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 만수절(萬??)
* * *
"쿠류로 사람을 보낸다면서요...?"
집무실로 돌아온 황제는 뜻밖에 손님에 조금 놀랐다.
다름 아닌 세이나 비였으니까.
자신 앞에서 잔뜩 위축되면서도, 대답을 기다리는 그녀를 보면서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덤덤한 황제의 대답에 세이나는 애처롭게 보일 정도로 놀라며 물었다.
"어... 째서요?"
세이나는 황태후가 그 사실을 말해줬을 땐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갑자기 쿠류로 사람을 보낸다니! 대체 무슨 일로?
그녀는 불안한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혹시 저를..."
자신을 다시 그곳에 보내는 건 아닐지, 그러기 위해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닌지... 세이나는 불안했다.
"그대는 이상할 정도로 그곳을 두려워하더구나."
움찔!
세이나는 그 말에 움찔했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그녀는 두려웠다.
쿠류란 곳이, 자기 어머니가. 그리고... 그곳의 모든 것이.
그렇기에 그곳에 다시 돌아가게 될까 두려웠다.
잠깐이었어도... 그곳과 달리 이곳에서의 생활은 정말 꿈만 같았으니까.
"그래서 조사를 하라 보낸 것이다. 만약 그곳이 그대에게 죄를 지었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할 테니."
"...벌이라 하심은."
세이나는 벌이라는 말에 겁을 집어먹었다.
황제가 말하는 벌이라는 것은 그녀에게 굉장히 무겁게 느껴졌으니까.
"목 정도면 충분하겠지. 대모의."
"...!!!"
세이나는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대모의 목이라니!
그 대모와 적대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 세이나는 급하게 입을 열었다.
"자, 잠시만요. 그, 그게 전 괜찮... 다고 말해 봐야 의미는 없겠죠."
세이나는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려고 하다가 멈췄다.
한심했다.
이 와중에도 대모가 두려워서 바짝 쫄아 있는 자신이...
황제가 그렇게 하겠다 하면 그리될 것인데... 그것조차 의심하며 대모를 두려워하는 자신이...
세이나는 한심하고... 또 자괴감이 들었다.
'그래도 죽게 두고 싶진 않아.'
무엇보다... 아무리 미워도 어머니였다.
그렇기에 세이나는 두려움을 이겨내고는 황제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제게... 그 권한을 주세요."
물론 감히 폐하께 이렇게 당당하게 요구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건 아니었다.
아니 사실 엄청 두려웠다.
하지만...
그래도 세이나는 다른 한편으로는 황제를 믿고 있었기에, 이런 걸로 자신에게 화를 내지 않을 거라고 믿었기에, 용기를 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그 말은?"
세이나는 용기를 냈다.
적어도... 자신이 직접 그녀를 보고 판단하고 싶었다.
자신이 그녀를 지금 어쩌고 싶은지 말이다.
"그래도 제 어머니입니다. 적어도... 전 용서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물론 지금은 용서하고 싶었다.
그곳에 가서... 어머니가 자신을 딸로 받아 준다면, 언제나 같이 실패작 취급이 아닌...
훌륭하게 맡긴 일을 해낸 딸로 봐준다면...
세이나는 대모를 용서할 수 있었다.
그게 가족이라는 거니까. 그렇기에 세이나는 자신이 직접 그녀를 판결할 권한을 달라 이야기 했고 황제는 고민에 잠겼다.
"...그래, 그럼 그대도 함께 가거라. 모든 처벌의 권한과 그곳의 지휘권은 그대에게 주지."
고민을 끝낸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유약한 비가 저렇게 말하는데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다.
황제는 달필로 깔끔하게 친서를 쓰고는 인장을 박아서 그녀에게 주며 말했다.
"미친왕에게 그리 전하거라. 주었다가 빼앗은 거 같아서 미안하지만... 모든 처벌은 비에게 맡기겠다고."
"가, 감사합니다."
세이나는 설마 이런 자기 부탁을 선뜻 들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기에 표정이 밝아졌다.
"짐 역시 가족을 용서하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니까."
황제는 그리 말하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물론 결국 황제는 대부분의 혈족을 죽여야 했다.
그래서 사실 이번에도 쉽게 죽인다는 결정을 한 것이었고.
하지만... 비는 다른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유약한 비가 그곳으로 간다는 게 걱정이 되긴 했지만... 황제는 그녀의 뜻이니 존중해주기로 했다.
자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극복하는 건 힘들지만... 그 길을 택하겠다는 데 말릴 이유는 없었다.
"그대가 어떤 선택을 하던, 짐은 그대를 지지해 주마."
그렇기에 황제는 오히려 그녀를 지지해주기로 했다.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황제만큼은 그녀를 이해해줄 생각이었다.
"감사합니다."
그 격려에 세이나는 용기를 얻었다.
사실 여전히 대모 앞에 서는 건 두려웠다.
그런데도 그녀가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폐하께서...'
자신의 뒤에 이젠 폐하께서 있었으니까.
누구보다 든든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세이나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 그 아이는 결국 마주 보는 것을 택했구나."
차를 마시던 황태후는 자신을 찾아온 황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예상하고 저한테 비를 보낸 것 아닙니까?"
황제의 말에 황태후는 싱긋 웃었다.
그 말대로 황제의 행동을 파악하고 그녀에게 전한 것은 황태후였다.
"그래도 가족의 일이다. 당사자가 모르고 진행하는 건 말이 안 되겠지. 다음부터는 그런 부분은 배려를 하는 게 좋겠구나."
"그 부분은 제가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황태후의 지적에 황제는 고개를 숙였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으니까.
"그보다 만수절은 즐기고 가게 하는 편이 낫지 않았느냐?"
아무리 그래도 황제의 만수절은 챙기고 가게 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황태후가 그런 생각을 하며 묻자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즐길게 뭐가 있다고 가족의 일도 미루고 남아 달라 부탁하겠습니까? 그래도 미친왕에겐 선물을 받았습니다."
맨드레이크를 떠올리며 황제가 말하자 황태후는 의외라는 듯이 반응했다.
"그 아이가?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그리 심성 자체가 못되먹... 은 아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은 지키는 아이입니다."
차마 심성이 착하다는 말은 하지 못한 황제를 보면서 황태후는 쓰게 웃었다.
하여간 형제가 이리 다를 수도 있다니...
황태후는 그런 생각에 씁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런 아이였지. 그래서 용서해주기로 한 것이냐?"
"...왜 다 그런 걸 물어보는 지 모르겠지만 전 그 아이를 처벌한 그 순간 이미 용서했습니다."
재상도 그렇고, 다른 이들도 다 미친왕에게 일을 시켰다 하니 같은 것을 물어보는 게 참 신기했다.
그 대답에 황태후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구나..."
황제는 아무튼 그녀의 배후에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으니 이만 돌아가고자 했다. 그런 황제를 붙잡은 황태후는 솔직하게 질문했다.
"만수절이 코앞이구나... 원하는 물건이라도 있느냐?"
"...딱히 그런 것에 관심이 없는 터라."
황제의 덤덤한 대답에 황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이였지.
늘 원하는 것을 말하던 미친왕과 달리 황상은 딱히 원하는 걸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없는가 싶었지만 그것은 또 아닌 것이...
[잘 봐. 의젓한 애가 하는 말은 대부분 거짓말이야. 필요가 없다던가, 관심이 없다던가. 그럴 리가 없잖아? 원하는 게 없는 아이라니.]
예전에 선물이 필요 없다는 황상을 보며 그렇게 말하고는 웃던 선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이는 저런 말로 밀어내는 황상을 보면서도 늘 웃는 얼굴로 선물을 준비하고는 했다.
그걸 받았을 때 황상의 얼굴은...
'후후.'
입은 필요 없다고 말하는 데 눈은 분명히 기뻐하고 있었으니까.
분명 지금도 그럴 것이다.
황상이 원하는 것은 분명 있다.
그걸 굳이 귀찮게 다른 사람에게 요구해서 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렇다면 무엇일까?'
황태후는 고민했다.
황상이 받고 싶은 것이라면...
'역시 그거겠지.'
황태후는 생각하는 것이 하나 있었기에 바로 기별을 넣었다.
시간을 맞추려면... 조금 빠듯할 듯하였으니까.
"네에? 만수절이 3일 후라고요?"
그 먼거리를 마법으로만 이동하면 효율이 떨어졌기에 일단 마차를 타고 이동하던 세이나는 진민의 말에 깜짝 놀랐다.
눈앞에 사람이 바로 그 황제의 친동생인 미친왕이라는 것도 숨이 막힐 정도로 놀라웠는데... 곧 폐하의 만수절이라는 사실은 세이나에겐 충격으로 다가왔으니까.
"하필 이 시기에 이런 일을... 절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요?"
세이나가 혹시 폐하께서 자신에게 축하받고 싶지 않았던 걸까 하는 생각에 우울한 표정을 짓자 진민은 손에 턱을 괸채 느긋하게 말했다.
"딱히 별 생각은 없을 겁니다. 형이 그런 거로 누굴 차별할 성격도 아니고..."
물론 그렇게 말하는 진민도 만수절 전에 굳이 자신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자기 얼굴을 보기 싫어서가 아닌가 의심했지만...
형의 반응을 보고는 그 의심을 완전히 지웠다.
애초에 얼굴도 보기 싫으면 밤일 같은 사적인 일을 자신에게 문의하진 않았을 테니까.
"대모에 대한 이야기는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자를 자주 갈아치운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아, 제가 실례되는 말을 했습니까?"
"아, 아뇨... 사실인걸요."
세이나는 진민의 말에 손사래를 쳤다.
대모가 남자를 매번 바꾸면서 자식을 낳는다는 건 딱히 비밀도 아니었다.
세이나의 아버지는 그런 대모의 4번째 남자였고, 딸이 맹인이라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세이나가 처음으로 이야기한 남자는... 바로 그런 아버지였다.
공교롭게도 그녀를 흉물스럽다고 가둬둔 다락방의 아래가 바로... 아버지가 갇혀 있는 감옥이었으니까.
그녀가 살던 다락방은... 감옥에 있는 다락방이었다.
"감옥에 있는 다락방에... 흐음."
그런 그녀의 이야기를 듣던 진민은 '생각보다 심한데?' 라며 중얼거리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앉아 있던 대흘은 경악하고 있었고, 아비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그게... 그래도 살만했어요. 하루에 한 번은 쌀밥을 먹었거든요."
세이나가 웃는 얼굴로 말하자 진민은 더욱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하루에 한 번 쌀밥? 그럼 다른 때는 뭘 먹인 거지? 진민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질문했고, 세이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다른 거... 요? 식사는 하루에 한 번 하는 게 아닌가요?"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세이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진민은 멍한 표정을 지었고, 아비는 손수건이 흠뻑 젖도록 울었다.
대흘만 뭔가를 생각하는 얼굴로 마차 밖을 내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폐하께서 비 전하께 모든 걸 일임한다 하셨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 유약한 비께서 제대로 된 처벌을 하긴 하실까?
대흘은 걱정이었다.
오히려... 이번 일이 세이나 비 전하께 더 큰 상처가 되진 않을까? 그런 걱정이 들었으니까.
"하하!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다냐!"
황제의 집무실엔 반가운 얼굴들이 찾아왔다.
얼굴에 멍이 나 있는 무카가 웃는 얼굴로 말하자 황제는 피식 웃었다.
"둘이 싸우기라도 했나?"
무카만 그런 게 아니었다. 바아간은 머리에 혹이 나 있었기에 황제는 둘이 또 싸웠구나 싶었다.
"사실상 제가 이겼지요."
그 질문에 바아간이 당당하게 말하자 무카가 발작을 했다.
"뭐? 그건 인정할 수 없다냐!"
"그럼 다시 붙던가!"
"못 할 거 같냐!"
다시 싸울 기세인 둘을 보면서 황제는 일단 기운으로 둘을 눌렀다.
"그만. 이곳에서 싸웠다간 집무실이 박살 나겠구나."
그리고 집무실이 박살이 나면 재상이 화를 내겠지.
그런 건 황제도 질색이었기에 일단 둘의 싸움을 말리는 게 우선이었다. 황제에게 제압 당한 둘은 일단 싸움을 멈추긴 했다.
"그래서 제안이 있다냐."
무카의 말에 황제는 관심을 보였다.
제안이라니? 그것도 저 머저리가 제안이라는 말을 다 쓰다니 참으로 황제 입장에선 놀라웠다.
"무엇이지?"
"만수절엔 행사를 한다고 들었다냐."
그렇지. 이번에도 대충 간단한 행사로 끝낼 생각이었지만...
황제가 그런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무카는 진지한 얼굴로 제안 했다.
"싸움 대회를 제안 한다냐. 강자들을 모아서 우승자를 뽑는 거다냐."
"그리고?"
우승자를 뽑아서... 그다음엔?
황제는 무카의 제안에 조금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억!
그때 무카가 당당하게 황제를 가리키며 말했다.
"우승자가 황제한테 도전한다냐."
"호오..."
그 당당한 모습에 황제는 미소를 지었다.
도전? 나한테?
"그대가?"
"물론이다냐. 내가 우승할 테니까옹."
"...누구 맘대로 네가 우승이지?"
바아간은 그 말에 발끈했다.
그는 무카가 당연하게 자신이 우승할 거라고 믿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연히 내가 한다. 우승. 이번에 제대로 서열을 정리해주지."
무카를 향해 으르렁거린 바아간은 황제를 보면서 말했다.
"예전부터 언젠가 폐하와 붙고 싶었습니다. 그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좋다. 그러면 이번 만수절엔 무술 대회를 열겠다. 참가자는."
황제는 마침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만수절을 맞아서 온갖 강자들이 몰려오는 상황이었으니까.
참가자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우선 그대 둘."
묘왕 무카와 용왕 바아간.
이 둘은 당연히 포함이었다.
"모용진은... 없으니까 제외하고. 김유선과 환명호. 그리고 짐의 비 두 명."
모용진이 없는 게 참으로 아쉬웠지만 황제는 덤덤하게 다음 참가자의 이름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대장군 김유선과 전장군 환명호.
그리고 두 명의 비. 환여화와 레오니.
"마지막으로 리처드 고드프리와 브레드 엔서니면 충분하겠구나."
국경을 맡은 국경 방위 사령관 리처드 고드프리와 수도 방위를 맡은 수도 방위 사령관 브레드 엔서니면 부족함이 없겠지.
황제는 그들이 겨루는 대회의 규칙을 구상하며 말했다.
"그 어떤 것도 허용하나... 살인은 허용하지 않겠다."
즉 이번 대회는 죽이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을 시험하는 대회가 될 것이다.
아무리 황제라도 그 정도의 무인들이 이런 축제로 목숨을 잃는 건 원하지 않았으니까.
"우승자에겐 짐에게 도전할 기회와..."
황제는 그 대회를 우승한 우승자에게 내릴 보상을 생각했다.
역시 우승자에게 줄 보상으로는 이만한 것이 없을 테지.
"마차 열 대 분량의 금화를 내려주마."
"!"
그야말로 파격적인 보상에 바아간의 눈이 반짝였다.
안 그래도 이번에 용궁이 반파되어서 수리비가 많이 들어가는 상황이었으니까.
무카는 돈에는 관심이 없는지 심드렁했지만, 그 참가자의 명단에는 깊은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그들에게 참가 의사는..."
바아간은 그들이 참가할 지 의문인 듯 했으나 황제는 단호했다.
"무인이라면 거절할 이유가 없겠지."
하긴 애초에 다른 자도 아닌 황제가 만수절을 맞아 대회를 여니 참가하라 하는데... 거절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바아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대가 되는군.'
황제는 벌써부터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사실상 대륙에서 거론되는 모든 강자들이 모이는 무술 대회.
묘왕 무카의 발안으로 시작된 황제의 만수절을 기념하는 행사는...
대륙 최강을 결정짓는 무술 대회로 결정이 나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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