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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61화 (61/235)

〈 61화 〉 해룡(??)

* * *

저벅. 저벅.

모용진은 눈밭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큰 실수를 했다고.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는 너를 받아들인 거다. 이런 녀석이 어떻게 폐하랑 같이 살아남았지?"

황제가 태자 시절에 가출해서 병사로 있던 그 부대에서... 그 일을 겪고도 살아남은 50명 중 하나인 세르나를 보면서 모용진은 순수하게 의구심을 품었다.

아니 이런 기초적인 실수를 하는 녀석이 어떻게 그 험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거지? 모용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야... 제가 강해서?"

정말이지 여유로운 얼굴로 으스대는 세르나를 떄려주고 싶은 충동을 모용진은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그녀가 강한 것은 알고 있다.

백부장 중에서도 검을 다루는 기술만 놓고 보면 할바르 바로 다음이었고, 순수한 무의 경지로 따져보아도 금위대 안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실력자였으니까.

하지만...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아, 그래? 가방이 찢어진 지도 모르고 보급품을 전부 흘려 버려도 강하면 살 수 있는 곳이었나? 전장은?"

가방이 찢어진 것도 모르는 머저리가 어떻게 백부장이지?

모용진이 그런 생각을 하며 비꼬자 세르나는 수치심으로 잔뜩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미,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쪼잔하게 자꾸 그럴래요?"

"너... 아니다. 에휴. 진짜 이 화상을 데리고 다니기로 한 내가 미친놈이었지."

그래, 이 녀석이랑 더 싸워서 뭐 하겠냐.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저은 모용진은 어쩔 수 없이 일단 보급부터 해결하기로 결심했다.

천막 같은 거야 진짜 싫긴 해도 녀석과 같이 쓰면 될 테고, 문제는 식량이었다.

당장 먹을 것은 있지만... 이 녀석이 날려 먹은 양이 상당해서... 딱 3일 정도 분량이 전부였다.

"일단 사냥부터 하자."

그나마 추운 곳이라 상할 걱정은 덜 해도 되는 게 다행일까?

모용진은 그런 생각하면서 사냥을 위해서 자기 배낭을 녀석에게 맡겼다.

"또 찢어 먹고 다 흘려 버리면 네 녀석의 내장이 그렇게 흘러나갈 줄 알아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 아예 배를 갈라버리겠다는 모용진의 살벌한 협박에 세르나는 덜덜 떨면서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그럼 다녀온다. 짐 잘 지키고 있어."

"네! 다녀오세요!"

"..."

하여간 대답은 잘하지. 언제 겁먹었냐는 듯이 다시 활기차게 대답하는 녀석을 보면서 모용진은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미운 정도 정이라고 녀석에게 정이라도 든 걸까?

모용진은 저 녀석의 해맑음에 금세 화가 가라앉는 걸 느끼면서 사냥을 떠났다.

일단 가볍게 늑대라도 잡아볼 생각이었다.

­­

파지직!

황제는 자신에게 내리친 벼락을 베어 버리고는 용에게 뛰어올랐다.

휘익!

그러나 황제가 접근하려 하기 무섭게 용이 고도를 올렸다.

도약하던 황제는 결국 용에게 도달하지 못하고 자세가 망가지고 말았다.

"칫."

황제는 혀를 차면서도 빠르게 공중에서 자세를 바로잡고는 용이 쏘아낸 번개를 막았다.

아무래도 무너진 자세를 급하게 바로 잡는데 시간을 허비한 터라 제대로 된 방어는 하지 못했다.

찌릿!

짜릿한 감각이 황제를 덮쳤고, 황제는 몸에 흐르는 전류를 빠르게 털어 버렸다.

[제법이구나.]

용이 그 모습을 보면서 감탄하자 황제는 그대로 허공을 달렸다. 그 모습에 용은 눈을 크게 떴다.

'저건...'

마리아도 황제가 보여준 신기에 감탄했다.

지금 황제가 보여주고 있는 기술은 바로 허공을 내달리는 기술인 허공답보(????).

물론 기의 소모가 심하기에 황제도 용과 공중전을 길게 끌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황제가 허공답보까지 사용했다는 것은...

'빠르게 끝낸다.'

황제는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용이 가진 게 폭풍과 번개를 뿜어내는 기술 뿐이라면 더 볼 필요가 없었다.

[...!]

빠르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황제를 보며 눈을 크게 뜨던 용은 다급하게 모습을 바꾸었다. 이 모습 그대로 있으면 황제의 검에 대응하지 못할 거란 계산 때문이었다.

퍼엉!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용은 번개로 된 검을 쥐고는 황제에게 응수하려고 했다.

모습을 바꾼 건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황제에게 용의 거대한 몸은 거대한 표적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피하지 않고 그대로 응수하려고 한 건 명백한 실책이었다.

서걱!

황제는 그대로 번개의 검을 잘라버리고는 용의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 용은 그 행동에 놀라면서도 체념했다.

용은 직감했으니까.

자신이... 여기서 죽는다는 것을 말이다.

"...어리군."

황제는 용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용의 인간으로 둔갑한 모습은 의외였다.

작은 소년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리고 왜 용인이 용으로 자주 착각 받았는지도 알 수 있을 거 같았다.

머리에 달린 뿔. 파충류 특유의 세로동공의 눈동자.

용의 인간으로 둔갑한 모습은 용인의 모습과 유사했으니까.

차이점이라면 인간의 모습으로 둔갑을 해도 여의주는 남아 있다는 것뿐이었다.

손에 꼭 붙어 있던 여의주는 인간의 모습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여의주는 놓지 않겠다는 듯이 꼭 쥐고 있었으니까.

"...배후를 물어봐도 대답은 않겠지."

황제는 질문했고, 용은 그저 침묵을 지켰다.

"..."

그런 용의 침묵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애초에 황제는 용의 입을 열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인간과는 어떠한 협상도 하지 않는 고고함과 오만함 때문에, 끝내 멸종의 길을 걸어버린 것이 바로 용이었으니까.

이대로 사로잡을 수도 있겠지만... 굳이 황제는 용을 살려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황제는 목숨의 대가를 다른 것으로 받는 방법은 몰랐으니까.

서걱!

망설임 없이 용의 목을 날려 버린 황제는 목이 잘리자 다시 용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해룡을 보면서 말했다.

"시체에서 기억을 뒤지는 건 가능한가?"

"으음, 용이면 어렵겠구나."

마리아의 대답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용에겐 고문도 의미가 없어서 용의 입으로 정보를 듣는 건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었다. 시체 역시 사념이 강해서 시체를 통한 기억 분석도 힘들었다.

아무튼 이 용이 거대화와 관련이 있는 건 분명해 보이는데...

'정말 이 용이 배후였던 건가?'

그렇다면... 황해 사건의 흑막 역시 용이었던 걸까?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요괴의 짓이 아니었나?'

황제는 고민했고, 용이 쓰러지자 거대화가 풀리기 시작한 짐승들을 보고는 결단을 내렸다.

"...황해 사건의 흑막은 용으로. 조사를 위해 흩어진 금위대에겐 복귀 명령을 내려야겠구나."

아무리 봐도 지금 상황에선 정황상 모든 흑막은 용이었다는 결론 밖에 나올 수가 없다.

그 금안의 남자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그건 다른 부서에서 추가적인 조사를 진행하면 될 일이었다.

금위대를 이 이상 궁에서 비워두는 것도 무리한 일이었으니까.

"돌아가자."

황제는 용의 시체를 보면서 말했고, 마리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동을 준비했다.

달리아는 여전히 용의 시체를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정말... 용을 잡았네요."

아버지와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용을 사냥하고도 황제는 별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게 달리아는 참으로 신기했다.

"그저 해로운 짐승일 뿐이다."

황제는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지성이 있다고는 하나 인간을 물어뜯는 순간 인간에게 박멸해야 할 짐승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용을 죽였다고 해도 그 용에게 죽은 제국의 백성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늘 그랬다.

목숨의 대가로 목숨을 받아온다고 잃은 목숨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황제는 자신이 용을 잡았다는 기쁨보다는, 저 용에게 목숨을 잃은 백성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욱 컸다.

물론 그렇다고 황제가 그러한 감정을 얼굴에 내비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덤덤하게 눈을 감고는 죽은 목숨을 추모할 뿐이었다.

­­

"해룡이었군요."

재상은 황제가 죽인 용의 시체를 보면서 작게 감탄했다.

설마 제운도에서 날뛰던 용이 해룡이었을 줄이야. 그 정도면 제운도의 사람이 전부 죽은 것 정도로 끝난 것이 오히려 다행일 정도였다.

"용 중에서도 보기 드문 종이라고 들었습니다."

재상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독룡만큼 위험한 용은 아니지만, 그래도 상당히 위험한 용으로 바다의 재앙이라고 까지 불리던 것이 바로 해룡이었다.

멸룡전쟁에서 독룡 다음으로 많은 인간을 죽인 종이기도 했다.

"그래, 아무튼 이 녀석이 황해 사건의 주범인 듯 하더구나."

황제의 말에 재상은 눈에 띄게 기뻐했다.

"그렇다면 그 문제도 드디어 해결이군요. 다행입니다. 금위대장이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고 있었으니..."

재상의 말대로였다.

군부에 핵심을 담당하는 금위대장이 궁을 오래 비우고 있는 것도 그리 모양새가 좋지 않았으니까.

차라리 이렇게 해결된 것이 잘된 일이었다.

"그래, 금위대에게 복귀 명령을 내려라."

재상이 그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사람을 보낸 뒤, 용의 시체를 두고 마리아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자 황제는 피곤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폐하."

"...무슨 일이냐."

그러자 이번엔 미령이 바로 다가와서는 황제의 뒤에 섰다.

황제는 그녀가 왔다는 사실에 불길함을 느끼면서도 얌전히 대답했다.

"오늘 밤 합궁 상대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서 왔습니다."

"..."

그러면 그렇지.

황제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래, 누구냐?"

이번엔 12번째인가?

황제가 그리 생각하며 묻자 미령은 그런 황제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대답했다.

"아산족의 마리프 아사노프입니다."

"아산족인가..."

고산 지대에서 사는 민족이던가?

황제는 그리 생각하면서 아사노프가 어떤 가문인지 생각해 보았다. 황제라면 모든 민족의 주요 가문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하는 법.

분명 아사노프 가문도 황제의 기억에 있었다.

"아산족의 제사장 가문이군."

아산족에서 가장 강한 권력을 지닌 제사장의 가문이 바로 아사노프다.

지금 아산족의 제사장이 피리파 아사노프였으니까. 아마도 마리프 아사노프는 그의 딸인 듯 보였다.

"그래, 씻고 바로 가도록 하마."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탕으로 향했다.

오늘은 왠지... 몹시 피곤한 느낌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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