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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의무방어전-65화 (65/235)

〈 65화 〉 황제의 검

* * *

서걱!

북부의 어느 설원.

모용진은 망설임 없이 앞에 나타난 괴상한 물체를 베어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모용진의 앞에는 반으로 갈라진 등불이 검게 죽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너... 이게 뭔지 알겠냐?"

세르나에게 질문하자 커다란 눈이 달린 외눈 박쥐를 베고 있던 세르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모르겠네요."

모용진이 베어낸 것은 눈이 달린 기괴한 등불같은 존재였다.

세르나가 베어낸 것도, 모용진 자신이 베어낸 것도, 전부 괴상한 것들이었다.

이걸 뭐라고 해야 하지?

...요괴라고 봐야하나?

'탐지기가 반응을 멈춘 걸 보면 그런 거 같긴 한데...'

이 둘을 베어내자 조용해진 탐지기를 보면서 모용진의 얼굴은 더욱 심각해졌다.

'뭔가 이 근방의 기운이 무거워.'

모용진은 이 근방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참으로 무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이 근방에 있는 건 분명했다. 다만 그게 무엇일지 알 수가 없을 뿐.

"기척은 지우고 있지?"

모용진이 진지한 얼굴로 묻자 세르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르나의 대답에 모용진은 기척을 죽인 채 계속 이동했다.

이상할 정도로 끈적한 기운이 모용진을 불쾌하게 만들었다.

'...숲?'

모용진은 설원에 존재하는 기괴한 숲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뭔가... 이곳에 있는 건 분명했다.

'탐지기는 제대로 반응을 하는데...'

이곳에 오고 나서 탐지기가 미친 듯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모용진은 확신했다.

이곳엔... 요괴의 본거지가 있다고 말이다.

­­

"대장은 여전히..."

한참 금위대장의 대리로 원래 그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던 할바르는 여전히 복귀하지 않은 모용진을 생각하며 머리가 아파졌다.

'내가 계속하는 것도 힘들고... 임시 대장이라도 뽑아야 하나?'

그는 모용진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황제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모용진을 상대로 우위라고 말할 수 없다.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확실한 금위대 최강의 무인.

괜히 황제가 가장 신임하는 황제의 검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할바르 열 명이 모여도 그를 이길 수는 없다.

그 말은... 할바르가 열 명이 있어도 그의 빈자리를 대체할 수 없다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했다.

금위대의 대부분이 이미 복귀했지만...

모용진이 복귀하지 않은 지금 금위대의 전력은 절반 이하나 다름이 없었다.

그것은 아무리 그를 제외한 다른 금위대원들이 복귀를 해도, 그가 돌아오지 않는 이상 금위대는 반쪽 짜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 정도의 존재감.

그렇기에 할바르는 얼른 모용진이 돌아왔으면 했다.

황제에게도, 그리고 금위대에게도.

모용진은 필요했으니까.

­­

"...다음 합궁. 그래, 해야지."

갑자기 찾아온 미령의 보고를 들으면서 황제는 일단 자신과 잡담을 하고 있던 쌍둥이들을 돌려보냈다.

그나마 쌍둥이는 둘이서 잘 노는 편이라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것이 참으로 편했다.

"그래서 다음은 누구더냐?"

황제의 질문에 미령은 덤덤하게 보고를 시작했다.

"이탈리족의 레오니 비렌체입니다. 나이는 20세, 특기할 점이라면..."

미령의 보고를 듣던 황제는 그 이름을 듣고는 바로 반응했다.

황제의 기억에 있는 여인이었다.

그리고 황제의 기억에 있는 여인이라면 대게 뻔했다.

"기억에 있군. 비토바르에서 열리는 비토바르 토너먼트의 최근 우승자던가?"

바로 무인이라는 것.

비토바르 토너먼트.

마상 창 시합을 통해 강한 기사를 뽑는 대회로 겔만, 프리아, 이탈리의 세 민족의 기사들이 참가하는 유서 깊은 토너먼트 중 하나였다.

그곳의 우승자는 황제도 나름대로 주목할 정도로 그 수준이 높아 실제로 황제도 그 대회의 우승자에 대한 정보는 매번 보고를 받고 있었다.

당연히 그녀에 대한 정보는 황제의 머리에 아직 남아 있었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토너먼트를 우승한 실력자라고 하던가? 모든 상대를 단 번에 낙마시키는 그녀의 마상 창술에 감탄한 자가 한 둘이 아니라고 들었다.

실제로 황제에게 올라온 추천서에 그녀의 이름이 있기도 했으니까.

그때는 황제가 굳이 무관의 숫자를 늘릴 생각이 없어서 무산되긴 했지만.

아무튼 황제에게 추천서가 올라올 정도로 대단한 기사임은 분명했다.

"대단한 실력을 지닌 기사라고 들었는데..."

약관의 나이로 그 토너먼트를 우승한 그녀는 아마도 이탈리에서도 크게 주목 받는 기사일 것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한 번 그 실력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다.

"흥미롭구나. 지금 도착해 있나?"

"네."

미령은 그런 황제의 반응에 그리 놀라지 않았다.

무인에게 관심이 많은 것은 이미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당장 비 중에서도 황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비는 여화 비였으니까.

둘은 맨날 같이 훈련하고, 같이 무기에 대해 토의를 하며, 어쩔 땐 전술을 가지고도 논의하고는 했다.

그녀 입장에선... 솔직히 조금 질투가 날 정도로.

"?"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제의 눈이 자신을 향하자 미령은 간신히 표정을 유지하고는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뭐가 말이지?"

그 사정을 알리 없는 황제의 질문에 미령은 입을 다물었다.

차마 자신이 생각하던 것을 황제에게 말할 용기가 그녀에겐 없었으니까.

"아무튼 그녀는 지금 별궁에서 쉬는 중입니다. 만나 보시겠습니까?"

"...그래, 연무장으로 데려오도록."

황제는 그녀를 당장 만나서 그 실력을 보고 싶었다. 그렇기에 연무장으로 데려올 것을 명령하자 미령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네, 알겠습니다."

미령이 그 말을 끝으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사라지자 황제는 집무실에 걸어두었던 검을 매만졌다.

오늘 검을 쓸 걸 생각하니 당장 검을 만지고 싶었으니까.

[냐아... 외출이냐?]

그 행동에 책상 위에 웅크리고 자고 있던 케르가 눈을 뜨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흐냐아... 잠시만 기다려달라냐.]

그 대답에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던 케르는 바로 황제의 어깨 위에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는 말했다.

[자! 주인! 출발이다냥!]

"그래, 그래. 출발해야지."

그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던 황제는 다시 검을 제자리에 돌려놓고는 연무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레오니... 어떤 기사일지 궁금하군.'

여화처럼 소문 이상의 실력이면 좋을 텐데...

황제는 그런 생각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당장 그녀와 검을 섞고 싶었다.

­­

'이대로 가면 뭐라도 찾겠지.'

모용진은 일단 야영을 한 채로 생각에 잠겼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느껴지는 강한 기운은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듯했다.

'요괴... 일까?'

모용진은 점점 반응이 커지는 탐지기를 보면서 고민했다.

여기서 되돌아가서 증원을 요청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는 것이 좋을까?

고민은 길었지만... 모용진의 선택은 좀 더 확실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다.

적어도 스스로 몸을 빼낼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은 있다고 믿었으니까.

무엇보다도...

'황제의 검이란 녀석이 여기서 물러나기도 그러네.'

아직 확실한 증거도 없이 탐지기의 반응만 믿고 여기서 끝이라고 도망친다고?

황제의 이름에 먹칠하는 꼴이다.

금위대장이 할 선택이 아니었다. 모용진은 좀 더 확실하게 그들의 본거지를 자신의 두 눈으로 새겨둬야 만족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렇기에 모용진은 세르나에게 말했다.

"이거 챙겨둬."

"뭔데요? 편지? 연서 같은 건가요?"

세르나가 모용진이 건넨 편지 봉투를 보면서 묻자 모용진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내 유서. 만약의 경우엔 반드시 폐하한테 전해 줘."

"..."

세르나는 그 각오가 담긴 대답에 장난스러운 태도를 지우고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저기... 그 역할은 제가 아니라 대장이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세르나는 알고 있었다.

자신보단 모용진이 훨씬 대단하고,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그녀는 만약에 둘 중 한 명이 죽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자신보단 그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오면 넌 시간 벌이도 안 되니까 하는 말이다."

그러나 모용진은 그런 마음도 모르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애초에 세르나가 시간 벌이가 가능할 정도의 상대면 모용진이 도망칠 이유가 없다.

그러니까... 이건 세르나가 맡아주는 게 맞았다.

세르나가 시간 벌이도 안 되고, 누군가는 시간을 벌어 주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목숨을 걸고 남아야 할 건 모용진 자신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이 올까요?"

걱정이 가득 담긴 세르나의 질문에 모용진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안 오면 좋긴 하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진 마라."

모용진은 눈에 띄게 위축된 세르나를 조금 위로해주고는 눈을 감았다.

아직도 주변에선 독한 기운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자신들을 주시하는 건가?

모용진은 그런 생각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눈을 감고는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

"폐하께서... 연무장으로. 알겠습니다."

딱딱한 인상의 여인은 미령의 말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 거 같은 큰 키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잘 단련된 슬랜더한 몸매가 그다음에 눈에 들어왔고, 아름다운 백금발과 호수처럼 푸른 벽안이 미령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무뚝뚝한 얼굴이었음에도 그 외모가 전혀 가려지지 않는 차가운 인상의 미인.

그녀가 바로 레오니 비렌체.

토너먼트의 우승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뛰어난 여기사이자, 이번 합궁 상대인 비 후보였다.

'드디어...'

미령의 뒤를 따라 걸으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이번 황제에게 관심이 있었으니까.

바로 황제의 무위 때문이었다.

그 무위를 직접 견식하고자 가문의 반대도 이겨 내고 이 자리에 왔으니까.

그녀는 늘 생각했다.

자기 인생에서 황제의 검을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그저 먼 발치에서 보는 게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고.

그만큼 그때의 경험은 그녀에게 강렬하게 남았으니까.

그건 1년 전.

야만족의 침략 소식을 듣고 전장을 경험해 보고 싶다고 멋대로 가출을 감행했을 때의 일이었다.

무작정 제국의 국경까지 말을 달리고 가서 그녀가 본 것은...

금위대의 활약이었다.

황제는... 누구보다 선두에 서서는 야만족을 베어내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누군가를 죽이는 살육의 광경이... 이토록 아름답고 멋있을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을 빼앗을 수도 있다는 걸.

그녀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그 모습이 뇌리에서 잊혀지지가 않았다.

어느새 늘 황제의 검을 생각하고, 그 검에 직접 베이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연무장이라고 했지.'

그녀는 그 기회가 드디어 자신에게 찾아왔음을 느끼고는 속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물론...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했지만 말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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