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제의 의무방어전-58화 (58/235)

〈 58화 〉 황제의 기억(1)­아버지와 아들

* * *

"..."

채비를 하고 황실의 사냥터로 온 태자는 황제가 활을 쏘는 모습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황제는 시위를 당기는 것조차 제대로 못 하고, 기껏 당겨서 쏘아봐야 그리 멀리 나가지도 않았다.

당장 사슴도 황제가 활을 쏘았음에도 놀라지도 않고 평온하게 풀을 뜯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황제는 그런데도 신난 표정이었지만.

"봤지? 쐈다. 제대로 쐈다고."

애처럼 신난 얼굴로 자랑하는 황제를 보면서 태자는 활을 들었다.

"...폐하. 제대로 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태자는 활에 화살을 메기고는 그대로 시위를 당겼다.

그러고는 저 앞에 있는 사슴을 향해 그대로 쏘았다.

푸욱!

태자가 쏘아낸 화살이 힘 있게 날아가 사슴의 목에 박혔다.

목에 제대로 화살이 박힌 사슴은 잠시 발버둥 치더니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오오! 역시 태자구나. 대단해."

황제가 그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자 태자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황제를 보았다.

대체 무슨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이렇게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걸까? 태자는 황제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

그렇게 홀로 황제의 의도를 생각해보던 태자는 활을 뒤에 있던 내시에게 건네주고는 말했다.

"폐하. 이런 시시한 일로 저를 부른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본론을 이야기하지요."

"?"

황제는 태자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본론이라니?

"이게 본론이지 않느냐. 아버지와 아들이 노는 데 다른 이유가 필요하느냐?"

황제에게 본론은 바로 이 사냥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개선을 위한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런 황제의 순수한 의도에 처음으로 태자가 당황했다.

태자는 설마 황제가 진짜 단순하게 같이 놀자는 이유로 자신을 부른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으니까.

그런 당황하는 태자의 모습을 보면서 황제는 후후 웃었다.

저런 모습도 참으로 귀여운 것이, 역시 자신과 황후를 닮아서 참으로 미남이었다.

앞으로의 미래가 기대된다고 해야 하나?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태자에게 말을 걸었다.

"네 할아버지는 사냥을 아주 좋아했단다. 병약한 나와 달리 활 쏘는 걸 너무 좋아해서 매일 사냥터에서 살 정도였어. 그런 네 할아버지한테는 내가 장자라는 이유로 자주 끌려가고는 했지."

황제의 아버지.

즉 독무제에 대한 이야기하면서 황제는 웃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사냥은 진짜 재미없었는데... 그래도 아버지랑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지."

벌써 지쳤는지 의자에 앉아선 흐르는 땀을 닦아내던 황제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는 왜 이런 곳으로 부르는지 이해도 안 가고 짜증이 나기만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다 추억이었다.

"아들아. 이 시간이 너에게 그런 추억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황제는 웃으면서 태자에게 말했다.

앞으로 인생에서 적이 참으로 많을 거 같은, 힘든 길을 걸어야 할 태자에게...

황제는 이 시간이 그런 때도 있었구나 싶은 추억이 되기를 바랐다,

"..."

태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한참을 그렇게 뭔가를 고민하는 얼굴로 사냥하고 있을 뿐이었다.

­­

"역시 쉽게 마음을 안 열어 주네..."

사냥을 끝내고 돌아온 황제는 근육통을 호소하는 몸을 풀어 주면서 중얼거렸다.

역시 태자는 쉽게 마음을 열어 주지 않았다.

아들하고 친해지는 게 이리 어려운 일이구나.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일단 탕에 몸을 담갔다. 이젠 조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자신과 친해지려던 아버지도 이런 마음이었을 테지...

'내일은 어디로 가 볼까?'

황제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사냥 작전은 실패했고, 그렇다면 어디로 가는 게 좋을까...

황제는 내일 태자와 함께 갈 곳을 생각해 보면서 목욕을 끝내고는 밖으로 나왔다.

"폐하. 오늘 하루도 재미있게 보냈습니까."

"...아, 재상."

그러나 그 행복도 잠시.

자신에게 말을 거는 재상을 보면서 황제는 순간 무너질 뻔했던 표정을 빠르게 관리하며 웃었다.

"짐이야... 재상이 수고해주니까 참으로 편하지."

속마음은 감추고, 그저 바보처럼 웃으면서, 황제는 말했다.

마음은 전혀 다른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호의적이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최근 태자와 친근하게 지낸다면서요."

"그렇지...? 내일도 같이 나가 볼 생각이라네."

"..."

황제의 대답에 재상은 잠시 침묵하더니 곧 황제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가까워지진 마십쇼. 태자는... 위험한 자입니다."

황제는 바로 알아차렸다.

이건... 경고라고.

"...새겨듣도록 하지."

그리고 황제는 그 순간 재상이 태자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하긴 노골적으로 재상과 마찰을 빚었으니, 재상은 태자가 그대로 황제가 되는 게 달갑지 않으리라.

"내일은 태자와 같이 나가는 것은 자제해주시길.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암살인가?'

재상의 뼈가 실린 말에 황제는 재상이 내일 태자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사람을 보낸 암살.

재상은 자신이 휘말릴 걸 우려하고 물러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태자를 포기하라고 협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예정은 바꿀 생각이 없다네. 미안하군."

황제는 처음으로 용기를 쥐어 짜내서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을 포기하는 아버지가... 되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러십니까? 그럼 즐거운 외출되시길."

재상은 그 대답이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떴으나 곧 표정을 빠르게 관리했다.

'강행할 생각이군.'

정말이지 속이 보이는 아우다.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도 내일을 걱정했다.

'어쩌지? 황후한테 부탁해야 할까?'

황후가 곁에 있으면 저들도 움직이진 않을 텐데... 문제는 황후에게 자신이 부탁하는 순간...

'저들은 내가 완전히 재상과 척을 지려 한다고 생각할 텐데...'

이미 재상의 심기를 건드렸거늘... 거기서 황후까지 부른다면 가볍게 끝날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그야말로 황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었다.

'어쩐다...'

침소로 돌아온 황제가 침대에 앉아서 고민하고 있을 때 태자가 찾아왔다.

"폐하.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들어가도 되련지요."

"그래, 들어오거라."

이 시간에 태자가 찾아오다니?

의외였기에 황제는 조금 놀랐지만 바로 안으로 들어오라 말했다.

화아악!

문을 열고 안으로 태자가 들어오는 순간 바람이 불면서 짙은 피 냄새가 진동을 했다.

태자의 몸에선... 그만큼 짙은 혈향이 났다.

황제는 그제야 태자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피로 칠갑한 채, 안으로 들어온 태자의 손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남자의 시체가 들려 있었다.

"이건..."

"폐하의 침소 주변을 머무르고 있기에... 고문을 좀 했습니다."

그 말에 황제는 기겁을 했다.

태자의 나이가 이제 12살이거늘. 덤덤하게 고문을 입에 담는 모습은 더 없이 비정상적으로 보였다.

황제에게 그 말은 도저히 12살이 할 말로는 보이지가 않았다.

"재상의 사람이더군요."

"..."

황제는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그 말은 즉 재상이 자신을 감시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시체를 치우도록."

그야말로 압도적인 살기. 태자는 싸늘한 표정으로 그 시체를 치우라고 상선에게 명하고는 황제에게 말했다.

"이 정도 증거로는 폐하께서 아무것도 못 한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허나, 적어도 폐하께선 알아두어야 할 것 같기에... 무례임을 알면서도 이런 꼴로 찾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그래... 그보다..."

황제는 빠르게 눈을 굴렸다.

재상의 눈도 사라졌고, 당장 시체를 치우러 상선과 궁녀들이 자리를 비운 지금, 이 자리엔 자신과 태자 뿐이었다.

뭔가를 말하기에 딱 적합한 상황이었다.

"사실 재상이 태자와 너무 어울리지 말라더구나."

"그 늙은 너구리가 몸이 달았나 보군요. 제가 두려운 모양입니다."

태자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런 태자에겐 재상을 적으로 돌렸다는 두려움은 전혀 없어보였다.

저 자신감이었다.

황제는... 태자의 저 자신감과 과감함이 참으로 부럽고, 멋있게만 보였다.

"아마 내일 태자를 암살하려 할 것이다. 어쩌는 게 좋겠느냐."

황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자 태자는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면서 고민하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흠, 그렇다면 내일 폐하께서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좋겠습니다."

"응? 내일은 태자와 같이 외출을..."

"그렇다면 사람이 적은 곳으로 외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황제의 대답에 태자는 진지한 얼굴로 조언했다.

"어디 말이냐?"

"외출이라면 역시 밖이 좋겠지요. 인적이 드문 거리를 돌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진 않을 거 같습니다."

일부러 황제가 태자를 데리고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한다면... 재상은 황제가 자기 편을 들어 준다고 믿을 것이다.

게다가 주변에 사람이 없는 편이 무고한 피해자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기도 했다.

태자는 그것도 염두에 두고 말하는 듯 했다.

"상대 암살자는 평범하지 않을 거다. 그냥 황후에게 보호를 요청하는 편이 낫지 않느냐?"

그러나 황제는 걱정이 되었다.

재상이 암살을 준비한다면 절대 평범한 암살자를 준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럴 땐 그냥 황후에게 기대는 편이 나을 것이다.

"폐하. 우려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전 약하지 않습니다."

태자는 덤덤하게, 마치 당연한 것을 말하듯이 확신을 가지고 황제에게 말했다.

"그러니 절... 아니 당신의 아들을 믿어 주세요."

아들을 믿어달라.

태자가 설마 그런 말을 할 줄은 황제는 생각도 못 했다.

그렇기에 황제는 놀란 눈으로 태자를 보았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아버지라면 아들을 믿어야지. 그게 아버지란 거겠지... 좋다! 당장 내일은 미복잠행을 하겠다고 알려 두마."

황제는 아들을 믿었다.

자신이 선택한 걸작을 믿는 것도 이유 중 하나겠으나...

황제는 모처럼 자신에게 믿어 달라고 말한 아들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으니까.

­­

"그래, 미복잠행 말이냐."

재상은 심기가 아주 불편하였다.

혹시 황제가 뒤에서 무슨 짓을 하는 게 아닌지 감시하던 자기 부하가 태자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들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그 일이 있은 후 황제가 오히려 자신이 태자를 암살하기 좋게 만들어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어코 같이 나간다기에 다른 마음을 품었나 했더니... 기우였나?'

하긴 그 유약한 형님이 자신과 척을 질 생각할 리가 없지.

재상은 황제를 경계하던 것을 멈추고는 황제가 제시한 동선을 살펴보았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는군."

"네, 덕분에 수월하게 작전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부하의 말에 재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가 나이에 비해 강하다고는 하나 미리 준비해 둔 곳에서 암살을 견딜 정도는 아닐 거다.

게다가 암살자들도 보통이 아니었으니까.

"검기를 쓸 줄 아는 무사 둘과, 나머지도 모두 한 가닥하는 무사들로만 엄선해서 준비해 두었습니다."

"그래, 잘했다."

아무리 태자라고 해도 검기를 쓸 줄 아는 무사 둘을 상대로도 희망을 가지진 못할 거다.

게다가 다른 무사들까지 있으니까.

재상은 확실하게 태자를 제거할 수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리고 다음 태자로는... 다루기 편한 진민을 추대하면 되겠지.

'황후에게 말하는 기색도 없고.'

물론 황후가 개입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바로 암살을 포기하고 모든 계획을 철회해야 했겠지.

그러나 황제는 딱히 황후에게 말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황후도 얌전히 처소에 머무는 게 확인된 이상 더욱 확실했다.

일말의 변수도 없었기에 재상은 태자를 반드시 이 기회에 제거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태자는... 위험하다.'

재상은 그때 태자와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자기 행위를 월권이라 비난하며, 그 목을 쳐야 한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던 태자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때부터 재상은 느끼고 있었다.

이대로 태자를 내버려 두면... 분명 태자는 황제가 되는 순간 자신부터 죽이고 시작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태자가 황제가 되어 자신을 죽이기 전에... 재상은 태자를 먼저 죽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건 그러니까...

서로의 목숨을 건 싸움이었다.

이미 재상은 알고 있었으니까.

태자와 자신은 공존할 수 없다.

같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할 수 없듯이...

태자와 자신이 그러했으니까.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