그 아들인 다인 역시 뛰어난 사냥꾼이겠지만...

그러고 보니까...

황제는 아버지와 아들 하니까 갑자기 떠오르는 게 하나 있었다.

'슬슬 선제의 묘호를 정해야겠구나.'

바로 자신의 아버지인 선제의 묘호를 정해야 한다는 것.

선제께선 아직 묘호가 없다.

황제의 사후, 제사에 쓰거나 여러 상황에서 거론될 때 사용하는 묘호는 바빠서 미뤄두었지만 슬슬 정해야 할 문제긴 했다.

언제까지 선제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슬슬 안건으로 올려야 되긴 하겠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잠시 선제의 묘호를 고민해보았다.

'무제는 아니고...'

선제께선 전쟁에 관련된 치적을 쌓은 것은 아니니 굳이 따지자면 문제겠지만. 아니 근데 그렇다면 다른 치적은 있나? 진짜 쥐어짜야지 나올 거 같은데?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무튼 선제께선 전쟁이나 무에 관한 업적은, 황제가 보기엔 하나도 없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일단 앞에는 문제로 잠정적으로 확정해두었다.

'그렇다면... 흠, 앞에 붙일 것은 뭐가 좋을까?'

황제는 고민해봤지만 이 빌어먹을 아버지한테 붙일만한 그럴듯한 묘호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뭐, 다른 이들이 생각하겠지.'

아버지와 어울리는 묘호라...

아무리 생각해도 황제는 모르겠다.

그가 볼 땐 아버지에겐 뭔가 내세울 만한 요소도, 업적도 없었으니까.

아니면 아예 없으니까 그냥 없을 무(無)를 써서 무문제라고 할까?

물론 그랬다간 재상이 '선제께서 부덕하신 것은 전부 저희들이 불민하고 무능하여 벌어진 일입니다. 이 모든 건 신들의 불찰이니 신들을 죽여주시옵소서!' 하면서 목을 매려고 할 게 뻔했기에 실제로 신하들에게 그런 말을 할 생각은 없었다.

'도착했군.'

묘호에 대해서 고민해 보며 걷던 황제는 자신 침소에 도착해서는 문을 열었다.

"!"

그리고는 눈앞에 펼쳐진 신기하고도 어처구니 없는 광경에 황제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황제가 문을 열자 본 것은 입가에 피를 묻힌 채 생고기를 씹어 먹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진한 갈색 피부를 자랑하는 그녀는 연한 갈색의 갈래 머리가 인상적인 여인이었는데...

그녀의 작고 붉은 입에서 뚝뚝 떨어지는 피가 이 상황을 비현실적으로 만들었다.

"아! 그, 그게 그러니까 그, 안녕... 하세요?

어색한 얼굴로 입에 물고 있던 동물의 생심장을 내려놓으면서 그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녀가 어색하게 웃자 비단옷을 찢어서 만든 것 같은 천으로 가린 그녀의 젖가슴이 가볍게 출렁였다.

"그래."

황제는 그 어색한 인사를 받아주면서 생각했다.

정말이지 첫만남부터 황제에게 이토록 강렬한 인상을 남긴 여인은 그녀가 처음이었다.

­­

달리아 키무르다인.

다인의 딸로 태어나 그 이름을 받은 우수한 사냥꾼인 그녀는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한테 불려왔다.

"후... 왔느냐."

이 부족에서 가장 커다란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그녀를 반긴 것은 상체를 훤히 드러낸 근육질의 남자.

물담배를 입에 문 채 고민에 잠겨 있던 갈색 피부에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반라의 남자가 바로 그녀의 아버지이자 이 부족의 족장인 다인 키무르바른이었다.

다인은 물담배를 피우며 한참을 천막에서 고민하다가 그녀를 보았다.

"?"

군살 하나 없는 탄탄한 몸매가 매력적인 그녀는 다인의 시선에 지루하다는 듯이 하품을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연한 갈색 머리카락을 한 갈래로 잘 묶어둔 그녀는 특이한 자색의 눈동자가 인상적인 밝은 인상의 미인이었다.

가죽끈으로 그 예쁜 가슴과 아래만 간단하게 가린 그 얇은 옷차림으로 인해 드러난, 탄탄한 복근이 있는 복부에 선명한 이빨 자국은 그녀가 용맹한 사냥꾼이라는 명예로운 증거.

그 아름다움만큼이나 확실한 사냥 실력을 보유한 다인의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이 부족에서 그녀를 흠모하지 않는 남자가 없다는 것 정도는 다인도 알고 있었다.

왕뱀을 홀로 사냥하면서 차기 족장이 유력하다는 소리도 듣고 있는 그의 금지옥엽. 이 부족에서 손에 꼽히는 미인.

그게 달리아였으니까.

물론 그녀는 바른을 뛰어넘는 사냥꾼이 되는 것이 목표였기에 그런 남자들의 감정 따위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바른을 뛰어넘는 것이지 누군가와 연애를 하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이번 합궁 상대는 네가 해야겠구나."

그렇기에 다인의 말은 그녀에게 그야말로 당황스러웠다.

"네?"

다인은 황제에게 보낼 여인으로 그녀를 선택했으니까.

물론 다인이 그녀를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지금의 황제가 가진 씨를 원했다.

"지금의 황제는 강하다. 그렇다면 당연히 우리 부족의 가장 강한 여성이 그 씨를 받아 진정한 사냥꾼을 낳아야 하는 법."

그들은 애초에 황후의 자리엔 관심이 없었다.

다인이 관심이 있는 것은 아버지 바른의 뒤를 이을 정도로 우수하고 강력한 사냥꾼 뿐. 원래라면 대충 부족의 여인 중에서 미색이 고운 여인을 아무나 보낼 생각이었지만...

모처럼 참석한 사직에서 처음으로 황제를 보고 난 이후로 다인의 생각은 바뀌었다.

지금의 황제라면...

"이번 사직 때 보고 확신했다. 지금의 황제는 강하다. 그렇다면..."

그 남자의 씨라면 바른을 뛰어넘는 사냥꾼이 될 아이를 낳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부족에서 가장 강한 여인과 지금의 황제가 낳은 자식이라면! 그 바른을... 넘을 사냥꾼이 태어날지도 몰랐으니까.

다인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달리아를 보았다.

"좋아요! 강한 남자라면 저 역시 환영이거든요."

그런 아버지의 열망을 이해하기에, 밝게 웃으면서 그 제안을 받아들인 그녀는 그 매혹적인 입술을 핥으면서 말했다.

"밤의 사냥은 처음이지만 전 사냥꾼이니까요. 황제의 씨를 사냥하면 되는 거잖아요? 쉽네요."

'허세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말하는 그녀를 보면서 다인은 한숨을 쉬었다.

첫날밤에 긴장할 게 눈에 보이거늘 무슨...

남자 손도 제대로 못 잡아본 처녀가 뭔 자신감으로 저리 당당하게 말하는지 다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기에 다인은 그녀를 위해서 준비한 것을 건네주었다.

"긴장되면 생심장을 씹어먹거라."

부족의 주술사가 상하지 않게 주술 처리를 해준 생심장을 건네며 다인이 말하자 달리아는 조금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지었다.

루루족에게 생심장을 씹는 것은 긴장을 푸는 방법이었는데, 이는 첫 사냥에 긴장한 초보 사냥꾼들이나 하는 짓으로, 숙련된 사냥꾼에게 그 말은 모독에 가까웠다.

"에이! 제가 겁쟁이도 아니고 그런 짓을 하겠어요? 하지만... 일단 받아둘게요."

그렇기에 달리아는 호언장담하면서도 일단 아버지가 준 생심장을 챙겼다.

그녀는 합궁 후 멀쩡한 생심장을 돌려보내서 자신이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아버지에게 증명하고자 했다.

­­

'바보! 긴장을 안 하긴 무슨!'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의 아버지가 옳았다.

그녀는 황제를 기다리면서 제대로 긴장해 버렸고, 결국 참지 못한 채 생심장을 씹으며 긴장을 해소하려고 했다.

'하필이면 이걸 들킬 게 뭐야.'

부끄럽게.

숙련된 사냥꾼인 자신이 사냥 직전에 긴장하는 추태를 보이다니!

그녀는 수치심에 늪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들어가서 숨고 싶을 정도였다.

"생심장을 씹는 건 루루족의 긴장을 푸는 행동이지. 근데 그건 사냥 전에 하는 것 아닌가?"

황제는 대충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녀에게 물었다.

긴장했을 때 동물의 생심장을 씹는 풍습이 루루족 사냥꾼들에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에서 그런 짓을?

수치심에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그녀는 그 질문에 여전히 고개를 못 들며 대답했다.

"그, 그게 아무래도 밤일은 그... 처음이라서요. 긴장해 버려서. 그러니까..."

그녀에겐 이 합궁도 사냥의 연장선이었다.

바로 씨 사냥!

그녀는 황제의 씨를 낚아 채는 훌륭한 테크닉을 보여주어 자신의 사냥 솜씨를 과시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긴장될지는 몰랐단 말이야!'

그녀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설마 첫날밤이라는 게 이렇게 긴장될지는 몰랐다. 이렇게 심장이 쿵광거리고 몸이 떨릴 줄도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버지 말 좀 잘 들을 걸!

그녀는 후회하면서도 여전히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심장은 황제의 귀에 들릴 정도로 쿵광대며 뛰고 있었다.

"...옷은?"

황제는 찢어져선 그녀의 가슴과 아래를 잘 감싸고 있는 비단옷을 보면서 질문했다.

분명 저런 형태의 옷이 아니었을 텐데...

"그, 그게 그냥 옷은 조금 불편? 해서...요!"

'맞다! 그래도 상대는 황제니까 존대해야지!'

그녀는 급하게 말을 고치면서 말했다.

원래 그녀에게 궁녀들이 입힌 옷은 팔랑거리는 비단 옷이었는데...

그 옷이 불편했던 그녀는 그 옷을 찢어선 자신이 부족에서 입던 옷과 비슷하게 만들어둔 상태였다.

"아, 아니 그게 밀림에선 옷이 조금 불편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원래는 다 벗는 사람도..."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행동을 변호하던 그녀는 두려움에 고개를 푹 숙였다.

'이거 황실의 물건인가? 아니면 황제가 아끼는 옷?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황제는 무서운 남자란 소문은 그녀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황제가 무슨 반응을 보여줄지 두려웠다.

"그래, 그럼 다음부터는 그쪽에게 편한 옷으로 준비해 두라고 지시해두도록 하마."

"어라?"

그 대답에 그녀는 놀란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저 무뚝뚝한 얼굴과 다르게 황제는 생각보다 자상했다.

분명 그녀가 들은 황제는...

"그게... 옷을 찢었다고 절 찢어 죽인다던가? 그런 건... 아니고요?"

"솔직하구나. 그런 거로 죽였다면 이 황궁에 남아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황제는 그녀의 솔직한 반응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생각 이상으로 솔직한 여인이었다.

"그, 그런가... 요!"

이번에도 간신히 존댓말을 한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오르테가가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조금 비슷한가?

기행은 확실히 비슷한 거 같기도 한데... 그래도 존대를 쓰는 것을 보면 오르테가보단 나은 거 같기도 했다.

"다인은 잘 있느냐? 사직 때 보긴 했지만."

"아버지는 건강하시죠! 네, 그래서 저한테 제대로 폐하의 씨를 받아... 헙!"

'...거짓말은 죽어도 못할 성격이군.'

급하게 입을 틀어 막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생각했다.

그렇군.

마리아와 비슷한 이유인가? 황제는 왜 다인이 갑자기 자신의 딸을 보냈는지 그 이유를 알고는 그녀를 재미있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번 비 후보는 확실히 재미있는 성격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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