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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60화 (60/235)

〈 60화 〉 해룡(??)

* * *

"아깝지 않아? 여기서 용을 꺼낸다고?"

금안의 남자는 길을 걸으면서 느긋하게 꼬치를 먹으며 중얼거렸다.

그런 남자 어깨에 앉아 있던 참새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어쩔 수 없어. 황제가 이렇게 감이 좋을 줄은 몰랐으니까.]

거대한 메뚜기 하나만으로 요괴까지 염두에 두고 조사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황제가 그냥 요괴일수도 있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면 신경 쓰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막내야. 네 말대로라면 금위대장에게 탐지기까지 황제가 직접 하사했다면서. 황제는 이미 심적으로는 우리의 소행이라고 확신하고 있어. 없는 건 물증뿐인 거지.]

남자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그 의미인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물증을 찾기가 힘들텐데? 나, 나름 열심히 흔적을 지웠다고."

그 물증은 찾기가 힘들 거다.

당장 남자가 최선을 다해서 안 들키게 노력했으니까.

그런데 어렵게 길러둔 용을 여기서 꼬리 자르기 용도로 쓴다는 건 너무 아까운 일이었다.

[우리 근처까지 금위대장이 왔었는데? 그런데도 그런 안일한 생각할 셈이냐?]

그러나 뒤에 이어진 참새의 말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그건 몰랐는데...

확실히 그게 사실이라면 용을 내세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본거지 근처까지 금위대장이 왔다면... 언제 들켜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거니까.

'아깝긴 한데...'

용은 남자가 나름 애정을 가지고 키우던 비밀 병기였다.

새로운 인마대전에서 선봉으로 세울 계획도 가지고 있던... 그런 패를 여기서 잃는다는 것은... 참으로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지.'

들키는 거보다는 낫겠지.

남자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결정이 최선이라고 믿었다.

자신들의 존재는 아직 발각되어서는 안 되었으니까.

그러기 위한 버림 패로 용은 조금 아깝지만.

어찌 보면 그렇기에 최고의 버림 패였다.

용은 최대한 날뛰어서, 황해 사건의 배후로 황제에게 의심 받고 죽으면 되는 거다.

운이 좋아서 부상 정도 입혀주면 고마운 거고.

"어디로 보냈어?"

[동쪽에서 대충 날뛰라고 해 뒀어. 너무 대놓고 반대편으로 보내면 그걸로 의심할 거 같아서 말이야.]

남자는 참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형님이 알아서 잘했겠지.

남자는 그리 생각하면서 잠시 눈을 감았다.

'최대한 시선을 끌다가 죽어라.'

남자는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미리 용의 명복을 빌어 주었다.

당연히 용이 이길 거란 생각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

­­

제운도는 작은 섬으로 사람이 그리 많이 사는 섬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많지 않은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으득.

시체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섬 안에 똬리를 틀고 있던 용은 강한 기운이 섬에 나타난 것을 느꼈다.

'이게 황제군.'

이미 주인들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날뛰고 있으면 인간의 황제가 올 거라고.

그 황제를 죽이는 게 자기 역할이라고.

'인간... 죽인다.'

용은 증오로 가득 찬 푸른 눈동자로 그 기운이 느껴진 방향을 노려보았다.

[모두 침입자를 죽여라.]

요괴의 힘으로 거대해진 이 섬의 짐승들에게 용이 명령하자, 짐승들은 어슬렁거리면서 용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떠났다.

크르르...

용은 차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려고 애쓰면서 다시 인간을 씹었다.

침입자에게 그가 줄 수 있는 건 죽음 뿐이었다.

­­

"여긴가."

마리아의 마법으로 제운도에 도착한 황제는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피 냄새가 진동했다.

아마 이 섬에는 이젠 남아 있는 인간은 없으리라.

그게 황제의 심기를 건드렸다.

"참혹해..."

달리아는 잔해만 남은 마을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이 섬에선 가장 큰 마을일 텐데... 마을은 이미 잔해만 남았고, 곳곳에 핏자국이 가득했다.

"용은 아마 안쪽에 자리 잡은 듯한데... 본녀의 도움이 필요하겠느냐?"

마리아는 이런 참극엔 익숙한지 덤덤하게 질문했고,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다."

"그리 답할 줄 알았느니. 그대의 뜻대로 하거라."

마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황제를 따라서 걸었다.

"...온다."

그때 황제가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갑자기 검을 뽑았다.

달리아 역시 뭔가를 느꼈는지 창을 들고는 투척을 준비하고 있었다.

크아아와앙!

거대한 호랑이가 그 순간 달리아를 향해 달려들었고, 달리아는 그대로 망설임 없이 호랑이의 입에 창을 던져 넣었다.

푸욱!

"호랑이가 뭐, 이렇게 커?"

달리아는 당황하면서도 능숙하게 창에 맞은 호랑이를 보며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호랑이의 목 뒤에 올라타 단검을 박아 넣었다.

푸욱!

호랑이는 발버둥 치더니 그대로 숨을 거뒀다.

'왕뱀의 맹독인데...'

그 모습을 보면서 달리아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보통 호랑이는 단숨에 숨통이 끊어지는 맹독을 바른 단검이었는데... 이렇게 오래 버틸 줄이야.

달리아는 이 거대한 호랑이의 강함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폐하! 여기 원래 이렇게 동물들은 큰 거... 예요?"

달리아는 황제에게 질문하려다가 그대로 멈칫하고 말았다.

자신이 한 마리를 잡은 동안...

"거대화가 된 짐승이라..."

황제의 주변엔 거대한 짐승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 있었으니까.

황제는 그 시체를 보면서 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달리아는 새삼 자신과 황제의 수준 차이에 격차를 느끼고 있었다.

'용이 거대화의 원인이었던 건가?'

하지만 그렇다면 어째서 멸룡전쟁 때는 그런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 거지?

아니면...

'살아남은 용에겐 그런 능력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때 그 금안의 남자가 용이었단 건가?

황제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곳에 오면 뭔가 명확해질 것을 기대했지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었다.

"용을 잡아봐야겠군."

황제는 달려드는 짐승의 턱을 잡고 그대로 꺾어 버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달리아는 그런 황제의 모습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런 강함이라니... 상상 그 이상이었다.

"용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정말 오래 살고 볼일이구나."

마리아는 얼어붙은 짐승을 가볍게 깨트리고는 가볍게 입술을 핥았다.

그녀는 흥미가 깊었다.

이미 멸종된 걸로 알려져있던 용을 조사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시체는 본녀에게 넘겨줄 수 있겠느냐?"

마리아가 눈을 반짝이며 묻자 황제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재상과 상의하도록."

황제의 단호한 대답에 마리아는 아쉬워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짐이 앞에 설 테니 조심히 따라오도록."

황제는 계속해서 달려드는 짐승을 무참하게 베어 버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아니 짐승만 베어내는 것이 아니었다.

서걱!

그냥 앞을 가로막는 것을 전부 베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거대한 나무든, 바위든, 심지어 절벽이든, 황제는 개의치 않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가깝다.'

황제는 거대한 바위를 베어 버리고는 앞으로 나아가면서 감각을 더욱 예민하게 했다.

무언가가 자신들을 주시하는 게 느껴졌다.

이 강렬한 기운...

'용이군.'

황제는 자세를 잡았다.

"온다."

"?"

달리아가 의문을 표한 순간 바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바다에서 이쪽으로 오기 시작했다.

"제법이구나. 어찌할까?"

마리아는 그 거대한 소용돌이를 보고도 태연하게 질문했다.

달리아는 저 비현실적인 자연재해를 보며 입을 떠억 벌리고 있었다.

휘익.

황제는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휘둘렀을 뿐이었다.

그러자 쏘아진 검기는 그 거대한 소용돌이를 그대로 양단해서는 흩어 버렸다.

"어찌하긴. 짐은 베는 것밖에 모르는데."

"...저걸 저리 해결할 수도 있다는 걸 본녀는 처음 알았구나."

황제의 덤덤한 말에 마리아는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 이런 괴물이...

하긴 이런 남자기에 자신이 선택한 것이긴 하지만...

마리아는 그런 생각하면서 황제에게 물었다.

"저 소용돌이를 보고 뭔가 알아낸 거라도 있느냐?"

"있지."

황제는 바다에서 날아오고 있는 거대한 용을 보면서 말했다.

"해룡이다."

해룡.

바다의 재앙이라 불리던 용의 종류로, 폭풍을 다루고 비와 번개를 내리치는 무서운 존재였다.

뱀처럼 기다란 푸른 몸체에 곳곳에 달린 아가미와 지느러미, 그리고 황금색 뿔과, 뱀처럼 생긴 머리.

거대한 어금니와 손에 들려 있는 여의주까지.

확실히 용이었다.

[노옴...]

자기 소용돌이가 막혔다는 사실에 분노한 해룡이 황제를 보면서 으르렁거렸고, 달리아는 그 용을 보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내 기술이... 먹힐까?'

달리아는 자신과 용의 격차를 가늠해 보았다.

그러고는 그대로 창을 내려놓았다.

'무리야.'

자기 역량으로는 발목을 잡을 뿐이다.

이 신성한 사냥에서 짐이 될 수는 없었다.

그런 생각에 달리아가 빠르게 몸을 숨기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뛰어난 사냥꾼이다. 훌륭하고 빠른 판단이었다.

황제는 마리아에게 말했다.

"방해하지 마라."

"그럼 본녀는 뒤에서 구경하도록 하마."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마리아는 얌전히 뒤로 가서는 자기 주변에 보호막을 치고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크르르...]

용은 황제를 보면서 으르렁거리면서도 쉽게 접근하지 않았다.

용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앞에 있는 황제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고.

'이 무슨...'

이게 정녕 인간이 뿜어내는 기운이란 말인가?

용은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잘못 움직이면 목이 잘려 나갈 거 같은 압박감.

앞에 있는 자는 분명 인간이지만...

그 인간 중에서도 규격을 벗어난 존재였다.

'하늘에 있으니까 접근은 힘들겠군.'

황제는 너무 높은 곳에 있는 용이 조금 거북했다.

기를 날려서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거리가 거리다 보니 피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뛰어 올라가서 붙잡자니 저기서 더 올라가면 닿지도 못하고 오히려 허점을 노출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각자가 각자의 이유로 대치를 이어가고 있을 때...

그 대치를 먼저 깬 것은 용이었다.

고오오오오!

힘차게 숨을 들이킨 용은 그대로 숨결을 내뱉었다.

용이 가진 무기 중 하나인 자신의 강대한 기를 실은 숨결이 황제에게 쏘아져 나갔다.

파직! 파지직!

해룡의 숨결은 번개의 성질을 가졌기에 사방에 벼락이 흩뿌려졌다.

황제는 그것을 보더니 검을 세워 막는 자세를 취하고는 기막을 펼쳤다.

그러자 기막이 그 벼락들을 전부 막아 냈다.

한참 그 숨결을 기막으로 막아내던 황제는 그 숨결이 힘을 잃기 무섭게 뛰어들어 검을 던졌다.

푸욱!

그야말로 해룡이 반응할 새도 없이 그 입안에 박힌 검은 곧 황제의 손길에 위로 솟구치며 그대로 해룡의 머리를 뚫어 버렸다.

크오오오옹!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해룡이 몸부림치기 시작했고, 황제는 그대로 검을 움직여서 자기 손으로 회수하고는 용을 향해 뛰어올랐다.

'저걸로 안 죽나?'

푸욱!

황제는 그대로 용의 머리 위에 올라타서는 다시 한번 검을 박아 넣었다.

파직! 파지직!

그러자 용의 몸에서 번개가 튀기 시작했고, 황제는 바로 망설임 없이 뛰어내렸다.

'이래도 안 죽나?'

황제는 용의 생명력엔 감탄이 나왔다.

저렇게 했는데도 안 죽을 줄이야...

'재미있군.'

어느새 상처가 치유되며, 분노로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는 용을 보며,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모처럼 정말이지... 사냥할 맛이 있는 사냥감을 찾은 거 같았으니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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